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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이 있다

묵호의 냄새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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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서 열차는 달렸다. 논스톱으로 무조건 달려야만 하는 열차! 쉬지 않고 달린다. 물론 정치적 은유로 가득 찬 이 영화는 열차를 물리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전문 비평가와 눈썰미 있는 팬들이 이미 말했듯이 이 영화에서 열차는 도무지 멈출 줄 모르는 거대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뜻하기도 하고, 더는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생태계적 재앙의 물신이기도 하고, 인간 군상이 뒤섞여 살아가는 이 사회의 압축판이기도 하다. 열차는 폭파나 탈선이 아니고서는 멈추지 않는다. 영화 속의 열차는 그러한 은유를 싣고 무한히 달린다. 뚜렷한 인생의 목적지도 없이 무한 경쟁으로 달려야만 하는 우리네 삶처럼.

하여간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열차를 타기로 결심했다. 그 옛날, 1986년의 한여름에, 인제를 지나 한계령을 넘어 양양에 이르렀던 열아홉의 미성년이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페달을 밟았을 때, 갑자기 바로 곁에서 쿵쾅대며 달려가던 무궁화호 디젤 열차! 그 열차를 타기로 결심했다.

정동진의 추억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이 있다
그 무렵의 정동진은 지금과 같은 정동진이 아니었다. 정동진의 역사는 나름대로 오래되었으되 근자의 풍경이란 결국 드라마 ‘모래시계’ 이후의 결과다. 1986년의 정동진은 7번 국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해변의 작은 간이역이었다.

그때 나의 자전거는 비포장도로를 연신 헤매고 있었다. 지금은 7번 국도마저 양양 거쳐 속초까지 확장하고 있는 동해고속도로에 그 속도와 수송의 임무를 차츰 넘기고 있지만 그 당시엔 고속도로가 강릉에 겨우 다다른 정도였다. 강릉∼옥계 탄전지대의 석탄 수송을 원활하게 하려고 건설한 동해고속도로는 1974년 3월 착공해 1975년 10월 개통했으며 내가 낡은 자전거로 해변을 달리던 1986년 여름부터 본격적인 확장 공사에 나섰다. 그러니까 내 자전거는 확장공사 탓에 끊긴 7번 국도 안팎의 거친 대로를 피해 해안의 비좁고 낡은 길을 달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진실로 아담하고 아름다운 역 하나를 만났다.



인제에서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한계령 휴게소에서도 담배 한 대 제대로 못 피웠고 양양으로 내려오니 그래도 도시라서 회피하지 않을 수 없었고 포장공사 현장에서는 쉴 수도 없었던 몸이니, 그 아담하고 아름다운 기차역은 장거리 여행 중에 만난 최고의 쉼터였다. 그곳이 정동진역이었다. 발아래로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뒤로는 낡은 선로가 있었다. 역사는 작았다. 마을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아마도 그 무렵의 정동진은 지금 같은 상가 지구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열차가 잠깐 머무는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을 것이다.

나와 자전거는 오랜만에 멈췄다. 소나무가 몇 그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벤치는? 기억에 없다. 아마도 그것은 1995년 이후에 단장됐을 것이다. 그해 1월에서 2월 사이에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됐다. 최고 시청률이 무려 65%였다. 그래서 정동진이 바뀌기 시작했다. 정확한 문헌적 기록은 없지만 사람들이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 관광을 나선 첫 번째 사례가 바로 ‘모래시계’의 정동진일 것이다.

사람들은 정동진으로 몰려들었다. 이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가게마다, 리어카마다 모래시계를 쌓아놓고 팔았다. 마침내 정동진 남쪽 언덕에 거대한 배 하나가 올라섰다. 흡사 대양을 헤매다 언덕 위에 좌초한 듯, 2001년 12월 선박형 구조물 호텔이 정동진 남쪽 야산 60m 위에 건립된 것이다. 길이 165m, 높이 46.8m, 폭 26m의 이 호화유람선 형태의 숙박시설은 인간이 이 세계의 지형지물을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를 대범하게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한 설치미술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내 마음속의 정동진은 사라졌다.

나는 8월의 오후에 강릉에서 열차를 탔다. 강릉역의 주차장에 차를 버려두고 역사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 옛날처럼 거친 숨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열차는 시발역이 되는 강릉을 떠나기 위해 잠시 몸을 뒤틀었다. 곧 정동진에 도착했다. 나는 차창 밖의 정동진을 바라보았다. 피서철이라 사람이 적지 않았다. 모래시계도 여전했고, 참으로 조잡하게 만들어놓은 조형물들도 여전했고 저 언덕 위의 거대한 유람선 모양도 여전했다. 내 마음속의 정동진은 사라져버렸다. 힐링은 고사하고 마음이 오히려 텅 빈 듯했다. 잠깐이라도 내릴까 했으나 이내 고개를 돌렸다. 열차는 출발했다. 곧 묵호였다.



오래전, 나는 이 길을 간 적이 있다

정동진역

온 세상 가득한 비린내

강릉에서 정동진 거쳐 묵호에 이르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 미성년의 기억을 완전히 복기해버렸다. 마치 영화의 시퀀스처럼, 그 시절의 자전거 여행은 묵호에서 한 단락이 맺어진다. 가평에서 인제까지, 정동진에서 묵호까지, 그다음은 울진에서 시작해 상주로 끝이 나고, 또 그다음은 마산에서 보성 지나 목포에 이르는 식이다. 왜 그렇게 단락이 나뉘는지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자전거 여행은 군데군데 잘려 나간 몇 단락으로 기억된다.

왜 묵호일까. 나는 7번 국도를 따라 삼척 지나 울진으로, 거기서 경북 산간 지방으로 꺾어졌는데, 왜 묵호가 한 시퀀스의 마무리로 유난히 또렷한 것일까. 이번에 열차를 타면서 그 까닭을 짐작하게 되었다.

강릉에서 출발한 열차는 정동진까지 해변을 따라 달리다가 옥계 쪽으로 가면서는 잠시 바다와 멀어진다. 그렇다 해도 10분 안팎의 일이지만 하염없이 바다를 곁에 두고 달릴 것 같은 선로가 잠깐 산야로 방향을 틀자 일부 피서객은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랬던 열차가 망상을 지향해 다시 바다 곁으로 나오게 되고 곧이어 대진항을 지나 묵호로 들어가게 된다.

그 사이에 나는 어달해수욕장을 보았다. 그렇다는 것은 그 해수욕장 바로 곁이 어달동이라는 뜻이다. 열아홉 살 때의 자전거 길에 만났던 바로 그 어달동이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나는 그때 동해고속도로는 물론이고 7번 국도 또한 이용하지 않고 그저 비좁고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계속 달렸던 것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달리다가 갑자기 온 세상을 가득 채운 비린내를 맡았다. 그 냄새는 지금까지도 짙게 풍겨져 온다. 열차나 자동차라면 그 차창을 열기 전에는 맡을 수 없는 냄새일 텐데, 나는 그때 온몸으로 맞바람을 받으며 연신 페달을 밟고 있었고 묵호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흡사 안개처럼 완전히 항구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비린내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저녁 불빛이 하나둘씩 밝혀지던 어달동 언덕에 서서 나는 한참이나 비린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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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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