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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경남 남해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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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남해 금산.

섬과 섬들이 헤엄쳐 다가가 손잡고 웃는 풍경을 보면서 이윽고 너도 나도 당초에는 섬이었음을 알게 되는 발견의 자리가 바로 보리암이란 사실이 놀랍지 않다. 아껴주고 보듬어주고 서로 허물을 안아주면 세상의 경계가 모두 무너지는 화엄의 세상이 된다는 깨달음 또한 이 위태로운 벼랑 위에서 가능하다. 완성은 완미(完美)의 다른 표현, 그것이 마음의 눈과 눈이 합쳐지고 멀고 막막한 것까지 하나 될 때 이뤄짐을 알게 되는 경지는 원효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는 지경과 근사하다 해도 지나칠 바는 아니다.

금산 산행로 초입을 지나 고개 하나를 타 넘으면 다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길 아래로는 포구를 낀 마을이 나타난다. 벽련마을이다. 차를 버리고 포구 끝에 서면 바다 저만치에 외따로 떠 있는 삿갓 모양의 섬 하나가 눈에 잡힌다. 섬 기슭에 앉은 집채들도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노도(櫓島). 예전에 배의 노를 많이 생산하던 섬이라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섬으로 가기 위해 낚싯배 한 척을 빌렸다. 머잖아 이곳에도 정기 도선이 운항하게 된다고 선장이 일러주었다. 단숨에 바다를 건넌 통통배는 우리 일행을 선착장에 떨궈놓곤 저 왔던 곳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김만중이 귀양 살던 곳

주민센터 건물을 지나 마을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수령이 꽤 있어 보이는 팽나무 한 그루가 있고, 나무 그늘에 ‘서포김만중선생유허비’가 서 있다. 마침내 나 또한 책에서만 봤던 서포 김만중의 귀양처에 발을 디뎠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노도는 서포에게 생애 세 번째 유배지인 동시에 마지막 숨을 거둔 절명의 땅이기도 하다. 숙종 15년, 후궁 장 씨의 소생인 ‘균’의 원자 책봉을 반대하던 서인들이 한꺼번에 축출되는 기사환국이 있었다. 서인의 우두머리로서 결사코 반대에 나섰던 서포 또한 절도(絶島) 유배의 명을 받고 섬 중의 섬인 이곳으로 쫓겨났다. 죽는 날까지 서포가 이곳에 머문 기간은 3년 남짓이었다.

선창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큰골에 그의 유배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창 공사 중인 서포기념문학관을 지나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 길을 걸었다. 20여 분 걸으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르막 층계 길은 서포의 시신이 묻혀 있던 허묘(虛墓)로 가는 길이고 아래쪽은 서포가 머문 초막으로 가는 길이다. 꽤 가파른 층계 길 끝자락에 허묘 자리임을 알리는 표석이 놓여 있다. 혹독한 귀양살이에서 풍토병까지 앓았던 서포가 숨을 거둔 때는 숙종 18년 4월 그믐날이었다. 향년 쉰여섯. 혼령은 쉽사리 섬을 떠났겠지만 한 많은 육신은 몇 달간 더 이곳에 남아 있어야 했다.

벼랑에 서서 깨닫다 아,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최학

1950년 경북 경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대학원 졸업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식구들의 세월’ 등

장편소설 ‘서북풍’ ‘안개울음’ ‘미륵을 기다리며’ ‘화담명월’ 등


그가 거처했다는 초막은 동백나무 숲 그늘에 고즈넉하게 서 있다. 몇 년 전 유배지 자리를 고증해서 새로 지은 집이라 세월의 흔적은 읽을 수 없지만 초막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참으로 빼어나다. 바다 한자락이 굳이 이편 골짝을 파고들면서 깎아지른 갯바위에 흰 포말을 일으키는가 하면, 금산 주봉에서 뻗어 내려온 본섬의 산봉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든다. 바라보이는 바다는 넓지도 좁지도 않다. 귀양살이의 고단함을 풍경으로나마 달래라고 위리안치의 터를 이런 멋진 데다 정한지도 모를 일이다.

숲에서 나는 새소리가 뜰의 적막을 더 깊게 하는 한낮. 문학적 감수성을 온전히 갖고 있으면서도 당파의 명분에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옛 시대 한 지식인의 고뇌와 갈등을 유추해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서포의 유배 터를 찾아온 보람을 가진다.

신동아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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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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