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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역사성 대신 본성 사론(史論) 아닌 도덕론

이광수 ‘민족개조론’에 담긴 시선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역사성 대신 본성 사론(史論) 아닌 도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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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성 대신 본성 사론(史論) 아닌 도덕론

‘그럭저럭 산다’는 건 흉이 아니다. 그럭저럭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역사의 경험은 보여준다. 인류의 이상이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삶의 리듬을 챙기며 살 수 있는 세상은 누구에게나 소망이 아닐까. 식민지에선 종종 그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투항과 투쟁의 기로에 서야 했다. 사진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의 출근길.

생존과 투항 사이

‘내 자식이 되어달라는 선생의 말씀을 들은 지 5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야 선생의 간곡한 부탁을 따르게 되었습니다.……조선인은 앞으로 텐노오의 신민으로서 일본 제국의 안락과 근심 걱정을 떠맡고 나아가 그 광영을 함께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민 수업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선이야말로 텐노오 중심주의로 나아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이광수는 과거에만 그러한 게 아니라, 현재의 조선인도 스스로 이룬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전등, 수도, 전신, 철도, 윤선(輪船·기선), 도로, 학교…. 즉 근대를 표상하는 문물을 이룩하는 데 기여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인이 세운 교육기관이래야 고등보통학교 몇 개에 불과하고, 산업기관이래야 자본 1000만 원도 못 되는 구멍가게 같은 은행 몇 개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의식에 그가 무실(務實), 역행(力行)을 주장했던 목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제국들은 이렇게 자신들이 근대 문명을 이루어갔다. 그 문명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식민지 조선은 달랐다. ‘문명’의 탄생과 발전에 기여는커녕 그 ‘문명’의 주인들에게 종속돼버렸다.

생존하기 위해선 ‘문명’의 주인들과 대등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어깨를 겨룰 수 있어야 했다. 이광수가 전등, 수도, 전신, 철도 등을 쭉 열거하는 것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이 아니다. 바로 근대 ‘문명’이고 식민지의 ‘주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식민지는 그렇게 생존을 위해 확보해야 할 조건을 만들어가는 데도 결단을 요구했다. 제국과 식민지는 결코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문명’의 차이이며, 지배-피지배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노동은 제국의 자본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등하기 위해선 선택해야 한다. 투항할 것인가, 투쟁할 것인가! 투쟁을 선택하는 순간 대등해질 것이지만 위험하며, 그래서 투쟁하고 싶지만 마음뿐인 경우도 많다. 투항하면 실제로 대등해지지는 않겠지만 대등해졌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후자였다. 투항할 때는 대들지 않는다. ‘민족개조론’에 일제의 침략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본성 차원에서 본 역사

투항이든 투쟁이든 선택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얘기하다보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다. 그렇다, 반성이다. 왜 지금 이렇게 되었는지를 묻고, 지금까지 진행돼온 사정을 점검한다. 회상하거나 일기를 들춰보는 것도 이때다. 이광수도 ‘민족개조론’에서 그리하였다. 그 기억과 기억하는 방식이 곧 이광수의 역사론이 된다. 이 부분이 정교해야 투항이 투항처럼 보이지 않는다. 거꾸로 일본제국의 입장에선 이 부분이 정교해야 침략과 지배가 침략이나 지배로 보이지 않는다.

이광수는 식민지 상황의 원인을 악정(惡政)이라고 했다. ‘조선 민족의 쇠퇴의 책임은 그 치자 계급―즉, 국왕과 양반에게 있다.’ 정치를 문란하게 한 것, 산업을 쇠잔케 한 것, 국민교육에 힘쓰지 아니한 것, 사회의 풍기와 인민의 정신을 타락하게 한 직접의 책임이다. 자기 일신의 권세, 자기의 친척 붕우(朋友)의 출세, 자기와 운명을 같이하는 당파를 위해서만 행동하는 공직자들, 이것이 조선의 악정이었다는 것이다. “허위, 비사회적 이기심, 나타, 무신, 겁나, 사회성의 결핍”이, 조선 민족이 ‘금일의 쇠퇴’에 빠지게 한 원인이며, 그는 이를 자신의 ‘사론(史論)’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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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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