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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관음증은 그들의 자유 우린 예술 위해 당당히 벗는다”

하영은 한국누드모델협회장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편견과 관음증은 그들의 자유 우린 예술 위해 당당히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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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누드모델도 어엿한 직업…당당해지려 협회 만들어
  • ● 돈 목적 아닌 ‘예술작업 동반자’ 자부심이 매력
  • ● 벗었다고 성적 매력을 보여준다는 생각은 편견
  • ● 섹스는 해봤어도 연애는 못 해봤다
“편견과 관음증은 그들의 자유  우린 예술 위해 당당히 벗는다”
“발가벗는다”는 말은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여기엔 ‘진실성’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알몸’은 ‘수치’ ‘나약함’ 또는 ‘욕망’의 상징으로 인식돼왔다.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유교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성경에서도 아담과 이브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 받은 최초의 형벌이 발가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는 감정이었다. ‘몸은 가려야 한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 규범이다. 그럴수록 한편으로는 타인의 알몸을 훔쳐보고 싶어 하는(관음증) 욕망도 커져갔다.

누드모델은 회화, 조각, 사진 등에 나체를 표현하기 위한 대상으로 발가벗은 모델을 말한다. 스스로 보편적 규범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들은 왜 남 앞에서 알몸이 되는 걸까. ‘누드모델 1호’로 불리는 하영은(46) 한국누드모델협회장을 만난 이유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누드모델에 대한 편견을 깨고, 누드의 미학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1988년 데뷔 이후 26년째 누드모델의 길을 걸어온 내공이 느껴졌다.

당찬 목소리 직설적인 말투

지하철 홍대입구역 인근 건물지하에 위치한 한국누드모델협회 사무실. 삐걱,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젊은 여성 대여섯이 몸을 푼다. 어떤 이는 무용 동작을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요가를 하듯 천천히 움직이면서 신경을 곧추세워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느끼는 듯 보였다. 묘하게도 저마다의 동작이 실내에 흐르는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걸걸한 목소리의 여성이 다가왔다. 하영은 회장이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직설적인 말투가 첫인상에도 ‘당차다’는 느낌을 준다. 그가 마시라며 건네준 커피도 진한 블랙이었다.



▼ 원래 성격이 괄괄하고 개방적인가요.

“‘여자가 많이 배우면 콧대만 높아진다’며 대학도 안 보내는, 남성우월주의가 뿌리 깊은 집안에서 자랐는데 개방적일 수 있었겠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남자 손 한 번 못 잡아 봤는 걸요. 학교에선 괄괄한 편이었지만, 학교 밖에서는 내성적인 스타일이었죠.”

▼ 그런데 어떻게 누드모델의 길에 들어서게 됐나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시집가라고 성화였어요. 형부가 서울에 직장을 얻어준 덕분에 독립했죠. 회사에 다니면서 밤에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등바등 살았어요. 그러던 1988년 어느 날, 강도를 만나 월급과 아르바이트 주급을 한꺼번에 다 빼앗겼어요. 당장 먹고살 게 막막했죠. 집에 이야기했다간 고향으로 끌려 내려갈 게 뻔했고. 그때 레스토랑 단골손님이던 사진작가가 올 때마다 제게 누드모델을 하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어요.”

그는 자신이 대단한 매력이 있어서 제안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누드모델이 드문 시절이라 누드사진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마다 “너도 한번 해보라”고 꼬이곤 했다는 것.

운명처럼 시작된 ‘천직’

▼ 돈이 절실했다고 해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사람이 최악까지 가면 못 할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생활은 해야 하니까요. 누구에게 손을 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그걸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 첫 촬영은 어땠나요.

“한탄강에서 열린 사진촬영대회였는데, 500~600명 모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모델은 저를 포함해 5, 6명이었고요. 막상 촬영장에 가니까 때려죽여도 옷을 벗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죽어도 못하겠다고 했더니 행사 책임자가 ‘안 할 거면 모든 행사 경비와 위약금을 물어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죠.”

“편견과 관음증은 그들의 자유  우린 예술 위해 당당히 벗는다”
▼ 첫 촬영 때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첫 순간만 기억나고 나머진 아예 기억이 없어요. 어떻게 포즈를 취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두렵고, 떨리고, 하늘이 노랗고, 정신이 없었다는 기억밖에 없어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엄청 컸고, 작가들이 사람으로 안보이고 내게 달려드는 짐승처럼 보였어요. 그때의 느낌은 남아있는데, 그걸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런 큰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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