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노는 버릇 들여라
어떻게 하면 내고독력을 키울 수 있을까? 혼자 노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을 시절부터 혼자 밥 먹고 혼자 책 읽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산책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게 좋다. 갑으로 올라갈수록 외로워지다보니 많은 사람을 주변으로 불러 모아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경향이 없지 않다.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다. 일부러라도 혼자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내고독력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로메테우스에게 영혼을 팔고 고독을 사와야 얻을 수 있는 자리가 바로 갑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내고독력을 키울 생각이 없다면, 그냥 슈퍼 을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 고독을 즐기면 부가로 얻는 것이 있다. Think big! 생각이 더 깊어지고 광활해진다. 그런데 당장 홀로 점심을 먹으려니 두려워진다? 내고독력 지수가 바닥이라는 반증이다.
외롭기 때문에 두렵다.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무한 공포로 다가온다. 이러다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욕만 듣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밀려나는 것은 아닐까? 갑의 공포에는 시도 때도 없고 경계도 없다. 갑의 집무실은 왜 그리도 넓은지. 공간이 헛헛하다보니 공포도 도도하다.
수많은 적의 출몰
적도 자꾸 늘어나기만 한다. 갑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다른 실적을 내려고 경쟁을 물리치면서 만든 적은 물론이고, 단지 갑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적해야 할 적이 수없이 출몰한다. 안 그래도 많은데 계속 늘기만 한다. 거의 기하급수적이다. 당연히 주변에는 서운해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심지어 과거에 잘 지내던 사람들까지 적으로 돌변하고, 생면부지의 불특정 대중과 네티즌도 적이 된다. 이들은 갑이 된 순간부터 갑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집요하게 위협한다. 이 거대한 쓰나미를 오롯이 혼자 상대해야 하는 공포감은 스펙터클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내공포력(耐恐怖力·fear endurance power)이다.
갑에게 내공포력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포정치를 펼친다. 자신이 두렵다보니 그 공포감을 이기려고 오히려 적을 공포로 몰아넣는 역설적인 일을 벌이는 것이다. 연산군, 김일성, 네로황제, 히틀러도 스스로 공포를 이기지 못해 공포정치를 했다. 기업에서도 공포경영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역시 사주나 CEO의 내공포력 부족 때문인 경우가 많다.
반면, 내공포력이 충만하면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 오히려 더 냉정해지면서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간다. 최근에 영화 ‘엔더스게임(Ender′s game)’을 봤다. 우주전쟁을 빙자한 아동학대라는 혹평도 없지 않지만 이 영화는 리더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엔더를 동료들로부터 일부러 고립시키는 부분이다. 거의 왕따에 가까운 상태에서 담대함과 지략으로 돌파해가는 엔더. 그렇게 엔더는 공포를 이길 힘을 키워간다.
대통령의 가치는 언제 나오나
대통령의 존재가치는 언제 나오는가? 대통령의 진정한 존재가치는 국가의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이를 추호의 흔들림 없이 돌파할 때 나온다. 지구를 지켜낼 마지막 사람 엔더처럼 나라를 지켜낼 마지막 단 한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다. 이 일만 잘해내면 사실 나머지 시간에 놀고먹어도 관계없다고 본다. 미국인이 링컨 대통령, 루스벨트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이 위기 국면에서 보여준 지도력에 있다. 바로 이 위기 국면에서 이들이 느꼈을 공포감이 어땠을 것 같은가? 이들은 공포감을 잘 감당해낸 갑이다.
내공포력을 키우는 것은 내고독력을 키우는 것보다 힘들다. 실제로 공포에 직면하지 않고는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 공포를 대면해본 적이 없다면 공포감을 주는 일에 도전해볼 필요가 있다. 압도적 공포에 대면해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는 수준까지 가본다면 내공포력이 생긴다. 물가까지 갔는데 뛰어들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식으로는 내공포력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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