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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일상화, 무감각화 미래를 저당 잡히다

‘대출의 늪’ 빠져드는 청년세대

  • 김건희 객원기자 | kkh4792@hanmail.net

빚의 일상화, 무감각화 미래를 저당 잡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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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가계부를 살펴보자. 당시 이씨의 한 달 수입은 100만 원. 월세(35만 원), 학자금 대출 상환(27만 원), 공과금(3만 원), 교통비(7만 원), 통신비 및 휴대전화 할부금(8만 원)을 지출하고 20만 원으로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입한다. 현금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에게 카드회사가 신용카드를 발급해줬다. 비록 6개월 계약직이긴 하지만 고정수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도는 100만 원으로 이씨의 한 달 급여와 같다.

신용카드는 여러모로 편리했다. 후불제이지만 결제일별로 사용기간을 조정하면 최장 2개월까지 대금 상환을 미룰 수 있었다. 이씨는 현금이 모자랄 때마다 식비와 학원 수강료를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할부서비스도 요긴하게 사용했다. 면접에 필요한 의류나 신발은 신용카드 할부서비스를 이용해 구입했다.

하지만 신용카드를 쓰면 쓸수록 이씨의 자금 상황은 궁핍해졌다. 나중엔 카드 대금을 막기 위해 현금서비스까지 이용했다. ‘현금 부족→신용카드 사용→현금 부족→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사용’이라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그때마다 카드사는 카드 대금을 일부만 결제해도 된다며 ‘리볼빙 결제서비스’를 안내했다. 미결제금액을 약간의 이자와 함께 12개월 약정으로 갚으라는 것이다.

이씨는 “답답하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과소비를 한 것도 아니고 학자금 대출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빚을 졌을 뿐인데, 어느새 여러 장의 신용카드와 대출서비스로 돌려 막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S저축은행에 대출을 문의했다가 살인적인 연체이자율에 수화기를 내려놨다. 다수의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으로 전환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땐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이씨는 “토익 인터넷 강의를 3개월 간 90% 이상 수강하면 수강료 일부를 돌려주는 페이백(결제금 일부분을 돌려주는 것) 서비스를 이용해 악화된 자금사정을 겨우 회복했다”며 “빚은 테러이고 폭력이다. 요즘 젊은 층에서 왜 ‘헬조선’(한국혐오) 바람이 부는지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사례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두 가지다. 금융권이 신용 기반이 약한 청년층에게 대출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소득이 불안한 청년층이 금융 소비자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이유가 뭘까. ‘약탈적 금융사회’의 저자 이현욱 변호사는 “정부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위축된 소비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금융산업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위기 대응책으로 마련된 금융 자율화 정책과 교육복지에 대한 요구가 학자금 대출 시장을 키우고, 청년층에게 신용카드를 남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빚의 일상화, 무감각화 미래를 저당 잡히다
“받을 만큼만 빌려주라”

채무를 개인의 잘못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도 문제다. 이씨처럼 빚을 진 청년들을 괴롭히는 건 빚을 졌다는 ‘자책감’이다. 이씨도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지 못한 정부에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잘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청년들이 내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빚을 지고 연체에 허덕이는 청년을 향한 비난을 거둬야 한다”고 말한다.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대표는 “못 갚는 것을 안 갚는 것으로 간주하고, 못 갚을 만큼 빌려준 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갚을 만큼만 빌려야 한다면, 받을 만큼만 빌려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과도하게 빚을 권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외벌이 가정의 가장 강석진(가명·36)씨는 최근 5년간 ‘빚에 웃고 빚에 우는’ 삶을 살았다고 털어놨다. 불행은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빌린 전세주택대출금에서 비롯됐다.

2010년 월 소득이 300만 원이 채 안 되던 강씨는 은행에서 1억 원을 빌렸다. A뉴타운 26평(85.95㎡) 장기전세주택(시프트)에 입주하기 위해서였다. 소득의 20%를 15년간에 걸쳐 상환하는 것이 부담이었지만 모험을 감행했다. 입주할 아파트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데다 은행이 지방자치단체와 협약을 맺었다며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이씨는 “대출 한 번으로 집 문제가 해결되니 살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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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객원기자 | kkh479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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