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탄불이 세계 여행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까닭은 동서양 문명의 교류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유산도시여서다.
- 이스탄불에선 정교회 성당이면서 동시에 이슬람 모스크인 건축물을, 성모 마리아를 그린 모자이크와 미나렛(모스크의 뾰족탑)을 함께 볼 수 있다.
2000년 넘도록 정치, 종교, 예술의 중심지이던 이스탄불은 약 1600년간 여러 제국의 수도였다. 로마제국(330~1204), 라틴제국(1204~1261), 비잔틴제국(1261~1453)의 수도였고,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오스만제국(1453~1922)의 수도가 됐다. 도시 이름 ‘이스탄불’은 오스만제국 때 붙여졌다. 이후 들어선 터키 공화국(1923~ )이 수도를 앙카라로 정하면서 이스탄불은 수도의 지위를 내려놓았지만, 전 세계 여행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세계유산도시가 됐다. 다들 앙카라는 몰라도 이스탄불은 안다.
‘탁월한 기념물의 집합체’
이스탄불 역사지구(Historic Areas of Istanbul)는 198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세부기준 (i) (ii) (iii) (iv)를 충족시킨 것으로 인정됐다.
(i) 성 소피아 대성당과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복합단지, 비잔틴과 오스만 시기 건축 걸작을 보유했다.
(ii) 이 기념물들은 건축 및 예술 발전과 관련해 유럽 및 근동(Near East· 발칸반도 또는 오스만제국 영토)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제2의 방어벽 및 테오도시우스 2세의 고대 성벽은 군사 건축물의 선도적 표준이 됐다. 성 소피아 성당은 모든 교회 및 훗날 모스크의 모델이 됐고, 콘스탄티노플의 궁전과 교회의 모자이크는 동·서양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iii) 이스탄불은 비잔틴과 오스만 문명의 독특한 증거다. 다양한 건축 유형과 예술작품이 잘 보존돼 있다(방어 시설,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교회와 궁전, 저수조, 무덤, 모스크, 종교교육기관과 목욕장 건물 등). 특히 쉴레이마니예 및 제이레크 지역 내 주요 종교 건축물 주위 주택군은 후기 오스만 도시 건축의 이례적 증거로 판단된다.
(iv) 이스탄불은 인류 역사의 매우 뚜렷한 각 시기를 표현하는 건축적, 기술적 앙상블이며 탁월한 기념물의 집합체다. 특히 토프카프 궁과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복합단지는 오스만 시기의 궁전과 종교 시설의 집합체를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다.
등재된 이스탄불 역사지구는 4개 보호지역으로 나뉜다. △발칸 반도 끝 고고학 유적공원(술탄 아흐메트 구역) △쉴레이마니예 구역 △제이레크 구역 △테오도시우스 성벽 구역이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Sultan Ahmet Camii
반도 끝 고고학 유적 공원인 술탄 아흐메트 구역에는 17세기에 건립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와 그 광장, 과거 콘스탄틴 전차경기장,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아야 소피아와 그 관련 건축물들, 토프카프 궁 박물관,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 모스크 등이 있다.
17세기 초에 건립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중심 돔 내부를 장식한 푸른 타일 때문에 ‘블루 모스크’로 더 잘 알려졌다. 요즘에도 모스크로 사용돼 기도 시간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수용인원은 1만 명, 돔은 직경 23.5m, 높이 43m로 대규모 모스크다. 이 모스크가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오스만 모스크 건축이 최고점에 달했을 때 건설됐을 뿐만 아니라 이웃한 아야 소피아의 비잔틴 요소와 결합해 고전주의 시대 최고이자 최후의 모스크로 간주되기 때문.
이 모스크의 건축가는 시난의 제자로, 압도적인 규모와 장엄함, 화려함을 목표로 삼아 스승의 건축 철학을 종합적으로 구현하려 했다고 한다. 주두(Capital), 중정 출입문(Portal), 종유석(stalactites) 디테일, 모래시계 형태의 장식, 출입구 아치, 제단(Mihraps), 설교단(Pulpits), 내부에 사용된 각종 장식 및 타일, 스테인드글라스…. 하나하나가 다 걸작이라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 과거 콘스탄틴 전차경기장 자리에 있는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세르펜트 기둥, 콘스탄티누스 기둥들을 잠시 살펴봤다.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에 사용된 청동과 반암 큐브(bronze and porphyry cubes)가 지진에 안전한 구조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는 ‘성스러운 지혜(Holy Wisdom)’라는 뜻이다. 비잔티움 시대인 360년 지어진 정교회 대성당으로, 화재로 두 번이나 소실됐다가 532년 재건됐다. 이후 오스만제국 술탄 마흐메트 2세에 의해 1453년부터 모스크로 사용됐다. 이때 대성당 내부 십자가는 철거되고, 성화(Icon)는 석회칠로 덮였다. 제단에는 메카의 성전을 향하는 방향을 나타내는 미흐랍(Mihrab)이 설치되고 설교단상(Minbar)이 첨가되는 등 모스크로 전면 개조됐다. 이름도 ‘아야 소피아 자미(Ayasofya Cammi)’로 불렸고, 술탄이 금요일마다 예배차 방문해 당시 오스만제국에서 가장 고품격의 모스크로 여겨졌다.
1923년 정부를 수립한 터키공화국은 아야 소피아를 인류 모두의 공동유산으로 지정하고 박물관으로 개조해 1935년부터는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 됐다. 내부에선 모든 종교적 행위가 금지된다. 아야 소피아는 현존 비잔티움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보수공사 중이라 경내가 다소 복잡했다. 경내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우측에 있는 팔각형의 화려한 건물에 들어가 손발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데, 이 의식용 세면소(Fountain)는 18세기에 지어졌다. 이스탄불에서 같은 종류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튤립 모양의 황동 배너에는 ‘우리는 물로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경구가 쓰여 있다.
팔각 세면소 옆에는 18세기에 건립된 초등학교 건물이 있다. 현재는 문서 관리 센터로 이용되는데, 벽돌의 수평선 띠가 돌과 잘 어우러져 이슬람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과 벽돌이라는 같은 재료를 문화권마다 어쩜 이렇게 달리 구사하는지 흥미로웠다.
아야 소피아 대성당 내부에서 괄목할 만한 것들로는 나무판에 새겨 넣은 황금색 이슬람 문자(Calligraphic panel of Ayasofya), 상층의 모자이크와 다양한 타일 등이다. 하나하나가 너무 정교해 눈을 뗄 수가 없다. 1층 출구 근처 익랑에는 소원을 비는 기둥이 있다. 구멍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360도 돌리면서 소원을 말하면 이뤄진다고 한다. 남서쪽 출구로 나오다가 뒤돌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유스티아누스 1세가 대성당의 모형을 손에 든 그림이다.
대성당 안에서 눈여겨봐야 할 문은 세 개다. 6세기에 지어진 황제의 문(The Emperor Door)과 마치 목조를 조각한 것 같은 상층 갤러리의 백색 대리석 문(The Marble Door), 남서쪽 출구에 있는 청동으로 된 나이스 도어(The Nice Door 또는 The Vestibule Door)다. 대리석 문은 양면의 마감이 다른데 한 면은 천국을, 반대쪽 면은 지옥을 상징한다는 설도 있다. 나이스 도어는 기원전 2세기경 만들어졌다고 한다.
토프카프 궁
15세기 건립된 토프카프 궁은 오스만 술탄들이 그들의 전체 통치기간 624년 중 약 400년(1465~1856년) 동안 머문 대규모 궁전이다. 현재는 아야 소피아와 마찬가지로 박물관으로 이용되며 이슬람교의 성물(聖物)이 보관돼 있다. 토프카프 궁은 처음에는 ‘예니 사라이(Yeni Sarayı)’라고 불렸지만 궁전 입구 양쪽에 대포가 비치된 데 연유해 이름이 바뀌었다. ‘토프(top)’는 대포, ‘카프(kapi)’는 문이란 뜻이다.
영국 작가 에릭 클리포드 앰블러 경은 1962년 소설 ‘토프카프’로 에드가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에메랄드가 박힌 메흐메트 2세의 단검을 훔치려는 도둑 신사의 모험을 희화화한 코미디 영화 ‘토프카프’(1964)가 제작됐다. 영화는 토프카프 궁에서 촬영됐다.
토프카프 궁전 단지에는 ‘아야 이리니(Aya Irini·성 이레네 교회)’가 있다. 아야 이리니는 ‘신성한 평화’란 뜻. 이 교회는 옛 비잔틴제국 때 세워진 첫 번째 교회로 아야 소피아가 건설되기 전까지 대주교가 있는 대성당으로 사용됐다. 이후 화재로 재건을 거듭했고, 오스만제국 시절에는 예니체리 부대의 무기창고로도 사용됐다. 현재 건물은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재건한 교회 모습 그대로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진 않지만, 클래식 공연장으로 드물게 사용된다.
쉴레이마니예 구역
The Suleymaniye Area
쉴레이마니예 구역에는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복합단지(Suleymaniye Mosque complex), 재래시장과 토속 정주지역, 16세기의 셰자데 모스크 복합단지, 발렌스 수도교(the aqueduct of Valens)가 있다.
쉴레이마니예 1세의 명령으로 건축가 시난이 설계한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는 대표적인 오스만 건축으로 돔의 직경이 무려 26m, 높이는 53m이다. 또 높이가 72m에 달하는 미나렛(Minaret)이 4개나 있는 이스탄불 최대 규모의 모스크다. 미나렛은 아랍어로 ‘등대’란 뜻으로 이슬람 모스크에 부설되는 뾰족탑을 가리킨다. 신도들에게 기도하러 오라는 메시지를 큰 소리로 전하던 곳이라고 한다.
테오도시우스 성벽 지역
The Zone of the ramparts
테오도시우스 성벽 지역은 3세기 초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건설된 성벽을 따라서 구시가지 외곽 주위로 설정된 블라헤르나이 궁(Blachernae Palace)의 성벽 유적지를 말한다. 성벽은 외벽 및 내벽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고, 도시 전체를 방어하기 위해 지어졌다. 또 5세기 때 지어진 옛 코라 사원 내부에선 14~15세기에 조성된 모자이크화가 발굴돼 현재는 박물관(Kariye Museum)이 됐다. 그 밖에도 대욕장, 물탱크, 무덤 등 다양한 건축이 세계유산에 포함된다.
조인숙
● 1954년 서울 출생
●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성균관대 석·박사(건축학)
● 서울시 북촌보존 한옥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 現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 역사건축구조 국제학술위원회 부회장, 국제건축사연맹 문화정체성-건축유산위원회 국제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