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혜로 9000억 비용 절감
- “MB, 인수위 때 롯데호텔 스위트룸 장기 체류”(A의원)
- “기무사 최고위 인사, MB 취임 후 공군에 압력”(A의원)
- 롯데 골육상쟁, 이명박 정권으로 비화?
많은 사람은 아버지·장남·차남 간 경영권 골육상쟁에 혀를 찼다. 일본롯데가 ‘반도체 회로’보다 복잡한 순환출자로 한국롯데를 지배하면서 거액 배당금을 가져가는 사실을 알았다. 오너 일가가 자기네끼리는 일본어로 말하는 사실을 알았다. TV 화면으로 장남 시게미쓰 다케오(신동주)가 차남 시게미쓰 아키오(신동빈)에게 일본어로 신랄하게 비난하며 손가락질하는 광경도 지켜봤다. 롯데칠성 음료를 마시고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고 롯데백화점에서 쇼핑하는 많은 국민이 실망감이나 배신감을 느꼈을 법하다.
이런 가운데 롯데 형제의 난 불씨가 이명박 정권으로 튈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재계 5위 롯데는 이명박 정부 시절 크게 성장했다. 이명박 정부 5년 간 계열사를 46개에서 79개로, 자산총액을 49조 원에서 96조 원으로 늘렸다.
그러나 서울 제2롯데월드 허가, 부산 롯데타운 허가, 맥주사업 진출, AK글로벌 면세점 지분 인수 과정에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123층 제2롯데월드는 공군시설인 성남공항의 활주로 각도까지 변경하며 허가받은 것이어서 지금도 구설에 오른다. “이명박 정부와 롯데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안 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정두언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기자에게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공군기지로서 성남공항의 기능이 취약해진 부분에 대해선 롯데가 비용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 성남공항의 공군 비행항로 근처에 초고층빌딩인 제2롯데월드가 들어섭니다. 공군이 작전을 수행하거나 유사시 수도권을 방위하는 데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장으로서 이런 의견에 공감합니까.
“당연히 공감하죠. 안보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건 아닌지….”
▼ 이명박 정부가 건축허가를 낼 당시 공군이 반대했죠. 김은기 당시 참모총장은 끝까지 안 된다고 하다가 옷을 벗었고요.
“공군 장성들이 왜 그렇게 결사적으로 반대했겠어요? 제2롯데월드를 안 짓는다고 그들이 무슨 큰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닌데.”
▼ 공군 관계자들은 개인적 이익에서 접근한 게 아니라 나라를 염려해 반대했다?
“맞잖아요.”
▼ 제2롯데월드로 인해 성남공항과 수도권의 안보가 심각하게 취약해지는 면이 있다고 봅니까.
“심각하니까 그분들이 그렇게 반대한 거고요. 미국 같은 선진국에선 어림도 없는 일이겠죠.”
▼ 하지만 허가를 받아 건물이 이미 올라가고 있는데요.
“차제에 그걸, 제2롯데월드를 없앨 순 없잖아요. (훼손된 기능을 되찾도록) 성남공항을 어떻게든 보완해야 하는데 그 돈을 롯데에서 내놔야죠.”
▼ 활주로 각도를 3° 정도 튼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건가요.
“안 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공항을 이전한다든지 뭐든 할 때 롯데가 다 내놓아야지. 안보 문제로서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봐요.”
“9000억은 롯데에 덤으로…”
2008년 당시 공군은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불과 5km 떨어진 성남공항(성남공군기지)에서 발진하는 전투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활주로에서 항공기가 이륙해 곧게 날면 이내 제2롯데월드 터 근처 상공에 다다른다. 공군 조종사들은 “제2롯데월드의 절반 높이에도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 “건물과 1500m 떨어진 곳이라면 순간의 실수에도 1~2초 안에 건물에 닿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군은 안전을 담보하려면 성남공항의 동편 활주로 각도를 7° 틀어야 한다고 봤다. 이럴 경우 1조2000억 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노무현 정부는 비슷한 이유로 제2롯데월드 사업을 불허했다.
2008년 9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제2롯데월드 건축을 반대한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을 해임하고 이계훈 총장을 임명했다. 이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국방부와 공군은 “성남공항 활주로 각도를 3° 변경하면 비행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서를 냈다. 롯데는 저층부 건축허가를 받은 뒤 민관합동회의와 행정협의조정회의를 거쳐 2009년 3월 초고층건물 건축 승인을 얻었다. 이와 관련해 정두언 국회 국방위원장은 ‘신동아’ 인터뷰를 통해 ‘3°로는 우리 전투기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공론화하고 나선 것이다.
국방부 추산에 따르면 활주로를 3° 트는 비용은 약 3000억 원.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이 금액은 롯데 측이 떠안기로 했다. 그러나 활주로를 7° 트는 비용인 1조2000억 원과 비교하면 롯데는 9000억 원을 절감한 셈이다. 새누리당 A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롯데에 이중특혜를 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롯데에 초고층건물 건축을 허가해준 것만 해도 특혜인데, 거기에다 활주로 각도를 적게 틀게 해줘 9000억 원의 덤까지 얹어줬다는 것이다.
정두언 위원장의 발언은, 활주로 각도의 미흡한 변경 측면에서 보면, 롯데가 9000억 원을 더 내놔야 한다는 여론을 일으킬지 모른다. 그러나 제2롯데월드 특혜 건축으로 인한 성남공항 기능 저하와 수도권 안보 취약 비용은 이보다 훨씬 크다는 의견도 많다. 2005년경 성남공항 이전이 논의되다 흐지부지된 적 있다. 한 군사전문가는 “성남공항 이전은 쉽지 않다. 북한군 상황을 촬영하는 백두정찰기와 금강정찰기가 성남공항에서 뜨는데 성남공항을 옮기면 이들 정찰기와 관련된 지상기지도 옮겨야 한다. 공항 이전에 수조 원이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위트룸이라고 하기엔…”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의지로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과 롯데 측이 가까운 사이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 승리 후 당선인 신분으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1층 로열스위트룸을 자주 이용했다. 이곳에서 부처 조각(組閣)과 청와대 비서진 인선을 구상했고 주말엔 가족과 함께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제2 청와대’로도 불렸다.
이 당선인이 머물던 롯데호텔은 당시 장경작 총괄사장 체제였다. 장 총괄사장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로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8년 2월 롯데호텔과 롯데면세점을 모두 맡는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명박 당선인과 친구인 점이 적극 고려된 인선으로 비쳤다. 이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부 주관 행사와 외국 정상 및 톱VIP 투숙이 롯데호텔로 몰렸다.
이 전 대통령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영남 출신이면서 일본에서 살았다는 공통적인 이력을 지녔다. 이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과 신 총괄회장의 고향인 경남 울주는 동해를 공유하며 지척에 있어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이 몸담았던 현대그룹의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신 총괄회장도 막역한 사이로 전해진다.
이런 정황 때문인지 이명박 후보의 2007년 대선 승리 직후부터 재계에선 “롯데가 제2롯데월드 민원을 풀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재계 인사는 “이명박 인수위의 규제철폐 및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제2롯데월드 허가를 함의하는 것으로 읽혔다”고 말했다.
특기할 점은, 이 전 대통령이 2008년 4월 28일 제2롯데월드 허가 의지를 밝힌 점이다. 그는 이날 청와대의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도시는 옮길 수 없지만 군부대는 옮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제2롯데월드보다 성남공항을 낮게 보는 이 말에 당시 공군이 술렁였다. 여권 인사 B씨는 “대통령이 인수위 때부터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있었기에 취임 두 달 만에 특정건축물 허가 문제를 콕 집어 언급한 것 아니겠냐”고 전했다.
새누리당 A 의원은 “인수위 시절 이명박 당선인이 롯데 호텔에 장기체류한 것은 사실이다. 이 당선인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도 이 호텔 비즈니스룸을 자주 이용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A 의원과의 대화 내용이다.
▼ 2007년 대선 이후 이명박 당선인이 롯데호텔에 따로 사무실을 두고 있었나요.
“그랬죠. 롯데호텔에 사무실이라기보다는 그런 방이 있더라고.”
▼ 이상득 부의장도?
“네. 그분은 주로 같은 호텔 비즈니스룸을, 1층 비즈니스룸을 자주 이용했어요.”
▼ 이 당선인은 거기에서 주로 국정을 봤습니까.
“사람도 만나고 그랬겠지.”
▼ 당선인의 호텔 룸을 방문한 적이 있나요?
“저만 갔나요? 많이들 갔죠. 스위트룸이라고 하기엔…그보다 더 좋은 곳이죠. 침실도 따로 있고 사무실도 따로 있는 그런 넓은 곳이지. 층수는 31층쯤 될 거예요.”
“기무사까지 동원해 밀어붙여”
▼ 당시 장경작 롯데호텔 총괄사장이 당선인과 대학 학과 동기로 친했나요.
“그 이야긴 저도 들었어요.”
▼ 당선인이 롯데호텔 안에 장기 체류하는 거니까 장 총괄사장이 친구인 당선인을 가끔 수월하게 만났는지….
“그건 몰라요. 제가 안 봤으니까요.”
▼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 때 규제 철폐와 비즈니스 프렌들리 논의가 많았는데요. 제2롯데월드 허가 문제 같은 논의는 없었습니까.
“그건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해서 되게 강력하게 밀어붙였잖아요. 내 기억엔, 그때 기무사령부의 최고위급 인사 B씨가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우익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라인으로 알려졌어요. B씨가 세월이 지나 말하기를, 자기가 이 전 대통령 취임 후 군인들 만나서 제2롯데월드 해야 된다고 설득했다고 해요. 그게 설득이었겠어? 압력이었겠지.
B씨가 그런 이야기를 자랑 삼아 하더라고요. 공군 장성들 만나서 ‘너희들 이거 왜 반대하냐? 어?’ 이런 식으로 조졌겠지. 자기는 설명을 했다는데 듣는 군인들은 기무사 최고위급이 그렇게 말하는데 ‘그게 아니고…’라고 반박할 수 없죠. ‘네, 잘 알겠습니다’라고 했겠죠. 하여튼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세게 밀어붙였어요. 기무사까지 동원해서요.”
▼ 이 전 대통령은 언제부터 롯데와 친분이 있었나요.
“제가 알기로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때부터 제2롯데월드를 해야 한다고 한 것 같아요. 기업하는 사람 처지에선 그걸 하면 고용 창출도 되고 경제에 엄청나게 기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롯데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측에) 가만히 있었겠어? 아이고, 뻔한 거지, 뭐. 가만히 있었겠냐고.”
여권 인사 B씨는 “이 전 대통령 측이 인수위 시절 롯데호텔에서 제2롯데월드 허가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친(親)이명박계 한 인사는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는 ‘성남공항 활주로를 다소 조정하면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미국 연방항공청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적법하게 이뤄졌다. 롯데와는 어떤 사적 관계도 없다. 이 전 대통령에겐 한 점의 문제 소지도 없다. 제2롯데월드는 투자 활성화(3조5000억 원)와 청년실업 해소의 모범사례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세간의 구설에 대해 롯데와 이 전 대통령으로선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롯데는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잠실 월드타워점 영업으로 막대한 현금수익을 올린다. 이 면세점 사업은 국가가 세수(稅收)를 포기해 그에 따른 이익이 기업에 돌아가게 해주는 사업이다. 롯데는 제2롯데월드 건립이라는 창업주의 숙원도 성취했다. 이 역시 수도권 안보가 취약해지는 공공의 희생으로 누리는 이익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과 관련된 이러저러한 의혹도 나오는 것이다. 롯데의 사회적 책임과 제2롯데월드 허가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