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 리그 우승, MVP, 최다 득점, 최고 스파이커
- “해외진출 ‘선구자’ 사명감에 어려움 참고 버텨”
- “얼굴에 손 안 댔어요, 하하”
- “남편감 키? 177cm 넘으면 OK”
“라이벌 꺾어 기쁨 두 배”
▼ 외모가 좀 변한 것 같다. 이전의 보이시한 이미지가 아니라 여성스러운 이미지랄까.
“헤어스타일이 변해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외국 생활을 하다보니 마음에 드는 미용실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머리를 길렀는데, 주위의 반응이 좋아 계속 기르고 있다. 보톡스? 성형수술? 얼굴에 손 안 댔다. 100% 자연산이다, 하하.”
▼ 2011-2012시즌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에서 페네르바체의 우승을 주도하며 MVP로 뽑혔고, 2013-2014시즌 CEV컵 대회에선 우승과 MVP를 거머쥐었다. 2014-2015시즌에는 리그 우승과 MVP를 차지했다. 터키 배구를 완전히 평정한 셈이다.
“무엇보다 페네르바체의 라이벌인 바키프방카를 물리치고 슈퍼컵 우승을 차지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둔다. 우리가 그 팀 탓에 우승하지 못한 적이 많아 기쁨이 두 배 더 컸다. 페네르바체 구단 관계자들, 감독, 선수들은 나를 외국인 선수가 아닌 자국 선수처럼 대한다. 그 점에서 다른 외국인 선수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한국에 와 있는 게 어색하고 터키에 머무는 게 마음 편할 만큼 그곳 생활에 적응했다.”
▼ 터키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한국을 거쳐 간 외국인 선수들을 리그에서 종종 만난다고 들었다.
“흥국생명에서 뛰던 엘리사 바실레바 선수가 지금 바키프방카에서 활약하고 있다. 바실레바와 슈퍼컵에서 맞붙기도 했다. GS칼텍스에서 활약한 베티, 흥국생명과 인연을 맺은 예르코바 미아 등을 터키 리그에서 다시 만났다. V리그 여자부에서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힌 KGC인삼공사 출신의 몬타뇨는 지난 시즌부터 페네르바체 유니폼을 입고 한솥밥을 먹는다. 몬타뇨는 나보다 더 한국을 그리워한다. 김치찌개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박삼용 전 감독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한다. 나도 터키에선 외국인 선수 신분이다보니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가 얼마나 힘들게 생활하는지 알게 됐다. 한국에 있을 때 외국인 선수를 좀 더 잘 챙겼어야 했다. 이렇게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게 될지 누가 알았겠나.”
▼ 터키 리그는 어떤 무대인가. 리그와 잘 맞는 것 같다.
“터키 리그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수준 높은 리그다. 운동량이 많아 힘들긴 하지만 그것말고는 120% 만족한다. 외국인 선수한테는 모든 게 ‘스페셜’이다. 터키는 주식이 빵이 아니고 밥이다. 돈 많이 주기로 소문난 러시아 리그는 날씨가 추워 생활하기 어렵지만 터키는 의식주 문화가 우리와 비슷하다.”
▼ 아시아권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무시당한 경험은 없나.
“러시아 리그는 동양 선수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고 하던데, 터키는 그렇지 않았다. 페네르바체는 내게 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 진로를 모색할 때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게끔 손을 내밀어줬고, 흥국생명과 이적 문제로 오랫동안 갈등을 빚을 때도 나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기다려줬다. 김연경이란 선수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그들에게 감동했다.”
▼ 페네르바체와의 계약 기간이 내년 5월까지인 것으로 안다. 터키 리그에 남을 생각인가.
“지금 그 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다. 사실 이번 슈퍼컵 우승으로 내가 터키 리그에서 4년을 뛰며 이룰 건 다 이뤘다. 9월부터 시작하는 리그가 페네르바체와의 계약 마지막 시즌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은 답을 못 얻었다.”
안정이냐, 도전이냐
▼ 페네르바체는 재계약을 원할 듯한데.
“그들은 당연히 나와 계속 가길 바란다. 하지만 구단에선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존중하겠다고 했다. 지금 우리 팀은 내 위주로 시스템이 돌아간다. 모든 걸 나한테 맞춘다. 내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다. 안정을 원한다면 페네르바체에 계속 있는 게 맞다. 그러나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다른 리그, 다른 시스템을 경험하는 게 내 배구 인생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도 싶다.”
▼ 다른 나라 리그나 터키의 타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안다.
“러시아, 중국, 일본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건 사실이다. 다들 내가 페네르바체와 계약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나로선 고맙고 행복한 고민인 셈이다.”
지난해 김연경이 페네르바체와 재계약할 때 러시아 리그로부터 20억 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김연경은 페네르바체와의 재계약을 선택했다. 페네르바체의 적극적인 잔류 요청에다, 2년간 이어진 흥국생명과의 분쟁 해결에 페네르바체가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그의 해외 진출 출발점은 일본이다. 2009년 5월 17일 소속 팀 흥국생명과 자매결연을 한 일본 여자배구팀 JT마블러스와 2년 계약을 맺고 프로배구 출범 이래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한 여자선수가 됐다. 김연경은 일본에 진출하면서 연봉의 10%를 출연해 장학회를 만들고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힘들게 배구를 하는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 해외 진출의 계기는.
“단순하다. 왜 우리나라 선수들은 해외에서 배구를 하지 못할까를 생각하다가 실행에 옮긴 것이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다른 나라 대표팀 선수들끼리는 서로 인사도 나누고 친밀하게 지내는 걸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그들 틈에 끼질 못한다.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해외 진출에 도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구단과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꽤 복잡했다.”
우여곡절 끝 해외 진출
▼ 해외 진출 얘기를 꺼냈을 때 소속팀(흥국생명)에선 어떤 반응이었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반응이었다. 그러다 ‘여자배구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선수가 해외에 나가서 활약하는 것이 한국 배구를 위하는 길’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구단의 마음이 움직였고, 일본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JT마블러스에 입단한 김연경은 일본 V리그 개막 후 정규리그 모든 경기에 주전으로 출전해 경기당 평균 24.9점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전년 리그 때 10개 팀 중 9위이던 JT마블러스는 김연경 덕분에 2009-2010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JT마블러스는 김연경 영입 이후 개막전부터 25연승을 기록했다. 김연경은 2010년 2월 6일 도레이 애로즈 전에서 45득점을 올리며 흥국생명 시절 자신의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44득점)을 경신했다. 김연경의 활약을 지켜본 일본 V리그 덴소 에어리비스의 다쓰카와 미노루 감독은 “일본에서도 100년에 한 번 나올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 일본 팀과의 2년 계약이 끝난 후 터키 리그로 옮겼다. 일본에서도 재계약 요청이 있었을 텐데.
“마음이 유럽 진출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탈리아 리그를 꿈꿨다. 유럽 진출을 알아보던 중에 터키 리그가 부상했고, 특히 페네르바체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페네르바체 정도라면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화? 생각한 적 없어요”
흥국생명에서 4개 시즌을 보낸 김연경은 일본으로 2년간 임대됐다. 그후 터키 페네르바체와 1+1년 계약을 맺고 2011-2012시즌부터 터키에서 활약했다. 김연경은 2012년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국내 무대 4개 시즌과 임대 신분으로 일본에서 2개 시즌을 뛰었기 때문에 6년을 뛰어야 하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흥국생명은 규정상 임대 기간은 국내에서의 선수생활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김연경은 FA 선수가 아니고 여전히 흥국생명 소속이라고 맞대응했다.
김연경은 터키로 날아가 페네르바체 유니폼을 입고 팀 훈련에 합류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이런 행동이 한국 배구를 위태롭게 한다며 그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했다. 대한배구협회도 김연경이 요청한 국제 이적 동의서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지루한 다툼 끝에 지난해 2월 국제배구연맹(FIVB)은 “2012년 6월 30일 이후 김연경이 흥국생명과 재계약을 맺지 않았기에 더 이상 흥국생명은 김연경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또한 페네르바체에서 뛰는 김연경의 이적료를 흥국생명에 주지 않고 그 문제를 대한배구협회에 일임했다. 흥국생명은 선수도 잃고, 돈도 못 챙기는 상황에 처했다.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었다. 구단과 갈등을 빚고 싸워 나가는 과정에서 너무 힘든 나머지 모든 걸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끝까지 버텼다.
‘김연경도 해외 진출을 못하면 다른 선수도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의 조언이 힘이 됐다. 모든 짐을 혼자 떠안고 가는 느낌이었다. 외로웠다. 그래도 해외 진출 관련 규정이 개정됐다는 데 만족한다.”
▼ ‘선구자’ 노릇을 했다.
“선구자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메이저리그 박찬호, 프리미어리그 박지성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이기에 모든 걸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배구를 하고 싶었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그렇게 결말이 나면 다른 선수들도 해외 진출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겠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고통은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 혹시 귀화를 생각한 적도 있나.
“전혀. 단 한 번도 귀화는 고려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귀화를 부추긴 적은 있다. 귀화하면 마음 편히 외국에서 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는 태극마크를 달 수 없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내가 왜 다른 나라 선수로 뛰어야 하나. 대표팀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에 귀화를 할 수 없었다.”
“집에 오면 허전함 밀려와”
▼ 터키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다고 들었다. 팬클럽도 있다던데.
“한국보다 터키에서 인기가 더 많은 건 사실이다. 길거리에서도 내 얼굴을 알아봐주고, 사인 요청을 하고, 음식점에 가면 이런저런 서비스 음식을 내주며 힘내라고 응원한다. 이스탄불의 한 고등학교에서 팬클럽을 창단해 경기장마다 쫓아다니며 응원해주고, 한인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터키에서 4년을 지내다보니 이제는 모든 게 편하고 여유롭다. 배구하는 데 최상의 조건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와 나를 흔든다. 낯선 나라에 나 혼자 붕 떠 있는 것 같은 공허함이 있다. 외국에서 오래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배구를 처음 할 때 얘기를 해보자. 배구는 어떻게 시작했나.
“딸만 셋인 집안의 막내다. 배구선수로 활약하는 큰언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구를 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팀에 들어가면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공부를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더 배구에 집중했는지도 모른다.”
▼ 어릴 때부터 키가 컸나.
“배구를 시작할 때 키가 148㎝였다. 중학교 입학 후에도 10㎝ 정도밖에 더 자라지 않았다. 중학교 내내 그 키로 뛰다보니 점차 벤치에 앉는 시간이 많아졌고, 작은 키 탓에 포지션도 세터를 맡았다. 키 큰 친구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감을 잃었다. 키가 자라지 않는다면 배구선수로 성장하기 어려우니 그만둬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 그럼에도 계속 배구를 한 계기가 있나.
“원곡중학교 김동열 감독님이 많이 이끌어주셨다. ‘너는 손과 발이 큰 편이라 키가 더 클 거야, 포기하지 마’라며 용기를 주셨다. 포지션도 레프트, 라이트를 돌아가며 연습했다. 비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즉시 투입되려면 멀티 플레이어가 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따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키가 엄청난 속도로 자랐다. 2년 만에 20㎝가 자랐고, 고등학교 3학년 무렵에 186㎝가 됐다. 프로 데뷔 이후에도 조금씩 자랐다. 지금 키는 192㎝ 정도다.”
▼ 키 작다고 배구 그만뒀으면 억울할 뻔했다.
“그러게…. 중 · 고등학교 시절 힘들게 배구를 했지만 소소한 추억이 많다. 운동하기 싫다고 단체로 도망간 적이 있는데 고1 배구팀 전체가 팀을 이탈해 전남 순천으로 내려가 꽤 오래 숨어 지내다 결국 코치한테 발각돼 죽지 않을 만큼 맞은 기억이 난다. 당시엔 공포였지만 지금은 정말 재미있는 추억이다.”
“동메달은 자신 있었는데…”
▼ 아까 태극 마크에 대한 간절함을 피력했는데, 태극 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가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라면.
“2012년 런던올림픽이다. 배구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규모가 큰 국제대회에 출전했지만, 올림픽에선 다른 두 대회와 비교조차 안 될 정도의 빅게임들이 이어졌다. 선수촌 오륜기를 보며 가슴이 뛰었다.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세계적인 농구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신기했다. 우리 선수들도 올림픽 무대에선 움직임이 달랐다. 다른 나라 선수들 실력을 보니 모든 부분에서 변화를 주는 수밖에 없었다.
8강전 상대가 세계 랭킹 2위 브라질이었다. 한국은 15위였는데. 그런 브라질을 3대 0으로 이겼다. 세계 1위 미국과 맞붙은 4강전을 놓치면서 결승전에 오를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블로킹을 피하면 수비에 걸리고, 수비를 피하면 블로킹에 걸리고…. 미국이 강팀이란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가장 아쉬움이 큰 경기는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이다. 예선전에서 일본을 이겨 동메달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런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나타났고,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나온 일본을 상대로 실망스러운 경기를 했다.”
▼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이 속한 조는 ‘죽음의 조’로 불렸다.
“선수들끼리 미국, 브라질, 중국, 세르비아, 터키와 함께 B조에 속했다는 얘기를 듣고 ‘런던엔 놀러가야 할 것 같다’ ‘가자마자 예선 탈락하고 바로 귀국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주고받았을 만큼 최악의 조 편성이었다. 세계 랭킹 1, 2위 팀이 포진했고 어느 한 팀도 만만하지 않았다. 런던행 비행기에 오를 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창피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올까봐.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선수들 눈빛이 달라지더라. 승부욕이 발동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오기를 자극하기도 했다. 경기가 벌어지니 없던 자신감이 샘솟았다.”
“‘멋진 은퇴’ 하고 싶다”
▼ 내년에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열린다. 3년 전 아픔이 리우에선 좋은 결과로 승화됐으면 좋겠다.
“올림픽을 마치고 아쉬움 탓에 한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아쉬움은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때 경험을 살려 내년 올림픽에선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내 배구인생의 최고 목표인 올림픽 메달에 도전할 계획이다. 색깔은 상관없다. 후배들이 잘 성장해서 함께 간다면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8월 22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여자 배구월드컵 출전을 위해 대표팀 선수들이 다시 모였다. 이번에 주장 완장을 찼는데, 어느새 대표팀에서 베테랑이 됐다.
“내 위로 (황)연주 언니가 있고, 그 다음이 나다. 선수들이 많이 어려졌다. 이정철 감독님이 주장을 맡길 때 당황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주장을 맡고보니 이것저것 할 일이 많더라.
무엇보다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끄는 게 중요하다. 후배들에게 내 경험이 녹아든 조언을 많이 해준다. 후배라 해도 ‘난 김연경이니까’ 하는 태도를 보이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최대한 겸손하고 진실하게 후배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 외국에서 소속팀을 우승시키고, MVP를 차지하고, ‘배구계의 메시’라는 극찬을 받아도 해외에서 활약하는 추신수, 강정호, 기성용 같은 대우와 관심을 받진 못한다. 그런 게 서운하진 않나.
“어릴 땐, 내가 배구에선 최고의 선수인데 왜 다른 종목 선수들보다 주목받지 못하나 하는 생각에 많이 속상했다. 지금은 전혀…. 내가 속상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안다. 이번에 귀국해서 여행을 다니는데 나를 알아보는 많은 분이 내가 터키에서 생활하는지조차 모르더라. 터키에서 우승한 것도 모르고. 그게 우리 배구의 현실이다. 대표팀, 그것도 올림픽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내지 않는 한 배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미미하다.”
▼ 요즘 가장 고민스러운 건 뭔가.
“은퇴. 언제쯤 멋진 은퇴를 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은퇴한 뒤엔 무슨 일을 해야 할까도 고민이다. 배구에 도움 주는 일을 하고 싶다. 가르치는 것도 좋고, 어려운 선수들도 돕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그걸 실행에 옮길 추진력이 내게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현역 선수로서 마지막은 한국에서 뛰는 것을 생각 중이다. 국내 팬들 앞에서 배구를 통해 다시 인사드리고 따뜻한 격려와 환호를 받으며 멋지게 끝내고 싶다. 터키는 한국에서 너무 멀다.”
인터뷰 말미에 올해 스물일곱인 김연경과 결혼 얘기를 나눴다. 그는 “연애는 언제나, 결혼은 은퇴 후”라고 정리했다. 바쁜 외국 생활 중에도 이성과 ‘썸’은 탔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내 남자’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190㎝가 넘는 키 때문에 기왕이면 키 큰 남자를 원하지만, 177㎝ 이상의 남자라면 개의치 않는단다. ‘신장 제한’을 두면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8월 10일 김연경은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한국 남자배구가 리우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걸린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에서 7위를 하는 바람에 본선 진출이 좌절된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남자배구 상황을 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심정을 잘 알기에 같은 선수로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모든 배구인이 바뀌어야 할 때고, 생각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다면 꿈은 그냥 계속 꿈으로 멈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