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장군총 인근에 ‘중국 고구려의 28대 왕’을 소개하는 박람관을 지었으나 아직 개장하진 않았다(사진 2). 그 곁엔 ‘중국 고구려의 28대 왕’을 소개하는 한글 안내판도 세워놓았다(사진 3).

태왕릉 꼭대기에는 시신을 넣은 관을 안치했던 시상대(屍床臺)가 있다. 장군총과 달리 누구나 올라가 볼 수 있다. 텅 빈 시상대 앞에는 돈을 넣으라는 공덕함이 설치돼 있다(사진 4).
환도산성 입구 오른편에는 귀족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장군총‘이 즐비하다. 돌 피라미드는 어떤 무덤보다도 화려했을 것이다(사진 6) 이러한 돌피라미드형 무덤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삼국사기는 고구려가 졸본천 또는 비류수에서 건국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중국은 환런(桓仁)시 오녀산 꼭대기의 오녀산성이 고구려 첫 도읍지였다고 강변한다. 이 주장을 고집하기 위해 오녀산성으로 출발하는 버스 승차장에 시멘트로 고구려 시조비를 세워놓았다(사진 7).

그로 인해 우하량을 찾는 한국인이 늘어나자 중국은 도로를 새로 닦고 입구에 우하량유지(遺址)박물관을 세웠다(사진 10). 그리고 ‘홍산문명’으로 불리게 된 이 후기 신석기 문명은 고조선과 무관하고 뒤늦게 발견된 중국의 새로운 문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하량에서는 돌을 사각형으로 쌓은 단층의 돌무덤이 많이 발견됐다(사진 9). 돌을 2층 이상으로 쌓은 무덤도 발견되었다(사진 11-현장에 수목이 울창해 전체 모습을 찍을 수 없어, 설명문에 붙은 사진으로 대체한다). 이러한 무덤들은 지안에서 많이 발견되는 돌계단 피라미드 무덤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우하량은 고구려로 이어지는 고조선이나 그 이전의 문명이었을 것이 분명한데, 중국학자들은 고조선의 ‘고’자도 꺼내지 않는다.


2 장군총 앞에 중국이 만든 ‘고구려 28대왕 박람관’.
3 박람관 앞 안내판의 한글 설명문.
4 태왕릉 시상대 앞의 공덕함.
5 정호석이 받치고 있음에도 돌 피라미드가 무너져 내린 태왕릉.
6 환도산성 밑에 즐비한 ‘작은 장군총’들. 귀족 무덤으로 보인다.
7 오녀산성 버스 승차장에 시멘트로 만들어놓은 고구려 시조비.
8 우하량에서 발굴된 곰 이빨과 그 이빨을 박아 빚은 조소상(彫塑像) 파편.
9 우하량에서 발견된 후기 신석기 시대의 단층 돌계단 무덤.
10 고조선 역사를 배제한 우하량유지박물관.
11 우하량에서 발견된, 2계단 이상으로 쌓은돌계단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