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입차 83% ‘업무용’ 등록…세금 혜택
- “정부 세법 개정안, 세금 탈루 못 막아”
- “고소득층 특혜 놔두고 서민만 옥죄는 꼴”
- “캐나다 방식(2700만 원까지 경비처리) 고려할 만”
대표적인 것이 업무용 승용차에 대한 과세 합리화 방안이다. 고가의 업무용 차량을 구매하거나 리스할 때 세금 탈루를 막고 업무용 차량의 사적(私的) 유용을 막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제도적 허점이 너무 많다는 것. “국민 정서를 의식한 생색내기용 조세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 중 ‘업무용 승용차 과세 합리화 방안’의 골자는 업무용 승용차의 비용 인정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정부는 업무용차 사용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100% 세제 감면 혜택이 주어지던 업무용 차량은 임직원만 운전이 가능하도록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에 가입하고 해당 차량을 세무서에 신고한 경우에 한해 50%만 경비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나머지 50%의 경비는 운행일지 작성 등을 통해 운행 용도를 입증해야 사용 비율만큼 추가로 세제 혜택을 인정받을 수 있다. 관련 비용에는 감가상각비, 임차(리스)료, 유류비, 보험료, 수선비, 자동차세, 통행료 등이 포함된다.
비싼 차일수록 업무용 많아
그런데 여기엔 예외조항이 붙어 있다. 정부가 정한 방식대로 기업 로고를 부착한 차량은 운행일지 등의 작성 여부와 관계없이 100% 비용 처리를 해주기로 한 것. 세법 개정안이 정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법인은 경비 처리를 전액 받을 수 없지만, 개인사업자는 업무 사용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입증하면 사용 비율만큼 비용을 인정받을 수 있다. 개인사업자가 1대의 승용차를 가정과 사업장에서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현실적으로 가족보험 가입이 불가피한 점을 감안한 조치다.
개정 세법은 법인과 2013년 기준 성실신고 확인 대상 개인사업자(7만 명)의 경우 2016년부터, 복식부기 의무 개인사업자는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17년부터 적용된다. 리스나 렌털 차량의 도입 시기도 같다.
업무용 승용차 비용 인정 기준을 바꾸는 것에 대해 정부는 “업무에 사용하지 않는 법인 및 개인사업자 차량에 대해서는 비용 인정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업무용 승용차의 경우 개인적 사용과 업무용 사용이 뒤섞일 수 있음을 감안해 명확한 과세 기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고가의 업무용 차량은 공공연한 세금 탈루 루트로 악용돼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사건’이다. 담 회장은 대당 수억 원씩 하는 이런 고급 수입차 3대를 위장 계열사를 통해 리스해 개인적 용도로 운용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런데 담 회장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011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전원전력, 홍성하이텍, 대한제분, 백호건설, 가야미디어, 신광학원, 한국타이어, 한진무역 등 기업들은 물론 학교법인까지 고가의 수입차를 업무용으로 등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보유한 차량 중에는 마세라티,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업무용으로는 적절하지 않아 보이는 스포츠카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의사, 변호사 등의 고소득층 개인사업자도 이 같은 방식으로 고가의 수입차를 구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현대·기아차, 한국수입차협회 등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개인사업자와 법인이 업무용으로 구매한 차량은 전체 판매 대수의 43%에 달하는 10만5720대(5000만 원 이상 차량 기준)로 총 가격이 7조4700억 원에 달한다. 고가 차량일수록 업무용 구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수입차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억 원 이상의 수입차 전체 판매량 중 업무용으로 구매한 차량의 비중은 83.2%, 2억 원 이상 차량은 87.4%에 달한다.
이 수치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등 한국수입차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일부 차량의 판매 대수를 제외한 것이어서 이를 감안하면 실제 판매 비중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절세 가이드’ 제작해 판촉
이렇듯 법인과 고소득 개인사업자가 업무용으로 고가의 차량을 구매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허술한 조세 정책 탓이다. 세법은 개인사업자와 법인이 사업용으로 구매한 자동차, 설비기계, 항공기 등의 고정자산을 업무와 무관한 용도로 사용할 경우 필요 경비로 인정해주지 않도록 하고 있다.
소득세법 제33조 5항·13항에 따르면 개인사업자는 가사(家事)와 관련된 경비, 업무와 관련 없다고 인정되는 금액, 즉 사적으로 사용한 비용은 사업소득을 계산할 때 필요 경비로 산입할 수 없다. 법인사업자도 법인세법 제27조 제1항에 따라 법인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인정되는 자산의 취득·관리비와 지출 금액은 소득 금액을 계산할 때 손금(경비)으로 산입하지 못한다.
문제는 개인 지출금액의 경비 산입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법률만 있고, 업무상 사용분과 사적인 사용분을 명확하게 구분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이 없다는 데 있었다. 운행일지 등의 증빙자료 작성과 이를 기반으로 업무상 사용분에 한해 경비 처리하도록 강제하는 하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없어 업무용으로 등록된 차량을 개인 용도로 운용하더라도 마땅히 확인할 방법이 없었던 것.
사업자 처지에서는 조세정책이 허술한 상황에서 세금감면 혜택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비싼 차를 살수록 절세액이 커지는 구조인 것이다. 고가의 외제 스포츠카가 업무용으로 둔갑하게 된 까닭이다.
자동차 판매사들의 상술도 조세 불평등을 조장하는 데 일조했다. 일부 수입차 판매사들은 업무용 차량의 세제혜택을 강조한 ‘절세 가이드’까지 제작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허술한 법망을 이용해 과세 불평등을 조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경실련이 BMW 520d와 제네시스 330 프리미엄을 사업자들이 업무용으로 구입하고 운용하면서 받는 세제 혜택을 분석한 결과 대당 5년간 각각 1억800만 원, 9017만 원을 경비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업무용 차량 총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사업자가 받는 세제혜택을 추정하면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가 차량 구입비만으로 탈세 혹은 절세한 세금만 연간 4930억 원, 5년간 2조4651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 경실련의 분석이다.
차량 가격이 높을수록 사업자들이 받는 세제 혜택의 폭이 크다보니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관세철폐 등 가격인하 요인이 발생했는데도 상당수 수입차 판매사가 의도적으로 차량 가격을 내리지 않은 정황도 포착됐다. 이런 문제점은 상대적으로 차량 구입과 유지에 따른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개인소비자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법인이나 고소득 개인사업자가 세제혜택을 등에 업고 비싼 가격에도 차량을 구입하므로 가격을 인하할 요인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이번 세법 개정안은 지금껏 지적돼 온 업무용 승용차 세제 혜택에 따른 조세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의 일환인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에 직면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8월 6일 당일 “정부는 단순히 여론을 의식해 허울뿐인 개정안을 내놓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이대로라면 사업자가 과도한 세제 혜택을 받는 반면 성실한 개인납세자는 무시당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리라는 것.
“서민만 힘들게 됐다”
행정 여건상 차량의 개인적 사용에 대해 일일이 감시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만큼, 임직원 전용 자동차 보험가입 요건만 충족하면 50%는 무조건 경비로 처리되고 나머지 50% 역시 사용 여부만 입증하면 되는 소극적 방식으로는 부당한 특혜를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운행일지를 허위로 작성한들 현재로서는 이를 일일이 확인해서 진위를 가려낼 방법이 없다.
사업자 로고를 부착한 승용차에 대해 100% 경비 처리를 허용하는 방안에도 허점이 많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튜닝 등으로 불법 개조한 승용차도 개조한 부분을 떼어내었다가 다시 붙이는 방식으로 차량검사를 통과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가 정한 사업자 로고 부착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해도 로고를 떼었다 다시 붙이는 것은 불법 개조 차량을 원상 복구하는 것보다 가격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훨씬 용이하다”고 말했다. 사업자 로고 부착으로 업무용차의 사적 사용을 막겠다는 발상 역시 실효성이 낮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구체적 문제 제기와 국민 불만 가중에도 정부는 여전히 사업자 특혜를 보장하는 세법 개정안을 내놓아 국민을 또다시 실망시켰다”면서 “정부가 조세 형평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있는 지 강한 의문이 든다”고 실망감을 표출했다. 참여연대도 “정책 효과가 불확실하고 당면한 세수 문제를 해소하기엔 부족한 정책”이라고 논평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개정안대로 시행된다면 예컨대 작은 꽃집 등을 운영하는 서민들을 운행일지 작성, 사업자 로고 부착 등으로 옥죄는 반면 고소득 개인사업자의 합법적 세금탈루 수단을 막는 효과는 거의 없다.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5억 원짜리 업무용 자동차 구입자가 받는 혜택이 3000만 원짜리 업무용 차량 구입자가 받는 혜택보다 훨씬 큰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권태환 간사는 “차량 운행일지 작성은 미국, 캐나다 등 해외 선진국에서도 세금 탈루 방지를 위해 시행되는 정책으로, 허술한 현행 세법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입돼야 할 사항”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무조사 형식을 차용한 무작위 추출 방식 등으로 차량운행 일지를 점검하고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하는 등의 행정적 보완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업무용 차량과 관련한 세금 탈루를 막고자 자동차 구입 금액에 따라 업무용 차량의 경비 처리를 제한한다. 항공기, 선박 등과 달리 자동차는 사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업무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 명확하게 입증될 때만 경비 처리를 허용하는 등 세금 감면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캐나다는 2700만 원까지 인정
캐나다는 업무용 차량 구입 가격 중 3만 캐나다달러(약 2700만 원)까지만 경비 처리를 허용하고, 이를 초과하는 비용은 경비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호주도 차량 가격이 5만7466호주달러(약 5000만 원) 미만인 업무용 차량에 대해서만 자동차값 전액을 경비로 인정한다. 법인이나 개인사업자가 적절한 가격대의 업무용 차량을 구입하면 전액 경비 처리해주지만 고가의 승용차를 구입할 때는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이다.
캐나다식 세법을 국내에 적용해 3000만 원까지만 경비 처리해주고 초과 금액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면 연간 9266억 원, 5년간 4조6328억 원에 대해 추가로 세금을 징수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과 금액에 최고세율을 적용하면 차량 가격에 대한 세금 부과만으로 연간 3058억 원, 5년간 1조5288억 원의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
업무용 차량의 경비 처리를 제한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운행일지 작성을 강제하는 것은 캐나다, 호주, 독일, 일본, 미국 등이 공통적으로 도입한 방식이다. 총 운행거리에서 업무상 운행거리를 비율로 따져, 그 비율만큼만 경비로 처리해주는 것.
호주에서는 업무용 차량의 구입비와 유지비를 경비로 처리하려면 표준공제, 자동차 가격의 12%, 실제 경비의 3분의 1, 운행일지 방식 등 4가지 방식 중 1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경비 처리 명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떤 방법을 선택해도 100% 경비 처리는 불가능하다.
독일은 업무용 차량 구입비를 동종 업체의 평균적인 업무용 차량 가격과 비교해 경비로 처리해준다. 특정 기업이 동종 업계의 차량구입비 평균을 웃도는 가격의 업무용 차량을 구입했다면 초과분에 대해서는 경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자동차는 사업자의 사적인 사용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장비로 취급된다. 미국 연방국세청은 과다한 공제 신청으로 매년 300억 달러 넘는 세금 탈루가 발생한다고 판단하고, 소득 공제와 관련한 감사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특히 업무용 차량 경비는 연방국세청 감사관들이 홈오피스(재택근무 사무실) 비용과 함께 가장 꼼꼼히 살펴보는 항목으로 알려졌다.
영국도 호주, 캐나다처럼 구매 비용에 따라 경비 처리 한도액(1만2000파운드 이상 차량)을 규정하고 있었으나, 2009년부터는 가격 제한 대신 이산화탄소 배출량(95g/㎞ 초과 차량)을 기준으로 경비 처리를 제한하고 있다. 싱가포르처럼 업무용 사용 여부를 불문하고 사업자의 승용차 구입·유지와 과련된 모든 비용을 경비로 처리할 수 없는 나라도 있다.
국내에서도 현행 세법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개정안 발의가 꾸준히 이어졌다. 2007년 이계안 당시 의원이 업무용 차량의 감가상각비를 3000만 원 기준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2013년에는 민홍철 의원이 업무용 차량의 자동차 배기량과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경비 처리를 규정한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지난 7월에는 김동철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업무용 차량의 감가상각비 손금 산입을 3000만 원으로 제한하는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구입·리스·렌트한 승용차에 대한 비용·처리 한도를 3000만 원으로 하되 영업용 및 친환경 자동차에 대해서는 현행대로 전액 비용 처리함으로써 법인차량의 편법 구매를 막고 공평 과세를 유도하자는 취지다.
“업무용 자산 취득에 대한 손금 산입 제도를 악용해 법인 명의로 고가의 승용차를 구입하고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마치 절세의 수단인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법인의 업무용 차량에 대해 차값은 물론 유지비까지 전액 비용 처리해주는 과도한 세제 혜택에서 기인한 것이다.”(김동철 의원)
각계의 잇단 요구와 질타에도 정부가 내놓은 이번 세법 개정안은 개혁을 주장해온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실효성 없는 세법 개정안으로 인해 행정력이 낭비되고 탈세가 지속될 소지가 커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