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천 의원은 “아직 (신당 창당을) 결심하지 못했다”는 식의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8월 말 구체적인 구상을 밝히겠다”고 예고한 게 전부다. 신당 창당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레토릭(修辭)을 구사해온 것. 신당 창당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천 의원의 답변은 이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 만드는 데 행정적으로 한 달 남짓이면 된다고 하지 않나. 내년 총선까지 아직 많이 남았으니 시간이 촉박한 게 아니다. 신당을 만들 수 있는 요건을 갖추려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라는 민심의 압력도 크고, 국민적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 착실히 준비하면 잘되리라 생각한다.”
여전히 모호했다. 열심히 준비하고는 있지만 요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못할 수도 있다는 퇴로를 남겨둔 것이다.
분당 가능성이 점쳐지는 새정연 내 비노(非盧)계 의원들의 태도도 어정쩡하긴 마찬가지다. 사흘 후인 8일 ‘야당의 심장부’ 광주에서 이종걸 원내대표와 박지원, 주승용, 김동철 등 호남지역 의원 17명이 모였다. 모두 비노계로 분류되는 이들이라 문재인 대표와 친노진영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박준영, ‘신민당’ 창당?
하지만 참석 의원들은 문 대표의 리더십과 당 운영에 대해 성토하면서도 분당이나 신당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당 혁신위원회(김상곤 위원장)가 최종 혁신안을 내놓을 때까지’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이는 분당을 위한 명분 쌓기보다는 혁신위와 친노계에 대한 압박용에 가깝다는 게 당 안팎의 중론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선 ‘천정배-정동영 연대설’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연대 복원설’ ‘천정배-유승민 연대설‘ 등 갖가지 실체 없는 소문과 추론만 난무한다. 일부에선 8월 19일 피선거권을 회복한 김민석 전 의원과의 연대 가능성까지 점친다. 대부분 실현 가능성이 낮은 얘기다.
이런 와중에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새정연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박 전 지사가 당명을 ‘신민당’으로 정하고 8월 말 창당 선언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지만, 박 전 지사 측에서는 “그런 내용을 검토한 것은 맞지만, 아직 아무것도 결정한 것이 없다”며 한발 뺐다. 신당을 만들기가 여간해선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천 의원이 8월 말 밝히겠다는 신당 구상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천 의원의 신당 구상을 다듬는 곳은 염동연, 이철 두 전직 의원이 중심이 돼 문을 연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사무실. 두 사람은 지난 4 · 29재 · 보선 당시 함께 천 의원의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염 전 의원은 동교동계 출신이면서도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정무특보를 맡는 등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정·관계에 발이 넓다. 신당에 참여할 참신한 인물들을 찾아 끌어들이는 데에도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물 영입 작업에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걸까. 여의도 모처에서 기자와 만난 염 전 의원은 의외로 신당 창당 작업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8월 말이나 9월 초 ‘개문발차(開門發車)’ 한다. 아무리 늦어도 9월 중순은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창당 작업을 마칠 수 있다.”
▼ 어떤 이들이 참여하나.
“지난번 재·보선 때 천정배 의원에 대해 지지선언을 한 분들이 주축이라고 보면 된다. 정계뿐 아니라 경제계, 학계, 관계 등 각 분야에서 국민에게 신망이 높은 분들이다. 크게는 원로그룹, 정무파트, 정책파트 등으로 나뉘는데 각 분야 전문가라고 보면 된다.”
지난 재·보선 당시 광주지역 재야원로 29명과 김종배, 신중식, 유원일, 조재환, 채일병, 홍기훈 등 전직 민주당 국회의원 6명, 광주지역 일부 시·구의원 등이 천 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신당 창당 작업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