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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잃고 통일 포기 중국 영향력 탈피가 관건

몽골 분단에서 한반도를 본다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정체성 잃고 통일 포기 중국 영향력 탈피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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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칭기즈 칸으로 일어났다 누르하치에 휘둘려
  • ● 몽골 인구 1%가 매년 한국 장기 체류
  • ● 중국은 싫다, 그러나 중국 없인 살 수 없다
  • ● ‘칭기즈 칸은 중국 장수’ 北方공정에 무대응
정체성 잃고 통일 포기 중국 영향력 탈피가 관건
칭기즈 칸 공항에 내려 입국 심사를 받는데 출입국 담당관이 영어로 뭔가를 더 적으라고 했다. 입국서류 기입란에 다 적었기에, “뭘 더 쓰라는 것이냐”라며 버텼더니 전화번호를 적으란다. “호텔 이름은 이미 적었다. 전화번호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더니 “다른 전화번호라도 적으라”고 했다. “다른 게 무엇이냐”고 했더니, 뭐라 대답하는데 주변이 시끄러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왓(what), 왓?”을 서너 번 반복했더니, 한국어로 “몽골에 있는 친구 분 전화번호라도 적으시라고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진즉에 한국어로 할 것이지. 몽골에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다. 취업과 학업 등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몽골인이 3만 명이 넘기 때문이다. 한류의 영향으로 몽골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선 2000명 정도가 매년 한국어를 공부한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몽골은 국토 면적이 한국(남한)의15.6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훨씬 적다. 지난 3월 300만 명을 넘어섰다. 몽골 정부는 300만째 탄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의 부모에게 아파트를 제공하며 ‘마(魔)의 300만’ 돌파를 자축했다. 경제성장을 이루려 할 때는 산아제한정책을 펴는 것이 보편적인데, 몽골은 인구 증가에 중점을 둔다. 적은 인구 탓에 시달린 역사의 아픔 때문이리라. 몽골 정부는 500만 명은 돼야 ‘종속(從屬)’을 초래하는 저성장에서 탈출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붉은 영웅‘ 울란바토르

울란바토르는 서울과 베이징(北京)처럼 깊은 역사를 가진 수도가 아니다. 따라서 전시용으로 만들어놓은 게르를 제외하곤 몽골을 상징하는 문화재를 보기 어렵다. 정주(定住)문화가 아니어서 유적이 많이 남지 않은 탓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수도라면 어느 정도 유적이 있게 마련인데 울란바토르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몽골인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졌을 때 청으로부터 독립했다고 본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몽골인이 공산 정부를 세운 1921년 독립한 것으로 본다. 이는 우리가 1945년 8월 15일을 독립(광복), 1948년 8월 15일을 정부 수립으로 나눠 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정부 수립 3년 뒤인 1924년 수도로 정한 곳이 울란바토르다. 그전까지 울란바토르는 니슬렐후레로 불렸다.

몽골은 다민족 국가인데 다수는 ‘할하 몽골인’이 차지한다. 그래서 국호도 ‘몽골’로 삼았다. 할하 몽골인은 1636년 니슬렐후레에 라마불교의 중심 사원인 ‘다 후레’를 짓고 종교 행사를 이어왔다. 종교 중심지를 수도로 삼은 것이다. 정치나 경제 중심지가 아닌 종교 중심지를 수도로 삼은 데는 피맺힌 몽골의 역사가 얽혀 있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란 뜻이다. 1992년 몽골은 민주공화국으로 변신했다. 그런데도 공산주의 냄새가 폴폴 나는 울란바토르를 수도 이름으로 유지하는 것은 그들의 역사의식 때문이다. 사람들은 몽골이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화됐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중국과 부대끼며 살아온 몽골은 지난 세기 초 갑작스럽게 소련(공산 러시아)을 만나며 한순간에 중국과 이별했다. 선조가 만들어준 몽골 문자를 버리고 러시아의 키릴 문자를 도입할 만큼 친소 노선을 걸었다. 이유는 중국이 진저리나게 싫어서였다.

몽골인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 중 하나가 “칭기즈 칸은 중국인이냐, 몽골인이냐”다. 이 질문을 받으면 그들은 핏대부터 올린다. 한국의 반일(反日)감정 이상으로 몽골인은 중국을 싫어하고 무시하려 한다. 그러나 과거의 한국이 일본에 그러했듯이, 몽골은 중국에 단단히 멱살을 잡혔다. 이것이 고민이기에 몽골은 지금 미국 한국 일본 등에 기대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붐비는 몽-중 철도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하는 철도는 베이징과 모스크바로 연결된다. 두 철도 가운데 붐비는 쪽은 어디일까. 과거에는 몽-러 철도였는지 몰라도 지금은 절대적으로 몽-중 철도다. 울란바토르에는 전체 몽골인의 45%인 130여만 명이 산다. 몽골은 소비재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많은 생필품을 수입하는데, 그 핵심 루트가 몽-중 철도다.

베이징에서 출발한 열차는 1박2일 만에 울란바토르로 들어오는데, 이 열차에 생필품이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모스크바를 떠나 울란바토르로 오는 기차는 그렇지 않다. 이유는 러시아 쪽엔 이렇다 할 항구가 없고, 생산되는 물품도 적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세계로 열린 항구를 많이 가졌고 ‘세계의 공장’인지라, 몽골이 요구로 하는 생필품을 무한정 공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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