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감독이 연출한 ‘국제시장’은 관객 1425만 명을 동원해 ‘명량’(1761만 명)에 이은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했다. 2009년 발표한 ‘해운대’에 덧붙여 ‘1000만 명 클럽’ 영화 2편을 최초로 내놓은 한국 감독이 됐다.
“어른들께서” “꼰대들이”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국제시장’은 ‘덕수’(황정민 분)의 독백으로 대단원을 맺는다. 현대사를 버텨낸 ‘필남필부가 경험한 위대한 이야기’다. 6·25전쟁 흥남철수작전 때 아버지와 헤어져 “쪼꼬렛또 기브미”를 외치던 ‘꼬마 덕수’는 서독에 광부로 가 석탄을 캔다. 다녀와서는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날아가 일한다.
“아바이가 없으면 장남인 덕수 니가 가장”이던 세월을 산 ‘덕수’가 아내(김윤진 분)에게 말한다. “내는 그래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기 참 다행이라꼬.”
정치 이슈를 다루지 않은 이 영화를 두고 이념의 칼을 든 논박이 있었다. 보수와 진보의 헤게모니 다툼 탓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산업화 세대의 공적만 부각했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산업화 세대 중엔 선거 때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이가 더 많다. 민주화 세대는 거꾸로다. 진영 다툼과 세대 갈등이 얽힌 것이다. ‘어른들께서…’라는 말 만큼이나 ‘꼰대들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국 영화 ‘국제시장’을 연출한 윤 감독을 8월 3일 만났다.
▼ 윤 감독을 가운데 놓으면 산업화 세대 ‘아버지들’, 민주화 세대 ‘친구들’, 세계화·정보화 세대 ‘자녀들’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국제시장’을 통해 이들 각 세대에 전하려 한 메시지는 뭔가요.
“거시적 목적을 갖고 영화를 준비한 게 아니에요. 지극히 개인적 관점에서 시작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가족을 위해 일만 하다 떠나셨는데, 돌아가실 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해드린 게 짐으로 남았습니다. ‘나의 아버지’ 혹은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의 일생을 그리다보니 줄거리가 현대사를 관통한 겁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현대사 공부를 적잖게 했습니다. 칼로 무 자르듯 할 수는 없으나, 박정희 대통령 서거 전후로 현대사가 나뉜다고 봐요. 1960~1970년대 산업화, 1980~1990년대 민주화가 큰 두 갈래죠.
2000년 이후 정보화·세계화는 민주화와 함께 산업화 이후 시대에 속하겠고요. 산업화,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이루다보니 어느 집을 가도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가 매우 다른 경험을 하며 성장했습니다. ‘국제시장’은 가족을 위한 아버지들의 헌신을 말하려 한 영화예요. 그래서 산업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고요. 2편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배우들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 덕수 가족이 민주화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다룰 것 같습니다.”
▼ 보수우파 · 진보좌파 간 논쟁이 ‘국제시장’을 놓고 벌어졌습니다. 진영 논리에 따라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사안을 해석해 다투는 게 일상화했죠. ‘국제시장 그후’에는 산업화 · 민주화 세대의 갈등이 드러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만.
“1편에선 정치적 내용을 철저하게 배제했습니다. 수박 겉핥기로 다루느니 안 다루는 게 낫다고 봤죠. 2편에서는 정치를 다룰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민주화’라는 낱말이 정치의 언어거든요.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인데 줄거리는 계속 바뀔 거예요.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영화가 달라지겠죠.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영화를 통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흑백논리, 진영논리 탓에 생긴 경직성이 국가 미래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천한 상업영화를 통해서일지라도 경직성과 관련한 문제를 깊이 있게 고찰해보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