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호

“일자리는 생존의 문제 ‘쉬운 해고’는 살인”

김주영 공공노련 위원장의 ‘朴정부 노동개혁’ 비판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5-08-20 14: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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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개혁 아닌 노동개악…재벌개혁 필요
    • ‘뇌수술’ 필요한데 ‘다리 절단’ 하겠다는 꼴
    • 노동자 전체를 비정규직화하겠다고 나선 격
    • 정규직 확대 중심으로 노동정책 大전환해야
    “일자리는 생존의 문제 ‘쉬운 해고’는 살인”
    박근혜 대통령은 8월 6일 대국민 담화에서 “노동개혁은 일자리”라면서 “기성세대가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7월 21일 국무회의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노동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면서 “노동개혁은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며 세대 간 상생을 위한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7월 23일 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놓은 노동개혁을 위해 ‘노동시장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김무성 대표는 “우리 아들딸을 위해 노동개혁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고 반드시 지나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노동개혁은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출사표’ 격이다. ‘청년 일자리’를 열쇳말로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면서 여론을 동력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말에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굵직한 의제를 내놓았으나 소통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노동개혁은 우리 국민의 삶에 직접적이면서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다. 이상적 형태는 노·사·정이 대타협을 이뤄내는 것이다.

    노동계는 박 대통령이 내놓은 노동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김주영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 위원장을 통해 노동계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공공노련에는 한국전력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석유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 등이 속했다.





    “일자리는 ‘밥’이다”

    “노동개혁이 아닌 ‘노동개악’이다.”

    김주영 위원장은 8월 4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건물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하면서 “노동정책의 근본을 바꾸는 ‘뇌수술’이 필요한데 정부는 ‘다리 절단 수술’을 하자고 덤벼든다”고 지적했다. “정규직 확대를 중심으로 노동 정책을 대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노동조합을 자유시장 경제를 해치는 해악 집단으로 규정하고 노동개악을 밀어붙인다”면서 “일자리는 한국 사회에서 ‘밥’이며 ‘생존’이다. ‘쉬운 해고’는 노동자에게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한국의 고용 위기는 만성적이면서 구조적이다. 비정규직이 600만 명에 달한다. 노동시장의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개인적으로 ‘노동시장’이란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자유시장경제를 해치는 ‘해악 집단’으로 규정하고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현 상황의 전제가 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노동시장 개편’이라는 구호를 내걸었기에 인터뷰 편의상으로만 ‘노동시장’이란 말을 사용하겠다.”

    “진단 틀리고 처방 잘못돼”

    통계청은 7월 23일 “취업준비생을 포함한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이 넘고 그중 63만 명은 취직을 한 번도 못해봤다. 졸업 후 평균 11개월 지나야 첫 직장에 들어가지만 평균 재직기간은 1년 6개월가량에 그친다”고 밝혔다.

    ▼ 박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

    “노동계도 상황을 심각하게 본다. 청년실업은 노동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로 인해 국가경제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져 발생한 것이다. 청년실업, 비정규직 확산, 여성경제활동 제약 등 노동 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지나치게 확대된 데 따른 결과물이다. 유연성이 확대되면서 사회 전반의 소득 양극화가 심화해 경제 전체가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청년실업 문제는 한국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년 새로운 일자리가 50만~60만 개 생겨나는데, 대부분은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아니라 비정규직 등 질 낮은 일자리다. 정규직 중심으로 노동시장이 개편돼야 한다.”

    ▼ 박 대통령이 말한 노동개혁 필요성과 당위성에는 동의하나.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국가 지도자로서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정부의 진단이 완전히 틀렸다. 당연히 처방도 잘못됐다. 청년실업 문제를 노동시장의 문제로 국한해서 본 게 잘못이다. 문제의 핵심은 질 낮은 일자리만 만들어내는 노동정책에 있다.

    전체 노동자의 3분의 2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정책이 수많은 하도급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파견과 도급 등 저임금 노동을 강요한다. 청년들이 이런 일자리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거듭 강조하건대, 개혁은 노동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 김 위원장의 말대로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과 청년 백수의 한숨 소리에 노동계도 귀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

    박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임금피크제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면 청년층 고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청년 일자리 문제는 청년 개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일자리는 생존의 문제 ‘쉬운 해고’는 살인”


    “얼마나 더 유연하길 바라나”

    “일자리는 생존의 문제 ‘쉬운 해고’는 살인”
    “현재 우리 노동시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유연하다. 정년까지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뭘 더 유연화하겠다는 건가. 유연화의 결과물이 저임금 비정규 노동의 급증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하겠다는 말은 결국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노골적으로 사용자의 편에 서 있다. 임금피크제는 개별 기업 노사가 해당 기업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도입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단 임금피크제뿐 아니라 근로조건과 인사 등 노사관계의 핵심 사안이 협상이 아닌 사용자의 일방적 결정으로 이뤄지게 된다. 사정이 이런데 노동계가 어떻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나.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려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 그건 정부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민간 연구기관, 해외 연구에서도 정년연장과 청년실업은 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일자리 총량을 고정해놓은 채 정년을 연장하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엔 매년 50만~60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겨난다. 청년실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장년 세대의 임금을 깎아 청년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가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으로 이어진다는 뜻인가. 정부의 견해는 “고용이 유연해지면 기업이 해고 부담 없이 필요한 만큼 고용하게 되므로 전체 일자리 수는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인데.

    “얼마나 더 유연해지기를 바라는 것인가. 전체 노동자의 3분의 2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인데 지금보다 더 유연해져야 한다는 건가. 차라리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겠다고 하는 게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30대 대기업 평균 근속 연수가 9.7년에 불과하다. 중소·중견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체 근로자의 64.5%가 근속 연수 3년 안쪽이다. 이 통계가 말하는 게 뭔가. 기업이 해고를 맘대로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나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30~40%에 불과한 정규직의 해고가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60~70%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기업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게 되면 한국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공부문을 예로 들어보자. 이명박 정부 때 이른바 공기업 선진화를 한다면서 공공 부문 일자리 2만 개 정도를 없앴다. 그 자리를 외주화하거나 계약직, 청년인턴 등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가 질 낮은 일자리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해고의 칼자루를 쥐여준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올지 불 보듯 뻔하지 않나.”

    ▼ 임금피크제만으로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겠으나, 선배 노동자들이 후배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양보 아닐까.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이 “형님! 삼촌! 좋은 일자리 독점 말고 나눠달라”고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뜨거운 감자’ 해고요건 완화

    “그 단체의 정체성이 뭐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부가 왜곡한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게 아닌가 우려된다. 노동계에서는 청년들을 올바르게 대표하는 ‘청년유니온’ 등의 단체와 교감을 나누는데, 청년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한다.

    장년 세대 중 임금피크제에 따라 줄어든 임금을 받으면서까지 직장을 계속 다닐 사람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구조조정 수단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터라 은행권 같은 곳에서는 50대만 넘으면 거의 명예퇴직 수순을 밟기도 했다. 청년실업을 해소하려면 정부가 정규직 중심으로 노동환경을 재편하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과 관련해 ‘뜨거운 감자’는 해고요건 완화다. 기업은 성과를 내지 못한 근로자의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한다. 근로기준법상 잘못을 저지른 근로자의 ‘징계해고’나 경영 사정이 악화했을 때의 ‘정리해고’와 달리 일반해고 요건은 엄격하다.

    ▼ 재계는 고(高)임금을 받으면서도 성과는 적은 근로자를 해고해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다.

    “지금 기업이 성과를 내지 못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는지 되묻고 싶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년 미만 단기근속자 비율이 35.5%에 달한다.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비율은 18.1%로 OECD 회원국 중 고용 안정 분야에서 한국이 꼴찌다. 물론 이직이 모두 비자발적인 것은 아닐 테지만, 이 통계가 한국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현실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성과가 나지 않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쫓아내는 것이 사용자의 행태이고 우리가 일하는 노동환경의 현실이다.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면 최소한의 법적 보호 장치마저 사라진다. 노동자를 해고할 무한의 자유를 달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청년 일자리를 늘릴 테니 해고요건을 완화해달라는 것은 전형적인 물 타기,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정규직-비정규직 간 노노(勞勞) 양극화도 우리 노동시장의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노조원-비노조원, 노조원 중에서도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가 크다. 비정규직은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은 정규직의 60%만 받는다. 게다가 늘 실직의 공포에 시달린다. ‘주변부 계층’ ‘2등 시민층’이 형성된 셈이다.

    ▼ 비정규직 급증이 대기업과 정규직 노조의 합작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면 양대 노총 산하의 조직된 노동자들이 일부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시장 유연화에는 이런 함의도 담겼는데….

    勞勞 양극화 논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소홀했던 점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비정규직 양산은 노동자 간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별 노조 대신 기업별 노조를 강제해온 법과 제도, 노동조합을 정권 차원에서 억압해온 역사적 사실 등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컨대 전국적인 산업별 단위의 교섭을 통해 동종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 조건에 대해 협상하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산별 교섭을 막아왔고, 산별노조로 전환했어도 교섭을 사실상 기업 단위로 제한해온 법과 제도가 있었다. 사용자 또한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에 배타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양극화를 노-노 간 문제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대기업 노조가 사용자와 짬짜미해 비정규직 등 주변부 노동자를 착취해 고임금을 받는다는 주장은 본질을 흐리려는 것이다. 비정규직 양산의 근본 원인은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 빚어낸 것이다. 박 대통령이 공약한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가 통계를 읽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한 예로 노동소득 분배율을 보자.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5년 대비 2012년 기준 임금노동자는 1320만 명에서 1771만 명으로 451만 명 증가했지만 노동소득 분배율(피고용자 보수총액)은 62.6%에서 59.7%로 오히려 2.9%p 하락했다. 기업이 더 많은 고용을 했지만 자본의 몫이 커진 반면 노동자의 몫은 줄어든 것이다.

    올해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700조 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투자는 지속적으로 준다. 이러한 총체적 문제가 사회 양극화를 점점 심하게 만들었다. 상위 1%의 소득집중도가 1995년 6.9%였지만 2012년에는 12.2%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점에서도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 노동시장 유연화에는 일관되게 반대하나. 환부가 곪았는데, 빨간 약만 발라도 될까.

    “정부가 하는 일을 노조가 반대만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데는 노조를 해악 집단으로 몰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다. 노동계가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명확하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와 파견근로 등 노동시장 유연화에 노조가 합의해줬다. 그 결과가 오늘날과 같은 처참한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데도 경제위기를 앞세웠다. ‘실패한 해법’이라는 게 확인된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를 하겠다면서 노동자에게 고통을 강요하는데 어떻게 동의하겠나.

    문제는, 정부에 있다. 노조가 언제 아까징끼(포비돈요오드, 소독약) 바르자고 했나. 노동계는 경제정책, 노동정책의 근본을 바꾸는 뇌수술을 하자고 하는데, 정부는 다리 절단 수술을 하자고 덤벼드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얘기하기 전에 해고가 곧 죽음일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불안한 상황을 해소하는 데 정부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성과·직무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금체계를 바꾸자는 주장은 한마디로 말해 ‘임금 덜 주고 일 시키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임금체계를 바꿔 노동자 몫을 늘려주겠다는 말이 아니다. 좀 더 심하게 얘기하면 ‘일은 더 시키고 임금은 덜 주겠다’는 말을 고급스럽게 포장한 것이다. 연공서열형 임금도 따지고 보면 자본의 논리로 도입한 제도다. 생산성보다 임금을 덜 주기 위해 나중에 더 주겠다는 형태가 연공서열형 임금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임금을 더 주기도 전에 쫓아내지 않나.

    백번 양보해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성과 측정의 객관성과 공정성, 방법론 등에서 많은 문제가 있다. 최근에는 부작용 탓에 직무성과급에서 연공서열식으로 임금체계를 바꾸는 기업도 있다.”

    ▼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건가.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 원인은 그대로 둔 채 엉뚱한 처방을 들이미니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정규직에서 찾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를 노동조합의 기득권 문제로 돌리는 속임수로는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 勞使, 독일 勞使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1998∼2005년 재임)가 5월 방한해 “노동개혁은 정권을 잃을 각오를 하고 하라”고 조언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1990년대 중반부터 높은 실업률과 저성장에 시달리며 ‘유럽의 병자(病者)’로까지 불리던 독일을 ‘어젠다 2010’이라는 개혁 정책을 통해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해고요건을 완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창출로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였는데, 이 때문에 슈뢰더의 사회민주당은 전통적 지지층인 노조와 연금 생활자의 반발을 사 2005년 선거에서 기독교민주당에 패배했다. 노동개혁의 성과는 기민당 정부가 누렸다.

    ▼ 독일 사례는 어떻게 평가하나.

    “독일의 노사관계는 우리와 다르다. ‘이중대표제’라고 불리는 제도가 운영된다. 산별노조와 작업장평의회를 통해 전국적 규모로 산업 단위의 교섭이 이뤄지면서 작업장 단위에서 노조는 경영 참여도 보장받는다. 한국에서 노조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나. 독일은 근로자의 권리를 법과 제도, 관행을 통해 확실히 보장하는 국가다. 해고가 곧 죽음인 우리나라와 달리 사회안전망도 잘 갖췄다.

    당시 독일은 통일 이후 경제 상황이 어려웠기에 개혁이 필요했다. 독일의 개혁은 한국처럼 노조를 아예 무시하고 밀어붙인 게 아니다. 페터 하르츠 전 독일 노동개혁위원장이 5월 21일 방한해 ‘개혁을 통해 변화를 겪게 될 노동자들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면서 ‘갈등이 있을 때는 각 파트너들이 각자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취업 규칙을 사측이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쪽으로 노조를 몰아붙이는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떤 참모가 대통령의 머릿속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노동시장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력했는지 모르겠다. 답답한 일이다.”

    ▼ 고용을 안정시키면서도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독일은 근로시간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했으며, 일본 기업들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고용을 지키기 위해 임금체계 개편에 주력했다.

    “사회 전체의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개별 기업의 노동 유연성을 높여온 선진국의 사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금과옥조처럼 여기거나 실제를 왜곡하거나 침소봉대해서는 안 된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의 실제 근로시간은 2013년 기준 연간 2163시간으로 독일의 1363시간보다 800시간이나 더 많다. OECD 평균 1770시간과 비교해도 훨씬 많다.

    장시간 노동은 낮은 임금에서 비롯됐다. 법정 근로시간만 일해서는 아이들 학원비도 대기 어려운 임금을 받게 되므로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당위가 있음에도 오히려 시간외 근무가 늘어나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법을 고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법정 근로시간만 일해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게 되면 쉽게 해결된다.”

    “제대로 한번 개혁해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월 6일 신년 구상 발표에서 “비정상적 관행을 정상화하는 개혁을 통해 기초가 튼튼한 경제를 만들겠다”면서 “먼저 공공 부문 개혁부터 시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2월 5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 때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해 “진돗개는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겨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고 한다. 진돗개 정신으로 해야 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가 공기업 부채 해소를 위한 비정상의 정상화에 나섰는데 노동계가 보기엔 결과물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나.

    “공공 부문을 개혁한다면서 근본 원인은 그대로 두고 기껏 노동자 복지나 축소하자고 한다. 공공기관, 공기업의 부채 문제 등은 정부와 정권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한 것이다. 4대강 사업에 쏟아부은 돈만 22조 원이다. 앞으로도 천문학적 비용이 더 들어갈 것이다. 자원외교에 갖다버린 돈은 또 얼마인가. 정권의 인기 유지 차원에서 추진한 보금자리 주택도 공기업의 손실로 남았다.

    수십조, 수백조의 손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자 복지비 몇 십만 원 줄이는 것을 개혁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개혁을 제대로 한번 해보자. 낙하산 인사, 엉터리 경영평가, 공공기관 앞세운 포퓰리즘 정책을 없애보자. 기획재정부 관료가 독점하는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부터 개혁하자. 공공기관의 자율, 책임 경영을 보장하고 정부와 국민, 노동자가 참여하는 경영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자. 이런 게 개혁이다.”

    ▼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정상화에 나섰다. 큰 맥락에서 노동개혁과 겹친다.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2진 퇴출제(저성과자 퇴출) 등이다.

    “2차 공공기관 정상화에 나선 의도도 불순하다. 임금피크제는 대부분 공공기관에서 큰 문제없이 자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 그런데 정년 연장이 되는 직원의 인건비와 신규 채용 직원의 인건비를 전체 직원의 임금을 삭감해 충당하려고 한다. 성과연봉제와 2진 퇴출제를 도입해 성과 관리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지금도 경영평가와 내부평가를 통해 성과급을 지급한다. 문제는 공공 서비스 분야의 성과 측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2진 퇴출제가 악용될 소지가 크다. 나처럼 노동조합 일을 하는 사람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정부안이 현실로 나타나면 공공 서비스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릴 것이다.”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 돼야”

    ▼ 앞으로의 대응 방향은.

    “한국노총이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했는데, 86.6%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현재 천막 농성 중이다. 민주노총도 두 번의 파업을 통해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양대 노총의 제조 및 공공 부문이 공동으로 투쟁한다. 말 그대로 전체 노동계의 투쟁이 진행되는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노동개악을 몰아붙인다면 노동계의 선택지는 파업밖에 없다. 정부가 전향적 태도로 노동계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

    ▼ 지난해 9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시작됐다. 3개월간의 협의를 거쳐 그해 말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원칙과 방향을 정하는 기본 합의를 도출했으나 결국에는 대타협에 실패했다.

    “노사정위원회든, 별도의 기구이든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타협의 전제는 각 주체의 진정성과 신뢰다. 정부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면서 상대적 약자인 노동계의 희생을 강요한다. 정부는 노사관계의 공정한 중재자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사용자에 편향돼 있다. 정부가 대타협의 걸림돌인 셈이다. 공공기관의 사용자는 정부다. 정부가 공기업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라.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무시하면서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 한다.

    사용자 또한 전향적인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 700조 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는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해고는 멋대로 하고 임금도 깎겠다는 건데, 기업이 이런저런 양보를 할 테니 노동조합도 이런저런 것은 양보해달라고 하는 게 옳은 태도 아닌가. 재벌개혁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양보하면 우리도 성의를 보이겠다는 식의 태도로는 뜻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실노동시간이 단축되는 게 좋다. 노사 문제는 노사에 맡기는 게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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