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줬습니까.
“임직원 중에서 직급, 연령대별로 20여 명을 뽑아 2020미래창조추진단을 만들었어요. 1년 동안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개선해야 할 것을 찾고 미래 먹을거리 발굴에 힘쓰도록 했죠.”
▼ 결과물이 있다면.
“지난해 3월 해외투자부를 신설했어요. 신설 당시 3조2000억 원이던 해외투자자산을 올 6월 말 현재 2배 가까운 5조7000억 원으로 늘렸죠. 그게 효자 노릇을 했어요. 해외투자는 국내보다 복잡하고 리스크도 크지만, 국내 투자가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이젠 ‘필요’를 넘어 ‘필수’가 됐다고 봅니다. 또한 미국 교직원퇴직연금기금(TIAA-CREF)과 1조 원 규모의 합작 펀드를 설립하고, 웰스파고 은행과도 업무협약을 맺어 다양한 투자선 확보를 꾀하는 등 해외 우량투자 비중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 새롭게 추진한 투자 분야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미래 먹을거리인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다변화하고 있어요. 2013년엔 국내 기관투자자 최초로 항공기금융에 투자했고, 창조경제의 핵심 부가가치사업이라 할 수 있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분야와 영화펀드에도 300억 원씩 투자했습니다. 또한 5000억 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를 조성해 인프라, M·A, 헬스 케어, 신약 등 다양한 분야의 투자처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공격적 자산운용도 필요하지만 안전성도 중요하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금 운용관리 시스템이 요구되는 이유다. 교원공제회의 기금운용 시스템은 여러 공제회 중에서도 가장 체계적이고 선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산운용위원회에서 5년 단위의 중장기 자산운용계획안을 수립해 자산을 운용합니다. 자산운용위원회와 리스크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외부 인사가 맡아 공정성을 기하고, 이사장은 아예 운용에 개입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또한 투자의 공정성과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해 투자부서와 독립된 조직인 미래전략실에 리스크관리팀과 투자심사팀을 둬 위험요소를 철저히 분석합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시각에서 위험을 분석하고 합리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투자 관련 실무자 전원이 직급에 상관없이 개별 투자 안건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고, 투자한 후에는 제3의 기관에서 공정한 가치 평가를 통해 위험을 관리합니다.”
자산 100조 시대 준비

“감독기관인 교육부를 비롯해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해 급여율 인하를 지속적으로 권고받았습니다. 이에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등 회원 대표들로 구성된 다양한 의사결정기구를 통해 충분히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해 지난 3월 급여율을 4.32%로 인하했습니다.”
▼ 회원들의 반발이 심했을 것 같은데요.
“회원들도 높은 급여율보다는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아울러 지난 연말, 장기저축급여를 연금식으로 수령할 경우 이자소득세를 15.3%에서 2%로 낮추는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회원들의 손실을 최소화했습니다. 공제회에서는 앞으로도 한층 강화된 재정 안정성을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수익 창출에 힘쓸 겁니다.”
▼ 임기가 1년 정도 남았는데, 앞으로 가장 주력하려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100세 시대입니다. 정년퇴임 후에도 40년쯤 더 살아야 합니다. 이런 흐름에 맞춰, 회원들의 복리 증진과 생활 안정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서비스, 상품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30년 후인 2044년엔 공제회 자산이 100조 원에 달하게 됩니다. 장기적 안목에서 경영 쇄신, 조직 개편, 인적자원 충원 등 모든 부분을 새롭게 정비하고 준비해나갈 생각입니다.”
▼ 재임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공제회에서는 회원들의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다양한 생활 · 문화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 ‘The-K행복나눔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선생님들로 구성된 합창단, 밴드 등이 출연해 공연을 펼쳤는데, 하는 분도 보는 분도 다들 반응이 좋았습니다. 올 1월에 벌인 해외봉사활동도 보람차고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공제회 지원으로 건립된 베트남 띵자 희망직업교육센터에서 10명의 교사 회원이 2주 동안 150여 명의 학생에게 음악, 미술, 과학, 체육, 컴퓨터, 한국어 등을 가르치고 돌아왔습니다. 함께 간 직원이 이질에 걸려 고생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돌아올 때 선생님과 학생들이 부둥켜안고 울 정도로 정을 듬뿍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