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호

거평 나승렬 前회장 일가 의문투성이 수백억 거래

재벌은 망해도 오너는 영원?

  • 이송하 | 만강학원 재단이사, 前 연합뉴스 기자 oslorain@naver.com

    입력2015-08-21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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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평 나승렬 前회장 일가 의문투성이 수백억 거래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5월, 재계 순위 28위 거평그룹은 산하 23개 기업의 2조 원 넘는 부도로 공중분해됐다. 거평을 이끌던 나승렬(70, 당시 53세) 회장도 파산한 뒤 나중에는 형사책임으로 옥고를 치렀다.

    당시 망한 기업주 중 몇몇은 세간의 눈을 피해 되도록 조용히 지냈다. 한보 정태수, 대우 김우중 회장 등이 이런 경우다. 하지만 나 전 회장은 다르다. 그가 아직 ‘회장님’으로 불리며 가족, 측근이 소유한 회사 5~6개를 진두지휘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에겐 주식이 한 주도 없지만 대주주들은 물론 사장들도 그의 지시를 거스르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회장 명함을 내밀고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풍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하지만 줄담배와 함께 점심 때부터 폭탄주를 즐긴다고 한다. 그가 거느린 각 회사 대표들과 직원들은 소속 회사 주소지가 아닌 서울 한남동 H 모델하우스 3층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한다. 그는 이 건물 2층 회장실에 출근해 3층 사람들을 통솔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회사 어디에도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그는 “전문지식이 있어 컨설팅만 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간 검찰, 국세청은 물론 언론매체들도 나 전 회장의 재산을 추적해왔다. 한 매체는 2003년 3월 “수천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도록 해 국민경제에 부담을 안긴 나 전 회장의 20대 자녀들이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450억 원대 부동산을 소유해 재산 은닉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2005년 5월엔 “나 회장 일가가 중견 제빵업체 기린을 장악하고 제2 도약을 노린다”는 소식도 나왔다.



    꼬리 무는 논란

    2005년 11월 6일 서울중앙지검은 “나 전 회장이 숨긴 재산으로 옛 프레야타운 소유권을 되찾으려 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근거로 나 전 회장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한 언론매체는 지난해 12월 “서울시와 국세청에 체납한 세금이 78억 원에 이르는 나씨가 서울 한남동 개발 사업에 관여” “거평그룹을 믿던 임차인, 협력업체 직원들은 피눈물을 흘렸는데 나씨 일가와 측근들은 변변한 직업 없이 수십·수백억 원대 주식·부동산 부자로 등극”이라고 썼다.

    나 전 회장은 지난 4월 다시 언론을 탔다. 한 종편TV는 “나 전 회장 가족이 서울 용산구 한남5거리 일대 고급 주상복합건물 분양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약 1000평(3300여㎡)대지에 상가 수십 채와 아파트 280가구가 들어선다고 한다. 이 사업으로 올릴 매출은 2000억 원대로 예상됐다.

    그런데 이 사업을 주관한 M건설의 주체는 나 전 회장의 외아들 나모 씨다. 그는 30세 때인 2007년에 100억 원대인 이 땅을 사들인 바 있다. 그는 “주로 대출로 자금을 마련했다”고 했지만, 대출보증을 선 회사가 나 전 회장 소유였으며 이후 나씨가 자기 회사인 M건설에 이 땅을 180억 원에 팔아 내부거래로 80억 원의 차액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 종편은 “170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나 전 회장이 현재 딸 명의의 서울 방배동 7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며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대구에는 나 전 회장이 실질 소유한 사립학교 대중금속공고가 있다. 대한중석 부설이던 이 학교는 나 전 회장이 1994년 대한중석을 인수할 때 따라온 것.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대한중석을 민영화하면서 대한중석과 학교의 이사진이 같은 것을 도외시한 채 학교까지 끼워준 것으로 알려진다. 나 전 회장은 이후 학교법인 이사진을 가족과 측근들로 교체했으며, 학교법인 이름도 자신의 호 ‘만강’을 따 만강학원으로 바꿨다. 지난 3월 이 학교는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서 대구 북구 칠곡으로 신축, 이전했다. 이 과정에서 나 전 회장은 감독관청인 대구시교육청과 자주 충돌했다. 필자는 지난해 9월부터 만강학원 재단이사로 활동해왔다.

    2010년 8월 학교를 대구 칠곡으로 옮기기로 한 나 전 회장은 직접 부지를 보러 다니다 칠곡 읍내동 일대 야산을 점찍었다. 학교재단(당시 이사장은 나 전 회장의 외아들)은 같은 해 10월, 땅값이 오를 것을 우려해 재단 소유 재산의 임대차보증금으로 부지매입계약을 체결했다. 시교육청은 “학교위치변경계획 승인도 나기 전에 부지를 사는 것은 물론, 재단 소유 재산 임대보증금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거평 나승렬 前회장 일가 의문투성이 수백억 거래


    75억, 290억…

    거평 나승렬 前회장 일가 의문투성이 수백억 거래
    그러자 재단은 나 전 회장 가족회사로 알려진 S사로 하여금 학교 예정 부지를 사서 재단에 되팔도록 계약을 체결했다. 결국 재단은 계획대로 2012년 5월 해당 부지를 S사로부터 75억 원에 사들였다. 부지 매입가는 S사의 매입가 34억9000만 원보다 40억1000만 원이 더 높았다. S사는 증액 부분에 대해 도로개설비용, 이자, 세금을 포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시교육청은 감사원 감사를 받도록 한 뒤 검찰에 고발했다.

    결국 이 문제로 재단이사장이던 나 전 회장의 아들은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감사원 감사 자료에 따르면 재단이 학교용지로 개발될 것을 전제로 감정한 가격이 73억 원 안팎이라고 제시했지만, 당시 임야임을 고려한 가격이 12억4700만 원에 불과하고 부지 매입에 실패할 경우 강제수용도 가능했던 점에 미뤄 재단이 과다 지출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S사는 출자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실제 소유주는 나 전 회장의 부인 박모 씨로 보인다고 지적해 사실상 재단과 S사 간의 내부거래임을 인정했다. 나 전 회장이 땅 매입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재단이사장인 아들만 처벌받았다.

    이후 학교이전 승인을 받은 재단은 2012년 3월 C사와 학교 신축공사를 총액 165억 원에 수의 계약했다. 이 공사는 금액으로 볼 때 일반경쟁입찰에 부쳐야 했고 전기공사는 분리 발주해야 했다. 재단은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전체를 수의계약으로 C사에 줬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공사를 맡은 C사 역시 출자관계가 복잡하지만 나 전 회장의 부인 박모 씨 소유로 알려진다. 사실이라면, 나씨 일가 소유의 재단과 회사가 내부거래를 통해 계약한 셈이다.

    감사원 감사 자료에 따르면 C사는 공사를 맡기 한 달 전인 2012년 1월 30일에야 종합건설업 면허를 얻었다. 따라서 공사를 수주하더라도 하도급을 줄 수밖에 없어 공사비가 늘어날 것이 우려됐다. C사는 감사원의 우려대로 공사 대부분을 하도급으로 수행했다. 감사원은 신축공사 수의계약과 학교부지 고가 매입 책임을 물어 관련 임원들의 승인취소 조치를 지시했다.

    학교재단은 2013년 3월 달성군 가창면 대중금속공고 후적지(옛 자리) 5만7000㎡를 수의계약으로 C사에 총액 290억7000여만 원에 매각했다. 재단은 학교신축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밀어준 C사에 1년 만에 학교 후적지도 수의계약으로 판 것이다. 원래 공공기관의 부동산 매각은 온라인으로 입찰하는 온비드 공매를 통해야 하는데, C사는 온비드 공매가 2차례 유찰되자 감정평가액 수준으로 수의 계약했다. 하지만 학교 근처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물론 유력한 매입 후보로 이곳과 인접한 대구텍은 2차례 공매와 C사의 수의계약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실소유주는 나승렬”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공매 전인 2012년 2월 재단이사장과 S사 대표, C사 대표가 모여 C사가 학교 후적지를 매입하기로 약정을 체결, 공매 과정을 무력화하려 한 점이 드러났다. 더구나 계약 조건이 불공정해 재단의 배임 의혹도 불거졌다. 계약금은 매매대금의 10%에 불과하고, 중도금 없이 잔금은 학교 이전이 완료된 후 학교 신축공사비를 먼저 정산한 다음 개교 후 1년 이내 일시 또는 분납으로 지급할 수 있게 했다. 이 방식은 나 전 회장이 대한중석을 인수할 때 사용한 LBO 방식(매수할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매수자금을 조달)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재단은 시공 능력이 없는 C사에 165억 원의 신축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밀어주고 공사비도 대부분 미리 지급해 자금 능력이 생긴 C사로 하여금 학교 후적지에 대해 10% 계약금만 내고 개발사업을 진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 황당한 불공정 계약에 나 전 회장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6월 대구지역 언론사들은 대구 달성군 가창면 옛 대중금속공고 땅에 들어설 공동주택 사업의 문제점을 일제히 보도했다. 학교 후적지에 대해 계약금 10%만 걸고 개발에 나선 C사가 이 땅에 도시형 생활주택 290가구를 짓겠다고 달성군청에 사업승인을 신청한 것이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서민들의 주택난 해소를 위해 도심 지역에서 300가구미만에 한해 근린생활시설이나 편의시설 없이 인근 주택에 근접해 빽빽하게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은 도심 지역이 아니어서 편의시설이 부족한 데다 C사 측이 1000가구가 들어설 대단위 주거 단지로 광고해 문제가 됐다. 300가구 미만으로 나눠 개발함으로써 지구단위 개발의 의무사항들을 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문이 나왔다.

    달성군이 사업 예정 전체 필지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을 세우라고 통보함으로써 C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나 전 회장은 수시로 대구에 와 사업진행 상황을 점검했고, 막판엔 군수까지 직접 만나 사업승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7월 3일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전성수)는 나 전 회장에 대해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렸다. 나 전 회장이 2005년 국세청의 부가가치세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이유 없다’며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2004년 서울지방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아들 및 친척 명의 회사 3곳의 실제 사업자를 나 전 회장으로 판단, 사업자등록명의자를 나 전 회장으로 바꿔 등록하게 한 뒤 부가가치세를 부과한 데 대해 나 전 회장이 제기한 소송이었다.

    ‘광복절 특사’

    재판부는 △회사들의 명의자 및 관련자가 나 전 회장의 아들, 생질, 전 거평그룹 임직원인 점 △이들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회사 지분 비율을 명확히 진술하지 못한 점 △나 전 회장이 구치소 수감 기간에도 거의 매일 임직원들을 접견, 현황을 보고받은 점 등에 비춰 나 전 회장을 실소유주로 볼 수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대한중석이라는 거대 기업을 손에 넣은 나 전 회장은 대출과 보증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반도체 조립검사업체 시그네틱스 코리아, 포항제철 계열사 포스코캠을 인수했다. 이어 1996년 산업은행 자회사인 새한종합금융도 편입시켰다. 그러나 빚이 불어나면서 회사들이 위기에 처했다. 그는 자금력 있는 대한중석, 새한종금, 한남투자증권의 돈 수천억 원을 어려운 계열사에 지원토록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태풍이 몰아치던 1998년 5월 거평그룹 계열사들이 부도와 워크아웃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른바 ‘거평 사태’로 한남투자증권에 돈을 맡긴 고객 100만여 명은 이자는 물론 원금도 제대로 돌려받지 못했다. 서울 동대문 쇼핑몰 거평프레야 상점 임차인 2600여 명은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1인당 3000만~7000만 원의 보증금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나 전 회장은 2900억 원을 계열사에 편법 지원한 혐의(업무상 배임)로 구속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 2008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 석방됐다. 그는 복역 중 병보석으로 상당 기간을 병원에서 지냈다. 입원 중 술과 담배를 해 부도 피해자들로부터 꾀병이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나 전 회장과 관련된 내용은 우리 경제의 고질적 문제라 할, 파산한 대기업 오너의 개인 치부, 내부거래, 경제인 사면 논란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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