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남녀차별 현장 보고서

페미니스트 은하선이 말하는 ‘워마드’

내가 그들에 동의 않는 진짜 이유

  • 입력2018-08-29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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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니즘, 성 이분법적 사회 균열 내는 게 목적

    • 자극 따라다니는 저널리즘 워마드 키워

    • 소수자 혐오 워마드에 과거부터 우려

    • 페미니스트와 워마드 단절 힘들게 하는 현실에 절망

    8월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몰카’라 불리는 불법 촬영 범죄의 피해자가 여성일 때에도 신속하게 수사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뉴스1]

    8월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몰카’라 불리는 불법 촬영 범죄의 피해자가 여성일 때에도 신속하게 수사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뉴스1]

    워마드는 페미니즘을 추구하는가 아닌가. 페미니즘은 워마드를 수용하는가 아닌가. 페미니즘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에게 종종 ‘꼴페미’라고 조롱당하는 나는, 워마드에서는 ‘쓰까페미’라며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말을 듣곤 한다. ‘쓰까페미’에서 ‘쓰까’란 섞는다는 의미의 사투리다. 대체 뭘 섞는다는 뜻일까. 워마드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이들에게 도대체 ‘생물학적 여성’이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여성’이라는 위치를 변화할 수 없는 ‘피해자’로 한정 짓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궁’과 ‘질’이 ‘진짜 여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쓰까페미’라고 불린다. 

    ‘쓰까페미’는 워마드로부터 지금 당장 급한 ‘여성 인권’보다 성소수자, 장애인 인권을 먼저 챙긴다며 비난받는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여성·남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성 이분법적 사회를 균열시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페미니즘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여성’이면서 ‘장애’를 가진 장애-여성과 ‘여성’이면서 ‘성소수자’인 여성-성소수자가 사회적으로 받는 차별은 ‘상호교차’적이다. 차별의 이유가 한 가지 문제로 한정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페미니스트인 내가 워마드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이자 워마드를 비판해온 맥락이다. 

    나는 워마드의 행보에 동의하지 않는다. 워마드가 사라지길 바란다. 미리 말하자면 이 글은 워마드는 페미니즘을 추구하는지 아닌지, 페미니즘은 워마드를 수용하는지 아닌지 묻는 말에 답하는 글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기자들이 워마드에 24시간 상주하는 건 아닐까?”

    7월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뉴스1]

    7월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뉴스1]

    정보가 마치 바닷물처럼 넘실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파도처럼 들썩거리는 수많은 정보를 전부 맛볼 수 없다. 특정 정보를 먼저 맛보고 우리에게 던져주는 건 주로 언론이다. 자극적인 정보일수록 인기가 있다. 올해 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미투운동’을 기억할 것이다. 성폭력 고발 운동이던 미투 이후 모든 언론에서는 미투 관련 기사만을 쏟아냈다. 가해자로 지목된 자가 사회적인 권력을 더 많이 쥐고 있을수록 사람들은 더 ‘열광’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며 ‘괴물’ 혹은 ‘변태’라는 말로 비난했다. 마치 미투 이전에는 성폭력이라곤 없었던 것처럼, 전혀 몰랐다며, 지금이라도 알게 돼 다행이라며 더 강하게 가해자를 비난했다. 

    많은 이는 ‘딸’ 같고 ‘아내’ 같고 나의 ‘누이’와 같은 피해자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가해자의 사회적 매장을 바랐다. 하지만 모든 미투가 대중의 지지를 받지는 않았다. 가해자가 사회적인 권력자라고 해도 말이다. 성폭력 피해자라면 이럴 것이라는 일종의 이미지가 존재한 탓이다. 선입견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란 달변가거나 고학력일 수 없었다. 피해자가 ‘보잘것없을’수록, 그 미투는 믿을 만하고 진실한 미투가 됐다. 반대 경우라면 오히려 가짜 피해자, 즉 ‘꽃뱀’으로 몰리기 일쑤였다. 



    가수 이박사는 8월 10일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연에 나와 “요즘에 여자들 잘 사귀어야 해. 잘못하면 미투에 인생 조져”라고 발언해 비판을 받았다. 직장을 내놓고, 시간도 내놓고, 모욕을 감당하면서도 미투에 동참한 자는 가해자 남성의 인생을 망치는 꽃뱀이 되어야 하는가. 가해자는 더 당당해졌고 피해자가 꽃뱀 오명을 얻게 된 현실에서 ‘인생을 조진’ 건 과연 누구인가. 

    소위 받아쓰는 기자가 늘어날수록 기사의 양도 방대해진다. 클릭 수가 늘어나면 순식간에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오른다. 미투 이후 급증한 성폭력 관련 기사는 성폭력의 심각성이나 성차별에 대한 논의를 풍부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성폭력 사건을 쉽고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와중에 성폭력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나는 자극을 따라다니는 이러한 저널리즘이 오늘날의 워마드를 키우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본다. 기자들이 워마드에 24시간 상주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워마드에 올라오는 글은 빠르게 기사화된다. ‘성체를 불태운 사진’이나 ‘낙태를 인증한 사진’처럼 내용이 자극적일수록 관심도는 상승한다. 관심은 워마드를 움직이는 동력이자 화력이다. 이슈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이 곧 힘이 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굴레 속에서 워마드는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자극적 콘텐츠가 받는 관심만큼이나 페미니즘 이슈가 부각되면 참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워마드에 올라온 ‘성체 훼손 사진’은 글쓴이의 의도인 천주교 내부의 성차별과 성폭력, ‘여성은 사제가 될 수 없다’는 견고한 입장이 가진 문제점을 들춰내기보다는 ‘신성모독인가, 아닌가. 성체는 천주교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와 같은 의문으로 향했다. ‘낙태 사진’은 여성의 낙태권에 대한 이슈를 들추기보다 ‘선정성’과 ‘잔혹성’ 논란만을 불러일으켰다. 관심을 가져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슈 전달이 목적이었다면 실패한 것이다. 그럼에도 워마드는 관심을 받기 위해 더 창의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 만들기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관심을 주지 않으면 된다.

    워마드 사라진다고 페미니즘 향한 비난 사라지나

    그러나 언론의 과도한 관심과 호들갑이 워마드를 키웠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한국 페미니즘은 워마드 때문에 망했다’거나 ‘페미니스트들이 더 빨리 워마드와 선을 긋지 않아서 이렇게 됐다’고 믿는 자들이다. 성차별적 사회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보다 ‘진짜’와 ‘가짜’ 페미니즘을 나누며 ‘땅따먹기’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워마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이제야 들었는지 하나같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이제까지 가만있다가 왜 이제 와서 선 긋기야?’ 

    미안하지만 몇 년째 꾸준히 같은 견해를 가지고 말하고 있던 페미니스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나 보다. 미투 때 ‘여가부와 여성 단체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고 외치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마 그들은 관심이 없었겠지만 2017년과 2018년 여성가족부 예산은 7640억 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18%다. 스스로의 무지와 무관심을 반성하기보다 일단 큰소리부터 내고 보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암담하게 다가온다. 뷔페에 처음 간 어린아이처럼 자기 입에 맞는 음식만을 찾는 것이 본인이라는 자각 정도는 했으면 좋겠으나 현실은 반대다.

    페미니즘이 워마드와 선 그으라고? 이미 우려 표했다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의 나체를 몰래 찍어 워마드에 유포한 뒤 증거를 인멸한 혐의를 받고 있는 여성 모델 안모(25) 씨가 5월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경찰서에서 나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부지방법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의 나체를 몰래 찍어 워마드에 유포한 뒤 증거를 인멸한 혐의를 받고 있는 여성 모델 안모(25) 씨가 5월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경찰서에서 나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부지방법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지난 8월 9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는 페미니즘이 ‘일반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으며, 한국의 여성운동이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떤 휴머니스트가 출연했다. 그는 여성들도 노력만 하면 성별 임금 격차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쌓아온 페미니즘의 역사를 무너뜨리는 발언이다. 만약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기 위해 출연했다면 성공적이었겠으나 말이다. 

    되묻고 싶다. 만약 워마드를 잘라낸다면, 페미니스트들이 워마드와 선 긋기에 성공한다면, 안티-페미니즘은 사라지는가? 워마드만 사라진다면 페미니즘을 향한 온갖 비난과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회사에서 잘리는 가혹한 사회도 사라지는가. 아닐 것이다. 성차별과 성폭력은 진보와 보수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여기저기 만연한데, 미투 ‘정치적 개입설’을 퍼뜨린 건 누구인가. ‘진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무고죄의 형량을 높여야 한다며 ‘꽃뱀설’을 더 적극적으로 확산시키고 성폭력을 가십거리로 소비한 게 누구인가. 팝콘 들고 한가하게 편 가르면서 페미니즘을 이용하는 것은 누구인가. 

    ‘진짜’ 페미니스트들이 워마드와 알아서 선을 잘 그으라고 요구하는 한가한 사회 속에서 선 긋기는 무용하다. ‘워마드는 페미니즘’이 맞는지에 대한 대답이 무의미한 것처럼 말이다. 그보다 워마드가 언제 어떻게 어떠한 이유로 생겼는지 살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문화평론가 손희정은 2015년을 전후로 한 페미니즘 붐을 설명하고, 기존 페미니즘 문화운동과 2015년에 일어난 운동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과 접속의 지점을 포착하기 위해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나는 이 단어가 과거와 연속적이면서도 단절돼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된 페미니즘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워마드가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 탄생했다는 점은 부정키 어렵다. 워마드의 전신이라고 하는 메갈리아는 메르스 사태 때 생겨난 사이트다. 메갈리아라는 단어는 메르스와 이갈리아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다. 이갈리아는 성역할을 뒤집어 성 계급 문제를 들춰낸 덕에 페미니즘 소설이라 평가받는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따온 말이다. 이갈리아는 그렇다 쳐도 메르스는 조금 뜬금없지 않으냐고 묻는 분들이 계실 테니 이를 설명한 보도(‘시사인’ 제410호)를 길잡이 삼아 잠깐 부연하겠다. 

    때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부 언론은 메르스 확진자와 같이 비행기를 탄 한국 여성 2명이 격리를 거부했다는 보도를 냈다. 그 후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에는 ‘역시 김치녀, 한국 여자들이 나라 망신 다 시킨다’라는 식의 비난이 쏟아졌다. 메르스라는 질병에 대한 공포와 여성혐오가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보였다. 잘못된 정보가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 이용됐다는 사실은 여성 유저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분노한 여성 유저들은 그동안 인터넷상에서 이뤄졌던 여성혐오 게시 글을 주체만 바꿔 미러링(거울처럼 똑같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보슬아치를 자슬아치로, 김치녀를 김치남으로 돌려주는 ‘격정적인’ 미러링 앞에서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진짜 여자가 저렇게 거친 욕을 할 리가 없다’며 진정성을 의심했다. ‘김치녀’에는 침묵하던 디시인사이드가 ‘김치남’을 두고 선택적 욕설 자제 요청을 하면서 메르스갤은 ‘메갈리아’라는 독립적 사이트로 자리를 옮겼다. ‘메갈리아’는 새로운 방식의 ‘여성운동’이냐, ‘남성혐오’이냐는 질문이 이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러링 방식이 사회적으로 숨어 있던 역지사지의 공감 능력을 깨워내 새로운 운동 방식이 되어 성차별적인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실은 그렇지 못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2016년 7월 30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미러링이 성공하려면 성차별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의 경험과 언어, 사회적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갑’인 남성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이미 가부장제 사회가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미러링은 여성들의 분노를 한곳에 모았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성공할 수도 성공할 필요도 없었다. 

    ‘메갈리아’는 ‘메갈리아’로 머물지 않았다. ‘게이’를 성적인 존재로만 바라보고 항문섹스라는 특정 성행위에만 집중해 성소수자를 혐오하기 위해 쓰이는 ‘똥꼬충’이라는 단어가 메갈리아에 퍼지게 된 것이다. 성소수자라도 ‘남성’이라면 안고 갈 수 없다는 의견과 성소수자 혐오와 페미니즘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의견이 갈렸다. ‘메갈리아’ 내부의 의견이 갈린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전과는 다른 운영자의 강경한 대응에 여러 가지 루머가 돌았다. 그 후 메갈리아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워마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모이게 됐다. 메갈리아는 멈춘 상태나 다름없는 사이트로 머물다 결국 2017년 폐쇄됐다. 

    장애 남성도 성소수자 남성도 같이 가지 않겠다면서 여성만을 위한 작은 섬을 꿈꾸며 떠난 워마드는 그렇게 뻗어나갔다. 장애 남성을 ‘병신’이라 부르고 트랜스젠더와 정신병자를 합성한 ‘젠신병자’와 같은 단어를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워마드의 소수자 혐오에 나를 포함한 페미니스트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쓰까페미’라는 조롱을 들으면서 말이다. 

    워마드는 페미니즘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이자 망했다는 증거로 쉽게 소환되곤 한다. 워마드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미 늦었다. 이제까지 뭐했냐. 선을 더 제대로 그으라’고 질책당한다. 이미 사라진 메갈리아가 페미니스트를 비난하기 위한 욕이 돼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워마드 또한 그렇다. 내 이름 ‘은하선’을 검색하면 워마드나 은하선이나 마찬가지라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현실은 나에게 워마드와의 선 긋기란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행동일 뿐임을 알려준다. 여전히 페미니즘을 알고 싶지 않지만 페미니즘은 사회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메갈리아와 워마드로만 납작하게 존재한다. 나의 존재도 그쯤 어딘가에서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나는 물론 잘 알고 있다.

    잇따르는 편파 수사 논란이 워마드에 또 힘 실어

    부산지방경찰청은 워마드 운영자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해 체포영장을 받아 추적에 나섰다. ‘음란물 유포’를 방조했다는 혐의다.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불법 촬영물이 ‘포르노’로 둔갑해 유통되는 ‘웹하드’에 대해 경찰이 그간 이렇게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선 적이 있는가. 일베 운영자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적이 있나. 한 웹하드 헤비 업로더는 최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불법 음란물로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으나 벌금은 5만 원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부산경찰청은 해운대 해변에 숨겨진 불법 촬영 등신대를 찾아 인증샷을 올려달라는 캠페인 홍보물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범죄를 희화화한다는 지적이 일자 중단키도 했다. 불법 촬영과 음란의 경계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뭉개버리는 꼴이다. 

    현실은 어떤가. 그 어떤 누구보다 워마드가 사라지길 바라는 나조차 마음 편히 워마드를 반대할 수 없게 만든다. 편파 수사를 하지 말라는 외침에 편파수사로 응답하는 사회야말로 나서서 워마드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닐까 의문이 생긴다. 길을 잃은 기분이다. 수많은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세상 속에서, ‘워마드와 같은’ 구호를 외쳐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이, 그렇게 ‘워마드와 같이’ 묶일지도 모르겠다는 현실이 몸서리치게 절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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