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비교분석

표류하는 김상곤 교육부

‘이해찬 세대’ 데자뷔?

  • 입력2018-09-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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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론화로 ‘정시’에 힘 실린 대입 개편

    • 文 정부 교육공약과 배치, 차질 불가피

    • 20년 전 이해찬 “특기·적성 살려 대학 간다”

    • 현실은 “문제 잘 풀고 특기 많고”

    김영란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7월 15일 오전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5층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시민참여단 1차 숙의 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김영란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7월 15일 오전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5층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시민참여단 1차 숙의 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 공약과 정반대 길로 갔다. 3개월간 예산 약 20억 원을 투입하고, 시민참여단 490명이 머리를 맞대 논의한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 권고안’ 얘기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전형, 즉 정시를 확대하되 구체적 비율은 정하지 않고 상대평가는 유지하는 권고안을 내놨다. 공이 다시 ‘김상곤 교육부’로 돌아갔다. 

    이번 권고안은 8월 3일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에서 발표한 공론화 결과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간 공론화위는 시민참여단을 구성해 학습 자료를 제공하고 숙의 토론을 거쳐 의견을 모아왔다. 당초 개편안 후보는 총 4개였다. 이 중 정시모집 비율을 45% 이상으로 확대하고 현행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하는 내용이 골자인 1안이 가장 많은 지지(52.5%)를 받았다. 현재 정시모집 비율은 23.8%(2019학년도 대입 기준)다. 

    얼마 전까지 교육부가 수능 절대평가와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고교학점제 도입, 고교체제 개편을 추진하던 걸 고려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어울릴 정도다. 정시 확대는 해당 제도들의 정착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힘 잃은 고교학점제·절대평가제

    애초 2022년 대학입시 개편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정시 확대냐 수시 확대냐’였다. 공론화위에서 집계한 설문조사에선 이 의제를 둘러싼 시민들의 고민과 혼란이 확연히 엿보인다. 

    공론화위에 따르면 시민참여단 82.7%는 2022학년도 대입에서 현행보다 정시 전형을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수능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53.7%)이 상대평가 유지 또는 확대(46.3%)보다 소폭 많았다. ‘당장은 정시’ ‘나중엔 수시’를 택한 것. 하지만 정시와 절대평가의 궁합은 상극이다. 정시를 늘리려면 변별력을 강화해야 한다. 90점과 99점이 똑같은 ‘1등급’으로 평가받는 절대평가에서는 수능 외의 지표를 따져보는 수시가 유효하다. 



    “한국인들에게 시험은 좌절의 대상이거나 희망의 대상이고, 오로지 머리와 종이와 연필만 들고 치르는 명쾌한 전쟁”(이경숙, ‘시험국민의 탄생’)이다. 심지어 조선 사회에서도 “자산이 많고 집안이 유명해도, 일차적으로는 과거시험을 통해 능력을 입증”(같은 책)해야 했다. 수시보다는 시험으로 우열을 가리는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보는 심리의 역사적 기원이랄까. 서울·경기권에서 고교 1~3학년생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한 30대 학원강사의 말이다. 

    “그간 만나본 대다수 학부모는 자녀가 수능시험(정시)을 못 보면 운이 없었다고 위안 삼거나 혹은 자녀의 성실함 부족을 탓했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수시전형에서 떨어지면 지원한 대학의 평가 시스템이 불공정하다거나, 수시 자체를 ‘금수저 전형’이라고 비판하더군요. 설문에서 정시를 늘리자는 결론이 나왔다는 건, 사실 저에게는 예견된 결과예요.” 

    문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인 고교학점제 도입에 차질이 빚어진 점도 정부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고교학점제는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기준 학점을 채우면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하지만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시가 줄고 수능 주요 과목도 절대평가로 바뀌어야 한다. 또 현행 학년·학기구조 역시 제도에 맞게 뜯어고쳐야 한다. 국·영·수 외에 다양한 신규 과목도 개발해야 한다. 앞선 학원강사는 “‘앞으로도 국·영·수가 핵심’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학원가에 퍼졌다. 고교학점제가 단기간에 정착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고교학점제 취지는 적성과 특기, 진로에 따라 특정 분야에 심화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 전문성을 향상시키겠다는 것. 방점은 특기·적성에 찍혀 있다. 수능 절대평가제 역시 암기식 교육 탈피를 목적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취지는 1983~1985년생 세대에게 묘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해당 세대가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가장 빈번하게 들은 말이 ‘특기·적성 교육 권장’과 ‘암기식 교육 탈피’였기 때문이다. 이를 추진한 인물이 집권여당 대표 후보로 나선 이해찬(66)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공부벌레보다 개성 갖춘 학생이 대학 잘 갈 것”

    2019학년도 수능을 105일 앞둔 8월 3일 충남 공주시 한일고에서 고3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이날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는 브리핑을 통해 시민참여단의 지지도 조사 결과 수능 선발인원 비중을 45%로 높이는 방안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뉴스1]

    2019학년도 수능을 105일 앞둔 8월 3일 충남 공주시 한일고에서 고3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이날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는 브리핑을 통해 시민참여단의 지지도 조사 결과 수능 선발인원 비중을 45%로 높이는 방안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뉴스1]

    이 의원은 김대중 정부의 첫 교육부 장관이었다. 38대 장관인 그의 재임 기간은 1998년 3월 3일부터 이듬해 5월 23일까지 1년 2개월 남짓. 1948~2013년까지 재임한 장관 953명의 평균 임기가 13.86개월이니(성시영, ‘장관의 재임기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한국행정학보’, 제49권 제3호) 딱 평균 수준만큼 장관 자리에 앉아 있었던 셈.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그의 재임기는 한국 교육사(史)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컸다. 

    입각 3주가 지난 1998년 3월 22일. 이해찬 당시 장관은 KBS ‘정책진단’(現 일요진단)에 나와 “올해 고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대입 시험을 치르는 2001학년도까지는 현행 제도의 틀을 유지하지만, 현재 중학교 3학년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2002학년도부터는 대학 측이 자율적으로 새 입시제도를 선택해 신입생을 선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10월 19일. 그는 “2002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특기·재능·특별활동 등으로 뽑는 무시험전형이 대폭 확대될 것”이라고 공식발표했다. 암기 위주 교육을 탈피하고 흥미와 적성을 살려 인재를 키우겠다는 담대한 청사진이었다. 고교학점제와 절대평가제가 아른거리는 대목. 당시 한 일간지는 다음과 같이 내다봤다. 물론 미래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시험성적만 좋은 공부벌레보다는 개성과 특기·창의력이 있는 학생들의 대학 진학이 지금보다 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암기위주 초중등 교육도 학생의 창의력과 개성을 살리는 쪽으로 정상화되고 성적 올리기 경쟁에서 낙오한 학생들의 비행도 상당히 해소되며 과외비 등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도 줄어들 전망이다.”

    “한 가지만 잘해서 대학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나선 이해찬 의원이 8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의원은 1998~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당시 그가 추진한 입시 개혁 때문에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생겼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나선 이해찬 의원이 8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의원은 1998~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당시 그가 추진한 입시 개혁 때문에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생겼다. [뉴스1]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게 될 당시 중3(1983년생)은 ‘이해찬 세대’로 불렸다.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의 대상이 될 현재의 중3이 ‘김상곤 세대’라고 불리는 것처럼 말이다. 파급 효과가 컸던 탓에 1984·1985년생도 각각 ‘이해찬 2세대’와 ‘이해찬 3세대’로 불렸다. 기자 역시 ‘이해찬 3세대’의 일원이다. 당시 교육부는 사설 입시기관 모의고사도 금지했다.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라는 말도 돌았다. 이해찬 의원 본인은 그 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정확하게 그렇게 표현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취지까지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해찬 세대’가 보기에 이해찬 교육부와 김상곤 교육부는 무척 닮았다. ‘이해찬 1세대’이자 지금은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홍모(35) 씨는 “‘각자 좋아하는 걸 통해 학교에서도 성취감을 키워주겠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찬 세대와 김상곤 세대가 직면한 환경이 매우 비슷한 것 같다”면서 “교육정책의 초점을 다양성에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떤 다양성’이냐다. 20년 전 학교 현장은 ‘여러 특기를 갖춘 공부벌레’, 달리 말하면 문제도 잘 풀고 교과목 외에 ‘다양한’ 특기까지 갖춘 학생을 요구했다. 김상곤 세대가 직면한 현실도 딱 이와 같다. 교육정책이 우왕좌왕하니 ‘교과·비교과 다 잘하는 게 유일한 안전장치’(서울시내 입시학원 강사)라는 말이 나와서다.

    “고교 서열화 해소 원하지만 다른 정책은 반대”

    ‘이해찬 2세대’이자 현재 공기업에 재직 중인 장모(여·34) 씨는 “한 가지만 잘해서 대학에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여러 가지를 다 잘해야 했다. 시험도 잘 봐야 했고,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어야 했다. 특기·적성을 살린다면서 발표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는데, 그러니 파워포인트(PPT)까지 잘해야 했다. ‘만들어진 특기·적성’이었다”고 회고했다. 장씨는 재수 끝에 정시로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했다. 

    ‘이해찬 3세대’이고 지금은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김모(여·33)씨도 “고등학교 1~2학년 때 ‘야간자율학습 폐지’ 붐이 일었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하교했다. 그러면 집 가서 저녁 먹고 학원엘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교육비가 늘어난 것”이라면서 “고3이 되자 학교에서 급식 먹고 ‘야자’ 하는 방식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세대인 기자 역시 고3 시절 똑같은 일과를 보냈다. 

    장씨는 진보정당 지지자다. 하지만 그는 “정시 확대가 답”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다. 김씨는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고교 서열화 해소’를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그는 “수능을 어떻게 절대평가하나? 고교학점제를 하면 결국 대입에 유리한 과목에만 수강 신청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 정시 위주의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고 잘라 말했다. 애초 취지와 현장이 맞닥뜨린 결과가 어긋나버린 20년 전의 ‘교육개혁’이 온몸에 아로새겨진 것이다. 30대 중반이 된 ‘이해찬 세대’가 ‘김상곤 교육부’에 주는 교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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