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20대 남학생 ‘e-스포츠’ 열풍

월드컵보다 롤드컵 세계 ‘온라인 게임 문화’ 선도

  • 입력2018-09-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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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스포츠 선수들에 열광

    • “‘리그 오브 레전드’ 해야 인간관계 원만”

    • “선택 아닌 필수…일상 문화로 정착 중”

    서울의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젊은이들이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서울의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젊은이들이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고려대 재학생 이명오(21) 씨는 2017년 11월 4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는 이날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열리는 결승전 관람을 위해서였다. 그는 이날 관람을 위해 긴 준비를 했다. 티케팅부터 전쟁이었다. 중국에서 열리는 한국팀 간의 경기라 예매가 쉬울 거라 예상했지만 4만 석 좌석이 1분도 안 돼 매진됐다. 

    아슬아슬하게 표를 구입한 뒤엔 학교 수업이 문제였다. 결국 주말을 이용해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베이징에 도착해 경기를 본 뒤 다음 날 아침에 서울로 돌아오는 1박 2일 여행 일정을 택했다. 이렇게 이씨가 공을 들여 본 경기는 무엇일까? 야구? 축구? 아니다.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다.

    ‘열풍의 진원지’ 한국

    요즘 전 세계 20대 중 많은 이는 e-스포츠에 푹 빠져 있다. 1990~200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게 e-스포츠는 구기종목 스포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열풍의 진원지 중 한 곳이 한국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페이커 이상혁’ ‘매드라이프 홍민기’ 등 슈퍼스타를 배출했다. 

    이들의 국제적 인기는 K-POP 아이돌 가수 못지않다. 한국 선수 10명이 출전한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결승전을 본 전 세계 온라인 시청자는 4500만에 달한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경기 시청자보다 훨씬 많다. 

    한국에서 e-스포츠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큼 성장한 배경에는 20대 남성들 사이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게임 문화’가 있다. 이제 이들에게 게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서울 모 대학 재학생 김재웅(22) 씨는 “친구들이 공강 시간(강의와 강의 사이 빈 시간)엔 주로 PC방에 가서 온라인 게임을 함께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과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게임을 해야 한다는 말. 김씨는 “나도 친구들과 대화를 더 재미있게 하려고 게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을 일상적으로 하는 문화는 이제 여자 대학생들에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고려대 재학생 이모(24) 씨는 “프로야구가 처음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요즘엔 여성 관중이 많다. 온라인 게임도 비슷한 양상”이라고 말한다. 

    10대도 예외가 아니다. 중학생 임모(13) 군은 “요즘 내 또래의 주된 관심사는 야구나 축구보다 게임”이라며 “월드컵은 안 봐도 롤드컵(리그 오브 레전드의 월드 시리즈)은 본다”고 했다. 

    우선, 온라인 게임은 ‘같이 한다’는 점이 20대에게 매력적이라고 한다. 8년째 인기 게임 순위 1~2위를 유지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는 5명이 한 팀을 이뤄 진행한다. 또 다른 인기 게임인 ‘오버 워치’는 6명이, ‘배틀 그라운드’는 1~4인이 참여한다. 게임을 공통의 관심사로 두고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을 하는 서울시내 대학생 52명에게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82%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 게임을 한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주로 PC방에서 게임을 하는데, 요즘 들어 PC방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대학생 김주성(24 )씨는 “과거엔 PC방을 부정적으로 인식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문화공간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PC방을 담배 연기 자욱한 폐인들의 공간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죽, 초밥, 육개장 같은 그럴듯한 음식을 파는 PC토랑(PC방과 레스토랑의 합성어)이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광교의 L PC방은 빔 프로젝트로 고전영화를 상영한다. 시간당 1500원 이용료에 아이스티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공짜다. 커피 한 잔에 4000~5000원인 프랜차이즈 카페에 비해 경제적이다. 

    온라인 게임은 ‘같이 본다’는 점에서도 20대에게 흥미를 제공한다고 한다. ‘SKT T1’ ‘아프리카 프릭스’ 같은 프로 게임 팀의 인기는 웬만한 프로야구 구단 못지않다. 

    얼마 전 서울 강남 한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2018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여름 시즌이 열렸다. 압도적 크기의 스크린, 화려한 조명, 분주한 스태프들. 회사와 학원이 즐비한 바깥의 삭막한 풍경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 경기는 팬들의 우렁찬 응원과 함께 시작됐다. 관객들은 전면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관람하면서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 게임 팀 이름을 크게 외쳤다. 한 선수가 선취점을 따자 큰 함성이 스타디움을 가득 메웠다. 관객 대부분은 자신이 직접 게임을 하는 것처럼 흥분했다.

    군대에서도 인기

    이날 처음 직관(직접 관람)을 온 대학생 이은구(24) 씨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작은 모니터에서만 보던 게임 화면을 큰 스크린을 통해서 보니 훨씬 생동감 있다. “자주 이곳을 찾고 싶다”고 했다. 이날 경기는 전 세계에 실시간 중계됐다. 경기 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날의 게임 전략에 대한 토론과 선수들에 대한 평가로 넘쳐났다. 온라인 게임 시청이 20대에겐 또 다른 일상 문화가 되고 있는 것. 

    게임회사 ‘넥슨’에서 일하는 손수현(28) 씨는 “중계 가능 여부는 게임 흥행의 중요한 지표”라며 “과거와 달리 개발 단계부터 게임 내 여러 시점을 만들어 중계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말했다. 

    게임 실력은 요즘 20대에겐 하나의 ‘스펙’이 됐다. 과거 군대에서 축구를 잘하면 대접받던 것과 마찬가지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상위 0.7% 이용자인 대학생 김창현(24) 씨는 “입대 후 선임들에게 가장 먼저 들은 질문이 게임 실력에 관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이 휴가 나가고 싶은 1순위’였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랭킹 1위를 달성한 이윤재(24) 씨가 서울 모 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을 때 과 전체가 들썩였다. 이 학과 이모(24) 씨는 ”같이 게임을 하면 너무 잘해서 신비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e-스포츠 학원도 생겼다. 서울 구로구 ‘G 아카데미’는 게임 프로그램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기존 게임 학원들과 달리 순전히 게임을 잘하는 법을 전수한다. 프로지망생 반과 취미 반으로 나눠 이기는 전략을 지도한다. 이승훈 원장은 “영어를 잘하고 싶으면 영어 학원을 다녀야 하고 피아노를 잘치고 싶으면 피아노 학원을 다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발전 가능성 무궁무진”

    20대의 게임 문화 열풍은 반짝 인기로 그칠 것 같지 않다. 얼마 전 대기업에서 게임 회사로 이직한 손모 씨는 “게임 산업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는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e-스포츠에 주목한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전 세계 수백만 젊은이가 참여하는 빠르게 성장하는 종목”이라고 했다. 기성세대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이승훈 원장은 “30, 40대 부모는 게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들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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