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朴정부 세제개편 방향 옳다 野 ‘세금폭탄’ 공세는 잘못”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 구해우 |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5-10-20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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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를 사회정책 우선순위에 둬야
    • 국력총화 · 국가안보 패러다임 재고할 때
    • 균형외교? 누구의 교두보도 되지 말아야
    • 참여하는 시민 돕는 ‘운동장’ 노릇 하겠다
    “朴정부 세제개편 방향 옳다 野 ‘세금폭탄’ 공세는 잘못”
    이태호(48)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민운동 1세대다. 1994년 창립된 참여연대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한국의 비정부기구(NGO)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결과물이다. 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2004년부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 시민사회 파트너로도 활약한다.

    이 처장은 서울대 서양사학과 86학번으로 1989년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지금껏 시민운동 외길을 걸었다. 참여연대에서 조직부장, 정책실장, 시민감시국장,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등을 지냈다. 10월 12일 그를 만났다.

    “정체 혹은 후퇴한 민주주의”

    ▼ 시민운동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시민운동가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할 문제가 뭐라고 봅니까.



    “사회 양극화가 아닐까요. 신(新)빈곤층이 늘어납니다. 고령화도 진행되는데 복지 시스템은 부실하고요. 적자생존 구조예요.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한 것도 큰 문제라고 보고요. 이런 문제들 탓에 정치적 민주화가 정체되거나 조금씩 후퇴합니다.”

    ▼ 이 처장은 1980년대 민주화 세대라고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30년, 한 세대라고 할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2017년 체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제가 86학번입니다. 6월 항쟁에 참여하면서 학생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벌써 세대가 하나 바뀌었네요. 이제 생태, 생명, 평화, 복지 같은 가치와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시대의 화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환경문제는 전 지구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됐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복지 문제가 절박합니다. 2012년 대선 때 각 정당이 앞다퉈 복지, 노동과 관련한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이전에는 야당조차 노동 유연화 같은 것을 강조했죠. 이 같은 변화를 보면 복지와 노동이 큰 화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2017년 체제 준비라는 관점에서 보면 양극화와 통일이 가장 큰 담론인 듯합니다. 양극화를 해결하라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것과 관련해 ‘성장동력’ 얘기를 하고는 합니다. 대다수 나라에서 복지 시스템을 도입한 시기는 우리보다 경제적 부(富)가 훨씬 작을 때였습니다. 복지 확대는 사회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문제라고 봅니다.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요. 그러려면 가치의 전환이 전제돼야 합니다. 복지를 늘리지 못하는 이런저런 현실적 이유를 들려고 하면 수없이 많죠. 어느 인구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출산율대로라면 100년 후 우리나라 인구가 300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3000만 명이 아니라 300만 명. 이대로 가면 안 됩니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가치의 우선순위를 전환해야 합니다.”

    보편복지와 보편증세

    ▼ 유승민 의원이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 비판한 후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일이 있습니다. 이 사안이 복지 문제 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는데, 정치권과 시민사회 모두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질문에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에서 쫓겨난 것은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아닌가요? 원내대표가 쫓겨나는 과정에서 권력이 분립돼 있지 않다는 게 드러났죠.

    질문의 증세와 관련해, 한국 사회엔 ‘신뢰 적자’의 문제가 있습니다. 국민이 정부의 공적 기능을 불신합니다. 과거에 세금을 걷거나 저축을 장려해 재벌이나 특권층에게 우선적으로 배분하는 특혜 구조가 있었기에 ‘세금을 내도 혜택을 받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불신이 생겼습니다. 공정하게 세금을 걷지 않는다는 불신도 크고요. 공정하게 걷히더라도 챙기는 놈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하경제를 없앤다든지, 조세 형평성을 높이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을 보면 한국인은 나쁜 노동조건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합니다. 복지도 개별 기업에 맡겨놓았습니다. 국가가 책임지는 게 없다보니 국가가 복지를 잘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신뢰가 부족합니다.

    보편적 증세가 복지 확대의 기본적인 방향이지만, 대기업이 부동산으로 지대(地代)를 추구하거나 주식시장에서 부를 늘리는 것을 생각하면 소득이 발생하는 곳에서 세금이 다 걷히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세금을 올바르게 걷는 것을 전제로 소득세를 늘리자, 부가가치세율을 높이자 같은 얘기를 해야 합니다.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점은, 특권층에게서 세금을 제대로 걷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다는 겁니다. 보편적 복지에는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에서 쫓겨난 것은 국회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더 중요한 부분일 수 있겠습니다. 그의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라는 발언은 다양한 차원에서 평가되겠으나 보수파 국회의원이 진보적 경제이론에 기초한 복지정책을 제기했다는 게 주목됩니다. 거칠게 설명해, 보수 이론에 기초한 복지정책은 기본적으로 증세를 최대한 억제해서 시장경제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늘리고, 세원을 확대해 필요한 복지를 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진보 이론에 기초한 정책은 복지를 확대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진보진영에서는 증세와 관련해 의견을 거의 내놓지 않습니다.

    “유 의원이 쫓겨날 시점엔 그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어요. 그가 증세하자고 해서 쫓겨났다고 볼 수도 없고요. 유 의원 개인의 성향은 모르겠으나 당시 여당에선 ‘돈이 없으니 복지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어요. 지난해 말 복지 논쟁의 중심이 ‘돈 없다, 줄여야 한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오히려 기존의 복지 제도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집중했죠. 유 의원의 제안이 진지한 것이었다면 시민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복지 조세를 얘기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진보진영이나 복지 관련 시민사회에서 걱정하는 것은 의료민영화, 지방자치단체 복지 재원 감소 같은 현실적 사안입니다. 복지 조세와 관련해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여야가 합심해 논의해야 해요. 복지는 이념적 이슈가 아닙니다.”

    ▼ 정책 이슈죠.

    “맞아요. 여야가 연합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 박근혜 정부가 임기 첫해인 2013년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가 얻어맞았습니다. 총 급여 4000만 원에서 7000만 원 사이에 있는 사람이 월 1만3000원가량 세금을 더 내는 것인데, 복지를 강조하는 야당에서….

    “세금폭탄.”

    ▼ 그렇습니다. ‘세금폭탄’이라고 몰아세웠죠.

    “야당이 매우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도, 개인적인 의견도 세액공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봅니다.”

    복지 마인드 vs 국방 마인드

    ▼ 지난해 말에는 세액공제 제도와 관련해 ‘연말정산 민란’이라는 표현도 나왔죠.

    “정부가 졸속으로 진행해 역공을 맞은 건데,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조세감면 제도를 정리하고 누진율을 높이려면 세액공제를 줄이는 게 나쁜 방법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가 방향을 잘 잡았다고 봅니다. 야당이 ‘세금폭탄’이라면서 조세저항 담론을 제시한 것은 매우 진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 국방비와 복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국방비가 많은 건 사실입니다. 줄여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국방비 액수 자체가 그것을 삭감해 복지를 늘릴 만큼 크지 않습니다. 복지 마인드와 국방 마인드는 달라요. 국가를 추상적인 실체로 보고 안보를 중시하는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반면 국가의 구성원을 안보의 중심으로 놓고 안전과 복지를 중요시하는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국력총화, 수출증대, 국가안보가 같은 패러다임에 속합니다. 국가를 추상적 실체로 놓고 국가가 양적으로 성장하거나 전체적으로 보호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약간은 전체주의적 사고죠. 다른 신자유주의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생각입니다. 구성원의 복지나 안전을 중심에 두는 패러다임과 국가의 안보를 강조하는 패러다임을 두고 어느 것이 바람직한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국방을 중시하는 것은 북한의 위협 때문인데,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해 위협을 해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협력을 통해 경제의 성장동력도 찾을 수 있고요. 방어에 충분한 전력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군사당국은 북한이 함정이 몇 척이고 탱크가 몇 대인데 한국군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미국 자료를 보면 북한의 육군 전력은 미군의 중무장 4~5개 사단 전력 수준에 불과합니다. 북한 특수전 전력이 자주 거론되는데, 그게 사실 경보병부대거든요. 기갑부대보다 약한 전력이에요. 아마도 특수전 전력 정도가 실전에 투입 가능한 자원일 겁니다. 나머지는 농사 짓고, 건물 짓고, 기업 운영해요. 북한군은 유지비용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생산형 군대거든요.”

    ▼ 북한이 실전에 100%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은 5만 명 정도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15만 명가량으로 생각합니다만…. 미국 정보당국 보고서는 중무장 4~5개 사단 정도로 보더군요.”

    “朴정부 세제개편 방향 옳다 野 ‘세금폭탄’ 공세는 잘못”


    “균형외교 노력 엿보여”

    ▼ 통일 문제로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통일대박론’을 제기하는 등 통일 이슈를 주도합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보수 정부가 통일 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박근혜 정부 2년여 동안 지지율을 보면 강공을 할 때보다 북한과 대화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지지율이 높이 올라갔습니다. 이석기 씨 사건을 터뜨리자 지지율이 떨어지더군요. 북한 이슈를 풀어냈을 때는 지지율이 안정적으로 상승했고요.

    경제 사정도 나쁘니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려면 남북관계에 기여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면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냉소적인데요. 냉소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보다 균형적인 외교 행보를 취한다는 평가가 반영돼 지지율이 오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이라든지, 통일에 대해 이니셔티브를 쥐려는 태도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근혜 정부 통일외교정책의 핵심적 특징은 9월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것으로 상징되는 친중(親中)정책이라고 평가합니다. 중국의 지렛대 구실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킴으로써 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봅니다.

    “친중정책까지는 몰라도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가 엿보입니다. 중국이 지렛대 구실을 한다? 그런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어요. 북한과 중국 관계는 한국과 미국 관계보다는 조금 더 먼 것 같습니다. 서로 큰 영향을 미치기엔 한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봐요.

    다만 북한 내부에 문제가 생겼을 때 미국이나 남한이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남한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미국이 영향을 미칠지언정 북한이나 중국이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과 비슷하죠. 예컨대 광주 항쟁 때 우리는 미국이 와서 도와줄 것을 기대했죠. 북한이나 중국이 와서 도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나요? 어쨌든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두는 것이 한반도의 여러 가지 상황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 나아가 중국을 지렛대로 통일을 이뤄낸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통일은 장기적으로 올 것 같습니다. 단기적으로 통일을 이뤄낸다는 생각은 세상에 없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 같아요. 중국을 지렛대 삼더라도 그건 장기적인 과정이겠지요. 우리가 중국과 깊이 상의하는 상대가 되려면 중국에 줘야 할 것이 훨씬 많을 겁니다. 한미동맹이 존재하는 한 전략적 파트너가 되기는 어렵죠. 중국을 지렛대로 단기적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각각의 고리마다 전제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朴정부 세제개편 방향 옳다 野 ‘세금폭탄’ 공세는 잘못”

    이태호(오른쪽)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박근혜 정부가 통일에 대해 이니셔티브를 쥐려는 태도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누구의 교두보도 되지 말아야”

    ▼ 북한은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핵개발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진행하는 ‘병진노선’을 내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점진적이나마 시장경제적 요소를 확대하는 등의 개혁조치를 통해 부분적인 경제 개선에 나섰습니다. 큰 흐름에서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양상인데, 북한의 개혁·개방을 중국이 주도하면 베이징의 남북한 분할관리 전략에 따라 분단 고착화 가능성이 커집니다. 한국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도해야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말 어려운 주제인데요. 분단 고착화냐, 통일이냐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민족주의적으로 흘러가서는 통일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중국이 북한을 먹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에 공개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내면 긴장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중국과 충분히 교류하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이른바 시장화가 이뤄지거나 경제적으로 일정한 수준까지 발전해 남북 간 격차가 줄어들면 삼투압은 남쪽으로 흐를 것이라고 믿는 게 좋습니다. 남과 북은 언어도 같지 않습니까.

    북한이 중국이라는 외세에 장악된다는 식이라면, 남한의 인프라는 미국에 잠식된 겁니까. 그런 얘기하면 비웃잖아요. 인프라가 잠식되든 뭐든 우리 식의 발전을 했고, 북한도 중국 인프라를 쓰든, 러시아 인프라를 쓰든 성장을 하면 삼투압은 남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에게 배타적이거나 위협이 돼서는 통일 한반도를 이뤄낼 수 없어요. 통일 한반도가 주변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누구의 교두보도 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배타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줘야 합니다. 중국이 북한을 먹는 것,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도 비무장지대(DMZ)에서 뭔가를 하든, 개성공단이든 금강산이든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돕겠다, 이런 식으로 가면 됩니다.”

    ▼ 북한 인권 문제는 보수·진보 진영이 대립하는 대표적 사안입니다. 보수진영은 북한 인권 문제를 과도하게 정치적 인권 중심으로 부각하는 면이 있고, 진보진영은 생존권적 인권과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접근하다보니 서로 충돌합니다. 보수·진보진영이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조정한다면 해법을 마련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념의 대립처럼 돼버린 것은 한반도의 특수성 탓인 것 같아요. 북한 인권 상황에 영향을 미치려면 DMZ가 좁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관여(engagement)의 폭이 넓어져야 합니다. 독일만 하더라도 독일 전체 기독교의 본부가 동독 라이프치히에 있었습니다. 현재의 남북관계를 보면 상상이 안 되는 일이죠. 북한에 대해,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은 평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돕는 일을 왜 북·중 국경에 가서 해야 합니까. 넘어온 탈북자 돕는 것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DMZ가 좁아져야 하는데, 북한이 쳐들어올까봐 좁히지 못합니다. 요컨대 인권과 평화가 함께 가야 한다는 얘기예요.

    서로 인권 문제 삼은 南北

    왜 북한 인권을 얘기하느냐는 사람도 있으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건 새로운 이슈가 아닙니다. 분단 이래 남북은 서로의 인권을 문제 삼아왔습니다. 심지어 북한은 남한의 인권을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고요. 당시 북한이 볼 때 남한은 ‘불량국가’인 데다, 재판도 없이 국가가 시민을 학살하고, 내전이 일어난 상태였겠죠. 잠시 들어가 서울만 점령하면 전국에서 인민위원회가 들고 일어나 반길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동족상잔이 일어난 것 아닙니까. 인권을 가지고 서로를 비난하는 것은 한반도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저도 얘기해왔지만, 북한 인권을 얘기할 수 있죠. 다만 슬로건으로 떠든 게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는 되돌아봐야 합니다. DMZ가 북한 인권 개선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봅니다.”

    정치에 뛰어든 시민운동가

    ▼ 참여연대 대표를 지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비롯해 상당수 진보진영 인사가 이 판결에 불복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진보세력이 진영논리에 갇혀 사법부 결정조차 무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글쎄요. 한명숙 전 총리는 대표가 아니었습니다. 대표로 세우려다 못 모신 분이에요. 참여연대는 그 일에 대해 의견이 없습니다.”

    ▼ 공동대표 아니었나요.

    “대표 내정자였지, 공동대표를 맡지 않았습니다. 총회에 보고한 것은 사실이에요. 한국에 오기 전 민주당 의원직을 수락해 대표를 못 맡고 바로 국회로 갔습니다. 내정자였지만 대표인 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과 관련해 저희가 할 얘기는 없습니다. 또한 그 사건에 대해 모니터링을 안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비판하는 논평 같은 것을 낸 적이 없습니다. 논평이나 의견을 내지 않은 것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뜻이죠.”

    ▼ 진보, 보수 공히 상대의 작은 잘못에는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하고 자신들의 잘못은 대충 감쌉니다. 최근 언론인 출신 우파 논객 조갑제 씨가 “박원순 시장 아들 박주신 병역비리 의혹은 근거가 없다. 박주신 병역비리 의혹이 아니라, 양승오 허위사실 유포 사건”이라고 말했다가 보수진영 일부 사람들에게서 십자포화를 맞았습니다. 사실 혹은 상식에 근거해 발언했다가 공격받는 건데요. 이런 현실을 어떻게 봅니까.

    “조갑제 씨가 사실에 기초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씨의 발언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비리는 왜 안 다루냐고 참여연대를 공격하는데, 우리는 개별 정치인의 병역비리를 정치적 이슈로 다룬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참여연대가 과거에 정치인의 병역비리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회창 씨 아들 병역비리 의혹과 관련해 김대업 씨가 찾아왔었는데, 증거가 불충분해 우리는 다루지 않겠다고 돌려보냈습니다. 참여연대가 병역비리를 다룬 것은 김대업 씨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게 전부입니다. 김대업 씨가 유죄 판결 받을 때 제가 검찰 측 증인이었습니다.”

    “시민단체는 ‘촉진자’”

    ▼ 질문의 취지는, 보수·진보 세력이 사실에 근거해 상대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2년 총선 등을 통해 참여연대의 핵심 간부들이 국회에 참여해 활동하는데, 정당정치와 시민운동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참여연대 임원 출신 중 정치하는 분은 이웃한 경실련보다 훨씬 적습니다. 공교롭게도 사무처장들이…정치 쪽으로 갔더군요. 참여연대가 사무처장 중심이다보니 주목을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정치인은 여러 분야에서 충원돼야 하고 그래야 정치적 신뢰가 높아진다고 봅니다. 시민단체 출신이라고 해서 정치를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정당에 들어간 사람과 현장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의 관계는 깨끗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한 예로 박원순 시장의 임기가 시작된 후 그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개별 시민운동가가 정치로 가는 것은 선택의 문제로 그가 국회에 가서 양질의 정치를 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하겠죠. 결과물로 심판받을 문제라고 봅니다. 시민단체가 그 사람들을 도와줄 이유는 전혀 없고요.

    정치권으로 간 분들은 1990년대 시민운동 태동기에 역사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시민운동의 한 세대죠. 앞으로 시민운동은 당시처럼 특정 인물 중심이 아닙니다. 제가 참여연대 사무처장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1990년대 상근직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해 지금껏 하는 사람 중 제가 연배가 가장 높아요. 앞으로 시민운동 하는 사람이 유명세를 업고 정치권에 갈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 끝으로 시민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그걸 어떻게 한마디로….”

    ▼ 책 한 권으로도 쓸 수 있겠습니다만.

    “한국 시민운동은 민주화운동의 결과물로서 등장했습니다. 최소한의 제도를 확보했는데, 시민이 주체를 형성하거나 직접 행동하기에는 이른 시기에 민주화의 결실인 제도를 풍부하게 한 게 1990년대, 2000년대의 시민운동이었습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얘기도 있었으나 시민이 당장 참여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전형이나 사례를 만드는 구실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시민단체의 역할은 촉진자라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시민단체는 참여하는 시민의 운동장 구실을 할 겁니다. 플레이어를 돕는 역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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