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이의 성행위를 지켜보는 ‘관전(관음)’과 자신의 성행위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노출’을 사람들은 흔히 ‘변태’라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의 ‘성적 취향’일 뿐이라는 옹호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관전’과 ‘노출’ 성향은 누구에게나 내재한다는 거다. 관전·노출 테마클럽에서 그 실체를 관찰했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종업원이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대학생처럼 어려 보이는데 “졸업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다시 초인종을 눌러야 열리는 문이 나왔다. 클럽예시카 입장 절차는 이렇게 복잡했다.
자주성, 자유성, 자기결정권
처음 취재 제안을 했을 때 예시카는 거절했다. 신문, 잡지, 방송은 물론 독립영화 감독까지 취재 요청이 이어졌지만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곳이 알려지는 걸 회원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그저 조용히 그들만의 세계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리라.
▼ 클럽예시카는 어떤 곳인가.
“회원 간의 암묵적 동의 아래 커플이 안심하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지켜볼 수 있는 곳이다.”
▼ 성행위도 이뤄지나.
“자유다. 자기 성의 자주성, 자유성, 자기결정권을 침해받지 않고, 타인 성의 자주성, 자유성,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 아무나 입장할 수 있나.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된다. 회원 가입 신청을 하고, 아이디를 문자로 보내줘야 입장할 수 있다.”
▼ 회원은 얼마나 되나.
“정확히 세어본 적은 없다. 새로 만든 인터넷 사이트는 관리를 잘 안 해 몇천 명 수준이고, 카톡 회원은 1만 명이 넘으니까 자꾸 랙이 걸려 그 이하로 관리한다. 전화번호로 관리하는 회원은 그보다 훨씬 많다. 알음알음 연락해온 사람들이다.”
▼ 입장 정원 제한이 있나.
“커플을 우선해서 받는다. 싱글은 하루 한두 명, 많아야 4명까지 받는다. 싱글이 너무 많으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생긴다. 여긴 커플 중심이다.”
▼ 비용은.
“싱글은 25만 원부터, 커플은 17만 원부터다. 커플은 사전 예약하면 6만 원 할인돼 실제로는 11만 원부터다. 술 종류에 따라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
“술도 마시고 성욕도 풀고”
클럽 입구 왼쪽으로 화장실이 있다. 간단히 씻을 수 있는 시설도 있다. 남자 소변기 위에 여성 속옷 여러 개가 예쁘게 걸려 있다. “여성 손님이 벗어놓은 걸 인테리어 삼아 걸어놓은 것”이란다. 처음엔 걸어두면 가져가는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러는 손님도 없단다.
클럽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실내가 여느 카페나 술집보다 어두웠다. 그렇다고 아주 어두운 건 아니다. 사물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만, 디테일하게 보이지는 않는 정도.
긴 바 테이블이 있고, 그 앞에 의자가 여러 개 놓였다. 바 뒤로 홀이 보인다. 테이블과 가죽소파들이 사각형 모양으로 여러 개 놓여 있다. 커다란 베드서퍼도 눈에 띈다. 바와 홀 사이에 커튼이 있지만 공간을 구분하는 기능을 할 뿐, 안이 다 들여다보였다. 룸은 전체적으로 탁 트였다. 테이블마다 각티슈와 물티슈가 놓여 있다.
바 끝에서 한 여성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종업원이 그 여성 옆자리를 권했다. 40대 후반쯤 돼보였다. 의상이며 스타일이 웬만한 지위의 커리어우먼 느낌이었다. 두리번거리는 내게 “처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처음엔 문화충격이 클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이곳 출입한 지 6개월쯤 됐다”며 자신을 ‘미세스 김’이라고 소개했다.
“돌싱이다. 남자친구가 있을 땐 이곳을 찾지 않지만, 혼자일 땐 한두 주에 한 번씩 온다. 여자 혼자 편하게 갈 수 있는 술집이 드물지 않나. 여긴 주위 신경 안 쓰고 술 마실 수 있어 좋고, 또 때론 성욕을 풀 수도 있어 좋다(웃음). 이렇게 술 먹고 이야기만 하다 갈 때도 있고, 서로 마음이 맞으면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커플이 이 룸에 들어가면 몸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올 때마다 다르다. 지금은 좀 이른 시간이다.”
종업원이 “연휴 땐 손님이 적다. 지난 추석 연휴 때도 거의 없었다. 지난주엔 제법 있었는데, 이번 주는 연휴라 예약이 거의 없다”고 거들었다. 주초엔 사람이 적고, 목·금·토요일에 많다고 한다. 일요일은 영업을 안 한다.
홀 안에서 여성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투명한 커튼 너머로 남자의 상체가 보였다.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커플 한 쌍이 안에 있다고 했다. 좀 자세히 보려고 몸을 일으키자 김씨가 “솔로는 홀 안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사랑을 나누는 광경을 서서 구경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이곳만의 규칙과 예의
“홀은 커플만 입장이 가능하다. 솔로는 바에 앉아 관전만 할 수 있는 게 이곳의 룰이다. 커플이 초대했을 때만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솔로끼리 마음이 맞으면 파트너가 돼 들어갈 수 있다. (홀 옆에 있는 룸을 가리키며) 저 룸에 들어가면 다른 손님들이 관전은 물론, 터치도 가능하다. 물론 당사자가 싫다고 하면 안 되지만 그 방에 들어가는 자체가 몸을 공유하겠다는 암묵적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실내를 둘러봤다. 바 뒤로 가발이며 ‘오페라의 유령’에서 봄직한 가면들이 수십 개 진열돼 있었다. 콘돔이 담긴 바구니도 보였다. 바이브레이터 등 자위기구와 수갑, 채찍, 밧줄 등 SM 용품들도 종류대로 놓여 있다. 원하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행거엔 여자 옷들이 걸려 있다. 다양한 디자인의 슬립, 망사 속옷, 코스프레 의상 등 과감한 의상도 눈에 띈다. 자리로 돌아오며 김씨에게 “저 옷 입으면 예쁘겠다”고 농을 건네자 “핼러윈데이 파티 때 입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웃었다.
홀에서 사랑을 나누던 남자가 화장실로 가는 게 보였다. 팬티 바람이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잠시 후 여자가 슬립 차림으로 지나갔다. 둘 다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가끔 다 벗고 돌아다니는 남자도 있다. 중년이라 몸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여기는 다 자유다. 하고 싶은 것, 해볼 수 있는 걸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 물론 상대가 받아준다면.”
출입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이 가게 주인 예시카다. 단아한 용모에 마른 체격으로 40대 중반쯤 돼 보였다. 목소리가 성우처럼 특색이 있으면서도 편안했다. 본인은 “날카롭고 사납게 보여 고민”이라고 했지만 미소가 상대방을 편하게 만드는 인상이었다. 대가 세다는 건 느껴졌다. 하긴, 이런 장사는 웬만한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이다. 아무래도 뒤를 봐주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종업원과 단둘이 운영한다고 했다. “위험하지 않으냐”고 묻자 “지금껏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곳도 필요한 사회”
화장실 남자 소변기 위에 여자 속옷이 걸렸다.
▼ 술에 취한다든지, 이런 저런 이유로 싸움이 날 수도 있을 텐데.
“가게 룰이 ‘술 취하면 입장불가’다. 커플당 한 병 이상 술을 팔지 않고, 술주정을 하면 바로 퇴장시킨다. 단호하게 하니까 회원들이 나를 무서워하면서도 신뢰한다.”
▼ 불만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6년 전 초창기에. 불법영업을 한다고 신고하는 바람에 검찰까지 갔다. 검사가 ‘회원들끼리 밀폐된 공간에 모여 무슨 짓을 하든 그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더라.”
▼ 불법은 아니지만 합법도 아닌 듯한데.
“이걸 문제 삼는다면 정말 한국을 떠나고 싶다. 성은 국가권력이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 특정 개인이 자신과 정서가 다르다 해서 색안경을 끼고 인정하지 않는 편견을 바로잡고 싶었다.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프라이버시와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정받아야 한다. 그게 행복추구권이다.”
그는 손님들에게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원칙대로 확실하게 관리하는 건 합법화를 위해서라고 했다.
“돈 벌려고 이 장사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곳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손해를 보더라도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그들이 터부시하는 이 업소의 성격과 진실을 알리고 싶다. 정도를 지키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 외국은 어떤가.
“일본은 ‘해프닝 바’라고 해서 3000~4000개, 미국은 공식적으로 300개 이상 있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많은 곳에 이런 업소가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관광가이드북에 업소 소개 문구를 넣는 등 국가적으로 인정하는 관광산업이다. 그들도 투쟁 아닌 투쟁을 거쳐 합법화했다. 세금 내며 떳떳이 장사한다.”
국내엔 2009년에 처음 생긴 이후 수 년째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고 한다. 그는 “종종 유사업소가 나타나 물을 흐릴 때가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알바를 고용해 솔로 여성 손님 행세를 하게 하는 곳도 있다. 사실상 커플바를 가장해 성매매를 하는 셈이다. 이런 곳은 진짜 커플들이 갔다가 발길을 돌린다. 금방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곳이 많아지면 우리 같은 업소들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이 장사가 밖에서 보면 엄청난 수익을 내는 줄 아는데, 절대 돈 버는 구조가 아니다. 철학과 중심 없이 너무 쉽게 덤벼드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다.”
안식처이자 해방구
▼ 이 일은 어떻게 하게 됐나.
“2009년 처음 커플바가 오픈했는데, 한 달 만에 단속을 맞았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이건 불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업주도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내가 그 업주를 찾아가 ‘같이 하자’고 제의했다. 그 친구와 3년 반을 같이 하다 독립했다.”
▼ 왜 독립했나.
“그 친구는 페티시즘 성향이고 나는 SM 성향이라 의견충돌이 많았다. 처음 약속한 것과 어긋난 부분도 있었고.”
▼ 당신은 관전이나 노출 성향인가.
“전혀 아니다. 미니스커트를 입어본 적도 없다.”
▼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말 못할 계기가 있어 시작했다. 그리고 성향과 가게 운영은 다르다. 성격만 잘 맞으면 성향과는 상관없다. 오히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가게를 차리면 손님들과 같이 놀다가 문제가 생겨 대개 오래가지 못한다.”
▼ 이런 성향의 사람들을 이해하나.
“솔직히 처음엔 이해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그래서 여기 오는 회원들과 매일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와 성향이 다를 뿐, 보통 사람들이었다.”
▼ 이런 부류를 흔히 ‘변태’라고 한다.
“맞다, 변태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변태 아닌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많은 회원과 대화하면서 세상에 변태는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은 상상에 그치거나, 자신이 수용하지 못하는 걸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변태라고 하는데, 이들과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해보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그저 섹스를 즐기고 섹스에 대한 모든 걸 수용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세상에 변태는 없다. 다만 나와 다를 뿐이다.”
그는 “지하철에서 성추행하다 걸린 경찰관, 제자를 성추행하다 걸린 교수 같은 성범죄자들에 비하면 여기 오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성향을 솔직하게 오픈하고 노는 게 더 건전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제주에서 검사가 여성 앞에서 음란행위를 한 사건이 있지 않았나. 그 검사가 이곳을 알았다면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밖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그들이 원치 않는 노출을 하면 경범죄에 해당하지만, 여기선 노출과 관전을 터부시하는 게 오히려 범죄다(웃음).”
▼ 주로 어떤 사람들이 여기에 오나.
“매너 없거나 이상한 손님은 없다. 대부분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이야기하다보면 직업이 얼추 짐작되는데, 판·검사, 변호사, 교수, 의사, 사업가도 많다.”
▼ 회원들 반응은 어떤가.
“다들 이 공간이 ‘졸음을 부르는 편안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체면과 가면을 벗고 편하게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이곳이 있어 오히려 사회에서 건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심지어 여기 아니었으면 이미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거라는 법조인도 있었다. 법조인들의 스트레스가 엄청 심한 것 같더라. 그들에겐 여기가 안식처, 해방구인 셈이다.”
가면 등 액세서리들. 여성 손님이 과감한 복장으로 코스프레 했다.
섹스리스 부부의 ‘부활’
부부 모두가 처음부터 성에 개방적인 경우는 드물 듯하다. 처음엔 남편 손에 억지로 이끌려 오는 아내들도 있을 터.
“종종 있다. ‘내조 때문에 억지로 왔다’며 ‘이 남자가 내게 흥미를 잃어 이젠 별 곳을 다 가자고 하는구나’ 싶어 오기 전에 많이 울었다는 아내도 있고, ‘내가 싫다고 하면 어차피 딴 여자하고라도 올 것 같아 감시하러 왔다’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여기 오려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주고 태도가 연애 시절처럼 달라졌다’며 정성이 갸륵해서 왔다는 아내도 봤다.”
▼ 바로 적응하긴 어려울 듯한데.
“50대 중반 넘어 보이는 여성이 남편과 함께 왔다. 딱 봐도 기품 있고 얌전해 보였다. 낯설고 창피한지 고개를 못 들고 바닥만 봤다. 나중엔 남편이 ‘내가 술을 마셔, 바람을 펴? 여기 와서 스트레스 좀 풀자는데, 그것도 하나 못 맞춰주냐’며 화를 내더라. 그랬던 여성이 어느 날 티팬티에 가터까지 하고 와서 놀랐다.
40대 중반만 돼도 섹스리스 부부가 많다. 그렇다고 바람을 피우긴 싫고. 어떻게든 남편을 바꿔보고 싶어 이곳에 함께 온 뒤로 부부가 다시 섹스를 하게 된 경우도 많다. 여기 오는 부부는 남편이 절대 딴 짓 안 한다. 오히려 부부관계가 좋다. 부부관계가 좋으니까 이곳에 같이 오는 거다.”
▼ 자기가 즐기는 걸 남이 보고 있다는 게 신경 쓰이지 않을까.
“대부분은 신경을 안 쓰거나, 오히려 다른 사람이 보는 걸 즐긴다.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너무 신경을 안 쓰면 놀다가 그냥 가버리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여기 오는 커플은 노출 성향이 있다고 봐야 한다.”
배준성 작가의 ‘the Costume of Painter’
▼ 스와핑도 이뤄지나.
“다른 커플과 어울리는 커플도 있지만, 술을 마시며 관전만 하거나 파트너와만 즐기는 경우가 더 많다. 다른 커플과의 합석은, 마음도 맞고 파트너를 교환해도 될 정도의 친근감, 신뢰감이 형성된 사이에서나 가능하다. 다른 커플과 즐기는 부부들은 서로 친해져 밖에서도 만나고, 함께 가족여행을 가기도 한다. 합의 아래 합석하는 경우는 제지하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이니까.”
▼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나.
“간혹 상대방의 본심을 테스트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합석하게 되면, 처음 하는 경우엔 아무래도 하는 사람도 떨리고 지켜보는 배우자도 떨린다. 이때 적당히만 하면 없던 질투심도 생겨 권태가 사라질 수도 있지만, 자칫 한쪽이 오버해 훅 나가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절해주는 것도 내 역할이다.”
▼ ‘오버한다’는 게….
“섹스리스나 집에서 내외하는 부부가 다른 커플과 합석한 경우, 평소 내겐 키스도 안 해주던 파트너가 상대 파트너와 몰입해서 진한 키스를 하거나 깊은 애정행위를 하면 겉으론 이해하는 척하면서도 결국엔 화를 낸다. 클럽을 나가는 뒷모습만 봐도 이 커플이 깨질지 안 깨질지 대충 안다. 언제든 배우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자제해야 한다.”
간혹 나쁜 목적을 갖고 스와핑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짜 커플’ ‘킬러 커플’이다.
“마음에 둔 여자와 성관계를 하고 싶은 나머지, 돈을 주고 예쁜 여자를 데려와서는 좋아하는 여자의 남편에게 접근해 스와핑을 시도하는 사례가 있다. 이런 킬러 커플은 딱 보면 알지만 명분 없이 바로 퇴장시킬 순 없다. 킬러 커플이 진짜 커플에게 접근해 수작을 걸려고 하면 요령껏 제지한다.”
“남편이 그렇게도 원한다면…”
그는 자신도 처음엔 파트너를 교환하는 부부를 보며 ‘저렇게 하고도 다음날 아침에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부부 모두 전혀 개의치 않아 놀랐다고 했다.
“처음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론 이해가 되지 않아 1년 넘게 그런 부부들을 지켜보며 ‘진실 토크’를 많이 시도했다. 그런데 부부 사이가 변함 없이 좋았다. 그래서 그들을 믿고 이해하게 됐다.”
그때 벨이 울렸다. 출입구 모니터를 확인한 예시카가 “마침 그 부부가 왔네”라며 웃었다. 잠시 후 40대 초반 커플이 들어왔다. ‘둥이부부’라고 소개해서 뭔 소린가 했더니 쌍둥이 남매처럼 너무 닮아서 그렇게 부른단다. 예시카가 그들에게 “조금 있다 뿌뿌커플도 온대. 같이 뱅뱅하고 놀면 되겠다”고 했다. 뱅뱅이 뭐냐고 물으니 예시카는 “성인들이 즐기는 왕게임 같은 건데, 상상해보라”고 했다.
“몇 년 전 이 커플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달 후가 아내 생일인데, 아내가 이러이러한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니까 회원들 중에서 그런 남자를 초대해달라고 했다.”
예시카가 자연스럽게 이들 부부의 뱅뱅게임 체험을 화제로 올렸다. 아내가 그때 생각이 나는지 환하게 웃었다.
“생일에 남편과 여기 왔는데, 갑자기 불이 꺼져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때 촛불 켠 케이크를 든 남자가 나비넥타이를 매고 내게 오더라. 아주 감격스러웠다. 그래서 다음에 신랑 생일 땐 내가 선물해주고 싶어서 언니(예시카)한테 전화했잖아. 스리섬할 여성을 연결해달라고. 물론, 실패했지만”.
슬쩍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 스와핑은 언제부터 했나.
“남편이 오래전부터 제안했다. 처음엔 부끄럽고 황당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했다. 남편이 내게 첫 남자라, 남편 말고는 다른 남자 경험이 없었다. 상상도 못한 일이라 ‘미친 거 아니냐’고 화를 내곤 했다. 몇 년을 안 된다고 하다가 하도 조르니까 ‘네가 그렇게 좋다면 그래, 한번 해보자’ 싶어 마음을 굳게 먹고 허락했다.”
▼ 스와핑할 때 느낌이 어떤가.
“낯선 사람이랑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부터 어떤 감흥을 느끼긴 힘들다.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니까 하는 거다. 그때마다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나와 놀았던 사람들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더라. 그래도 이 문화를 통해 남편과 전에는 해본 적 없는 행위를 많이 즐기게 됐다.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커플과 싱글을 구하는 건 사실 위험하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
▼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하는 걸 보는 느낌은.
“어떨 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떨 땐 말은 ‘괜찮다’고 해도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집에 가서 화를 많이 낸다. 그 차이를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하겠다. (남편을) 변함 없이 사랑하니까 질투가 나는 것 아닐까.”
▼ 남편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관계하는 걸 보는 느낌이 어떤가.
“나는 네토라레(여성 파트너가 다른 남자에게 유혹되는 것을 즐기는 것) 성향이다. 스와핑을 해도 내가 하는 것보다 아내가 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우린 다른 사람이랑 곧바로 하지는 않는다. 먼저 우리 둘이 하고, 다른 남자를 참가시켜 스리섬을 하다 자연스럽게 아내가 다른 남자랑 하도록 한다. 그 옆엔 항상 내가 있다.”
이곳에 오는 싱글들은 어떤 성향인지 물었다.
“대부분 관전 성향인데, 노출 성향도 있다. 오자마자 쇠구슬이 달린 티팬티를 입고 앉아 있는 친구도 있다.”
▼ 여성이?
“아니, 남자가. 집에서 한번 입었더니 아내가 끔찍한 변태 취급을 하더라며, 이런 걸 입을 곳이 여기밖에 없다고 하더라. 그처럼 노출 성향이 있는 사람에겐 여기가 천국이다.”
▼ 솔로 여성도 많이 오나.
“싱글 남자보단 적지만 꽤 된다.”
혼자 온 여성 김씨가 거들었다.
“젊고 예쁜 여자들이 오면 남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럼 나 같은 여자는 밀려나 멀찍이서 그 광경을 구경한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 하면서(웃음).”
▼ 그들도 관전 성향?
“뭔가 섬싱을 원하니까 오는 거지. 즉석 커플이 많이 맺어진다. 그런데 남자는 전에 만난 여자를 다시 보게 되면 반가워하는데, 여자는 웬만큼 마음에 든 경우가 아니라면 눈인사 한 번 하고 끝이다.”
▼ 젊고 예쁜 여자가 뭐가 아쉬워 여기 올까.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대부분 전문직 언니들이다. 솔로들의 공통점은 남녀 모두 애정결핍이 있거나 외롭다는 것. 성을 통해 관심받고 위로받고 싶어 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법이고, 사랑이다.”
김씨가 다시 거들었다.
“여성 솔로에겐 남자 싱글이나 커플보다 적은 돈으로 술 마시고 즐길 수 있으니까 좋은 곳이다. 그렇다고 여성 솔로를 쉽게 보면 안 된다. 적어도 이런 곳에 오는 여성이라면 기가 세다.”
▼ 여성 솔로 손님 중에 진상도 있나.
“룸에 들어가서 줄 듯, 줄 듯하면서 끝까지 안 주는 여자가 있었다. 무척 예쁘고 몸도 좋은 여자였는데, 여러 남자가 들어갔는데도 결국 끝까지 안 주더라.”
김씨의 말에 예시카가 “여자가 안 준 게 아니라 남자들이 못한 거”라며 웃었다.
“가끔 오는 회원인데, 어느 날 남자 회원 좀 모아달라고 해서 ‘대봉’이란 친구를 오라고 했다. 헬스 트레이너라 몸도 좋고 물건도 커서 별명이 대봉이다. 후배 헬스 트레이너 서너 명과 함께 왔다. 전부 몸도 좋고 엉덩이도 빵빵한 친구들이었다. 여자와 다 함께 룸에 들어갔는데 전부 대화만 하고 발기가 안 됐다고 한다. 남들이 보고 있는 데다 긴장을 하니까 안 된다고 하더라. 전부 고개 푹 숙이고 나왔다.”
다시 벨이 울리고,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다들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김씨가 “여긴 몇 번 마주치다보면 서로 친해질 수밖에 없다. 다 가족 같다”고 했다. 왜 그렇지 않겠나. 모든 걸 다 보여주는 관계인데.
“합석하실래요?”
방금 들어온 남자가 전화를 받더니 이곳 주소를 물었다. 여자친구가 택시를 타고 오는 중이란다. 예시카가 “누구? 인천 그 여자?” 하자 “처음 오는 여자”란다. 잠시 후 20대 후반의 늘씬한 여성이 들어왔다. 그전까지 안부를 주고받던 사람들이 모두 이 남자를 위해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김씨가 낮게 속삭였다.
“여기선 섣부르게 친한 척하지 않는다. 지난번에 애인이랑 왔던 사람이 이번엔 아내를 데리고 왔는데 아는 척하면 아내가 ‘당신 여기 처음이라며?’ 하고 쏘아붙일 테니까.”
새로 온 커플이 바에서 잠깐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남자가 자연스럽게 여자를 홀 안으로 이끌었다. 잠시 후 ‘뿌뿌커플’이 도착했다.
벌써 새벽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준비가 됐다는 듯 두 커플이 홀로 향했다. 나와 김씨에게 함께 들어가지 않겠냐고 권했다. 김씨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기자의 정체를 아는 예시카가 미소를 지으며 ‘보다 과감한 취재를 위해 합석해보라’는 듯 눈짓을 했다.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여기까지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겸연쩍은 미소로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