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학습 부담에 운동 부족 청소년기 ‘우르르’ 발병

결핵에 쓰러지는 우리 아이들

  • 김유림 채널A 사회부 기자 | rim@donga.com

    입력2015-10-22 1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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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후조리원 결핵 감염 영아 21명…더 늘 듯
    • ‘후진병’ ‘금방 완치’ 안심하다 결핵 1위국 오명
    • “결핵엔 완치 없다”…애초 감염 안 되는 게 최선
    학습 부담에 운동 부족 청소년기 ‘우르르’ 발병
    “함께 계시던 산후조리원 간호사 중 한 명이 결핵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이도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8월 26일, 전화를 받은 김지영(가명·38) 씨의 가슴이 와르르 무너졌다. 갓 100일이 지난 딸 지윤이는 방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오랜 노력 끝에 낳은 첫 아이를 잘 돌보고 싶어 갔던 산후조리원. 그곳에서 수시로 아이를 안아 달래주던 50대 간호조무사 이모 씨의 얼굴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 인자한 미소의 간호사가 결핵이었다니.

    이튿날 서울 은평구청에서 열린 설명회. 질병관리본부에서 나왔다는 전문가는 연신 “괜찮다”고만 말했다.

    “어차피 아무 피해도 없을 거고, 전염 가능성은 지극히 낮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검사를 하자는 겁니다.”

    전문가의 호언장담과 달리, 지윤이는 피부반응검사에서 ‘잠복결핵’ 진단이 나왔다. 몸속에 결핵균이 있으니 언제고 결핵균이 발현될 수 있다는 의미. 발현 확률은 5~10%라지만 그게 정작 내 아이의 얘기가 된다면 ‘확률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잠복결핵 확진 판정 후 지윤이는 매일 아침 두 종류의 결핵약을 먹는다. 9개월 넘게 약을 먹은 뒤 다시 피부반응검사를 받아 결핵균이 잠잠해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매일 아침 약을 안 먹으려고 발버둥치고, 먹은 약을 다 게워내는 지윤이를 보며 지영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을 마주한다.

    “건강하게만 태어나달라고 그렇게 빌고 또 빌었는데, 어른들의 작은 실수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한다니…. 아니, 지금이 1960년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죠?”

    후진적 집단감염 여전

    문제의 간호조무사 이씨는 7월 2일 복막염 수술을 위해 입원했을 때 결핵 증세가 의심돼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8월 24일, 결핵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약 두 달간 근무와 병가(病暇)를 반복했다. 결핵균 잠복기인 6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이씨가 직접 접촉한 신생아만 12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생후 12주가 지난 아이들만 결핵 감염 여부를 검사받았는데 그 중 21명이 잠복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직 검사를 받을 만큼 자라지 않았거나, 당장은 잠복결핵이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후 추가 검사가 필요한 아이는 훨씬 많다. 보호자들의 속은 문드러진다. 피해자 대표를 맡은 구영두 씨의 말이다.

    “당장 몇 명이 잠복결핵에 걸렸는지가 아니라 ‘비율’을 봐야 합니다. 검사 받은 아이 중 25% 이상이 잠복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 전염성이 강했다는 겁니다. 부모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반응한 보건당국의 대처에 화가 납니다.”

    매년 겨울 연례행사처럼 사고 선물하던 크리스마스 실(seal)이 보기 힘들어진 만큼, 결핵은 어쩌면 잊힌 병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결핵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2013년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만 2230명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 대상 국가 37개국 중 결핵으로 인한 사망률이 1966년 이후 계속해서 제일 높다.

    결핵은 감염 환자가 말하고 기침할 때 침에 섞여 나온 균이 공기 중으로 퍼지면서 주변인들이 감염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후진적’인 집단감염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올 5월 인천의 한 중학교는 결핵 때문에 휴교령까지 내렸다. 한 학생이 결핵에 감염된 걸 모른 채 학교생활을 하다가 100여 명의 학생과 교사에게 집단으로 결핵을 옮겼기 때문. 결핵으로 인한 휴교는 사상 처음이었다.

    또한 같은 달 서울 구로구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어린이 5명에게 잠복결핵을 옮겼고, 7월 대전 모 산후조리원 간호조무사는 영유아 15명을 결핵에 감염시켰다. 모두 결핵 환자가 증세를 자각하지 못하다 감염을 확산시킨 경우다.

    지난해 결핵 전체 환자 수는 4만 3088명. 13년 전인 2001년(4만6082명)에서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 매년 3만여 명이 완치 판정을 받지만, 새로 발생하는 환자 수 역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전문가들은 결핵이 발병해도 초기에 진단하고 약을 꾸준히 먹으면 100% 완치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발하기도 그만큼 쉽다. 지난해 결핵 재발자는 6254명. 대부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몸속에 남아 있던 결핵균이 다시 발현했거나, 면역력이 약해진 사이 새롭게 결핵에 감염된 경우들이었다. 특히 결핵 치료 과정에서 폐가 비대해지거나 폐에 구멍이 난 경우는 결핵이 낫더라도 다른 질병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결핵에는 완치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애초에 결핵균에 감염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다.

    면역력 떨어져 감염 취약

    그런데 주목할 것은, 최근 젊은 층에게 결핵이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결핵 발병자 중 20~30대가 전체 환자의 37.8%에 달한다. 해외의 경우 결핵 감염자 대다수가 60~70대인 것에 비해 젊은 층의 비율이 현저히 높다. 특히 만 14세 이하에는 거의 전무하던 결핵 발병자가 15세 이후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15세인가. 경선영 가천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우리 청소년들이 노출된 환경에서 그 답을 찾았다. 과도한 학습량과 부족한 운동량으로 면역성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학교 내 집단생활을 하다보니 결핵 감염률이 높다는 것. 또한 PC방, 학원, 독서실 등 밀폐된 공간에 오래 있다보니 감염도 빨라진다는 게 경 교수의 주장이다.

    일부 전문가는 생후 1개월 내에 맞은 항결핵 백신, BCG의 효과가 사라지는 시기가 15세쯤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청소년기의 극심한 다이어트 역시 결핵 확산의 주범이다. 다른 나라에선 남성 결핵 감염자 수가 많지만, 우리나라 20대의 경우 남성과 여성 결핵 환자 수치가 비슷한 수준이다.

    환자 가족 절반이 검사 안 해

    학습 부담에 운동 부족 청소년기 ‘우르르’ 발병

    결핵 예방 캠페인.

    결핵의 증상은 전신 피로와 기침, 미열 등으로 감기와 비슷하다. 그렇다보니 결핵에 걸려놓고도 심각성을 모른 채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가족 중에 결핵 환자가 있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 중학생 아들이 결핵 확진 판정을 받은 직장인 김지환(42) 씨는 자신도 고교생 때 결핵을 앓은 적이 있다. 김씨는 “최근 한 달간 기침을 달고 사는 아들을 보고도 결핵일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요즘 세상에 결핵이 어딨냐”며 기침약만 먹이다가 치료 시기를 놓쳤다는 것.

    조혜경 가천대 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팀이 결핵 환자 253명의 가족을 대상으로 연구했더니 환자와 동거 중인 가족 가운데 절반 정도만이 결핵 검사를 받았다. 상당수 가족은 “증상이 없다” “결핵은 전염성이 없다”며 결핵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다. 조 교수는 “같은 생활공간에 있는 만큼 결핵 환자 가족도 결핵 예방, 조기 검진을 위해 애써야 하지만 심각성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결핵은 빈곤병’이라는 그릇된 편견 때문에 오히려 결핵 진단과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결핵은 초기에 진단하면 2주간 치료로 완치할 수 있는데 그 ‘골든타임’을 잡기 위해서라도 조기 진단이 필수다. 그렇기에 잠복결핵 환자의 경우 특히 주의를 요한다. 결핵은 전염성도, 증상도 없고 엑스레이를 찍어도 당장 질병이 드러나지 않지만 평생 살면서 10% 정도는 활동성으로 진행되고 전염력을 갖는다. 그 한순간을 놓치면 결핵 전파자가 될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결핵을 하찮게 여기는 인식은 여전하다. 서울 은평구 산후조리원 결핵 전염 사태 이후 서울시는 전체 산후조리원 400여 곳 종사자를 대상으로 잠복결핵 검사와 교육에 나섰다. 지자체별로 보건소 직원이 산후조리원을 직접 방문하거나 종사자들을 구청에 불러 교육을 했는데 대부분 “심각하지 않다” “잠복결핵은 병이 아니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교육에 나선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사실 우리나라 성인 3분의 1이 잠복결핵인데 산후조리원 종사자에게만 높은 수준을 기대할 수 있겠냐”며 “이번 교육이야말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조사 대상 선정도 갈팡질팡

    은평구 산후조리원 결핵 감염자 조사 대상 선정 과정에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초기에 질병관리본부는 결핵 검사 대상으로 신생아 120명만 선정했다. 산모, 가족, 동료 직원 등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한 간호조무사 이씨의 결핵균 잠복기로 설정된 6월 4일을 기준으로 검사 대상을 정했는데, 그 이전 퇴원자도 결핵 양성 판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뒤늦게 60명을 추가 선정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가 4월, 폐 엑스레이를 찍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건당국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결국 보호자들은 문제의 산후조리원과 결핵 감염자 이씨 등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보호자 김모 씨는 이렇게 말했다.

    “몸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산후조리원에서 일한 것부터가 문제지만, 행정 처분할 법적 규제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산후조리원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면서도 1명당 고작 100만 원씩 보상한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입은 피해를 도대체 누가 책임지고 보상해줍니까.”

    10월 2일 국회에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여당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이 만나 은평구 산후조리원 결핵 전염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 산후조리원의 결핵 전염을 막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법제화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보호자들은 이 같은 결과에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재발 방지와 대책 마련.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구호지만, 평생 결핵의 위험을 안은 채 살아야 할 아이를 보며 끝없는 죄책감을 가질 부모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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