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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와 수요가 없는 건 모두 사라졌다

‘한국이 싫어’ 떠난 계나, ‘2045년 한국’에 오다

  • 우다영 | 소설가 nayawdy@naver.com

필요와 수요가 없는 건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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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이라며 호주로 이민을 한다. “접시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사람 대접을 받으니까”라며 호주에 정착한 계나가 2045년 한국을 다시 찾는다면, 그녀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계나 또래의 여성 소설가가 이런 전제로 단편소설을 썼다.
필요와 수요가 없는 건 모두 사라졌다

정수진, ‘방향목적도’-People in landscape, 2007(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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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만드는지 물었을 때, 계나는 빙긋 웃으며 가르쳐주지 않았다. 계나는 자르지 않은 생닭의 내장과 불순물을 맨손으로 손질하고 있었다. 우리와 가족이 된 후로 그녀는 가끔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하듯 요리를 만들었다. 요리사 남편이 죽고 까다로운 입맛만 남았다고, 그래서 요리실력이 늘었다고, 계나는 자주 농담했다.

딸아이는 의자 위에 올라가 계나의 요리를 구경했다. 아이는 계나의 모든 말과 움직임에 매번 감탄했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어린 여자아이의 눈에 계나는 그 아이가 한 번도 닿아본 적 없는 머나먼 세계의 사람이었다. 계나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억양과 늙은 사람이 가지게 되는 뻑뻑한 거죽의 감촉을 아이는 신비롭게 여겼다. 할머니가 아니라, 놀라울 만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강아지나 어디로 날아갈지 짐작할 수 없는 파랑새가 생긴 것처럼 즐거워했다.

계나가 만든 음식은 닭을 통째로 오븐에 구워낸 바비큐 요리였다. 계나는 그것을 먹기 좋게 잘라 제일 먼저 딸아이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그녀는 아이를 늘 사랑스러워했다. 남편과 내 접시에도 닭고기를 올려주며, 이제 맛을 보라고, 우아하게 말했다. 아직 60대인 그녀는 여전히 밝은 피부와 대체로 검은 머리칼을 가졌다. 몸매도 별로 흐트러지지 않아 맵시가 괜찮았다. 내가 맛이 아주 좋다고 하자 계나가 말했다.

▼ 이건 칠면조 맛을 흉내 낸 거야. 칠면조를 먹어본 적 있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칠면조는 내가 딸아이만큼 어릴 때 멸종했다. 칠면조가 아직 이 땅에 살아 있을 때에도 딱히 먹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 칠면조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멸종해버렸지. 병이 돈다 싶더니 수천만 마리가 괴사하고 몇 년 만에 조류학회에서 공식 멸종을 선언했어. 순식간이었지. 칠면조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추수감사절도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우리 때는 자주 농담했단다.

남편은 이미 계나에게 수도 없이 들은 농담이라고 속삭여 나를 웃겼다.

▼ 그냥 닭고기 맛인데요?

딸아이가 입 안의 살코기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 아니야. 이건 칠면조와 아주 흡사한 맛이란다.

아이 입가에 묻은 번들거리는 기름을 닦아주며 계나가 말했다.

▼ 하지만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지. 칠면조가 멸종한 건 어쩌면 닭이 칠면조를 대신할 수 있어서니까. 굳이 필요한 종(種)이었다면 치료제든 백신이든 어떻게든 만들었을 거야.

딸아이는 골똘한 표정으로 고기를 씹으며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새의 맛을 찾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칠면조와 공존한 적 없는 아이에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 물론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명절이 아니니까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계나가 칠면조 맛 닭고기를 음미하며 말했다. 남편과 나는 뜨악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딸아이가 까르륵 웃으며 말했다.

▼ 할머니 한국은요,

할머니에게 물을 한잔 가져다드리라고, 내가 재빠르게 말했다. 아이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물잔을 가지러 갔다. 남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계나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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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영 | 소설가 nayawd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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