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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東亞 창간 84주년 특별기획 | 2·0·4·5 광복 100년 대한민국

필요와 수요가 없는 건 모두 사라졌다

‘한국이 싫어’ 떠난 계나, ‘2045년 한국’에 오다

  • 우다영 | 소설가 nayawdy@naver.com

필요와 수요가 없는 건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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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나의 상태가 나빠진 것을 처음 안 건 나였다. 나는 그녀의 예순 번째 생일파티를 상의하기 위해 지구 남반구로 전화를 걸었다.

▼ 환갑이라니. 내가 말이니?

계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웃었다.

▼ 아가. 너만 한 나이일 때 나는 쉰쯤에 은퇴하고 제주도에서 10년쯤 살다가 예순에 죽고 싶었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직접 만든 반찬으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거야. 해안선을 보면서 달리고 수영과 몇 가지 악기를 배우며 사는 거지. 상추도 키울 생각이었어. 물을 주면 열매를 맺는 정직하고 부드러운 풀들 말이야. 그렇게 살다가 예순이 되면 자살하는 삶을 꿈꿨어. 그런데 내가 벌써 예순이라니, 우습지 않니? 감기에도 벌벌 떠는 할머니가 되리란 걸 그때는 짐작도 하지 못했지.



꿈 한번 쿨하네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때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계나의 삶이 움직여온 방식을 존중하고 있었다.

▼ 그런데 정말 웃기는 건, 내가 단 한 번도 제주도에 가지 못했다는 거야. 세상에서 제일 큰 섬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는데, 한국의 작은 섬이 뭐라고,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아직까지 그 땅을 밟아보지도 못했어.

거긴 이제 한국 땅이 아니지 않냐고, 그래도 정 마음이 쓰이면 이번 생일에 그 섬에 가자고, 해안선을 보고 수영을 하고 상추도 먹고 오자고, 나는 계나를 타일렀다.

▼ 한국 땅이 아니라니?

계나는 재미있어하는 투로 물었다.

▼ 그럼 거긴 누구 땅이니?

델몬트가 샀잖아요, 하고 대답하는 동시에 나는 이상한 직감에 휩싸였다. 그건 거의 확신에 가까운 무서운 예감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계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 과일주스 브랜드를 말하는 거니? 한국 땅을 델몬트가 샀다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거실에서는 남편과 딸아이가 하얗고 단단한 복숭아 조각을 베어 먹고 있었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하는 계나의 직계 가족들에게, 이 일을 어떤 방식으로 전해야 할지 아득해졌다. 그런 시간 속에서도 계나는 천진하게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계나에게, 결국 이렇게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이제 없잖아요.

계나는 깜짝 놀라다가, 몇 번 되묻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 아 그랬지. 맞아. 이제 한국은 없지.

힘없이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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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란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라진 건 5년 전이지만, 이미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한 조각의 땅도 남김없이 팔린 상태였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너덜너덜한 주식처럼 팔려나갔고, 결국 모조리 팔렸다.

처음 시작은 그리스의 파산이었다. 2020년대에 기상이변으로 생겨난 새로운 재난 뇌운이 그리스의 복잡한 산맥을 타고 내려와 수많은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번개의 신 제우스를 가진 나라에 그건 의미심장한 멸망의 징조였다. 재정 상태가 나빴던 그리스는 가장 피해가 적은 아테네를 팔아야 했다. 정확히는 디즈니가 정식으로 그리스 정부에 아테네 인계를 제안했다. 대지 매매가 아니라 모든 권한을 포함한 영토 매매였다. 당시에 외신들은 그 상황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머지않아 놀라운 광경을 마주했다. 결과적으로 아테네 인수에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한 디즈니가 어떤 나라도 손쓰지 못했던 망가진 도시들을 구제해냈다. 아테네는 기업에 팔린 최초의 도시가 됐다. 국가 없이 자족할 수 있는 것은 들짐승이거나 신일 거라고 장담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나라였다.

그 사건은 어떤 해답처럼 퍼져나갔다. 어느 나라에나 크고 작은 재난이 찾아왔고, 질병이 돌았고, 전쟁도 있었고, 단순한 파산일 때도 있었지만, 모든 나라가 팔리기 시작했다. 도시와 길이 팔렸고, 군대와 시장이 팔렸다. 학교와 문화재까지 팔렸다. 나라를 산 기업은 부자가 되어 더 많은 나라를 샀다. 한국은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때, 적당한 값에 팔렸다.

▼ 그냥 좀 얼떨떨했어. 그런 식으로 나라가 망할 수도 있구나. 부도가 나면 나라도 사라지는구나.

멀쩡한 정신일 때의 계나는 한국이 사라진 것에 대해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무심하고 냉소적인 태도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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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영 | 소설가 nayawd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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