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성장보다 사람! 한국형 ‘뉴노멀’ 만들자

2045년 경제 비전

  • 조순 | 서울대 명예교수, 전 경제부총리

    입력2015-10-20 17:4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대한민국은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비정상적인 부문이 너무나 많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경제도, 기업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지 않나.
    성장보다 사람! 한국형 ‘뉴노멀’ 만들자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글로벌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의 획기적 사건이다. 그 여파로 세계 경제는 대불황(great recession)을 겪었다. 위기 전과 후는 세계경제에 상전벽해의 변화를 가져왔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완전한 회복을 이룬 나라는 거의 없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라는, 듣기 좋은 이름으로 오늘의 저성장을 자위(自慰)하지만, 그 어떤 고명한 경제학자도 세계적 저성장을 극복할 확실한 이론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간 순조롭게 성장을 이어가던 후진국 중에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나라들(브라질, 러시아 등)이 있고, 앞으로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회수되지 않을까 벌벌 떠는 나라들도 있다.

    미국은 기축(基軸)통화국의 ‘특전’을 활용해 이른바 통화의 양적완화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선진국 중 가장 빨리 위기 국면을 탈출했다. 미국은 올해 약 3%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실업률은 5% 안팎으로 떨어져 거의 완전고용에 이른 것으로 보도된다. 하지만 이런 미국조차 아직 정상적인 국면을 완전히 회복하진 못했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 9월까지는 기준금리를 올려 정상적인 금융정책을 펴고자 열망했지만 단행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는 있으나 아직 미약해 고금리를 견디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향후 30년간의 대한민국 경제를 전망해 그 진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 이 위기는 다년간에 걸친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찾아내 정상상태를 회복할 실마리를 찾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경제의 방향에 대한 나의 미숙한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추락한 국가경쟁력



    우리는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산업화(industrialization)의 달성, 1980년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민주화의 성취,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상징하는 선진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이 3가지 업적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이 3가지 업적은 이제 초기의 빛을 많이 잃었다. 산업화는 답보 상태에 있고, 민주주의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그리고 선진화는 국내총생산(GDP)만으론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은 지난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26위라고 발표했다. 2007년에는 11위였다. WEF는 본래 세계 저명인사들이 참여하는 경제 중심 포럼인데, 그러한 포럼이 ‘경제경쟁력’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화두로 삼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경제의 경쟁력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에 의존한다고 보는 것이다.

    국가경쟁력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그것을 어떤 잣대로 측정하든, 국민의 ‘평균 능력’을 말하는 것만은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그 능력은 해당 국가의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등의 수준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것은 나아가서는 그 나라 국민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수준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세계 11위의 국가경쟁력을 가졌던 한국이 불과 7년 만에 26위로 떨어졌다는 것은 참담한 얘기다.

    그러나 이는 신기한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어딜 봐도 제대로 된 데가 없다. 매일 아침 신문을 읽기가 싫어질 정도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정치의 몰염치와 무소신, 국민의 무질서와 패륜 등이 지면을 메운다. 국가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래 나라는 하나의 유기체다. 유기체는 어떤 한 부분이든 다른 부분과 완전히 독립해 존재할 수 없다.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데, 경제만은 잘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모든 나라의 행태를 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New normal’의 시대에는 노멀(normal)한 것은 전혀 없고, 나라마다 독자적으로 갈 길을 간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에 맞는 ‘정상상태’를 독자적으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 고도성장 정책은 대부분 소용이 없어졌다. 모든 나라가 제 갈 길을 가니 세계경제가 혼란스러워졌다.

    중소기업부터 살려야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종래의 성장 정책들이 거의 쓸모가 없어진 것은 여타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채택한 종래의 성장촉진 정책, 이를테면 재정 금융의 완화, 정부 규제의 완화,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 등은 거의 다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성장 잠재력은 오히려 떨어져 연구기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대로 잡고 있다. 이대로 기다리면 경제가 좋아질 것인가.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무엇을 하면 되는가. 아는 사람이 없다. 불황의 탈출구가 꽉 막혀 있다.

    경제는 나라의 다른 모든 부분과 연관돼 있다. 대한민국은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비정상적인 부문이 너무나 많다. 지금부터라도 경제를 다른 부문과 떼어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날 우리는 수출만 잘하면 나라의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고, GDP만 성장하면 곧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많은 논객이 지금도 경제가 다시 ‘도약’할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들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위에서 말한 대로 새로운 정상상태 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상상태를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사고(思考)를 기존의 관념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참신한 생각으로 고도성장 때 구축된 고정관념을 털어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라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경제만 두고 볼 때는, 중소기업을 진작시키는 것이 필수적이고 매우 중요하다. 우선 대기업이 하도급 중소기업에 ‘갑질’을 하거나 문어발 경영으로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대기업은 성장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지금도 사회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이들의 ‘갑질’과 점령을 자제하는 일은 중소기업 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조건이다. 역대 정부는 중소기업 육성 정책에 모두 실패했다. 때는 점점 지나가고 있지만, 계속 실패가 이어지는 한 대한민국의 경제는 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또한 나는 우리가 GDP 성장에 너무 몰입하지 말기를 바란다. 좀 더 넓고 긴 안목에서 나라를 새로 만들기를 바란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경제도, 기업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GDP는 발전 잠재력의 발현 결과에 불과하다. 나라가 잘되려면 아이를 적당히 낳아 잘 가르치고, 배운 사람을 잘 쓰고, 나이 든 인구를 제대로 보살펴야 한다.

    GDP 말고 사람을 보라

    그간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에 몰두한 나머지 사람을 소홀히 여겨왔다. 그 결과 한국인은 돈만 아는 반(反)지성적 가치관을 갖게 됐다. 원래 유순하고 인정 많던 국민이 사납고 살벌한 사회를 만들었다. 경제는 중요하지만 지금의 GDP 수준으로도 분배의 양극화만 없다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에 대한 정책을 이 짧은 글에 논할 겨를은 없다. 우리 경제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는 필자의 최근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자본주의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경제운영의 원리’, 대한민국학술원, ‘학술원 논문’ 제54집 1호 참조).

    한 가지 덧붙이자면 대한민국의 뉴 노멀 시대를 만드는 데 특히 중요한 것은 경제보다는 교육과 정치다. 교육과 정치에 획기적인 개선이 있기를 바란다. 이 두 가지가 잘된다면 경제도 제대로 발전할 것이고 민주주의도, 선진화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