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지금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라는, 듣기 좋은 이름으로 오늘의 저성장을 자위(自慰)하지만, 그 어떤 고명한 경제학자도 세계적 저성장을 극복할 확실한 이론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간 순조롭게 성장을 이어가던 후진국 중에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나라들(브라질, 러시아 등)이 있고, 앞으로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회수되지 않을까 벌벌 떠는 나라들도 있다.
미국은 기축(基軸)통화국의 ‘특전’을 활용해 이른바 통화의 양적완화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선진국 중 가장 빨리 위기 국면을 탈출했다. 미국은 올해 약 3%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실업률은 5% 안팎으로 떨어져 거의 완전고용에 이른 것으로 보도된다. 하지만 이런 미국조차 아직 정상적인 국면을 완전히 회복하진 못했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 9월까지는 기준금리를 올려 정상적인 금융정책을 펴고자 열망했지만 단행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는 있으나 아직 미약해 고금리를 견디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향후 30년간의 대한민국 경제를 전망해 그 진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 이 위기는 다년간에 걸친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찾아내 정상상태를 회복할 실마리를 찾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경제의 방향에 대한 나의 미숙한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추락한 국가경쟁력
우리는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산업화(industrialization)의 달성, 1980년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민주화의 성취,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상징하는 선진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이 3가지 업적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이 3가지 업적은 이제 초기의 빛을 많이 잃었다. 산업화는 답보 상태에 있고, 민주주의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그리고 선진화는 국내총생산(GDP)만으론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은 지난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26위라고 발표했다. 2007년에는 11위였다. WEF는 본래 세계 저명인사들이 참여하는 경제 중심 포럼인데, 그러한 포럼이 ‘경제경쟁력’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화두로 삼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경제의 경쟁력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에 의존한다고 보는 것이다.
국가경쟁력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그것을 어떤 잣대로 측정하든, 국민의 ‘평균 능력’을 말하는 것만은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그 능력은 해당 국가의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등의 수준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것은 나아가서는 그 나라 국민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수준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세계 11위의 국가경쟁력을 가졌던 한국이 불과 7년 만에 26위로 떨어졌다는 것은 참담한 얘기다.
그러나 이는 신기한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어딜 봐도 제대로 된 데가 없다. 매일 아침 신문을 읽기가 싫어질 정도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정치의 몰염치와 무소신, 국민의 무질서와 패륜 등이 지면을 메운다. 국가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래 나라는 하나의 유기체다. 유기체는 어떤 한 부분이든 다른 부분과 완전히 독립해 존재할 수 없다.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데, 경제만은 잘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모든 나라의 행태를 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New normal’의 시대에는 노멀(normal)한 것은 전혀 없고, 나라마다 독자적으로 갈 길을 간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에 맞는 ‘정상상태’를 독자적으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 고도성장 정책은 대부분 소용이 없어졌다. 모든 나라가 제 갈 길을 가니 세계경제가 혼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