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세계는 ‘무(無)데올로기’ 시대 한국만 ‘과(過)데올로기’ 사회”

‘갈등 한국’에서 ‘소통 한국’으로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입력2015-10-21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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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회 갈등 뿌리는 분단…증오에서 벗어나야
    • 포퓰리즘 원조는 한국의 ‘票불리즘’
    • 역사교과서 문제 있지만 ‘國定’은 답 아니다
    • 다문화가정 편견, 세대 단절 해소 시급
    일시 : 10월 9일 오후 3시

    장소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충정각

    참석자 :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사회)

    남북갈등, 한일갈등, 세대갈등, 빈부갈등, 노사갈등, 지역갈등, 이념갈등, 최근엔 국정교과서 갈등까지. 한국 사회는 소통을 말하지만 갈등 속에 있다. 정치는 타협 없이 부딪치고, 환경과 개발은 양립하지 못하며, 이념은 우리 사회를 글자 그대로 칡(葛)과 등나무(藤)처럼 복잡하게 얽어놓았다.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최대 246조 원으로 추정된다(삼성경제연구원).

    84년 전인 1931년 ‘신동아’ 11월호 창간사에 발행인 송진우는 이렇게 썼다.



    “조선 민족은 바야흐로 대각성, 대단결, 대활동의 이른 새벽(曉頭)에 섰다. 신동아의 사명은 특색 있는 모든 사상가, 경륜가의 의견을 민족대중 앞에 활발하게 제시하여 비판하고 흡수케 하여 민족대중이 공인하는 가장 유력한 민족적 경륜이 발생되도록 하는 것이다.”

    송진우의 창간사는 지금도 유효하다. 신동아는 창간 84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의 갈등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좌담을 마련했다.

    분단의 수혜자들

    강영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터키에 이어 2위이고, 정부 정책 관련 공공갈등이나 국가갈등 과제만 연간 60건에 이른다. 최근 국정교과서와 ‘공산주의자 발언’ 등으로 갈등이 증폭됐다.

    이원복 한국 사회 갈등의 원죄(原罪), 큰 뿌리는 분단이다. 분단 상황에선 자유롭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사실 공산주의자와 극우주의자의 차이는 ‘공동체 우선’이냐, ‘개인 우선’이냐인데, 우리는 ‘좌파’ ‘빨갱이’ ‘우빨’ ‘수구꼴통’처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분단 상황 때문에 자유롭게 교감하지 못하는 게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안경환 분단이 장기화하면서, 남북이 각각 ‘체계’를 잡다보니 분단의 긴장을 이용해 혜택을 보는 세력이 생겼다. 이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선거 때가 되면 긴장을 더 부풀린다. 분단은 복합적인 것이기에 남북 문제로만 풀 수 없다. 갈등은 커지는데 해결은 난망하다.

    이원복 그렇다보니 속된 말로 ‘통일 장사꾼’도 생겼다. 웃기는 건 통일정책이다. 북한은 공산주의, 남한은 자본주의 통일을 하자는데, 어떻게 공통된 통일 방안이 나오겠나. 통일은 민간 차원의 뒷받침이 있어야지, 정치권이 로드맵을 만드는 건 말이 안 된다.

    안경환 그렇다. 1948년 이후 남북에 각각 정부가 생겼지만, 양쪽 모두 흡수통일만 생각했다. 우리는 영토를 한반도와 부속 도서라고 규정했고, 북한은 한술 더 떠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수도는 서울이고 평양은 임시수도라고 했다. 북한은 7·4공동선언을 하면서 이걸 바꿨지만, 기본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공존할 거냐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양쪽 모두 흡수만 생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니 통일이 마치 큰 장사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됐지만, 정부가 통일 분위기를 단기 완성 프로젝트로 하면 안 된다. 해도 큰 재앙이 온다.

    “세계는 ‘무(無)데올로기’ 시대 한국만 ‘과(過)데올로기’ 사회”


    중간지대 없는 사회

    이원복 한국은 지속가능성이 너무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녹색성장을 지금 말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 받는다. 독일을 보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2003년 ‘어젠다 2010’(사회복지 혜택을 축소하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골자로 한 개혁정책)을 내놓은 뒤 정권을 빼앗겼다. 그런데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의 정책을 이어받아 경제부흥을 이뤘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반대다. 전임자 흔적 지우기에 골몰하면 갈등만 커지고 나라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안경환 공감한다. 여(與)든 야(野)든, 전 정부든 현 정부든, 정책의 90%는 같다. 같은 90%보다 다른 10%를 극대화해 흔적 지우기, 정치보복을 한다. 우리가 지난 몇 십 년 동안 이룬 성과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시차 없이 거의 동시에 이루다보니 무리가 생긴 면도 있다.

    이원복 그러니 ‘국가 골다공증’이 생긴다. 구멍이 ‘쑹쑹’ 뚫렸다. 그래서 터진 게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침몰사고 아닌가. 고속성장은 반드시 골다공증을 일으킨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우는 것도 상대를 공격해야 표를 얻으니 그런 것이다.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은 원래 한국어 ‘표(票)불리즘’에서 나왔을 거다(웃음).

    강영진 분단이 우리 사회 갈등의 원죄라면, 분단 원죄 때문에 이념갈등, 진영논리, 그리고 최근 불거져 나온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 등이 등장하는 것 같다(고 이사장은 10월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이고 사법부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원복 우리나라는 좀 독특하다. 동구권 몰락 이후 세계는 ‘무(無)데올로기’로 간다. 마르크스주의 좌파도, 극보수도 없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과(過)데올로기’ 사회로 흐른다. 왜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중간지대’가 없다는 거다. ‘리버럴’ ‘중도’라고 하면 박쥐, 회색분자 취급한다. 그래서 한국은 진영논리에 빠지고, 접합이 어렵고, 갈등이 심각해진다. 서양은 토론을 충분히 하기 때문에 언제든 자기 색깔을 말할 수 있다.

    강영진 직업적으로 그 말에 동의한다. 미국 버지니아 주 대법원에서 갈등해결 전문가로 일할 때는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중간자 문화’가 있어 갈등 해결을 유도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선 그런 문화가 없으니 갈등 해결이 힘들다. 중간지대와 토론이 정말 중요한데….

    이원복 중간이 없으니 토론이 안 된다. 우리는 토론 중에 상대방 말은 잘 듣지 않고, 자기가 다음에 할 말을 준비한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이 ‘솔직히 말해서’ 아닌가. 본심을 말 못하는 문화 때문이다. 들을 줄을 모른다.

    안경환 토론은 상대 얘기를 경청하면서 내가 몰랐던 부분을 알고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끌어내는 건데, 우리는 논리적으로 대화가 안 되면 인신공격을 한다. 그럴 바에야 집에서 책 읽는 게 낫지. 우리 한 세대 위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지식인은 회색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입으론 ‘다양성’ 외치면서…

    강영진 그런데 최근 국정교과서 갈등을 보면 학자들은 회색인이 아닌 듯하다. 반발과 대립이 극명히 나뉘는 거 같은데. 정치권도 진영 싸움이다. 여당은 “검정교과서는 좌편향적”이라고, 야당은 “국정교과서로 독재와 친일을 미화하려 한다”며 싸운다.

    이원복 매우 민감한 얘기인데…. 국정교과서는 옳지 않다고 본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신화,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인데, 그렇다면 한국인은 단군(신화), 한국어(언어), 그리고 역사(문화)를 공유해야 한다. 문제는 현대사인데, 현대사는 분단 상황이기에 정답은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교과서를 만든다고 해도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또 바뀌지 않을까. 국정교과서 논란을 주도하는 역사학자들의 책임도 크다. 검정교과서를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은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말하면서도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우파 교과서라며 온몸으로 저지하지 않았나. 좌파 역사학자도 틀린 것 아닌가.

    안경환 자유민주 사회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선택에 맡긴다. 다만 학부모들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것은 시험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녀들이 시험을 치려면 정답이 있어야 하는데, (역사책을) 다양하고 복잡하게 만들어놓으면 안 된다는 마음에서….

    이원복 역사교육은 당구공 같은 거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다. 하얗게 보이는 공이 어두운 데서 보면 까맣게 보이고, 중간에서 보면 그늘져 보이고…. 모든 쪽에서 당구공을 다 볼 수 있어야 역사다. 그래야 실체를 알 수 있다. 좌파 학자든 정부든, 공이 하얗다고 말을 못하게 막는 건 문제다.

    안경환 역사는 기록과 기억을 두고 돌리는 후세인들의 싸움이고, 승자의 기록이다. 고(故) 이병주 선생은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승자는 기록에 넣으려 하지만 그것이 진리는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사초(史草) 논쟁이 있었다. 사람들 선택에 달린 거다. 검·인정을 하면 좌파 학자가 설치게 된다는 건데, 그렇게 자신이 없나. 이원복 총장 같은 분을 모시면 되지(웃음). 역사를 편협하게 보지 않고 교류사 차원에서 폭넓게 보는 이 총장의 시각에 동의한다.

    이원복 학자는 쉬운 걸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고, 만화가는 학자가 어렵게 만들어놓은 걸 쉽게 만드는 사람이다(웃음). 사실 역사학계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1980년대 학번이고, 당시 민중사관이 유행한 건 맞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 이런 것은 다 지나간 얘기고….

    양면을 인정하는 성숙함

    강영진 국정교과서 논란은 결국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 핵심인 듯하다.

    이원복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의 딸이어서 그렇지,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정통성이다. 대한민국을 계속 북한과 동렬에 놓으니까. ‘정부 수립’이냐 ‘국가 수립’이냐는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살고 있으면 국가 수립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안경환 남북은 이미 두 개의 국가로 인정받고 유엔에 가입했다. 박 대통령이 지지율이 낮을 때 라디오 인터뷰를 했는데, 대통령 지지율에는 아버지(박정희) 몫도 있고, 그 시절을 힘들게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있다고 했다. 그 지지율이 30%는 될 거라고 했더니, 제목을 ‘박 대통령 지지율 0%’로 뽑았더라(웃음).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기여를 누가 부정하겠나. 세계사적으로 보면 역시 공(功)이 많았다. 독재의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았고, 독재의 강도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박근혜 정권이 끝나면 다음 지도자는 이 문제에서 벗어날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향수는 일단락될 것이고 그다음은 다를 거다.

    강영진 박정희 정권 시절의 공이 많으냐, 과(過)가 많으냐는 진영대결의 핵심 아닌가. 소설가 김훈이 “공은 땅을 덮고, 과는 하늘을 찌른다”고 한 것처럼, 양면을 인정하는 성숙함이 필요한 것 같다.

    이원복 물론 양면을 인정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박정희 독재가 없었다면 이런 나라 됐을까’ 하는 시각도 있으니까. 물론 반대의 경우도 상상해볼 수 있다.

    안경환 지난 대선 때 칼럼을 통해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공을 받으려면 과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괄 상속을 해야 한다. 공이 많다고 보는 쪽은 산업화·근대화 세력이고, 과가 많다는 사람들은 민주화운동 하다가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그 피해자들도 지금 경제적 열매를 누린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 이해관계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원복 진영대결이라고 하는데, 확실하게 나눠진 게 아니라 극좌와 극우로만 갈라진 것 같다. 극과 극이 부딪치니 시끄럽게 싸우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절대 다수는 아니다.

    안경환 그렇다. 대통령선거 때 여야 후보 공약 90%는 같다. 과거에 무상급식을 얘기하면 ‘빨갱이’라고 했는데, 새누리당은 당 색깔도 빨간색으로 바꾸고 먼저 복지를 들고 나왔다. 시대 흐름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무(無)데올로기’ 시대 한국만 ‘과(過)데올로기’ 사회”
    ‘좌우지간 인권이다’

    강영진 어제(10월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성애 동성혼 문제 토론회’에서 조우석 KBS 이사는 “동성애자들은 더러운 좌파”라고 해 논란이 됐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 더 나아가 다문화 문제는 어떻게 보나.

    이원복 세계적 추세는 동성애를 호불호가 아니라 유전자 문제로 본다. 심지어 교황도 교회에선 받아들일 수 없지만 차별대우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동성애자를 ‘더러운 좌파’ ‘국가전복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경직된 발언이다.

    안경환 사람에 따라 혐오할 수는 있지만, 책임 있는 기관이나 단체의 인사가 사회 흐름을 막는 과도한 발언으로 논의 자체를 막으면 안 된다. 미국에서는 동성애자 결혼이 허용된 주도 있다. 종교를 떠나 개인 사생활과 선택의 문제다. 우리의 국가인권위원회 법에도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고 돼 있고,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로 동성애 인권은 이미 세계적으로 합의를 본 사안이다. 반대자가 기독교계의 다수는 아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면 생각을 달리한다.

    “세계는 ‘무(無)데올로기’ 시대 한국만 ‘과(過)데올로기’ 사회”
    이원복 네덜란드는 5가지 금기(성매매, 낙태, 안락사, 동성애, 마약)를 모두 허용했다. 이들 금기의 공통점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의 문제라는 점이다. 성매매도 ‘릴랙스 인더스트리(Relax Industry)’라고 한다. 우리는 이 5가지를 법으로 금지해놓았다. 공중화장실이 없으면 모든 공동체가 화장실이 되듯, 성매매는 주택가로 들어온 지 오래다. 우리는 시민 중심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시민이 아닌 공동 가치 중심으로 법을 제정하는 것 같다.

    강영진 안 교수는 서울시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 위원장이었는데, 동성애 차별 금지를 담은 인권헌장 제정은 무산됐다.

    안경환 박원순 서울시장 요청으로 맡았다. 인권위원장 하고 나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2011년 12월부터 1년간 신동아에 글을 연재했는데, 제목이 ‘좌우지간 인권이다’였다. 좌든 우든 우리가 소중히 생각할 문제는 인권이다.

    강영진 나도 안 교수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일종의 회고록으로 기억하는데, 인권위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겪은 갈등 대목도 기억이 난다. 어쨌든 동성애는 개인의 취향, 이 총장 말씀처럼 유전자 문제로 봐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반대할 자유’와 관용

    안경환 우리는 북한보다 훨씬 우수한 체제이며, 이데올로기 경쟁은 끝났다.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이 떼쓰는 걸 어느 정도 들어주는 여유가 있어야 하고, 관용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체제가 북한보다 우수한 이유가 뭔가. 반대할 자유가 있는 사회라는 점이다. 자유민주체제는 ‘사상의 공개시장’이 있고, 누구든지 자신이 믿는 말을 내다 팔면 된다. 사는 사람 없으면 스스로 전을 접고 물러나면 된다. 그걸 두고 미리부터 ‘불량상품이니까 시장에 들어오지 말라’고 제한하는 건 북한 체제 아닌가.

    이원복 그렇다. 남북이 갈등하는 것도 근본적인 의식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나를 받으면 나도 하나 줘야 한다. 반면 사회주의는 받는 걸 당연시한다. 북한에서 볼 때는 (남한이) 당연히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안 주니까 열 받아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일으킨 것 아닌가. 북한이 그렇게 대응해선 안 되지만, 서구적 잣대로만 볼 게 아니라, 안 교수 말씀처럼 우리도 어느 정도 포용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강영진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북쪽 지역에 남쪽 인사의 동상을 세우는 등 사회통합에 노력하면서 현재의 미국을 일궜다. 성소수자든, 사회적 약자든 우리 사회는 ‘다름’과 ‘틀림’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결국 갈등의 원죄 치유법은 통일인가. 합리적 보수주의자인 이 총장의 생각은….

    이원복 60세가 넘으면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보수라고 하네(웃음). 통일 얘기하면 독일 통일과 비교하는데, 한반도 상황은 독일과는 다르다. 독일은 너무 강하니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떼어놓은 거고, 우리는 너무 약하니까 떨어진 거다. 독일은 외세형, 우리는 외세형+내재형 분단이다. 외세형인 독일은 점령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폴란드 등 주변국이 ‘오케이’ 하면 통일된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해 유대인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우리 주변 4대국은 통일을 바랄까. 통일은 안 올 수도, 갑자기 올 수도, 먼 훗날에 올 수도 있다. 3가지 경우를 모두 준비해야 한다.

    안경환 남북이 동질성을 갖고 통일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우리처럼 갈등구조가 심한 나라에서 엄청나게 많은 ‘2등 국민’을 만들어낼 거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는데, 그건 북한의 싼 노동력과 자본을 이용한다는, 일종의 천민자본주의적 접근이다. 한국에 온 탈북자들도 경쟁을 못 견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원복 그렇다. 갑자기 통일되면 재앙이다. 서독은 유럽에서, 동독은 공산권에서 부자 나라였지만 통일 후 통일총리 헬무트 콜은 경제 문제 때문에 물러났다. 그런데 북한은 제일 가난한 나라이고, 우리도 국민소득 3만 달러가 채 안 되는 나라다. 그러니 당장은 문화적 갈등부터 해결해야 한다. ‘빠빠낄낄’이라는 말을 아는가. ‘빠질 땐 빠지고 낄 땐 끼라’는 말이다. 요즘 이런 말을 쓰는데 북한 사람들이 알아듣겠나. 문화적 동질성과 의식구조의 동질성부터 갖춰야 한다. 동·서독 근로자 급여가 몇 배 차이 나니 동독 근로자들이 서독으로 가서 일했다. 하지만 경쟁을 견디다 못해 곧 돌아갔다. 과거 동독에 갔을 때 테이블 4개 있는 식당에 종업원만 20명이 있더라. 그런데 아무도 일을 안 하더라. 그런 사람들이 경쟁을 이해하려면….

    환향녀와 샤일록

    강영진 탈북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가장 곤혹스럽다고 한다. 탈북자라고 말하는 순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한다. 탈북자나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 혹은 갈등도 엄존한다.

    이원복 그렇다. 다문화가정 180만 명을 우린 2등 국민 취급하며 무시한다. 우리가 3D업종 취업을 꺼리니 그 사람들이 와서 그 일을 한다. 우리가 모셔온 거다. 그래놓고는 좀 있다가 돌아가라고 한다. 우리는 원조를 받다가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다. 새마을운동도 수출한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우리도 참 못살았다. 그러던 우리가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을 차별하고 편견을 갖고 대하면…. 갈등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다문화 사회는 시한폭탄이 될 거다.

    안경환 제국을 움직이는 기본 원칙은 소수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바빌로니아가 함무라비 법전을 만든 이유도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제국은 다수(주류)가 소수(비주류)를 배려하면서 이끌어왔다. 지금도 선진국 가운데 다문화 국가가 아닌 곳이 없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을 활용하고 보충하면서 나라의 힘을 길러야 하는데, 우린 작은 나라라 그런지 배척이 심하다. (생존력 강한) 중국인이 와도 버텨내기 힘든 유일한 나라다.

    이원복 족보를 만든 이유가 피 섞이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는 주장도 있다. 제국의 힘은 관용과 포용에서 나온다. 600년 역사의 오스만 제국도 포용을 바탕으로 했다.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독선이 강해지면서 망했다. 그런데 한국인은 민족이란 단어를 오해한다. 민족은 영어 ‘네이션(nation)’에서 나온 건데 신화, 문화, 언어를 공유하지만 핏줄 개념은 없다. 19세기 말 일본 학자가 민족이라고 번역하면서 핏줄 개념이 생겼다. 이것부터 빼내야 한다. 환향녀(還鄕女)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배타성이 강하다.

    안경환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 샤일록은 외국인이고 소수종교 신자였지만 경제활동을 보호해줬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중국인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했고, 자장면 가격도 마음대로 올리지 못했다. 자본과 상품이 이동하는데 사람이 이동하는 건 당연하다. 이민을 가면 당대의 고생은 각오한다. 그러나 자식대는 다르다. 따라서 다문화가정 2세들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 동화하느냐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이들이 2등, 3등 국민이 되면 우리 사회의 갈등이 증폭한다.

    강영진 우리가 외침을 많이 받다 보니 배척과 편견이 생긴 것 아닐까.

    안경환 작은 나라였을 때는 외세에 대항하면서 뭉치는 게 장점이었다. 큰 나라가 되려는 지금과는 맞지 않다. 소수가 뭉치는 것은 자구행위지만, 다수가 모이면 집단폭력이 된다.

    “세계는 ‘무(無)데올로기’ 시대 한국만 ‘과(過)데올로기’ 사회”
    邪와 正, 진리와 진실

    강영진 최근 불교계에서는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을 많이 얘기한다. ‘모두 옳고 모두 틀리다’는 개시개비(皆是皆非)와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 같은, 하나의 옳음이 아닌 복수의 옳음을 전제하고 갈등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다양성과 정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원복 정의의 개념이란 게 있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히트했지만, 정의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다. 히틀러도 망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정의였을 것이다. 인류 보편적 정의라는 게 있을까.

    안경환 ‘살인을 하지 마라’ 같은 도덕 문제는 어느 정도 합의가 됐다. 그러나 정치체제나 이데올로기에 대해선 항구적 평가가 있을 수 없다. 서울과 평양 두 도시를 관통하는 정의가 있나. 평양의 정의는 우리에겐 부정의다. 무엇이 정의냐는 분명치 않다. 친일파 청산이나 과거사 문제를 정의로 보지만, 70년 후 사람이 70년 전 일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대해 합의된 게 없다. 러시아 혁명 이후 나온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전체주의 비판서였다. 그런데 2002년 미국 작가 존 리드는 ‘자본주의 동물농장’을 썼다. 2002년 9·11 사태 이후의 미국 사회를 비판했다. 사회주의의 대안인 미국 자본주의 역시 금융, 환경오염 등의 동물농장으로 표현한다. 시대마다 정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사(邪)냐, 정(正)이냐는 합의가 있을 수 있겠나. 우리 체제가 우수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웬만하면 참아주고, 약자가 강자에게 떼쓸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원복 좌파의 정의는 공동체, 우파의 정의는 개인이다. 둘 다 맞을 수도,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분열과 갈등을 반드시 나쁘게 볼 건 아니다. 진리는 진실과 다르고, 진리는 규정하기 나름이다. 정의도 마찬가지다.

    이원복 세대갈등 문제도 심각한 것 같다. 청년실업이 심화하면서 ‘헬조선’(한국을 지옥에 빗댄 말), ‘5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을 포기한 세대)란 신조어가 등장하고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도 커진다.

    이원복 세대갈등이 아니라 세대단절 아닌가. 2030, 4050, 6070세대의 의식은 완전히 다르다. 6070은 완전히 자수성가한 사람들이고,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 2030은 이젠 ‘7포세대’(5포+꿈, 희망을 포기한 세대), ‘n포세대’라고 한다. 4050 학부모는 자녀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한다. 이런 말은 그들이 산업화사회에서 자라며 들은 말이다. 이 말이 이젠 안 먹힌다. 완전히 단절됐다. 부모는 ‘노력하지 않고 포기하느냐’고 하고, 애들은 ‘노력해도 안 되는데 뭘 노력하냐’고 반발한다.

    세대를 연결하는 끈

    안경환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 세대는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믿음으로 살았다. 지금 세대는 뭘 해도 아버지 세대만큼 안 된다. 다만 뭘 해도 굶어죽지는 않는다. 그럼 뭘 할 것이냐. 일상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변호사, 의사 같은 좋은 직업을 가져야 행복하다는 틀은 깨졌다. 젊은 세대는 세계를 무대로 일상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 세계는 넓다.

    이원복 우리 세대는 모든 게 블루오션이었다. 신문팔이가 대우그룹 회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게 레드오션이다. 안 교수 말씀대로 우리가 겪은 절대 빈곤은 없지만, 상대적 빈곤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니 대책이 없다. 100억 가진 사람이 101억 가진 사람에 비해 불행하다고 느낀다. 비교하지 않는 게 행복의 키포인트 중 하나인데 그렇지 못하다.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를 이해해야지 따라오라고 하면 안 된다. 어른들이 젊은이를 이해하는, 세대를 연결하는 끈을 만들어야 한다.

    강영진 세대를 연결하는 끈, 참 좋은 표현 같다. 결국 우리 사회의 갈등은 그런 끈을 상대에게 내줘야 풀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스스로 풀어야 하는데,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이원복 갈등은 강제로 봉합하면 안 된다. 가장 큰 문제가 갈등 속에 증오가 있다는 점이다. 증오가 없다면 갈등은 바람직할 수도 있다. 증오라는 독소를 빼는 것이 당면과제다.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극좌와 극우의 상호 증오는 심각하다. 증오와 갈등을 대화로 풀어야 할 정치권도 정면승부만 한다. 좀 즐겨야지. 여야가 달라도 일 끝나면 함께 노래방도 가야지. 대통령도 야당 의원에게 전화해 정책을 설명하는 감동의 정치를 해야 한다. 지면 죽으니까 정면승부만 판친다. 나도 이명박 정부에서 사회통합위원회 민간위원이었지만 사실 한 게 없다. 갈등 봉합은 인위적으로 할 수 없다.

    안경환 대등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풀려면 강한 쪽의 관용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갈등은 기성세대, 기득권자들의 싸움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해야 한다. 싸움과 갈등으로 인한 수혜나 피해는 다음 세대 몫이다. 그 쪽을 보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최소한 다음 세대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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