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전모 씨가 엽총을 난사해 형 부부와 출동한 경찰관까지 살해한 뒤 자살한 경기 화성시의 주택 현장.
첫 번째 살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아들 강씨는 전기충격기를 구입해 부모가 사는 경남 사천시로 내려갔다. 강씨는 이튿날 집 마당에서 전기충격기와 가스분사기로 아버지를 쓰러뜨린 뒤 각목으로 수차례 내리쳤고 딸도 철근을 휘두르며 폭행에 합세했다. 이들은 가까스로 사건 현장에서 도망쳐 나온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8월 13일 열린 1심 재판에서 중간에 마음을 돌린 아내 김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강씨 남매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정신질환 가족 쉬쉬하다가…
보험금과 재산 등 금전을 둘러싼 범죄는 최근 부모뿐 아니라 부부, 형제 등을 상대로도 자행된다. 가족 간 분노 범죄가 우발적이라면 금전을 노린 범죄는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살해 후 불을 질러 범죄 흔적을 지우거나 방화로 위장하는 수법도 동원된다.
지난 2월의 경기 화성 엽총 난사 사건은 상속재산을 둘러싼 다툼이 ‘계획적 총기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낳은 경우다. 일가족 2명과 경찰관 1명 등 3명이 희생됐다. 같은 달 발생한 세종시 편의점 총기 난사 사건은 내연녀를 비롯한 일가족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총기를 사용해 한꺼번에 여러 명의 사망자를 낳는 가족 간 살인사건은 과거엔 찾아보기 드문 사례다. 범죄 전문가들은 이처럼 가족살인이 전례가 드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점을 우려한다.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는 가족 간 살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서울지방경찰청 정성국 검시조사관(이학박사)이 지난해 대한법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3년 3월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존속살해 사건 중 정신질환을 가진 피의자가 저지른 범죄는 약 40%에 달했다. 자식살해 사건 피의자 중 정신질환자 비율은 약 30%였다. 정성국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정신질환자에 의한 가족 간 살인은 환청이나 망상을 동반하는 조현병(정신분열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매우 잔혹한 게 특징이다. 평소 멀쩡하던 사람이 환청이 들리고 망상에 사로잡히면 옆에 있는 가족이 귀신이나 악마로 보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20대 초반 대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전날 함께 목욕탕에도 다녀왔다. 다음 날 딸이 어머니를 살해한 뒤 안구를 파내고 아킬레스건을 잘랐다. 우리나라에선 가족 중에 정신질환자가 있어도 쉬쉬하면서 병원 치료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조기 치료로 예방이 가능한데 그릇된 편견이 가족 간 살인범죄를 증가시킨다.”
가족살인 가운데 존속살해가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나라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 비해 3배 정도 높다. 이는 우리의 독특한 가족문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그런 부모에 기대 성인이 돼서도 경제적·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자식이 많다보니 가족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9월 경찰교육원은 ‘무궁화 디딤돌 캠프’를 마련해 살인범죄 피해 유가족 지원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