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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경제보고서 | LG경제연구원

할 말 다 하는 회의 화끈한 ‘창조적 마찰’

집단 창의· 협업 모델 픽사(Pixar) ‘브레인트러스트’

  • 박지원 | LG경제연구원 연구원

할 말 다 하는 회의 화끈한 ‘창조적 마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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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다 하는 회의 화끈한 ‘창조적 마찰’

픽사 사옥 내부.

첫째, 이슈 해결 중심의 회의다. 단순히 스크리닝이나 진척 상황을 체크하기 위한 회의가 아니라 창작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동료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덧붙여주는 자리라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픽사의 경영자가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을 소집하기보다 영화감독과 제작팀이 회의를 적극 소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둘째, 브레인트러스트가 원활하고 생산적으로 운용되는 것은 회의라는 형식에 치중하기보다 평소에도 의견과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상호 교환되고 결합될 수 있는 분위기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누가 어느 분야의 전문가인지 알고, 서로 편안한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거나 토론하는 문화가 조직 내에 잘 형성되어 있어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이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런 문화는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이끌던 시절부터 싹텄다. 잡스는 픽사의 사옥을 설계할 당시 ‘우연한 맞닥뜨림’을 핵심 요소로 삼고, 의도적으로 구성원들이 자주 접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의도 덕분인지 픽사 구성원은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 받고자 하는 팀 관리자에게 사전 승인을 받고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당사자에게 직접 회의 참석을 요청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됐다.

할 말 다 하는 회의 화끈한 ‘창조적 마찰’

픽사의 작업 현장.

기업들의 회의나 의사결정 과정을 살펴보면, 집단 창의를 저해하는 문제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피라미드형 위계 문화에서 상급자의 포지션 파워(position power)가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즉, 거의 모든 회의가 상급자 의견 위주로 진행된다. 물론 전문성이 높은 사람이 포지션 파워도 강할 수 있지만, 최근엔 기술의 진화 속도가 빨라지고 아이디어나 지식의 수준이 반드시 포지션과 비례한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또한 회의 결과가 회의 참석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반영한 합리적 결론이 아니라 처음부터 위계상 상급자인 리더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에 따라 결론이 정해지는 오류가 쉽게 발생한다. 이를 방지하려면 리더가 제기한 의견이라 해도 실무자들의 판단 아래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기업 문화에서는 여전히 리더의 의견을 어떻게든 반영시켜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느 조직에나 위계라는 것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픽사에는 이러한 문제가 없었을까. 픽사에서도 처음에는 브레인트러스트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원인을 살펴보니 픽사의 핵심 전문가들인 브레인트러스트 멤버들의 권위 때문이었다. 이에 픽사는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을 순전히 동료로서 조언을 주기 위한 자리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고, 그 결과 회의 효과가 극적으로 개선됐다고 한다.

다시 말해 브레인트러스트 멤버는 조언만 해줄 뿐 지위를 앞세워 감독에게 구체적인 일을 지시하진 않는다. 해당 애니메이션에 대한 의사결정권은 전적으로 그 영화의 감독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브레인트러스트 멤버보다도 오랫동안 고민하는 영화감독이나 제작팀의 해법이 더 훌륭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에드 캣멀 설립자는 이렇게 말한다.

“픽사가 병원이고 영화가 환자라면, 브레인트러스트는 매우 신뢰가 가는 의사들인 셈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화감독이나 제작자도 마찬가지로 의사라는 점이다. 문제가 뭔지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통해 의견을 모으는 것일 뿐 환자에 대한 치료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환자의 주치의인 영화감독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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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사가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 왼쪽부터 ‘몬스터 주식회사’, ‘월 E’, ‘토이스토리’.

일에 초점 맞춘 창조적 갈등

린다 힐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등의 공동 집필 저서인 ‘집단 지성(Collective Genius)’에 따르면, 혁신을 거듭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 상호 신뢰, 상호 존중의 문화를 형성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창조적 갈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는 많은 조직에서 의견충돌 등의 갈등에 대해서는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회의 때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얘기하기 어렵고, 동료 간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다보니 생각이 다르더라도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굽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협업자들 사이에 탄탄한 신뢰가 구축돼 있지 않아 협업을 통한 공동의 목표보다 나 또는 우리 부서가 돋보일 수 있는 일에 중점을 두거나 자신의 기여를 인정받는 데 급급한 사례도 있다. 개인 간 경쟁을 자극해 성과 극대화를 유도하는 성과주의 인사 풍조가 이런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크리스토퍼 반스 워싱턴대 교수는 팀 간 전투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개인 성과주의를 강조하면 팀 내 소통이 줄고, 협동하기보다 개인 플레이를 하는 행위가 늘어나면서 동료를 돕는 행동이 저하되고 성과의 질도 떨어진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일이나 아이디어가 비평받을 때 불쾌해한다. 픽사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빈번했다고 한다. 픽사는 불쾌한 감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드백을 해주는 집단이 자신과 경쟁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임을 강조했다. 또한 브레인트러스트의 핵심적인 가치로 ‘솔직함(candor)’을 강조했다. 즉, 구성원들이 신뢰를 기반으로 누구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픽사의 집단 창의력의 원천이라는 점을 경영 원칙으로 명확히 했다.

우선 픽사는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의 피드백이나 의견 교환의 장을 통해 그것이 구성원 개인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작품에 무언가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를 형성했다. 의견이 충돌하거나 분위기가 격렬해질 수도 있지만, 이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의 표출일 뿐이고 결과적으로 작품이 더 나아짐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중에 갈등이 생기더라도 관계가 아니라 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성과를 창출하는 창조적 갈등이 된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발언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에드 캣멀은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에 참석해 모든 참가자가 누구나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정을 갖고 관객 처지에서 솔직하게 비평하되, 그 비평 덕분에 더 건설적인 의견이 오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작품이 점점 나아지는걸 보면서 구성원들은 더 늦은 시기에 고객에게 나쁜 평을 받기보다 수정 가능한 시간에 동료들로부터 문제를 지적받고 고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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