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예산 3배 늘고 선수촌 부도 민간업체에 떠넘긴 게 실책

동계올림픽 개최지 현지취재-캐나다 밴쿠버

  • 밴쿠버·휘슬러=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입력2015-10-23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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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8억C$ 쓰고 효과는 30억C$
    • 실내 빙상경기장 사후 활용은 ‘흑자’
    • ‘부도’ 빌리지, 지난해 분양 완료
    • 위기의 슬라이딩센터, 5년 후 다시 짓는다?
    예산 3배 늘고 선수촌 부도 민간업체에 떠넘긴 게 실책

    밴쿠버 컨벤션센터

    ‘메이플(단풍나무)’의 나라 캐나다. 9월 중순, 밴쿠버 도심 곳곳은 벌써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맑고 청명한 초가을 하늘과 만년설이 쌓인 웅장한 산세, 깊고 울창한 원시의 삼림. 천혜의 자연을 배경 삼아 해안가를 따라 그림처럼 펼쳐진 마을.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답다. 2010년 바로 이곳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도시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2010밴쿠버 동계올림픽은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당초 예상한 총예산 20억C$(캐나다달러)의 3 배에 달하는 58억C$가 투입됐으나 17일간의 대회 동안 GDP생산효과 25억C$, 관광소득 5억C$ 등 30억C$의 경제 효과를 얻는 데 그쳤다. 단순 계산으로만 28억C$의 적자를 본 셈이다. 2010년 12월 31일 당시 환율인 1C$당 1121원으로 환산하면 3조1388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2008년 전 세계에 불어닥친 글로벌 경제위기로 경기장과 각종 인프라 시설 건설비용이 대폭 상승한 것이 가장 큰 실패 요인으로 지적됐다. 여기에 10억C$(1조1210억 원)를 들여 고급형 콘도로 지은 밴쿠버올림픽 선수촌 분양 실패까지 겹치면서 적자 폭이 더욱 커졌다. 대규모 미분양 사태로 강원도와 평창군의 가장 큰 골칫거리로 전락한 고급형 콘도 ‘알펜시아’가 연상된다. 평창동계올림픽 예산이 당초 8조8000억 원에서 13조 원으로 크게 늘면서 과잉투자 논란에 휩싸인 것도 비슷하다.

    올림픽 이후 5년. 실패한 올림픽을 치렀다는 밴쿠버에는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까. 경기장과 선수촌 등 각종 올림픽 유산이 제대로 활용되는지도 궁금했다.

    밴쿠버는 캐나다 서쪽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브리티시컬럼비아(British Columbia, 이하 BC) 주에 속한 조그만 도시다. 인구 60만 명에 면적 115㎢. 서울 강남·송파·서초, 이른바 강남 3구를 합친 정도의 크기(121㎢)에도 못 미친다. 그 주변으로 버나비, 리치먼드, 코퀴틀람, 서리 등 13개 위성도시가 둘러쌌다. 이들 전체를 통틀어 넓은 의미의 밴쿠버로 지칭하기도 한다.



    예산 3배 늘고 선수촌 부도 민간업체에 떠넘긴 게 실책

    밴쿠버 위성도시 리치먼드에 새로 지어진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 올림픽 때 스피드스케이트 경기가 열린 이 곳은 헬스센터와 농구장, 배구장, 탁구장 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시설로 바뀌었다. 평소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리는 ‘UBC 선더버드 아레나(오른쪽)’는 빙판 위에 마루판을 깔아 콘서트 등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된다.

    빙상장에서 테니스 대회

    시섬(Sea Island)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승용차로 밴쿠버를 남에서 북으로 관통해 도심 끝인 밴쿠버 항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 남짓. 이곳에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국제방송센터(IBC)’와 ‘메인프레스센터(MPC)’로 사용된 밴쿠버 컨벤션센터가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고 기자회견을 한 장소가 바로 여기다.

    밴쿠버의 랜드마크인 컨벤션센터는 원래 밴쿠버 동계올림픽 유치 이전인 1986년 지어졌다. 밴쿠버 동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VANOC, 이하 조직위)는 이 건물을 올림픽 기간에 MPC로 활용하기 위해 공간을 확장하는 한편, IBC 용도로 바로 옆에 건물 한 동을 새로 지었다.

    현재 기존 건축물인 동관은 크루즈 선착장과 호텔, 전시장, 영화관 등으로, 새로 지은 서관은 수상비행기 터미널과 국제 무역박람회 및 회의장 등 원래 목적대로 사용한다. 평일 오전인데도 시설을 이용하는 시민과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2002년 세계 최고의 컨벤션센터로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이어서 관광객뿐 아니라 시민에게도 인기가 많다”는 게 한국인 이민자 이소영 씨의 설명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가까운 곳은 5분, 멀어도 20분 내외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올림픽 시설이 집중돼 있다. 개·폐회식이 열린 ‘BC 플레이스 스타디움(BC Place Stadium)’,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경기장으로 쓰인 ‘퍼시픽 콜리세움(Pacific Coliseum)’, 아이스하키 경기가 펼쳐진 ‘캐나다 하키 플레이스(Canada Hockey Place·현 로저스 아레나)’와 ‘UBC 선더버드 아레나(UBC Thunderbird Arena)’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시설 역시 기존에 있던 경기장을 개·보수한 것으로, 올림픽 이후 다시 원래대로 사용한다.

    인구 60만 명에 불과한 도시에서 이처럼 많은 경기장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까. 캐나다 풋볼리그 ‘BC 라이온스(Lions)’팀 홈구장인 BC 플레이스 스타디움과 내셔널 하키리그 ‘캐눅스(Canucks)’팀 홈구장인 로저스 아레나는 리그 경기로 인해 비교적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 보인다. 특히 로저스 아레나는 세계적인 가수와 그룹의 공연 장소로도 유명하다. 10월에만 마돈나 투어 공연, 플로렌스 · 더 머신 음반발매 기념공연 등 4개의 대형 공연이 잡혔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캠퍼스 내에 위치한 ‘UBC 선더버드 아레나’는 어떨까. 마이크 이케다(Mike Ikeda) 운영 및 프로그램 매니저는 “2010년 올림픽 이후 계속 흑자였다”면서 그 비결을 설명한다.

    ‘캐나다 라인’의 기적?

    “UBC 남녀 하키팀 경기와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스케이팅 및 하키 프로그램 등 빙상경기장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이외에도 다양한 이벤트 장소로 사용된다. 테니스와 농구대회는 물론 음악 콘서트나 뮤지컬 등이 열린다.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테니스 대회 때는 얼음을 아예 제거하지만, 농구나 콘서트 등을 할 때는 빙판 위에 마루판 같은 바닥을 깔아서 무대를 만든다. 빙상경기나 빙상 프로그램보다 다른 이벤트로 올리는 수익이 더 많다. 올림픽 이전부터 다 계획했던 것들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새로 지은 실내경기장은 단 2곳뿐이다. 컬링경기가 열린 ‘밴쿠버 올림픽센터(Vancouver Olympic Centre)’와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으로 사용한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Richmond Olympic Oval)’이다. 이 가운데 밴쿠버가 아닌 주변 도시에 세워진 경기장은 오벌이 유일하다.

    리치먼드는 밴쿠버의 남쪽에 바로 붙은 위성도시로, 지역 발전과 함께 주민을 위한 다목적 체육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시가 적극적으로 유치에 나섰다. 조직위는 IBC·MPC가 마련된 밴쿠버 컨벤션센터와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을 연결하는 교통망 마련을 위해 전철 ‘캐나다 라인(Canada Line)’을 건설하는 등 많은 비용을 쏟아부었다. 이 때문에 과잉투자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덕분에 허허벌판이던 경기장 주변은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올림픽 이후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은 완전히 탈바꿈했다. 스피드스케이팅 트랙은 사라지고, 그 대신 국제 규격의 아이스링크 2개와 농구장, 배구 및 배드민턴장, 탁구장, 200m 육상트랙, 실내 암벽등반, 헬스센터 등이 들어섰다. 밴쿠버에서 유명한 요가센터도 입점했다. 덕분에 지역 주민으로부터 인기가 높다.

    애런 카이(Aran Kay) 프로그램 매니저에 따르면 지난해 이 경기장 방문객 수는 80만 명을 넘어섰고, 헬스센터 연간 회원 수는 6000명에 이른다. 또 경기장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 활동은 무려 100여 가지에 달한다는 것. 애런 카이 매니저의 이야기다.

    “올림픽 시설이지만 경기보다는 어떻게 건설하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했다. 그다음에 올림픽 때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를 치를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평창동계올림픽 시설도 대회 이후 성공적으로 유지하려면 경기장 건설보다 사후관리 계획을 먼저 세우는 게 중요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 주변 지역엔 요즘 아파트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과 같은 체육시설과 함께 들어선 전철 덕분에 이 지역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개발 붐이 인다는 것이다.

    제프 멕스(Geoff Meggs) 밴쿠버 시의원(박스 인터뷰 참조)은 “캐나다 라인 이용자 수도 올림픽 이후 대부분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민이 전철의 편의성을 알면서 오히려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인터뷰 | 제프 멕스(Geoff Meggs) 밴쿠버市 의원

    “빌리지 부도는 밴쿠버의 악몽이었다”


    예산 3배 늘고 선수촌 부도 민간업체에 떠넘긴 게 실책
    제프 멕스 밴쿠버 시의원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실패했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올림픽 이후 밴쿠버에 긍정적인 변화가 많았다는 이유다.

    “무엇보다 밴쿠버 시민이 많이 변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큰 대회를 치르면서 한 단계 성숙한 것 같다. 올림픽 기간에 보안 문제 때문에 다리 하나를 막은 적이 있다. 극심한 도로 정체로 시민과 관광객이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승용차는 줄어들고 대중교통 이용자가 늘면서 환경적으로 더 나아졌다.”

    -인프라나 경기장 시설에 지나치게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경제적인 올림픽이었다.”

    -밴쿠버 올림픽빌리지 개발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시 재정에 큰 부담을 줬다.

    “그건, 올림픽의 악몽이다. 충격의 연속이었다. 분양 실패에 충격, 개발업체 부도에 충격, 비정상적인 헤지펀드 이율에 또 충격. 시가 개발업체 보증을 서면서 떠안은 빚이 5억C$(4500억 원)에 달했다. 헤지펀드 이자만 9000만C$(870억 원)였다. 대출기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헤지펀드 이자만큼 부담을 줄였는데, 그 정도로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지난 5년간 많이 힘들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건가.

    “빌리지 디자인부터 개발까지 모든 것을 개발업체에 일임한 것이 문제였다. 무엇보다 비즈니스 모델에 문제가 있었다. 시는 땅을 (개발업체에) 비싼 가격으로 파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결국 업체는 땅을 비싸게 사느라 능력을 넘어서는 엄청난 빚을 내야 했고, 시가 그런 회사의 보증을 서준 것도 문제였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에 대해 조언한다면?

    “2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저런 압박이 있겠지만 예산이나 시설 준비에 대한 걱정보다는 올림픽을 경험할 선수와 국민에게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더 좋은 기억을 선물하고, 국민에게 올림픽을 치른 것에 대한 자부심을 안겨주는 게 바로 올림픽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빌라 한 채 최고가 90억 원

    가장 큰 골칫덩이는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면서 개발업체 부도로 이어진 밴쿠버 올림픽빌리지다. 선수촌으로 사용한 곳인데, 밴쿠버 시가 개발업체의 빚보증을 서면서 고스란히 시 부담으로 넘어왔다.

    평일 오전, 빌리지를 찾았다. 겨울을 재촉하듯 비가 내렸다. 해안가를 따라 5~6층 높이의 깔끔한 빌라가 줄지어 있다. 건물 맨 위층 펜트하우스가 눈에 띈다. 통유리로 만들어진 바다 쪽 창문이 시원스럽다. 1층 빵집과 커피숍 등 상가는 손님으로 북적인다. 빗속에서도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걷거나 뛰는 이가 적지 않다.

    조그만 바닷길(폴스만) 건너로 웅장한 BC 플레이스 스타디움과 도심 고층빌딩들이 보인다. 그만큼 도심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전철역도 걸어서 7~8분 거리다. 주변 환경과 교통 등 모든 면에서 고급 주택가로 손색없어 보인다.

    개발업체는 2007~2008년 선(先)분양 당시 주변 시세를 반영해 40만C$(3억6000만 원, 당시 환율 900원/C$ 기준) 대부터 500만(45억 원)C$ 대까지 다양한 가격대로 내놨다. 가장 비싼 것은 1000만(90억 원)C$가 넘었다. 그러나 분양률은 30%에 그쳤고, 악재가 이어졌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자 호황을 누리던 캐나다 주택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이 전체적으로 20% 이상 빠졌다. 결국 개발업체는 재정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개발업체의 재정 건전성이었다. 신용도가 떨어져 캐나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없자 미국 뉴욕까지 가서 헤지펀드 자금을 끌어왔다. 당연히 이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위기가 왔다. 캐나다 상황을 잘 모르는 뉴욕 금융기관은 개발업체에 상환을 독촉했고, 그래서 결국 부도가 난 것이다. 그 빚을 보증한 밴쿠버 시가 그대로 떠안으면서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예산 3배 늘고 선수촌 부도 민간업체에 떠넘긴 게 실책

    개발업체 부도로 밴쿠버 시의 재정부담을 가중시킨 ‘올림픽빌리지’.



    저소득층에 30% 제공

    밴쿠버 시가 올림픽빌리지 미분양 및 개발업체 부도 사태를 해결하려 만든 자문위원회에 초기부터 참여한 짐 오데아(Jim O′Dea) 테라하우징 대표의 설명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왜 밴쿠버 시가 개발업체 대출에 보증을 서준 건가?

    “시가 개발할 토지를 경매에 부쳤을 때 가장 높은 가격을 써서 선정된 업체다. 선정 과정에 특혜라든지 다른 문제는 없었다. 시는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이 업체가 선수촌을 제때 제대로 짓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보증을 서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 고급화 전략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가?

    “사전 계획에 따라 빌리지의 30% 정도는 저소득층에게 값싸게 제공하기 위해 지었다. 나머지를 일반 분양을 통해 팔아 수지를 맞추려다보니 조금 비싸진 면도 있지만, 당시 시세가 높았고 위치가 좋은 점도 반영됐다.”

    ▼ 현재 분양 상태는 어떤가?

    “다행히 지난해 모두 분양돼 손익분기점을 넘은 상태다. 시에서 마케팅 전문가를 고용해 판매방식을 특화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동안 자주 발생하던 누수나 히터 고장 등 밸런스 문제도 대부분 해결된 것으로 안다. 5년 안에 이처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칭찬해줄 만하다.”

    ▼ 저소득층에게 제공하기로 계획한 30%는?

    “그것 때문에 논란이 많았는데, 다행히 계획대로 저소득층에게 제공됐다. 좀 더 많이 못한 것이 아쉽다.”

    예산 3배 늘고 선수촌 부도 민간업체에 떠넘긴 게 실책

    밴쿠버에서 휘슬러까지 이어지는 ‘시 투 스카이(Sea to Sky)’ 고속도로.

    ‘죽음의 고속도로’

    예산 3배 늘고 선수촌 부도 민간업체에 떠넘긴 게 실책

    ‘휘슬러 슬라이딩센터’(맨 위)와 크로스컨트리·바이애슬론 경기장(중간), 스키점프대 등은 겨울시즌 준비를 위해 휴업 중이다. 여름철 이용객이 많지 않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실외에서 펼쳐지는 스키점프와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등 노르딕 경기와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 등 슬라이딩 경기는 휘슬러에서 열렸다.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밴쿠버 지역의 온난한 기후 특성상 분산 개최할 수밖에 없었던 것. 휘슬러는 밴쿠버에서 북쪽으로 12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승용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는 ‘시 투 스카이 하이웨이(Sea To Sky Highway)’. 실제 밴쿠버 앞바다에서 시작해 해발 수천 km씩 하늘 높이 솟구친 휘슬러 일대의 준봉들로 안내한다. 한때 이 고속도로는 ‘죽음의 고속도로’로 불렸다. 가파른 계곡과 호수를 따라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져 추돌사고가 많았던 것.

    조직위는 올림픽을 앞두고 8억C$ 가까이 투입해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확장하고, 포장도 새로 했다. 덕분에 공사 이후 추돌사고는 크게 줄었다고 한다. 도로 중간 중간 나타나는 호수들과 눈부신 만년설이 쌓인 웅장한 산봉우리가 어우러진 풍광은 환상적이다.

    조직위는 휘슬러에 스키점프와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등 노르딕 경기를 위한 ‘휘슬러 올림픽파크(Whistler Olympic Park)’와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 등 슬라이딩 경기용 ‘휘슬러 슬라이딩센터(Whistler Sliding Centre)’를 새로 지었다. 이들 시설을 운영 및 관리하는 곳은 ‘휘슬러 스포츠 레거시(Whistler Sport Legacy)’라는 비영리 조직이다. 동계올림픽 강국인 캐나다에서도 비인기 종목으로 사후 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다.

    9월 하순 휘슬러의 두 경기장은 모두 휴업 상태였다. 인적 없는 황량한 입구에 ‘여름 시즌 6월 27일부터 9월 6일까지만 문을 연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여름에 이들 시설을 찾는 사람은 고작 3000명 안팎이라는 게 시설 관계자의 설명이다.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초까지 이어지는 겨울 시즌에는 월드컵과 세계 챔피언십 등 각종 국제대회가 열리고, 국가대표는 물론 각국 선수의 훈련장소로도 활용되지만 적자를 면하기엔 역부족이다.

    루신다 재거(Lucinda Jagger) 휘슬러 스포츠 레거시 부사장은 “슬라이딩 센터 하나에서만 매년 120만C$(10억 원) 정도의 적자를 본다”면서 “또 다른 비영리단체인 ‘게임스오퍼레이팅센터(Games Operating Centre, 경기운영센터)’의 자금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거 부사장은 “캘거리나 다른 미주지역의 관계자들과 소통하면서 적자를 줄일 방안을 꾸준히 논의하지만 아직까지는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라면서 “앞으로 5년 후 시설 재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 되면 더 큰 고민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인터뷰 | 낸시 윌렘-모든 휘슬러市 시장

    “여름철 관광객 늘리기가 적자난 해법”


    예산 3배 늘고 선수촌 부도 민간업체에 떠넘긴 게 실책
    ‘어떻게 하면 여름 시즌 관광객 수를 늘릴 수 있을까’. 낸시 윌렘-모든 휘슬러 시장의 고민거리다. 그래야 적자로 허덕이는 휘슬러 올림픽파크와 슬라이딩 센터의 미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그가 찾은 대안은 각종 스포츠·문화행사.

    “올림픽 이후 매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12개의 페스티벌을 한다. 매주 한 번씩 페스티벌이 열리는 셈이다. ‘크랭크웍스(Crankworx)’라는 게 있는데, 10일 동안 산악자전거를 타는 행사다. 8월에 열리는데 올해에는 1만 명 정도 참여했다. 또 밴쿠버 심포니오케스트라(시립교향악단)를 초청해 연주 행사를 할 때는 5000명쯤 모였다. 스포츠부터 문화까지 다양한 행사를 한다.”

    -효과가 있나?

    “올해 여름은 휘슬러 역사상 가장 바쁜 시기였다. 이전에는 한 해에 보통 200만 명 정도 찾았는데, 지난해에는 270만 명으로 늘었다. 여름철 관광객 수가 늘어난 덕분이다.”

    -동계올림픽 시설은 어떻게 운영하나?

    “휘슬러올림픽파크는 선수 훈련 이외에도 일정 기간 지역 주민이나 관광객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놨다. 그런데 슬라이딩센터는 선수 훈련이나 대회 이외에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가 어렵다. 유지비도 비싸다. 그동안 전체적으로 밴쿠버올림픽 유산 펀드 중 1500만C$(130억 원) 정도의 예산 지원을 받았다.”

    -휘슬러 올림픽빌리지는 별문제가 없었나?

    “전혀 문제가 없었다. BC 주정부와 올림픽조직위원회, 휘슬러 시위원회가 예산 규모나 시설계획 등 모든 과정을 함께 협의해 진행했다. 처음부터 지역 주민에게 분양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 분양 가격도 상한선을 둬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 그 때문에 지역 주민이 대부분 분양받았다. 다만, 일부는 여름이나 겨울에 훈련하러 온 선수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별도로 운영한다.”

    -성공적인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조언을 한다면?

    “경기장 등 시설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개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원봉사자와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다. 휘슬러에서도 이들의 도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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