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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극과 인간

연극 ‘스카팽의 간계’

무대에서 쓰러진 몰리에르의 물음 “스카팽, 간계인가 지혜인가”

  •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연극 ‘스카팽의 간계’

  • ● 혜성처럼 등장해 폭풍처럼 사라진 극작가
    ● 루이 14세의 외면에 끝내 무대에서 피를 토하고…
    ● 권력층 문제를 지혜로 해결하는 하인 스카팽
    ● 희극적 이성 즐기는 프랑스 국민성 간파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 제공]

예술가들은 종종 ‘무대 위에서 공연하며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 무대 위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극적인 임종은 찾아보기 어렵다. 20세기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1873~1921)도 1920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알레비의 프랑스 오페라 ‘유대 여인’ 공연 도중 각혈을 했지만 그로부터 8개월 후에 사망했다. 다만 세기의 극작가이자 연출자인 몰리에르(1622~1673)는 말 그대로 무대 위에서 인생을 마감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72년간 프랑스를 통치한 ‘태양왕’ 루이 14세는 한때 몰리에르의 독특한 재치와 유머에 푹 빠졌다. 그의 역작 ‘위선자 타르튀프’와 ‘돈 후안’은 귀족들의 비위를 다룬 내용 때문에 공연이 금지당했지만 루이 14세는 그를 신임하고 총애했다. 귀족들의 비난과 주변 동료들의 견제에도 끄덕하지 않던 몰리에르였지만, 왕의 취향이 음악과 발레로 바뀌면서 그와 그의 작품들은 외면받기 시작했다.


태양왕의 외면, 세상의 환호

‘폼페이의 죽음’에서 세자르 역을 연기하는 몰리에르(1868). [카르나발레박물관]

‘폼페이의 죽음’에서 세자르 역을 연기하는 몰리에르(1868). [카르나발레박물관]

몰리에르는 왕의 신임을 되찾기 위해 유작이 된 코미디-발레(연극과 음악과 발레가 융합된 장르) ‘상상환자’에 전 재산을 투자하며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루이 14세가 자신의 공연장을 찾아와 소원해진 관계를 되돌릴 것이란 기대를 했지만 왕은 끝내 공연장을 찾지 않았다. 실의에 빠진 그는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유작은 ‘아픈 데가 없는데도 자신이 아프다’고 생각하는 ‘건강 강박증’ 환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제 그의 몸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그는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롤러코스터 같았던 51년의 생을 마감한다.  

한편의 연극처럼 사라진 몰리에르의 본명은 ‘장 밥티스트 포클랭’. 왕실 가구의 장식을 만드는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왕실 악단 소속의 걸출한 음악가가 많은 외가의 도움으로 고급 왕실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가 수학한 클레르몽대는 국왕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명문 대학교였다. 학교에서 수강한 인문 강좌와 어린 시절 접한 파리 시내의 다양한 거리 문화는 그의 예술적 자양분이 됐다. 그는 장남이었지만 가업은 잇지 않고 극단을 창단하며 창작 혼을 불태웠다. 그러나 물정 모르는 23세 신출내기 예술가는 이내 파산했고, 모든 유산을 포기해도 감당 못할 거액의 빚을 지고는 전국을 떠돌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본명을 버리고 궁정음악가의 이름인 ‘몰리에르’라는 예명으로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했다. 13년 유랑 생활을 마친 뒤 천신만고 끝에 파리에 재입성한 35세의 몰리에르는 이전과는 달랐다. 가슴에는 유랑 생활을 하면서 만난 민중의 군상이 가물거렸다. 고상한 척하지만 괴팍한 인물들의 어리석음, 겉으로만 기품 있는 인물들의 이중성을 부담스럽지 않게 드러낼 수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심각하고 매서운 비극적 이성에 몰입하기보다는 소통의 여지를 남겨두는, 악의 없는 웃음과 따사로운 희극적 이성을 즐긴다. 세대와 시대가 변해도 한 나라의 국민성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이 몰리에르를 좋아하기보다는 몰리에르가 프랑스인의 정서를 꿰뚫은 작품을 창작했다고 볼 수 있다. 루이 14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절대존엄에 부응한 ‘거장 나팔수’

어쨌든 몰리에르의 애절한 구애를 외면한 루이 14세는 5세에 왕위에 올라 전제군주로 우뚝 서기 위해 수많은 정적을 내쳐야만 했다. 몰리에르는 왕실극단의 수장이 돼 절대존엄의 의도에 부응했다. 고매한 귀족들의 추악한 이중성을 철저하게 해부하고 비판했다. 현대 시각에서 본다면, 정권의 문화 장악을 위한 ‘거장 나팔수’였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해바라기처럼 태양왕을 숭배하고 찬양한 음악가 장 밥티스트 륄리(1632~1687)는 국왕의 총애와 혜택을 죽을 때까지 누렸지만, 인간의 이중적 잣대로 본성을 탐구하던 몰리에르는 왕이 정권을 장악하자 용도 폐기될 운명에 처해졌다. 오히려 왕에게 몰리에르는 풍자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륄리의 예술적 영광이 태양왕 시대에 한정됐다면 몰리에르는 사후 세상을 얻게 된다.    

몰리에르는 프랑스 연극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30년 동안 희극, 비극, 발레희극 35작품을 집필하고 연출하며 폭풍처럼 사라졌다. 그의 주옥같은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뺄 수 없는 고전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고, 전공자라면 대학에서 한 번은 배우는 인물이다. 사회적 모순에 우스꽝스럽게 의문을 던지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라는 근대의식을 전파한 그의 작품은 20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며 셰익스피어에 견줄 만한 ‘국민 극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국립극장 ‘코미디 프랑세즈’가 ‘몰리에르의 집’이라고 불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몰리에르식 코미디(희극) 문법에는 절대적인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허점과 결점이 가득한 인간만 있다. 몰리에르가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미덕은 그 누구도 완전무결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주장만이 정의가 아니라는 유연한 가치관을 지녔다. 

코미디는 관객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상식을 유쾌한 웃음 코드로 공감시킨다. 일상에서 체험하는 사회 부조리와 권력층의 탐욕과 편견을 생생하게 재현하기 때문에 관객은 거울을 보듯 연극에 빠져들며 강한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그의 연극은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현재의 관객은 비정상적인 과거를 체험하는 독특한 매력에 빠진다. 심각하지 않게 탐욕의 세상에 던지는 신랄한 조롱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한참을 웃다 보면 어느새 연극은 내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걸 깨닫는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를 보고 관객들이 웃는 것 같다. 이처럼 연극을 보면서 웃다가 양심이 찔린 다수는 자신을 되돌아본다. 시대를 관통하는 희극, 코미디의 힘이다.


변화무쌍한 장면 전환, 기발한 표현

이러한 몰리에르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권력의 이중적 위선에 대항한 작품으로 다채롭게 해석돼 공연되고 있다. 국립극단은 9월 4~29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몰리에르의 대표작 ‘스카팽의 간계’를 공연한다.  

간계(奸計)의 사전적 의미는 ‘간사한 꾀’다. 따라서 몰리에르의 산문희극 ‘스카팽의 간계’에서 주인공 스카팽은 성공을 위해 온갖 농간을 서슴지 않는 철면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스카팽은 여유를 바탕으로 자신이 계획한 바를 실행해 성공을 즐기는 진취적 인물이다. 따라서 ‘스카팽의 간계’라는 제목은 번역의 오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관객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 같다. 차라리 ‘스카팽의 지혜’가 작품 제목으로 적당한 거 같다. 스카팽은 속임수에 능수능란한 게 아니라 인간의 속물적 내면을 간파하고 엉뚱한 설정과 기발한 발상으로 고루한 지배층의 속성을 환기시킨다. 내용은 이렇다.
 
무대는 이탈리아 나폴리. 인색한 두 아버지(아르강트, 제롱트)와 사랑에 빠진 그 아들들(옥타브, 레앙드르)이 결혼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는 이야기다. 아버지들이 점찍은 여인들이 아닌 다른 여인들과 결혼하고 싶은 아들들은 하인 스카팽에게 지혜를 빌린다. 진실된 사랑을 꿈꾸는 두 커플은 우여곡절 끝에 스카팽의 도움으로 결혼에 성공한다. 진부한 스토리일지 모르지만 몰리에르 특유의 변화무쌍한 장면 전환과 폭소를 유발하는 기발한 표현은 객석을 웃음으로 들썩이게 만든다.


코미디아 델 아르테

생전의 몰리에르는 거의 매년 한 작품씩만 신작으로 올렸다. 그는 신작 서문에 종종 ‘공연 활동과 병행하느라 시간에 너무 쫓기고 있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런데 1671년에는 세 작품을 무대에 올리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스카팽의 간계’였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서 나타나는 몰리에르식 직설적인 풍자 색채가 현저하게 옅어졌다. 이 때문에 ‘스카팽의 간계’가 드라마적 구성이 빈약하고 인간 탐구 성격이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이 또한 또 다른 몰리에르식 풍자 방식이다. 서슬 퍼런 절대 왕정시대에 하인이 주인을 관찰하고 조종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주인의 애정 문제를 익살스러운 하인이 해결한다는 발상은 후배 작가 보마르세와 모차르트에까지 연결된다. 

몰리에르는 고대 로마 희극작가 테렌티우스의 희극과 이탈리아의 즉흥극 ‘코미디아 델 아르테’ 방식(우리나라 ‘마당놀이’처럼 배우 중심의 희극)을 고수하며 민중과 눈높이를 맞춘다. 거창한 주제의식보다는 단순하지만 솔직한 고백과 엄숙주의에 대한 도전이 숨어 있다. 스카팽도 이탈리아 즉흥극의 고정 캐릭터 ‘스카르피노’의 이름을 그대로 따른다.  

앙리 2세와 혼인한 카트린 여왕과 앙리 4세와 결혼한 마리 여왕 등 메디치 가문의 두 여인은 프랑스 왕실 행사에 이탈리아 공연예술을 적극 소개했다. 특기할 것은 발레, 오페라 등의 장르가 프랑스의 왕실 문화로만 정착했다면 즉흥극인 코미디아 델 아르테는 왕국 밖에서 민중예술로도 전파되며 프랑스 민중의 삶의 애환을 달랬다는 점이다. 

루이 14세는 왕실극단으로 자리 잡은 몰리에르 극단과 이탈리아 극단을 함께 왕궁에 상주시켰다. 얼핏 보면 두 희극 전문 극단이 경쟁관계 같지만, 국적이 다른 두 극단은 긍정적 상호 보완관계를 유지했다. 이 시기 몰리에르는 궁정 밖에서 접하던 서민적인 이탈리아 즉흥극과는 격이 다른, 전문 배우들의 즉흥연기와 표정연기를 접했다. 

그러나 1697년 이탈리아 극단이 ‘거짓 새침데기’라는 작품에서 루이 14세와 비밀결혼을 하며 베르사유궁의 ‘비공식 안주인’이 된 메트농 부인을 희화화하려 하자, 루이 14세는 역린을 건드린 그들을 파리에서 추방한다. 이 일로 재간꾼 몰리에르를 따르던 프랑스 희극극단은 다시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는 이미 비극적 말로를 맞은 다음이었다.


베파라의 고증으로 만나는 임도완의 스카팽

몰리에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의 전기와 평전이 여러 편 나왔지만 책이 출간될 때마다 그에 대한 평가도 엇갈렸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지 150여 년이 흐른 뒤 전직 경찰 베파라는 각종 문서와 증서 등 객관적 자료를 수집해 불확실한 증언에 의존하던 기존 전기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오늘날 몰리에르의 일생도 베파라의 고증 덕분이다. 

이번 국립극단 공연에서는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몰리에르의 작품을 연출가 임도완이 맡았다. 임 연출은 2007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헤럴드 엔젤 어워드’ ‘토털 시어터 어워드’ 등을 수상했고, 20년 동안 ‘사다리움직임연구소’를 이끌며 인간 본연의 열정을 신체에 대입해 움직임과 오브제 등의 무대 언어로 환유시키고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내고 있다. 가식과 허울을 버리고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묘사하고 다양한 성격을 창조하는 450년 전 몰리에르를 재해석하는 ‘임도완표’ 유쾌한 ‘스카팽의 간계’가 기대된다.




신동아 2019년 9월호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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