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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판사’의 한끼

100년 식당의 30년 셰프

셰프와 판사는 많이 닮았다

  • 정재민 전 판사, 작가

100년 식당의 30년 셰프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정재민 전 판사, 작가
[정재민 제공]

[정재민 제공]

호텔 카페 유리벽 밖으로 불볕더위가 작열한다. 그랜드피아노 옆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나는 청포도 빙수를 먹고 있다. 동그란 토기 그릇 위로 연녹색 빙수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 표면에는 절반으로 잘린 청포도 알맹이가 언덕을 오르는 돌계단처럼 빼곡하게 박혀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시원해진다. 빙수 전체가 옥으로 치장된 신라왕의 왕관 같기도 하다. 반짝거리는 은색 스푼으로 한 입씩 떠먹을 때마다 빙수 왕관을 쓴 것처럼 머리통 전체가 얼얼해진다. 달콤한데 지나치게 달지 않다. 보통은 빙수나 아이스크림을 먹을수록 갈증이 더 생기는데 이 빙수는 한입 떠먹을 때마다 갈증 덩어리가 한입씩 줄어든다. 

종업원은 이번 여름 수박 빙수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했지만 나는 청포도 빙수를 주문했다. 연녹색이 좋다. 아무리 쳐다봐도 질리지 않는다. 과하지 않고 편안하면서도 왕실에서 비롯된 것 같은 품격이 스며 있다. 독립운동가 이육사 선생의 시 ‘청포도’가 떠올랐다.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청포도 알맹이에 한 마을의 전설과 먼 하늘의 꿈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알맹이를 씹고 삼키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빙수를 놓고 왕관과 왕실을 언급한 것은 이 호텔의 깊은 유서(由緖)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이곳에는 환구단이 있었다.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을 말한다.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즉위할 때 이곳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 일제는 1913년 환구단을 헐고 이듬해 그 자리에 4층짜리 호텔을 지었다. 그것이 ‘조선호텔’이다. 국내 최초의 엘리베이터, 최초의 아이스크림, 최초의 서양식 결혼, 최초의 댄스파티가 여기서 탄생했다. 그러니까 이 호텔은 100년이 넘은 곳이다.


백년 호텔의 총괄 셰프

잠시 후 희고 높은 ‘토크’라고 불리는 모자를 쓰고, 흰 조리복을 입고, 앞치마를 두른 셰프가 나타났다. 고급 호텔처럼 세련되고 부드러운 인상과 미소의 소유자다. 이 호텔 총괄 조리팀장 유재덕 셰프다. 일명 셰프 JD다. 



“빙수 만드는 데만 3일 걸립니다. 싱싱한 청포도를 골라서 당도를 조절하며 얼리는 작업을 반복해야 하거든요.” 

청포도 빙수가 맛있다고 하자 그가 내놓은 자부심 담긴 설명이다. 국내에서 가장 유서 깊은 특급 호텔의 총괄 셰프라는 지위와 27년 경력이라는 무게가 결코 만만치 않은데도 토크 아래 드러난 얼굴은 30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동안이다. 그는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은 덜 늙습니다. 늘 웃어야 하니까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그렇다면 판사는 빨리 늙을 수밖에 없다. 법정에서 웃으면 안 되니까. “피고인을 징역 5년에 처하겠습니다”하면서 웃을 수는 없지 않나. 

나는 그동안 ‘혼밥판사’를 연재하면서 판사와 음식과 재판받는 사람에 대해 말해왔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한 축을 빠뜨렸다. 바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다. 좋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런 음식은 대체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어떤 인생이 그로 하여금 이런 음식을 만들게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혼밥판사’에 성원을 보내주던 지인이 최고 수준의 셰프를 소개해준 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셰프는 아주 딴 세상에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희고 높은 모자를 쓰고, 흰 조리복을 입고, 번들번들한 주방기기 사이에서 칼과 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신화 속 올림푸스산에 사는 신이 연상되곤 했다. 번쩍번쩍 쾅쾅, 천둥 번개가 치는 듯한 그 산속 어느 구석에서 정교하고 아름다운 음식이 나온다. 그것들로 인해 사람이 웃고, 떠들고, 중요한 마음을 주고받고, 감동한다. 반면 판사는 만들어내는 것이 없다. 판결문은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양쪽 당사자 중 한 명의 손을 들어주는 것에 불과하다.


셰프와 판사 사이

유재덕 신세계조선호텔 총괄 조리팀장. [정재민 제공]

유재덕 신세계조선호텔 총괄 조리팀장. [정재민 제공]

셰프와 판사 사이에는 얼핏 봐도 차이점이 넘쳐난다. 셰프는 도구로 칼과 불을 사용하지만 판사는 말과 글을 사용한다. 셰프가 내놓는 것은 사람을 살리지만 판사가 내놓는 것은 사람에게 타격을 준다. 셰프는 맛과 건강을, 판사는 정의를 추구한다. 셰프는 흰 옷을 입고 판사는 검은 옷을 입는다. 

그런데 셰프와 대화를 나눠 보니 의외로 닮은 점도 적지 않다. 셰프도 직장에서는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1식 3찬 구내식당 밥을 먹는다. 심지어 급할 때는 종종 라면도 끓여 먹는다(다만 라면 봉지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파, 마늘 같은 재료도 더 넣고). 집에서는 아내가 요리할 때가 더 많다. 집 주방이나 냉장고에 함부로 손대면 큰일 난다. 

닮은 점은 더 있다. 셰프는 주방, 판사는 법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일한다. 주방은 칼을 다루는 곳인 만큼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법정도 인신구속까지 할 수 있는 곳인 만큼 분위기가 엄정하다. 셰프는 레시피라는 법에 따르고 판사는 법이라는 레시피에 따른다. 

둘 다 시작은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셰프는 손님 주문에 따라 요리하고 판사는 검사나 원고의 청구에 따라 재판한다. 둘 다 긴 과정(요리와 재판)을 거쳐 결과물(음식이나 판결문)을 내놓는다. 그 결과물에 대해 받는 사람들이 만족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셰프는 손님이 접시를 비웠는지 여부가, 판사는 당사자가 항소했는지가 관심사다. 

셰프 JD는 “아직도 요리를 잘 모른다.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고 했다. “아니, 경력이 30년이 다 돼가는 특급 호텔 셰프도 그렇단 말인가요” 물으니 그가 답한다. “같은 음식이라도 맛이나 모양의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다. 계절마다 새로운 음식도 개발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 여름 빙수를 개발하느라 바빴고, 조금 있으면 또 가을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계속 변해야 한다.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느낌이다.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일이 재미있다.”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

그는 처음 요리를 시작할 때 ‘딱 3년’만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3년이면 치킨 요리 소스 정도는 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멋진 레스토랑을 창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남보다 더 열심히 배웠다.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졌다. 

경력이 10년 정도 되니 주변에서는 실력을 인정했다. 정작 본인은 요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극심해졌다. 지금도 요리가 뭔지 확실하게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이제는 일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나도 처음 판사가 됐을 때는 한 5년만 하면 웬만한 소송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판사 5년차가 되니 판사 경력 10년은 돼야 그 수준이 될 것 같았다. 법조 경력이 15년 이상 되자 자신감이 더 떨어졌다. 오래전에 한 재판 내용이 기억나지 않고, 새로운 판례와 이론은 날마다 속출하고, 법 분야는 갈수록 분화한다. 일반 사람은 판사라면, 그것도 경력이 20년 정도 되는 부장판사라면, 어떤 법적 문제를 물어도 그 자리에서 척척 답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답변이 갈수록 조심스러워진다. 다른 프로페셔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 있다고 나서는 사람은 대개 가짜다.


레시피가 아닌 맛을 기억하라

셰프의 말 중에 판사의 일과 유사해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많은 애를 쓴다는 대목이었다. 계절이 바뀌면 식재료가 바뀌고 식재료가 바뀌면 음식 맛이 바뀐다. 같은 레시피를 따르더라도 맛이 같을 수 없다. 어머니의 집밥조차 긴 세월을 건너가는 동안 미세하게 변한다. 그래서 셰프 JD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레시피를 기억하지 말고 맛을 기억하라.” 

나는 논리적 순서가 있는 레시피를 기억하는 것보다 형체 없는 맛을 기억하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하자 셰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한다. 

“맛을 잊기가 더 어렵지 않나요? 맛은 마음에, 때로는 무의식 깊은 곳까지 박히잖아요. 그래서 맛의 추억은 궁극의 레시피입니다.” 

역시 셰프는 셰프다. 절대음감이 있는 음악가는 “음을 기억하기 어렵다”는 음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판사도 정의의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애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려 한다. “다른 것을 다르게” 하는 것보다 같은 것에 대해 같은 판단을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 똑같은 법과 판례를 적용한다고 해서 사건마다 균질한 정의가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이 적잖다. 같은 판사도 나이가 들면서 기준이 변한다. 젊은 판사의 형량이 더 무겁다. 담당 판사, 시대, 정치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앞으로 법원이 해결해야 할 큰 과제다. 

이 밖에도 셰프 JD가 말하는 셰프 직업의 특성 중 판사의 일과 닮은 게 적지 않았다. 

“맛은 균형입니다. 아슬아슬한 맛의 선이 있어요. 그 선을 넘지 않고 멈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의도 균형이다. 초창기 정의의 여신상은 칼을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동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개 저울만 들고 있다. 심지어 눈까지 가리고 균형 잡기에 집중하는 모양이 많다. 셰프도, 판사도 균형점을 잘 찾으려면 사람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셰프 JD는 덧붙였다. 

“요리사는 윤리적인 직업입니다.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으로 장난치면 안 됩니다.” 

그는 위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밥을 먹으러 다른 식당을 찾을 때도 맛없는 것은 이해할지언정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집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셰프 JD의 주방에서는 수술용 장갑까지 사용한다. 법정에도 부정이 일절 없어야 한다.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작은 것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셰프의 시간

판사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셰프 직업의 장점이 있다. 셰프 JD에 따르면 레스토랑 분위기는 마치 공연장처럼 날마다 다르다고 한다. 분위기가 좋은 날은 모든 손님이 음식을 앞에 두고 웃고 떠들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한다. 바글바글, 와글와글한 풍경을 보면 셰프는 피로가 다 사라지고 더할 나위 없이 큰 보람을 느낀단다. 

그러나 법정은 낙심하고,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두려워하고, 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식사를 한 손님은 요리사에게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할 수 있지만 판사는 이런 말을 자주 듣지 못한다. 당사자 중 한쪽이 판결에 지나치게 만족하면 오히려 잘못 판결했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은 기분이 몹시 나쁠 테니까.
 
오후 5시가 넘어가자 셰프가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해야 한다며 자리를 떠났다. 100년 역사를 호텔과 함께해온 레스토랑 ‘나인스 게이트’가 곧 문을 열 시간이었다. 요리는 맛을 주지만 음식은 생명을 준다는, 그래서 ‘요리사’보다는 ‘음식가’라고 불리고 싶다는 셰프. 100년 호텔에서 30년 한길을 걸어온 그의 시간이 막 열리고 있었다.


100년 식당의 30년 셰프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신동아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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