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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제조업 ⑤철강

국내외發 장기불황 돌입 온실가스 규제도 ‘뇌관’

  • 김주한 | 前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joohankim@naver.com

국내외發 장기불황 돌입 온실가스 규제도 ‘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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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현대제철 外 철강 빅3의 ‘굴욕’
  • ● 수입 완전 개방…한국으로 몰려드는 중국産 철강
  • ● 철강 갖다 쓸 업종이 사라졌다?
  • ● 장기불황 견딜 체력 보강 시급
철강업계 한파가 무섭다. 국내 철강기업 1~4위인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동부제철 중 현대제철을 제외한 빅3가 모두 수익성 악화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줄곧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해온 포스코조차 계열사 구조조정을 통한 자체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추진 중이다. 동국제강도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들어갔고 동부제철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한국 제조업의 성장과 경쟁력 기반을 다져온 철강산업의 근간이 흔들린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대내적으로는 수요 부진이 그 원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철강산업의 공급과잉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에 의한 수요 부진 △그로 인한 가격 하락, 대내적으로는 △국내 철강 수요산업의 성장 정체 △저가의 불량·불공정 철강재 수입 급증 △그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문제는 현재의 고난이 경기순환이라는 일과성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끝 안 보이는 ‘철강 불황’

지난 4반세기 세계 철강산업은 중국의 성장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세계 철강 생산은 1990년 6억1600만t에서 2000년 8억4800만t으로 연평균 3.2%, 2014년에는 16억6200만t으로 연평균 4.9%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런 증가세는 중국의 철강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빠르게 늘어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2000년 이후 세계 철강 순 생산증가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85%나 됐을 정도다. 중국이 세계 철강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 11%, 2000년 15%, 그리고 2014년 49%로 급상승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국의 역할이 급격히 약화됐다.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와 함께 철강 소비 역시 크게 둔화한 것. 중국의 철강 소비 증가율은 2000년대 초반 21.3%에서 2000년대 후반 11.1%, 2010년대 들어서는 4.9%로 하락했다. 세계철강협회(Worldsteel)는 중국의 철강 소비가 2014년 -3.3% 성장을 기록했으며, 2015년과 2016년에도 각각 -3.5%와 -2.0%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한다.


‘수요 산업’ 정체

중국의 철강 소비 둔화는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 전환 때문이다. 중국은 ‘수출 확대를 통한 성장’에서 ‘내수 확대에 의한 성장’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금융시장 불안으로 내수가 부진해 철강 소비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치게 됐다. 그런데 중국의 소비 둔화는 경기 사이클에 따른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 및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것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앞으로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철강 소비가 과거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의 경기침체는 동북아, 나아가 글로벌 철강산업의 공급 과잉으로 확산되고 있다. 투자 기획에서 설비 가동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철강산업의 특성 탓에 공급과잉 심화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생산설비는 계속 증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세계 철강공급능력은 2000년 10억6000만t에서 2010년 18억8500만t, 2014년 22억4000만t으로 늘었고, 2017년에는 23억2400만t에 달할 전망이다. 소비보다 공급 능력이 빠르게 늘면서 공급과잉 규모가 커졌는데, 2007년 2억7000만t에서 2014년 5억8000만t으로, 그리고 2015년에는 6억t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범위를 좁혀 한·중·일 동북아 3국의 과잉 규모를 보자. 2003년에는 5000만t에 불과했지만, 중국의 설비 신증설이 본격화하면서 2010년 2억7000만t, 2014년 3억9000만t으로 매우 빠르게 증가해왔다. 이는 세계 철강 과잉 규모의 약 70%에 해당한다(이 중 중국의 과잉 규모가 3억t으로 동북아 3국 과잉규모의 77%를 차지한다).
중국은 철강 생산능력은 늘어나는 데 반해 내수 부진이 이어지자 이를 타개하는 방편으로 수출 확대 전략을 편다. 중국의 수출은 2010년 4160만t에서 2014년 9380만t으로 4년 사이 5220만t이나 늘었다. 이는 한국의 연간 철강 소비량과 맞먹는 규모다. 2015년 철강 수출량은 1억t을 훌쩍 넘겼을 것으로 추산된다.
남아도는 중국의 철강은 어디로 갈까. 한국으로의 수출이 전체 수출량의 14%를 차지한다. 한국이 최대 수출 대상국인 것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철강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 수입관세도, 비관세 장벽도 없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철강 수입은 감소했지만,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오히려 증가했다. 우리는 중국의 수출 확대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감수하게 됐고, 이런 잘못된 구조가 어느새 국내 시장에 고착되는 실정이다.
한편 중국의 저가 철강재 수출이 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철강재 가격은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동아시아 수입 철강재 가격은 중국의 공급과잉이 본격화한 2011년부터 계속 하락해 지난해 12월말엔 t당 269달러로 63%나 하락했다. 이는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408달러보다도 34%나 낮은 가격이며, 중국의 성장이 본격화하면서 원자재 파동이 시작되기 직전인 2002년 8월 이후 1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철강 값, 1년 사이 36% 하락

한국의 철강산업은 핵심 수요산업의 저성장 기조로 성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핵심 수요산업이란 건설, 자동차, 조선이다. 이들 세 산업군은 전체 철강 수요의 70~80%를 차지한다(2014년 철강-수요업체 간 직거래 기준). 건설 28%, 자동차 25%, 조선 21% 순이다. 유통상을 거쳐 들어가는 강재를 포함하면 건설 부문 비중은 35%를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철강 수요산업의 성장 둔화가 뚜렷해지기 시작한 시점은 글로벌 금융위기다. 자동차산업은 해외 현지 생산을 확대하면서 국내 생산규모가 수년째 450만 대 수준, 조선산업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중국, 일본의 경쟁력 회복으로 건조량이 2011년 이후 부진을 거듭하며 1000만CGT(표준화물환산톤)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건설은 최근 규제 완화와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일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인구 고령화, 국내 인프라 구축 수요 감소, 주택 공급과잉 현상 등으로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산업의 둔화로 국내 철강 소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200~5600만t 사이에서 오르내리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중국산 저가 불량·불공정 철강재 수입이 늘어 국내 철강산업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내 철강산업은 2010년 이후 신규 일관제철 가동과 기존 업체의 설비 확장으로 공급능력이 수요를 초과, 지난해엔 과잉 규모가 3000만t에 달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매년 2000만t 이상 수입되는 데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2010년 869만t에서 2014년 1341만t, 그리고 2015년 1370만t(추정)으로 오히려 늘었다. 수입 철강재가 내수시장의 40%, 이 가운데 중국산이 25%를 점령한 실정이다.

국내로 유입되는 중국산 철강재가 늘면서 국내 철강재 유통가격은 지난해 12월 기준 최근 1년 사이 36%나 하락했다. 또 국내산 철강재와 수입산 철강재의 유통가격 격차가 확대되면서 내수시장의 교란은 심각한 수준이 됐다. 이러한 시장왜곡 현상이 고착화하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수입규제 급증

이런 상황에서 수익성 악화는 불 보듯한데 특히 중소·중견업체의 어려움이 매우 심각하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14년 중소·중견업체의 영업수익률은 1.3%, 이자보상배율은 0.6에 그쳤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한국도 중국처럼 내수 부진을 수출 확대로 타개하려 하지만, 수출시장 또한 만만치가 않다. 글로벌 공급과잉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의 수출이 꾸준히 늘면서 수출시장에서 경쟁이 심화하고, 철강 수입국들은 수입 철강재에 대한 무역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철강재에 대한 세계 각국의 수입규제는 1991년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총 83건인데, 그중 63건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생했다. 규제 방법도 반덤핑 관세 부과 위주에서 세이프가드, 상계관세 등으로 다양화하고, 규제 국가나 규제 품목도 확대되는 추세다.
여기에다 온실가스에 대한 규제 역시 강화되고 있어 철강업계로서는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온실가스에 대해 목표관리제와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는데, 철강산업은 제조업 중에서도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업종이다. 온실가스 규제 영향을 그 어떤 업종보다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 철강업체는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에너지 효율성을 자랑한다. 따라서 기술 개발이나 설비 개체에 의한 추가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온실가스 규제 강화로 발생한 배출권 할당 부족량은 배출권 구매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는 철강산업의 부담으로 그대로 전가돼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철강협회는 우리 철강산업이 할당량 부족으로 1차 유예기간인 2015~17년 약 2000억~6000억 원의 배출권 구매 부담이 발생하고, 1400만t의 생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한다.



엎친 데 덮친 온실가스 규제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글로벌 수출경쟁 심화 △저가 철강재 대량 수입  △기업경영 악화  △온실가스 규제부담 가시화라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이런 어려움을 유발한 핵심 원인은 중국의 철강 공급과잉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공급과잉을 해소하려면 생산능력을 적정 수준으로 감축하거나 수요가 확대돼야 하는데, 어느 하나 단기간에 달성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중국의 철강설비는 대부분 최근에 건설된 것인 데다, 중국 내 지역별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생산 감축이 쉽지 않다. 경제성장이 점차 둔화하고 금융위기 때 과도한 인프라 투자를 한 탓에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도 낮다. 따라서 글로벌 철강산업의 수급 여건은 단기간에 개선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런 암흑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무리 어려워도 장단기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저가의 불량·불공정 강재를 시장에서 축출하고, 이와 함께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해야 한다. 원가 절감 노력, 기업 체질 개선을 통해 장기 불황에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노력도 요구되는데, 그러한 점에서 미국의 SIMA(Steel Import Monitoring and Analysis System)와 같이 철강 통상 정보의 신속한 수집과 적극적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연구개발(R&D),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제품의 고부가가치화, 생산 및 에너지 효율성 극대화, 우수인력 양성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다양화에 부응한 고급 철강소재를 개발해 후발국과 성능, 품질 면에서 차별화해야 한다. 온실가스 규제에 대응하는 혁신기술 개발도 소홀할 수 없는 과제다. 



김 주 한
●    1952년 경북 봉화 출생
●    고려대 공학박사
●    외교통상부 철강교섭전문위원,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구조분과위 전문위원, 국무조정실 국정과제 평가위원
●    저서 : ‘철강산업의 글로벌 환경변화와 대응전략’, ‘소재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체제 구축전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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