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호

창업 생태계 조성하려면 근본 처방 필요 朴 정부 벤처정책, ‘히든 챔피언’에서 배워야

안철수 의원의 공정성장 칼럼

  • 안철수 | 국회의원 cahn00@gmail.com

    입력2016-02-03 17: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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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 숫자 증가에 치중…‘나랏돈은 눈먼 돈’
    • 국책硏 기초/응용 분리…응용硏은 기업 연구센터로
    • 특화 아이디어 벤처기업에 지원해야 고용창출 이어져
    이공계 기피현상이 극심하던 2008년, 나는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부모를 모시고 진학 관련 간담회를 진행하는 자리에서 ‘지금이 자녀들을 이공계에 보낼 절호의 기회’라고 상세히 설명했다.  학생들이 졸업할 즈음에는 분명 이공계 인재 부족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인재가 부족하면 취업시장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부모와 학생들은 당장 사회적으로 각광 받는 학과에 주목했고, 불과 몇 년 후를 내다보지 못하는 선택에 무척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학생들이 이공계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취직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은 이공계 졸업생이 취업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당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이공계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근본 원인에 대한 처방이 결여된 미봉책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벤처 창업지원 정책을 보면서 예전의 ‘이공계 기피 대책’이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벤처 창업지원 정책은 창업할 기업 수를 늘리는 데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다. 창업 기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거나, 실패한 기업가에게 재도전 기회를 부여하는 방향에는 관심이 없다. 근본적인 처방이 아닌 이유다.
    최근 창업 현장에서는 성공 확률이 다소 떨어지는 아이디어라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나랏돈이 눈먼 돈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과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많은 창업가가 투자를 받기 위해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무수히 많은 곳과 미팅을 하고 공을 들여 사업 설명을 하지만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이상한 ‘정부 처방전’

    창업 과정이 지금처럼 순탄치 않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창업 아이디어에 대한 사회적 검증을 받을 수 있는 매우 유의미한 기회로 작용했다. 투자를 거절당하고 사업성을 재검토하면서 비즈니스 플랜과 모델을 더욱 정교하게 손볼 수 있었고, 따라서 그만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쉽게 투자를 받고 창업한다면 실패 확률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검증 과정을 건너뛰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도 조세특례 심층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창업하는 기업 10곳 중 6곳은 3년 안에 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이렇게 망한 기업인들은 사업 진행 중에 빌려쓴 채무가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파산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박근혜 대통령 임기 말에는 사업 실패로 인해 수많은 신용불량자가 쏟아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국가가 마땅히 추진해야 할 정책방향은 명확하다. 단순 창업 기업 수만 늘리는 단기적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 창업 기업의 성공 확률을 높여야 한다. 실패했을 때 재도전 기회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국가가 창업 생태계의 토양을 조성하는 데 집중한다면, 창업 기업에 대한 지원은 민간에서도 자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가 할 일은 무책임한 창업 지원이 아니라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있다.   
    우리가 기업 생태계 조성에 집중하는 이유는 이것이 일자리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의 경험은 대기업만으로는 필요한 일자리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성장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로 독일의 ‘히든 챔피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은 대중이 잘 알지 못하고 규모도 작지만 특화된 경쟁력으로 세계시장을 선점하는 강소기업이다. 이들은 세계 상위권을 다투는 우수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한다. 독일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런 성공의 바탕에는 다른 기업보다 훨씬 많은 연구개발(R&D) 투자가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세계 정상 수준임에도 끊임없는 R&D로 경쟁자가 쫓아올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앞서가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

    독일 정부의 R&D 예산도 대기업이 아니라 특화된 아이디어의 중소·벤처기업에 집중돼 있다. R&D에 대한 별도 세제혜택은 없지만, 기업이 연구개발하려는 분야를 선택하면 예산의 절반을 국가에서 지원한다. 나머지 비용 절반은 기업이 내기 때문에 R&D의 성과가 산업에 적용되는 비율도 높아지고, 그 과정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발생 확률도 현격히 줄어든다.  
    이제는 우리 기업들도 변해야 한다. R&D 투자비율을 늘려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 벤처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정부의 예산과 제도 또한 발맞춰야 한다. 19조 원가량의 우리나라 R&D 예산은 사실상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사업화 연계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R&D를 통한 성과가 산업화로 연결되는 비율이 세계 최하위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예산의 집중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최근 정부에서는 R&D 투자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9대 기술 분야, 18개 중점 투자 분야와 전략을 제시했다. 늦게나마 국가 R&D 투자 방향과 전략 수립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이 또다시 ‘대기업 집중’으로 나타나지 않을지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R&D를 발판으로 마련된 기초·원천기술 등의 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지는 데엔 관련 전문 인력과 경험이 필수적이다. 중소기업 예산지원만으로 독일식 히든 챔피언이 만들어지지는 않는



    다.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국책연구소를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두 분야로 나누고, 응용연구를 담당하는 연구소가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연구개발센터로 자리 잡도록 지원해야 한다.
    벤처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건강한 산업 생태계, 그리고 기업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정부의 합리적 판단과 절적한 정책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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