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호

진격의 왕서방! 당당한 Made in China

중국 IT 기업 대공습

  • 김건희 객원기자 | kkh4792@hanmail.net

    입력2016-02-15 11: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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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스마트폰, 소형 가전, 드론, 액션캠코더 등 가전·IT 분야에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이들의 무기는 ‘가성비’. 하지만 더 무서운 건 그 뒤에 숨은 야심이다. 화웨이는 삼성전자, 샤오미는 LG전자를 겨냥한다. ‘IT 강국’ 한국에 깃발을 꽂겠다는 것이다.
    매년 1월 초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가전제품전시회(CES)는 전자업계의 최신 기술과 신제품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세계 최대의 IT 이벤트로 꼽힌다. CES가 열릴 때마다 이곳에서 거대 제조사 간에 불꽃 튀는 기술전쟁이 벌어진다.
    IT 업계에선 “글로벌 IT 시장의 최신 트렌드를 알고 싶다면 ‘센트럴홀’로 가라”는 말이 통한다. CES는 글로벌 IT 기업에 ‘홀’을 내주고 자사 제품을 전시하게 하는데, 그 가운데 센트럴홀은 메인 무대에 해당한다. 센트럴홀에서 위용을 뽐내는 IT 기업이 곧 시장을 선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센트럴홀은 뛰어난 기술력을 앞세워 프리미엄 제품을 선보인 한국, 미국, 일본 기업들이 선점해왔다. 그런데 지난 1월 6일 개막한 CES 2016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포착됐다. 센트럴홀에 중국 IT 기업들이 대거 둥지를 튼 것이다.



    센트럴홀 점령한 中 기업들

    그저 센트럴홀 입성(入城)에만 성공한 게 아니다. 중국 가전기업 TCL은 가장 큰 규모의 전시관을 마련해 업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대화면 초고화질(HUD) TV 신제품을 선보인 TCL은 “북미시장에 진출하겠다”고 깜짝 발표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삼성전자 옆에 부스를 차린 하이얼은 전시장 입구에부터 커브드(곡면) TV 제품을 전시했다. 하이센스, 창훙(長紅), 스카이워스는 전시장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입구 쪽에 대형 전시관을 마련해 센트럴홀에 보란 듯 문패를 걸었다. 중국 IT 업체들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중국 IT 기업은 더 이상 ‘짝퉁’이나 만드는 그저그런 회사들이 아니다. 이들은 공격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번 CES에서 중국 IT 기업들은 드론, 전기차, 가상현실(VR), 생체인증기술, 스마트홈,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과시했다.
    중국 드론 개발업체 이항은 CES에서 세계 최초로 1인용 자율주행 헬리콥터 ‘드론 184’를 내놓았다. 자율주행 방식을 채택해 탑승 후 기체 내부에 장착된 태블릿PC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별 다른 조작 없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전기차 생산업체 페러데이퓨처는 최고 속도 321㎞/h 주행이 가능한 친환경 슈퍼카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신제품은 친환경, 고성능, 편의성 3박자를 두루 갖췄다. 업계에서는 페러데이퓨처가 머지않아 전기차의 맹주 테슬라를 위협할 것으로 내다본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중국 IT 기업의 저력이 ‘IT 기술의 총체’라 불리는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화웨이, 샤오미, 레노버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저렴한 가격과 프리미엄 수준의 사양, 온라인에 특화된 마케팅으로 차별화를 꾀하며 제품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을 취한다.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중국 스마트폰 3인방은 중국 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을 휘젓는다. 무엇보다 실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5년 3분기 중국 본토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와 샤오미가 각각 15.7%의 점유율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2013년만 해도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했던 애플(10.3%)과 삼성전자(7.2%)는 각각 3위, 5위로 밀려났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화웨이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7.7%로 삼성전자(23.7%), 애플(13.1%)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매출도 상승세다. 1월 6일 화웨이가 CES에서 발표한 2015년 사업 실적을 보면 연간 매출이 200억 달러(약 23조9900억 원)로 전년 대비 70% 증가했다. 연간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대비 44% 증가한 1억800만 대. 중국 스마트폰 업체 중 연간 스마트폰 출하량 1억대를 돌파한 것은 화웨이가 처음이다.



    삼성 노트 10분의 1 가격

    샤오미의 약진도 눈부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SA는 샤오미가 지난해 글로벌 모바일 시장에서 6100만 대의 휴대전화를 팔았다고 분석했다. 불과 1년 전인 2014년의 판매량은 1870만대였다. 샤오미가 설립 6년도 안 된 신생업체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업계에선 샤오미에 대한 달라진 평판을 최대 성과로 꼽는다. 미국 경제 전문 사이트 쿼츠는 지난해 10월 “샤오미가 예상보다 뛰어난 스마트폰을 저가에 공급하는 전략으로 짧은 시간에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샤오미가 ‘애플 카피캣’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글로벌 시장의 판을 뒤흔드는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것이다.
    레노버의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 레노버는 지난해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4.9%를 기록하며 샤오미와 함께 공동 4위에 올랐다. 레노버가 비록 전체 매출의 70%를 PC사업 부문에서 얻고 있지만, 모바일 사업 부문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레노버의 모바일 사업 비중은 20%에 달한다. CES 2016에 참석한 천쉬둥 레노버 모바일사업부문 수석부사장은 “올해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프리미엄 시장인 북미를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 3위로 발돋움하겠다”고 자신했다.
    주목할 것은 중국 IT 기업의 눈이 ‘IT 강국’ 한국 시장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이미 중국 IT 기업의 진격이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샤오미의 ‘홍미노트3’가 대표적이다. 온라인 오픈마켓 11번가가 구매대행 형태로 선보인 홍미노트3는 출시 1개월 만에 1만 대 넘게 팔렸다.
    인기 요인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다. 홍미노트3는 5.5인치 풀HD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후면 1300만 화소, 전면 500만 화소 카메라를 장착하고 메탈 소재 지문인식 기능을 도입했다.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 시리즈와 비교하면 성능 면에서 뒤지지 않지만 가격은 10분의 1 수준이다. 홍미노트3 16GB는 9만9000원, 32GB는 13만5000원이다.
    11번가 관계자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 고가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대한 지원금이 줄어든 데다, 경제불황으로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져 직구 시장이 활성화했고, 가성비가 좋은 중국산 스마트폰을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샤오미는 보조 배터리와 블루투스 스피커 등을 통해 국내 소비자에게도 친숙한 브랜드라 스마트폰을 본격 판매하면 반응이 뜨거울 것”으로 내다봤다.
    화웨이도 한국 스마트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화웨이 스마트폰 ‘Y6’는 1대의 스마트폰으로 2개의 번호(010과 070)를 사용할 수 있는 ‘듀얼 기능’을 탑재했다. 집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무선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것. 통신기업으로 시작한 화웨이의 역량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중국산’ 커밍아웃

    화웨이는 Y6를 출시하면서 풀HD 대신 5인치 화면에 HD 해상도를 구현해 배터리 소모량을 낮췄다. 화려한 스펙을 내세워 스마트폰의 단가를 높이기보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강조한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사양은 우수하면서도 가격은 국내에서 가장 저렴하다. Y6의 출고가는 15만4000원. ‘가성비 좋은 스마트폰’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화웨이 Y6는 출시 16일 만에 판매량 1만 대를 돌파했다. LG유플러스가 Y6 구매자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얼리어답터’의 성향을 보였다. 특히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남성에게서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화웨이가 국내에서 Y6를 출시할 때 ‘Made in China’를 숨기지 않았다는 사실. 시중에 판매되는 Y6의 하단에는 화웨이 로고가 쓰여 있다. 화웨이는 2014년 9월 국내시장에서 스마트폰 ‘X3’를 출시할 때만 해도 회사 로고를 앞세우지 않았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선입관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서울 강변테크노마트에서 15년간 휴대전화를 판매해온 김도윤 씨는 “화웨이의 도전이 ‘외산 폰의 불모지’라 불리는 한국 땅에서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라면서도 “Y6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선입관을 합리적인 가격 대비 성능으로 극복하겠다는 화웨이의 의지가 분명하게 읽힌다”고 했다.
    스마트폰 이외의 시장에서도 중국 IT 기업의 진격이 시작됐다. ‘대륙의 실수’라는 이미지를 얻은 샤오미는 국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구축했다. 특히 샤오미의 보조 배터리는 저렴한 가격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깔끔해 국내 소비자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에누리닷컴의 가격비교 판매량 기준에 따르면, 샤오미 보조 배터리 10400mAh(27.7%), 5000mAh(18.1%), 10000mAh(16.2%) 제품이 보조 배터리 시장 1~3위를 휩쓸었다. 삼성전자의 보조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7.5%로 샤오미와 격차가 크다.



    M&A로 저가품 이미지 탈피

    지난해 5월 출시한 샤오미의 블루투스 스피커는 11월 시장점유율 18.5%를 기록하며 블루투스 스피커 시장 1위 국내 브랜드 노벨류를 따라잡았다. 샤오미는 향후 한국시장에서 TV 등 가전제품과 사물인터넷(IoT) 기반 스마트홈 서비스를 선보이며 영역을 계속 확장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저렴한 중국산 제품은 드론 시장도 평정했다. 에누리닷컴에 따르면, 전체 무선조정(RC)제품 시장점유율에서 드론은 2014년 43.7%에서 지난해 71%로 급상승했다. 현재 국내에 판매되는 드론의 시장점유율은 중국 기업 제품이 월등히 높다. 중국 기업 시마(73.1%)와 치어슨(12.2%)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액션캠코더 시장은 중국산 저가형 제품이 출시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액션캠코더의 대명사이던 미국 브랜드 고프로를 중국이 따라잡은 것.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이 시장은 고가 제품을 내놓던 고프로와 소니가 주도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중국 브랜드 SJCAM이 15만 원 미만의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1위(42.9%)를 차지했다. 고프로와 소니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25.9%, 11.4%로 곤두박질쳤다.
    액션캠코더는 야외 스포츠 촬영에 최적화한 디지털 캠코더로 옷이나 헬멧, 자전거 등에 부착할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볍다.
    중국 IT 업체들이 IT 강국 한국에서 약진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저렴한 가격 + 뛰어난 기술력’을 첫째 이유로 꼽는다. 업계는 중국 제품이 지금과 같은 수준의 가격과 성능을 유지한다면 한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급속도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저가 이미지’를 탈피한 것도 주효했다. 강용남 한국레노버 대표는 “중국 기업들은 프리미엄 브랜드와 기업을 적극 인수해 ‘중국산=저가형’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킨 후 가성비를 장점으로 내세우고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며 “IBM 노트북 브랜드 씽크패드라인업을 인수한 뒤 저가 이미지를 탈피한 레노버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국내 업계는 중국 IT 업체의 행보를 예의 주시한다. 당장 중국산 제품의 약진이 갖는 의미도 적지 않지만, 머지 않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리더가 바뀔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하는 삼성전자나 가전시장을 이끄는 LG전자가 언제든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한국의 대(對)중국 무역 시장이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미 시장에서는 ‘중국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 제품은 갈 곳이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짝퉁 왕국’의 대변신

    지난해 4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들어 한국의 대중국 수입 증가율이 수출 증가율을 상회하며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도 100억 달러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 시장 내 중국 제품의 수입침투율은 3.4%포인트(2000년 2.6%→2013년 6.0%) 상승한 반면, 중국 시장 내 한국 제품의 수입침투율은 1.1%포인트(2000년 2.5%→2013년 1.4%) 하락했다. 수입침투율은 내수시장에서 수입제품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을 뜻한다. 특히 컴퓨터, 반도체 등 IT 산업에서 중국 제품의 수입침투율이 2000년 3.9%에서 2013년 15.5%로 4배 이상 급등했다. 중국이 IT 제품을 중심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12월 20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발효됐다. 발효일을 기점으로 1차 관세 철폐, 1월 1일엔 2차 관세 철폐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경쟁국보다 유리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선 한중 FTA로 인해 대중 수입 구조가 바뀔 것이고, 나아가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용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국산 IT 제품의 빠른 수입 침투에 대비해 기초연구와 원천기술 투자를 확충하고 창조적 산업기술인재 양성을 지원하기 위한 기초연구 예산을 늘려야 한다”며 “한중 FTA 등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대중국 수출시장 공략과 차별화된 신기술 개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자 · IT의 모든 영역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는 중국의 행보는 비단 국내 IT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IT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대부분 한쪽에 치우쳐 있다. 가령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LG전자는 가전을 중심으로 이익을 낸다.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것도 스마트폰, 반도체 등 IT 산업이다. 가격은 저렴하고 기술력은 뛰어난 중국산 제품의 경쟁력은 우리 경제의 위기를 키울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왕서방의 진격’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중국은 더 이상 ‘짝퉁 왕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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