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권당 원내총무 하다 쿠데타로 정계은퇴, 유랑생활
- 朴 대통령 부친 박정희에 舊怨?
- “YS처럼 어릴 때부터 대통령 꿈꿔”
자서전은 자신을 어느 정도 미화하기 마련이지만, 어느 정도 진실도 담고 있다. 저자의 실제 체험, 속마음, 지적 수준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게다가 활자화하는 것이기에 지속적으로 검증받는다. 그래서 ‘이미지 정치’가 판치는 요즘에도 유력 정치인의 자서전은 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서 가치를 지닌다.
김무성의 ‘희귀 소장본’
김 대표는 아마 책을 쓸 여유가 없었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여당 대표이자 보수진영의 유력 대선 주자가 웬만한 초선 의원도 쓰는 책 한 권을 안 썼나?’하는 실망스러운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이회창(‘아름다운 원칙’), 이명박(‘신화는 없다’), 박근혜(‘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등 역대 보수진영의 유력 주자는 대중의 지성과 감성에 호소하는 자기만의 사색과 스토리를 책에 담아왔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관계자는 “예수님이나 공자님도 책을 안 썼다. 요즘엔 마음으로, 말로, SNS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긴 한다.
김 대표가 한 권 쓰긴 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김 대표의 한 참모는 “대표님 저서는 없는 것으로 안다. 수십 년 전 뭘 썼다는데 확인이 안 된다”고 했다. 수소문해보니, 김 대표는 1996년 국회의원이 된 이후엔 책을 안 쓴 것이 확실한 듯하고, 그 이전인 1987년 ‘왜 김영삼이어야 하는가’라는 책을 한 번 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 인터넷이나 시중 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김 대표 측도 책의 존재를 거의 알리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희귀 소장본’이 된 셈인데, 이는 일반적으로 정치인이 자기 책을 적극 홍보하는 것과 대비된다.
서울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 책의 열람을 신청한 결과, 이 책의 실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책의 표지와 본문이 디지털 자료로만 남아 있었다. 표지의 저자명은 ‘김무성 편저’로 돼 있었다. 김무성 개인이 쓴 책이 아니라 복수의 필진이 공동 작업한 결과물인 셈이다. 이 책이 나온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에 출마했고 김무성 대표는 김영삼 후보 선대본부의 재정국장이었다. ‘왜 김영삼이어야 하는가’를 왜 썼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집안에서 한사코 반대”
이 책의 총 2부 중 1부는 김 전 대통령 일대기를 위인전 식으로 다뤘다. 전문 픽션 작가가 쓴 냄새가 났다. 2부는 책의 표지 제목과 같은 제목으로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할 당위론을 설파했다. 예전 인터뷰 발언, 신문·잡지 기사를 짜깁기한 수준이었다. 김무성 대표 본인이 직접 쓴 것으로 확인된 내용은, 그의 이름이 들어 있는 서문 세 쪽이 전부. 그런데 서문 중 두 군데가 눈길을 끌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정치 입문 과정을 밝힌 부분으로, 다음과 같다.“본인은 어려서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선친(故 김용주 의원, 전 민주당 참의원, 원내총무)의 영향이 컸다. 그렇지만 집안에서는 정치 지망을 한사코 반대했다. 왜냐하면 자유당 치하와 5·16 이후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선친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정치에 대한 소신은 변하지 않고 더욱 굳어졌다.”
김 대표는 요즘 ‘선친과 5·16’ 같은 민감한 주제를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30대 청년이던 당시엔 별 거리낌 없이 책에다 쓴 것으로 보인다.
서문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 서문 내용과 김용주의 자서전 ‘풍설시대 80년’을 연결하면 김용주와 5·16에 관한 진실이 종합적으로 드러날 듯했다. ‘풍설시대 80년’에 따르면, 1961년 5월 16일 민주당(장면) 정권의 실세인 김용주 참의원 원내총무는 군사쿠데타를 인지한 뒤 주한미국대사관을 찾아가 1군의 동정을 묻거나 장면 총리를 수소문하거나 쿠데타군과의 협상을 타진하는 등 대응 방법에 대해 미 대사관 측과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미 대사관 측은 김용주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김용주는 자서전에 “그날 나의 미국대사관 방문 사실이 혁명군에게 발각됐더라면 반혁명의 오해를 사서 나는 어떠한 처분을 받았을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섬뜩해진다”고 적는다.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은 이후 김용주가 어떻게 됐는지에 관해 “김용주는 이렇게 5·16군사혁명을 계기로 정계를 떠나 유랑 아닌 유랑길에 오른다”고 밝힌다.
결론적으로, ‘실세 정치인으로 잘나가던, 김무성 대표의 부친이 5·16군사정변의 반대편에 있었고, 이후 박정희 세력에 의해 졸지에 정계에서 쫓겨나 유랑생활을 하면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들 김무성으로선 박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구원(舊怨)을 가졌을 법한 정황으로도 비친다. 이런 개인사는 현 여권 내 김무성계(비박계)와 친박근혜계 간 공천 권력암투와 오버랩되기도 한다. 김용주는 1964년 기업인으로 변신해 전남방직 사장에 취임했고 1985년 별세했다.
김무성 대표는 차기 대선 출마와 관련해 말을 아낀다. 그러나 29년 전 쓴 이 책 서문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부터 ‘대통령 김무성’을 꿈꿔왔다. 다음은 서문 내용이다.
“왜 이런 훌륭한 사람을 미처 못 보았나 생각하고 즉시 김영삼 총재를 찾아갔다. 본인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김영삼 총재께서는 흔쾌하게 받아주셨다. ‘어릴 때 나의 꿈과 같구먼’ 하시면서 격려까지 해주셨다. 그때부터 본인은 김영삼 총재를 측근에서 더 자세히 대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김영삼의 어릴 적 꿈에 대해 본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경남중학교에 다니면서 당돌하고 엉뚱하지만 그러나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뜻을 세웠다. 자기 하숙방 벽에 그의 말마따나 잘 쓰지도 못하는 붓글씨로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크게 그의 뜻을 써 붙여놨던 것이다.”
정치 지망생 김무성이 “어릴 적 꿈이 대통령”이라고 김영삼에게 말하면서 상도동계 합류를 자원하자 김영삼이 “내 어릴 적 꿈과 같네”라며 받아준 것으로 읽힌다.
‘김용주 평전’ 둘러싼 의구심
2015년 8월 출간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책이다. 이 책은 친일 논란에 휩싸인 김용주를 극일(克日)의 애국자로 묘사한다. 김무성 대표 측은 이 책을 기자들에게 배포했고 김용주 동상 앞에도 바쳤다고 한다. 부친의 친일 의혹을 부인하는 주된 근거로 이 책을 활용해왔다고 한다.그러나 이 책의 한 저자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김 대표의) 가족들이 연락해 와서 자신의 아버지가 쓴 회고록 ‘풍설시대 80년’을 보완해야 하는데 김용주의 광복 후 행적에 관해 쓴 내 글을 가지고 보완해도 괜찮으냐고, 자기네들이 만든 다음 나한테 이름을 넣어도 괜찮으냐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이 평전은 90% 이상 ‘풍설시대 80년’을 그대로 수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일제의 총살대상 1호가 김용주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전해 들은 말을 본인 회고록과 평전에 실은 것으로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전태일 평전’처럼, 평전은 제3자가 특정 인물의 삶을 사실과 양심에 입각해 진실되게 기록하고 비평하는 기록이다. 만약 기록되는 인물 측에 의해 평전이 기획·제작된 것이라면, 그것은 평전이라 보기 어렵고 독자 기만일 수 있다. 기록되는 인물의 자서전이 평전으로 각색돼 객관적인 양 한다면, 이 역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김무성 대표는 김용주 평전 저자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오해가 없도록 답해야 할 것 같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김용주 친일 논란과 관련해 “청년들을 제국주의 일본의 총알받이로 전선에 내보내자며 선동한 이력이 친일이 아니면 무엇이 친일인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측은 “일제강점기 구국활동을 했다. 1940년대엔 본인 의사와 관계없는 동원 기사·광고가 많이 나왔다. 강제 기고, 허위사실 수록에 대한 증언도 많아 전적으로 믿기 어렵다”고 해명해왔다.
문재인, 안철수 자서전 읽어보니…▼ 文 ‘노무현 상속자’의 분열적 사고 ▼
▼ 安 자가발전한 ‘신화’와 ‘현상’ ▼
문재인 더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자서전으로 재미를 본 대표적 정치인이다.
2011년 나온 ‘문재인의 운명’은 한 해 전 출간된 노무현 전 대통령 전기 ‘운명이다’에서 제목을 따왔다. 총 4개 장 가운데 3개 장을 노 대통령과 함께한 기간에 할애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이다. 비평가들은 이 를 잘 쓴 문장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문재인이 ‘노무현 상속자’ 지위를 얻었고 2012년 대선 때 야권 단일 후보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동시에 ‘문재인의 운명’은 대선에 패배하고 야권의 ‘메인 스트림’인 호남에서도 버림받을 위기에 몰린 ‘2016년의 문재인’을 만들었다. 이 책에서 문재인은 이렇게 쓴다.
“나는 6월 항쟁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 할 운동으로 생각하고 있다. 4·19나 광주항쟁은 다분히 우발적이거나 자연발생적이었던 측면이 있다.”
‘86 운동권 친노’를 ‘호남’보다 우위에 두는 문재인의 이런 분열적 사고는 문재인을 향한 호남의 배신감, 피로감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안철수와 관련해선 자서전부터 어린이용 위인전까지 엄청난 수의 책이 나왔다. 출판가에서 안철수는 흥행 보증수표였다. 역으로, 안철수는 책을 자기 홍보에 잘 활용했다.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는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띄웠다.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는 안철수연구소가 코스닥에 상장될 무렵 나왔다. ‘안철수의 생각’은 그의 대권 출사표였다.
이렇게 출간 타이밍과 중대사가 겹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우연일 수 없다. 고만고만한 기술력과 매출 규모를 가진 회사의 CEO 중에 안철수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린 사람은 없다. 안철수는 출판과 홍보의 귀재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 신화’와 ‘안철수 현상’은, 실적과 재료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라기보단 안철수 본인의 자가발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는 대중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고귀한 영혼’으로, 스티브 잡스 같은 ‘선지자’로 신격화할 줄 알았다. 예컨대 책과 강연에서 그는 최신 MBA 이론을 자신의 경험과 결부시켜 상세하게 설명했다. 대중은 뭔가 많은 걸 배웠다고 느꼈다. 그의 전문성과 선의를 높게 평가했다. 별 논문이나 학술 서적을 쓰지 않고도 그가 ‘세계적 석학’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비결 중 하나다.
2012년 대선 당시 룸살롱, 신주인수권부사채, 재개발 딱지, 위장전입, 논문 논란은 이런 그를 ‘인간계’로 끌어내렸다. 그의 자서전 중 몇몇 내용은, 예컨대 군 입대 일화 같은 것은 ‘꾸며낸 이야기’ 의혹에 휩싸였다.
그러나 안철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둑으로 치면 안철수는 ‘신화’와 ‘현상’ 같은 ‘세력’을 잃은 대신 ‘야권 내 문재인과 친노의 유일 대체재’라는 ‘실리’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