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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미디어

TV는 애완견을 악마견으로 만든다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TV는 애완견을 악마견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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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사는 사람, 자녀 없이 사는 부부가 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가 급증했다. 이런 트렌드는 미디어에도 반영돼 요즘 뉴스,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 등엔 동물이 자주 등장한다. 미디어에 비친 동물들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 10월 경기도 용인의 아파트 단지에서 길고양이 보금자리를 마련하던 자원봉사자가 벽돌에 맞아 숨졌다. 언론은 이를 ‘캣맘 사건’으로 명명했다. 범인은 낙하 실험을 한 초등학생으로 밝혀졌지만, 유기동물 보호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이런 운동을 싫어하는 주거단지 주민들 간의 갈등이 뉴스에서 불거졌다. 운동가들은 인터넷에서 ‘캣충’으로 비하되기도 했다. 동물을 둘러싼 인식의 차이가 이슈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동물과 관련된 뉴스로는 전국 1만7000여 식용 개 농장에서 200만 마리의 식용 개가 사육되고 있는 것, 도심에 출몰한 멧돼지와 북한산 들개가 사살된 것, 공장식 축산에 대한 위헌소송이 기각된 것 등이 보도됐다. 이런 소식에 동물 애호가들은 우리 사회가 동물에게 아직 야만적이라고 비판한다.



개에게 ‘학부모 감정’ 투사

사실 우리는 동물에 대한 이중문화를 갖고 있다. 많은 이가 개를 먹고 많은 이가 애완견을 기르는 것이 단적인 예다. 미디어는 이런 이중 문화 중 어느 것과도 척을 지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요즘엔 후자 쪽에 우호적으로 스탠스를 조금씩 이동하는 듯하다. 예컨대 미디어는 ‘애완견’을 ‘반려견’으로, ‘도둑고양이’를 ‘길고양이’로 순화해 부른다.  
‘동물의 왕국’은 TV 방송 초기부터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물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면서 이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해 화제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 프로그램을 좋아했다고 한다.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속성을 갖고 있어서 이 프로그램이 꾸준히 호응을 얻는 것으로 여겨진다.
2000년대 이후 그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동물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SBS ‘동물농장’은 2001년 첫 방영 후 15년째 이어졌다. 이 프로그램은 야생동물보다 반려동물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밀림이 아닌 일상의 공간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객관적 관찰보다 감정이입 형태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동물의 왕국’과 다르다. 주된 인기 요인은 출연하는 동물들이 사랑스럽다는 점이다.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 ‘동물농장’의 인기에 자극받아 KBS와 MBC도 비슷한 포맷의 ‘주주클럽’과 ‘동물천하’를 방영했다. ‘동물농장’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최근에도 ‘단짝’과 ‘애니멀즈’를 방영했다. 이는 동물에 관한 시청자의 수요가 줄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포털 사이트에서도 동물 동영상은 인기 콘텐츠다. 네이버 오픈캐스트의 라이프/취미 코너와 다음의 인기 동영상 코너에는 동물 관련 콘텐츠가 즐비하다. 이런 것들을 만들어 올리는 이들은 대부분 개인이다. 만혼과 1인 가구의 증가가 동물에 대한 애착을 높인다는 점이 확인된다. 기혼자가 자녀의 성장을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면, 독신자는 반려동물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반려동물(펫)을 가족(패밀리)처럼 여기는 펫팸족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책 시장에서도 반려동물을 다룬 도서는 육아 코너를 따라잡을 듯 급성장한다. 책의 내용도 다양하다. ‘우리 개 100배 똑똑하게 키우기’처럼 개에게 학부모의 감정을 투사하는 책도 있다. ‘직접 만들어 함께 먹는 우리 강아지 건강자연식’ ‘강아지 옷 손뜨개’처럼 음식, 건강, 패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전엔 개가 먹는 음식과 사람이 먹는 음식이 달랐지만 이제 일부 인쇄매체는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백구, 웅자, 상근이, 산체…

선진국일수록 반려동물에서 고양이의 비중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양이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책 시장에서 애견 관련 주제가 고스란히 애묘 버전으로 출간된다. 햄스터, 파충류, 곤충 같은 희귀 반려동물을 다룬 책도 자주 발간된다. 이쪽 분야는 미혼자 시장과 구분되는 ‘덕후’ 시장으로 통한다. 반려동물은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가 동물에 자주 주목하다보니 스타 동물이 심심찮게 출현한다. 1990년대 한 컴퓨터 회사의 광고에 등장한 진돗개는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전남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간 백구가 7개월 만에 원래 주인을 찾아 돌아온 일이 있다. 이 실화를 소재로 한 ‘돌아온 백구’ 시리즈는 동화책,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제작됐다. 백구는 둘리만큼 상업적으로 성공한 동물 캐릭터가 됐다. 당시 백구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진돗개 시장에서 황구의 개체수가 줄었다는 하소연이 나올 정도였다.  
외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09년 리처드 기어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하치 이야기’에 나오는 하치는 일본 토종 아키타견이다. 이 개는 출퇴근하는 주인을 배웅하러 매일 역으로 나간다. 어느 날 주인이 급사한 후에도 하치는 10년 동안 역으로 나가 주인을 기다렸다. 아시아에선 이렇게 개를 스타로 만들어 ‘충성’ ‘복종’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2002년 ‘동물농장’에서 ‘웅자’라는 반려견이 ‘웅자의 전성시대’로 스타가 됐다. 웅자가 천방지축 행동하는 모습으로 인기를 끌자 개 주인은 각종 방송과 광고 출연으로 돈방석에 앉았다. 그는 웅자를 스누피와 같은 인기 캐릭터로 만들겠다며 웅자닷컴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벤처 붐이 막 일던 시기라 이곳저곳에서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은 실패했고 그는 빚더미에 올랐다. 한창 어려울 땐 웅자에게도 13만 원의 딱지가 붙었다. 2014년 ‘동물농장’에 다시 등장한 웅자는 사람 나이로 치면 백 살도 넘는 열여덟 살이었다. 악성 종양으로 한쪽 귀를 절단하고 온몸에 털이 듬성듬성 빠진 모습이었지만 주인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웅자는 처음엔 웃음을 줬고 마지막에는 찡한 감동을 줬다.
예능 PD 나영석은 스타 동물 제조기다. ‘1박2일’을 연출할 때는 ‘상근이’라는 개를 국민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상근이가 2014년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엔 추모 글이 쇄도했다. 나 PD는 이런 성공의 기억 때문인지 ‘삼시세끼’에도 다양한 동물을 조연으로 등장시켰다. 특이한 것은 개나 고양이뿐만이 아니라 염소나 닭에게도 이름을 붙여 의인화한다는 점이다. 의인화는 현대 동물 프로그램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나 이에 따르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텔레비전에 의한 동물 의인화는 종종 같은 종의 반려동물 충동구매를 이끈다. 해당 프로그램이 종영되면 이 반려동물들은 버려지기 시작한다.  
상근이는 그레이트 피레니즈라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대형견이다. 1박2일이 인기일 때 많은 사람이 이 종을 구매했다. 그러나 중소형 아파트·연립주택이 많은 우리 주택 환경에서 이런 대형견을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종보다 사료비도 훨씬 많이 든다. 몇 년 후 상근이의 인기가 잦아들자 그레이트 피레니즈 유기견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삼시세끼’에서는 장모(長毛) 치와와 ‘산체’가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동물보호운동가들 사이에서는 몇 년 후 장모 치와와가 대량으로 유기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스타동물 만들기’의 그늘

‘상근이 아빠’로 유명한 동물행동교정전문가 이웅종 소장은 문제견의 행동 교정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웅종 캐릭터’는 내셔널지오그래픽 TV의 ‘도그 위스퍼러’ 프로그램 진행자 시저 밀란에서 따온 것이다. 시저 밀란은 미국에서 이 프로그램으로 유명인사가 된 뒤 책을 냈다. 여기서 그는 미국 내 많은 가정이 반려견의 문제행동으로 힘들어하는 현실을 묘사했다. 그는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개의 주인이 개를 사람처럼 대해주는 점’을 꼽았다.

개는 늑대로부터 물려받은 본능을 가졌다. 늑대는 대개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무리 내 위계가 엄격하다. 개의 충성심이 뛰어난 것도 리더에게 본능적으로 복종하는 서열의식이 인간에게 표출된 것일 수 있다. 실내 거주 공간 밖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양육된 개들은 주인을 리더로 대한다. 그러나 소파나 침대 위에서 주인과 같은 위치를 차지한 개들은 주인과 서열경쟁을 벌이려 든다. 특히 여성 주인이 껴안고 다니는 개일수록 주인에게 까칠하게 군다.
TV 동물 프로그램은 개를 사람처럼 묘사한다. 이는 시청자를 오도하는 것이다. 개의 내면은 인간과 전혀 다른 본능이 지배한다. 따라서 TV는 반려견을 악마견으로 만드는 주범일 수 있다. 스타 동물 만들기의 그늘인 셈이다.
동물은 이제 연예인 등 많은 사람의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 할리우드엔 모피코트 반대 운동에 동참하는 연예인이 많다. 브래드 피트는 비좁은 닭장에서 생산된 달걀을 팔지 말라는 편지를 할인점 코스트코에 보내기도 했다. 이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겠으나 이미지 관리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가수 이효리는 2011년 채식주의자 선언을 해 화제가 됐다. 논란이 된 것은 그가 직전까지 한우 홍보대사를 한 사실이었다. 한우 홍보대사는 표절 논란으로 연예계를 잠정 은퇴한 그의 첫 대외활동이었고 그는 6개월에 3억 원이라는 고액을 받았다고 한다.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채식주의자 선언을 한 것에 대해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이 드셌다.
얼마 전 영국 왕실은 근위병들이 쓰는 털모자로 곤욕을 치렀다. 동물보호단체는 “유달리 큰 이 털모자 한 개를 만들려면 곰 한 마리분의 털이 필요하다”고 공격했다. 동물보호단체도 동물 때문에 이미지가 구겨지기도 한다. 2015년 9월 프랑스의 한 동물보호단체는 노숙자의 애견을 빼앗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세계적 비난에 휩싸였다. 이들은 노숙자가 불량한 환경에서 개를 학대해 격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수십만 네티즌이 주인에게 개를 돌려주라는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결국 이 단체가 항복하면서 개와 주인은 상봉할 수 있었다.


개와 달팽이가 같은 레벨?

이 시점에서 개고기·보신탕 문화와 관련된 우리 미디어의 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고기 문화는 해외 언론과 동물보호단체의 표적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 이 갈등은 민족감정과 자주 결부된다. “우리의 고유한 식문화에 왜 참견하는가” “우리가 개를 먹는 것과 프랑스 사람이 달팽이를 먹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개를 먹는데 왜 한국만 문제 삼는가” 같은 항변이다.
그러나 후진국에서 개를 먹는 것과 한국 같은 세계적 경제대국이자 한류(韓流)를 수출하는 나라에서 개를 먹는 것은 다르다. ‘왜 한국만 문제 삼냐’고 하는 건 억지다. 또한 개고기 식용을 옹호하는 이들은 동물에 대한 태도가 국가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비친다.
개와 달팽이는 지적 능력, 감정, 인간과의 근접성에서 같은 레벨의 동물이 아니다. 서양인들은 사람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대상을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다. 이들은 ‘개 식용은 인류의 보편적 기준에서 볼 때 나쁜 일’이라고 판단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개고기 옹호론자는 잘 답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미디어의 태도다. 미디어는 개고기 찬반 논란에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한다. 어느 편을 들어도 득이 될 게 없다는 계산이 깔렸다. 대신 개고기 사육-도살 농장이 불법으로 운영되고 위생 상태도 불결하다는 점만 가끔 건드린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반려견과의 행복한 일상을 비춰준다. 어떻게 보면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행태다.  
개고기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산 낙지를 먹는 문화도 서양인에겐 혐오의 대상이다. 2014년 유튜브에선 한국인이 산 낙지를 먹는 장면이 올라와 격렬한 찬반양론이 일었다. 댓글을 보면, 살아 꿈틀대는 동물을 날것으로 먹는 문화가 생각보다 많은 이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디어는 동물을 자주 비춰주고, 동물은 개인의 삶이나 국가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다. 우리 미디어는 동물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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