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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수장된 해경 함정 · 유골 건져내 유족 恨 풀어주자”

해난구조 전문가 진교중 前 해군 SSU 대장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수장된 해경 함정 · 유골 건져내 유족 恨 풀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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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74년 863함, 1980년 72정 침몰 선체·시신 행방 묘연
  • ● 863함은 피침(被沈)…72정은 유실 가능성 없어
  • ● 현재 탐색·잠수 기법으로 충분히 인양 가능
  • ● 국민에게 잊혔지만, 해경도 대한민국 국민
2014년 4월 온 국민을 슬픔의 나락으로 빠뜨린 세월호 침몰사고. 오는 7월이면 세월호가 2년 3개월 만에 다시 수면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해양수산부는 3월부터 두 달 동안 세월호 선체에 에어백 등을 설치하는 작업을 벌인 뒤 7월엔 세월호를 인양해 남은 실종자 9명(남성 6명, 여성 3명)에 대한 수색과 선체 정리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1월 13일 현재 중국 상하이샐비지 소속 잠수사 49명 등 139명이 침몰 지점 위에 떠 있는 바지선에서 생활하며 하루 2차례 조류 상황에 따라 수중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월호 참사 여파로 2014년 11월 창설 61년 만에 해체돼 국민안전처에 편입되는 운명을 맞은 해양경찰(이하 해경)의 선박 침몰사건·사고도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장을 지낸 예비역 해군 대령 진교중(65) 씨가 그 주인공.
진씨는 서해훼리호 침몰사고(1993년), 성수대교 붕괴 참사(1994년), 동해안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1998년), 남해 욕지도 근해 북한 반잠수정 격침(1998년) 등 굵직굵직한 각종 사건·사고의 인양작전을 지휘하고 직접 참여한 해난구조 분야 최고 전문가다. 2003년 전역 후 금융감독원 안전계획실장으로 있던 2010년엔 해군의 요청으로 백령도 인근에 정박한 독도함에 머물며 천안함 인양계획을 짜는 데 참여했다.



해경 사상 초유의 참사

그런 그가 해경의 대표 침몰사건·사고 사례로 드는 건 ‘863함 침몰사건’과 ‘72정 침몰사고’다. 전자는 1974년 6월 26일 속초항을 출발한 속초해양경찰대 소속 경비정 863함(181t)이 출항 사흘째인 6월 28일 오전 어로 보호를 위한 경비임무 중 기상 악화(짙은 안개로 인한 시정(視程) 불량) 및 레이더 고장으로 강원 고성군 거진항으로 귀항하다 북방한계선 남방 2마일 해상에서 북한 해군 함정 3척과 교전 끝에 침몰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28명의 승조원(경찰관 14명, 의무·전투경찰 13명, 일용직 보조인력 1명) 중 8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실종됐다. 북한군에게 생포된 2명(경찰관 1명, 의무경찰 1명)은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해 7월 1일 열린 제352차 군사정전위원회 당시 북한 측 대표는 이들 2명의 육성이 녹음된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한 바 있다. 863함 침몰사건은 해경 사상 초유의 참사였지만, 현재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72정 침몰사고도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해경들 사이에서만 제한적으로 회자될 뿐이다. 사고 경위는, 1980년 1월 23일 오전 5시20분경 거진 동방 2.5마일 해상에서 경비임무를 수행하던 해경 경비정 72정(60t)이 기상상태 불량 및 항해 장비 고장으로 인한 항로 착오로 다른 경비정인 207함과 충돌해 침몰하고 승조원 17명(경찰관  9명, 의무·전투경찰  8명) 전원이 순직한 것이다.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해양경찰청 후신) 소속 속초해양경비안전서 자료에 의하면, 72정 사고 후 한 달 동안 해경 및 해군 함정, 수산청 지도선, 어선 등 연 200여 척이 충돌 해역 반경 50마일권을 수색했지만 구명벌(긴급상황 시 승객을 대피시키기 위해 부풀리는 일종의 고무보트) 등 유실물만 인양됐고, 실종자는 한 사람도 찾아내지 못했다.



충혼탑엔 위패만…

이후 해경은 863함 사건과 72정 사고를 비롯해 해경 창설 이래 동·서·남해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전사·순직한 해경 영령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86년 12월 동해가 훤히 바라보이는 강원 속초시 장사동 해안가 언덕에 해양경찰충혼탑을 건립했다. 2016년 1월 현재 전사자 26명과 순직자 148명 등 174명의 위패(경찰관 114위, 의무·전투경찰 59위, 일용직 1위)가 봉안돼 있으며, 2003년 5월 국가보훈시설로 등록됐다.





▼ 863함 사건과 72정 사고의 재조명을 주장하는 당위성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은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이들의 시신을 찾아내 제대로 예우하고, 유족의 아픔과 한을 달래고 풀어줘야 후손들에게도 애국심이 생겨난다. 육군은 훨씬 오래전인 6·25전쟁 전사자 유해도 발굴하지 않나. 863함 사건과 72정 사고는 30~40여 년 전 일이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1인당 국민소득(GNI)이 그때보다 20~50배 이상 늘었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위상도 높아졌다. 선체 탐색 및 인양 기술도 눈부시게 발달했다.
선진국이란 게 뭔가. 개인의 생명과 존재 가치를 존중해주는 나라 아닌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왜 전투에서 강할까. 군인과 경찰이 작전 중 변을 당해도 국가가 그 가족까지 책임지기에 충성심이 절로 우러나는 거다. 한편으론 많은 해난사고 현장을 누빈 전문가로서 묵과할 수 없는 책임의식도 느낀다.”
▼ 해군 출신이니 당시 해경의 사건·사고에 대해 알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나.
“1974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되자마자 7년간 경비함을 탔다. 그 시절 육상 근무를 한 번도 못했다. 그런데 72정 사고 당시엔 공교롭게도 바로 인근 해역에서 근무했다. 해군 제1해역사 소속으로 80t급 고속정 정장(대위)으로 있었다. 그럼에도 사고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같은 해역에서 근무한 동료 정장 3명도 다 몰랐다더라. 1980년 1월이 어떤 때인가. 1979년 10·26사건과 12·12사태 직후라 민감한 정보가 차단된 탓일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해경에 몸담았다 퇴직한 지인들에게서 우연히 863함 사건과 72정 사고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수소문 끝에 속초에 자리한 해양경찰충혼탑을 직접 찾아가본 후 사실을 알게 됐다.”



72정 침몰 수심은 80~120m

속초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863함 사건 전사자 8명의 시신은 당시 인양돼 훗날 국립묘지에 안장됐지만 실종자 18명은 시신을 찾지 못해 충혼탑에 위패만 봉안돼 있다. 72정 사고의 경우 순직한 17명 전원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 사건·사고 당시엔 왜 침몰한 선체와 시신을 제대로 인양하지 못했다고 보나.
“그때의 선체 탐색 및 인양 기술과 장비로는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인양작업에 대한 의지도 희박했을 테고.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때 침몰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170t)뿐 아니라 1200t급 초계함인 천안함도 건져내지 않았나. 6825t에 달하는 세월호도 인양하려는 만큼, 인양 기술과 장비가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발달했다.
잠수 기법만 해도 예전엔 잠수사가 공기통을 등에 메고 최대 수심 40m까지만 가능한 스쿠버 기법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고압 체임버를 이용해 압력을 조정한 후 최대 300m까지 잠수할 수 있는 포화잠수 기법이 있다. 이 기법으로 내가 1999년 3월 남해 욕지도 근해에서 북한 반잠수정 인양에 성공했다. 수심이 147m였는데, 미국 해군이 1990년대 초에 세운 수심 98m 선박 인양 기록을 깨뜨리고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포화잠수 기법 외에 유인잠수정이나 원격 수중탐색 장비를 갖춘 무인잠수정(ROV)을 동원할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없다. 해군 SSU뿐 아니라 민간업체들도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863함과 72정도 인양할 수 있다는 건가.
“863함은 정확한 침몰 위치만 알아내면 수심과 조류 정보가 다 나올 테니 가능하리라고 본다. 인양은 차후 문제이고, 일단 선체가 어디에 가라앉았는지부터 탐색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탐색은 어렵지 않다. 해저탐사용 수중음파탐지기 사이드 스캔 소나(Side Scan Sonar)로 알아낼 수 있다. 길이 2m짜리 물체도 찾아낸다. 그런데도 여태껏 탐색할 노력과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게 문제다. 따라서 침몰 선체 유무부터 탐색한 후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고 선체 혹은 유골 인양 여부를 결정하는 게 순서다. 선체 인양이 힘들다면 유골이라도 건져야 한다는 얘기다. 72정의 경우는 간단하다. 선체가 가라앉은 해역의 수심이 80~120m다. 그건 해도(海圖)에 나오니 확실하다. 인양작업 기간은 30일가량이면 충분할 것이다.”
▼ 오랜 세월이 흘러 선체와 시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을 텐데.
“해군이나 해경의 함정은 일반 선박과 다르다. 좋은 철판을 써서 선체 부식이 적다. 예를 들어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의 경우 100년 이상 지났는데도 부식 상태가 심하지 않다. 바닷속은 공기와의 접촉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또한 바닷물은 염도가 높고 동해의 수온도 3~5℃로 일정하게 유지돼 시신의 부패도 육상보다 훨씬 더딜 수밖에 없다.”

“유실 가능성 거의 없다”

▼ 수많은 해난구조 경험을 통해 그런 일을 직접 겪어봤을 것 아닌가.
“그렇다. 욕지도 근해에서 북한 반잠수정을 인양할 때도 침몰한 지 거의 1년 만이었는데, 시신이 그대로 있었다. 지상에서 태풍이 불더라도 수심 20m 이상 바다 밑에 안착된 선체 안에 있으면 시신은 보존된다.”
▼ 유실됐을 가능성은.
“863함은 교전 중 침몰했으니 사건 당시 일부 시신이 유실돼 인양됐지만, 72정은 유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벌써 시신이 발견됐어야 한다. 선박은 선수(船首)끼리 부딪치면 가라앉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 여유가 있어 사고 당시에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체와 시신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건 72정이 경비 교대 중 짙은 안개로 인해 다른 경비정 207함과 충돌하면서 선체 측면을 받혀 침몰한 탓이다. 그럴 땐 선체에 구멍이 뚫려 몇 분 안에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천안함과 비슷한 경우라고 본다.”



“시신 인계 전 세수 시킨다”

▼ 인양 여부는 정부 의지에 달렸을 것 같다.
“863함과 72정의 승조원들은 우리 영해를 지키려다 죽음을 맞았다. 나라를 위해 숨진 그들이 아직도 차디찬 바닷속에 수장돼 있는데, 왜 정부는 찾으려 노력하지 않나. 제2연평해전이나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사망한 장병들에 대해선 국가적인 추모 행사가 이어지지만, 30~40여 년 전 숨진 해경과 의무·전투경찰들은 우리 모두 잊고 있다. 납북된 지 올해로 42년이 되는 863함 승조원 2명의 생사 확인과 송환을 주장하는 외침 한 번 들어보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해양국가다. 그런 나라에서 해경은 우리 국민이 아닌가.”
▼ 해난구조 전문가로서 사명감이 큰 듯하다.
“자부심이 있다. 1993년 처음 해난구조대 대장을 맡자마자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와 맞닥뜨렸다. 당시로선 사상 최악의 해난사고였다. 이후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매번 엄청난 해상 사건·사고를 잇달아 접하고 수습하다보니 구조 노하우가 저절로 생겼다.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다.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와 부하들에게 이런 생각을 주입했다. ‘바다에서 궂은일 하면 복(福)이 온다’고. 그래서 바다에서 건진 시신을 인계할 땐 세수부터 시켰다. 얼굴과 몸에 시커멓게 펄 흙이 잔뜩 묻은 가족의 시신을 대하면 유족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겠나.”
박근혜 대통령은 현충일을 하루 앞둔 2014년 6월 5일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오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씨가 “절대 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이 오늘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가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셨던 많은 분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숭고한 뜻이 영원히 기억되고 보답받는 나라를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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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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