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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th story

김정일 초상화 아래서 ‘뮤직뱅크’ 보며 ‘참이슬’ 마신다

북한 혁명단체 여성 조직원의 北 청년 지하학습記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김정일 초상화 아래서 ‘뮤직뱅크’ 보며 ‘참이슬’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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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은 사람의 운명(命)을 바꾸는(革) 일이다. 한국인 혁명가 은서는 중국에서 북한 내 반체제 집단 ‘횃불’을 조직하는 일을 했다. 현서는 중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꿈 많은 북한 대학생이다. 예쁘장한 얼굴에 뽀얀 피부를 지녔다. 현서는 은서와 지하학습을 하면서 변해갔다. 어느 날 현서가 은서에게 말했다. “조국이 바뀌려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도부가 바뀌어야 해.” 2016년 1월, 은서와 현서는 각각 서울과 평양에 산다.
수은주가 영하 25도를 가리키던 2009년 겨울이다, 눈발 흩날리던 날 중국 ○○시 △△대학에서 현서를 처음 본 것은.
은서는 현서를 보고 ‘한국 어느 대학에서 왔는지 몰라도 이번 학기에 남학생 여럿 울리겠군’ 싶어 웃음이 났다. 현서는 살을 에는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짧은 스커트 차림으로 등교했다. 딱 봐도 한국 여대생이다. 예쁘장한 얼굴에 뽀얀 피부는 ‘20대 초반은 확실히 다르구나’ 하는 질투심마저 느끼게 했다. 현서는 단정하게 머리를 올려 묶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에 중국어 책을 끼고 다녔고 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서울 사람보다 더 서울 사람 같던, 꿈 많은 북한 여대생 현서와 훗날 혁명을 논한 은서는 2006년 중국에 왔다. 중국행을 결심한 겨울의 어느 날, 한국 ○○시 버스터미널. 아버지의 걱정은 딸이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를 때까지 이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다고 중국까지 가야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건강해라. 밥 잘 챙겨 먹고. 위험한 곳에는 가지도 말고, 위험한 일은 하지도 말거라.”
은서가 중국으로 간 까닭은 북한 독재정권을 뒤집어보겠다는 사명감에서다. 혁명가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중국에서 대북활동을 하면서 곤경에 처할 때마다 지갑에 넣어둔 가족사진을 꺼내 보며 의지를 다졌다. 



‘혁명가 은서’ ‘대학생 현서’

이 기록의 ‘은서’와 ‘현서’는 가명이다. 2016년 각각 서울과 평양에 사는 은서는 30대, 현서는 20대다. 은서는 신원을 노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신동아’와의 대화에 응했다. 1월 4일 서울 통인동에서 ‘북한 민주화 혁명가’ 은서를 만났다. 은서는 동안(童顔)이면서 씩씩한 말투를 가진 매력 가득한 여자다.
현서가 북한에서 온 것을 알기까지, 은서에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현서는 서울 여대생보다 더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 늘 중국어로만 말하던 현서가 북한 억양으로 우리말 하는 것을 들으면서 은서는 화들짝 놀랐다. 현서는 중국에 파견된 북한 무역일꾼의 딸이었다.
▼ 현서와는 연락이?
“끊겼어요.”  
▼ 대북활동은 언제부터?
“○○학번인데요. 대학 때 학생운동하면서 시작했어요. 부모님은 지금도 중국에서 뭐 하다 왔는지 잘 모릅니다.”
▼ ‘혁명’이란 말이 은서 씨 세대와 잘 안 어울려요.  
“1990년대 후반 북한 실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문제의 원인이 뭘까, 궁리했죠. 혁명가로 여기고 살았는데, 남은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소리 내 웃으면서 은서가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웃으면 안 되는데, 사람들이 ‘혁명’이란 말에 상당히 거리감을 느낄 것 같아요.”
▼ 북한 체제가 바뀐다면 과정이 어떻든 ‘혁명’이란 이름이 붙겠죠.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요.”
대한민국에서 북한 혁명을 꿈꾸며 중국에 온 은서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나온 현서는 언니, 동생으로 친하게 지냈다. 은서는 쾌활하다. 후배들이 ‘언니’ ‘누나’처럼 따를 정도로 시원시원한 성격. 이런 성격이 대북활동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현서는 발랄하고 청순하다”고 은서는 말했다. 현서는 쇼핑을 즐겼고,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식당을 다녔으며 SNS로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다. 키가 크고 몸이 늘씬한 은서만큼은 못해도, 현서도 술을 곧잘 마셨다. 노래방에서 현서는 힙합과 랩을 즐겨 불렀는데, 한국 노래도 섭렵했다.



“더는 진실을 회피하지 않겠어”

“현서는 정이 많은 아이였어요.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고요. 어느 날 혼자 밥 해먹기 힘들지 않냐면서 어머니가 직접 담갔다는 김치 한 통을 가져다 줬습니다. 북한식 김치는 고춧가루 외에 다른 양념이 거의 안 들어가요. 시원한 맛이라고나 할까요, 깔끔해요. 현서 어머니가 담근 김치는 정말 맛있었어요. 지금도 그 맛을 못 잊어요. 현서 말고 다른 북한 친구도 어머니가 양념한 명란 반찬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젓갈 형태가 아니라 참기름과 고춧가루 등으로 버무린 것이었어요. 남쪽에서는 안 먹는 음식인데, 그것도 엄청 맛있었어요.”
현서가 어느 날 은서에게 물었다.
“조국은 규율이 너무 엄격해. 현실이 갑갑해, 언니. 예전에 조선이 붕괴될 수도 있었는데 왜 안 무너진 거예요?”
현서는 이렇듯 호기심이 많았다. 책 읽는 것도 좋아했다.   
▼ 정확한 낱말은 아닌 것 같지만 ‘포섭(包攝)’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의식화 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북한 학생들을 어떻게 포섭했나요.
“아이들 특성에 맞춰 교안과 책을 따로 준비했습니다. 운동권 학생 시절 후배들 공부시킨 경험이 있어 북한 학생에게 맞춘 교안을 만드는 게 수월했어요. 처음에는 ‘우리 역사 공부나 해보자’ 하는 식으로 접근해 공부했죠.”   
▼ 그러곤 철학 공부하고…. 오래전 한국 운동권 교육 방식과 비슷하네요.
“맞아요.”
현서와 공부를 시작한 초기에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세계사’ 등의 책을 건넸다. ‘세계사’에는 사회주의의 발생과 발달, 붕괴 과정이 담겼다. 은서가 준 책을 읽은 현서가 은서에게 말했다.
“예전에는 새로운 사실을 아는 게 두려워 일부러 알지 않으려 애썼는데, 이젠 내가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아가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 더는 세상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으려 해.”





온 가족이 한국 책 돌려 읽어

▼ 책은 실물로 건넸나요. 아니면 파일로 만든 것? 오래전 한국 운동권에선 김일성 저작집을 일일이 타이핑한 파일이 유통됐잖아요.  
“북한 유학생을 상대로 할 때는 파일로 하는 게 좋아요. 문제가 생겼을 때 파기하기 수월하죠. PDF 파일로 해놓은 게 있고요. 타이핑을 해 문서 파일로 제작한 것도 있습니다. 중국에서 대북활동하면서 책을 타이핑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컴퓨터 화면으로 읽는 게 불편하다면서 책으로 달라곤 해요. ‘나 만날 때만 봐야 한다’고 말해주고 도서관 같은 곳에 함께 가 ‘김정일 리포트’ 같은 책을 읽게 했죠.”
▼ 어떤 책이 인기가 많았습니까. 아니, 효과가 있었습니까.
“북한 체제를 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책은 싫어했어요. 일례로 ‘수용소의 노래’ 같은 책은 부담스러워하더군요. ‘김정일 로열패밀리’ 같은 책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 책은 다른 동지들이 교육을 맡은, 중국에 나와 있는 탈북자와 노동당 출신 엘리트에게도 호응이 대단했대요. 폭로 성격이 있는 데다 권력 내부의 은밀한 이야기가 담겼거든요.”
‘김정일 로열패밀리’는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이 서울에서 쓴 수기다. 동아일보 출판팀이 1996년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한 책을 시대정신이 2004년 제목을 바꿔 발간했다.  
▼ ‘김정일 로열패밀리’는 영국인이 영국 왕실 실상을 폭로한 책을 읽는 느낌과 비슷할 것도 같네요.
“맞아요. 권력 핵심에서 일어난 비화가 담겼거든요. 폭로 성격도 강하고요. 로열패밀리 사진도 실려 신빙성도 높아 보이고요. 남자아이들은 ‘나는 김정일의 경호원이었다’ 같은 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경호원이 남조선에 정말로 가 있느냐?’ 식으로 질문하면서.”
현서의 부모도 은서가 현서에게 전해준 책을 읽었다. 현서 아버지는 ‘사람아, 아 사람아’ 를 재미있게 읽었고, 어머니는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하룻밤에 다 읽고는 울었다고 현서가 은서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현서에게 “비슷한 책이 있으면 더 갖다달라”고 했는데, 현서는 “마음이 아파 더는 어머니에게 책을 못 보여줄 것 같다”고 했다.



 “누나, 우리 따로 만나요”

“북한 아이들이 청소년 시절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를 달달 암기했지만 온전히 이해한 게 아니라 북한 역사를 저보다도 더 몰랐어요. 장난으로 ‘생활총화 한 것 갖고 와봐’ 했더니 애들이 총화 문서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원수님 말씀’ ‘수령님 말씀’ 하면서 문구를 적어놨는데, 총화라는 게 수준이 많이 떨어집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더라고요. 총화를 지도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녀석이 저와 친했습니다. 한동안 총화를 안 해서 결과가 없을 때도 많았어요. 이따금 점검, 검열이 나와 석 달치 총화 결과를 한꺼번에 쓰기도 했죠. ‘누나, 이거 어떻게 써야 해요?’라며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부모가 수령님 말씀 앞 구절을 써주면 아이들이 덧붙이는 글로 반성도 하고 다짐도 하는데 ‘○○을 잘못했다. 앞으로 ○○○하겠다’ 식으로 형식적으로 끝나요. 아이들이 총화를 엄청 귀찮아하죠. 한국 아이들과 똑같아요. 우리는 다를 게 없는 똑같은 사람인데….”
▼ 활동비는.
“월 2500위안요.”
지금 환율로 약 45만 원이다.
“방값이 포함된 금액이에요. 월세가 600위안, 나중에는 1200위안까지 했거든요. 굉장히 힘들었죠.”
북한 반체제 인사를 키우는 일을 한 중국의 한국인 혁명가는 1인으로만 활동했다. 단선 연계로 지도하는 사람 1명하고만 연락을 주고받았다. 은서 같은 조직원들이 횡적으로 연계된 것은 없었다. 북한 혁명을 도모하는,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이 만났는데, 서로 같은 일을 하는지 모르고 지낸 경우도 있다. 단선 연계로만 활동한 것은 중국 공안이나 북한 보위부가 조직을 포착했을 때 조직 전체가 드러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북한 아이들이 중국에서 생일잔치 할 때 4000위안씩 씁니다. 70만 원 넘는 돈이죠. 월 2500위안으로 활동한 저보다 걔들이 훨씬 부자였죠. 함께 술 먹고, 놀고, 사진 찍고, 노래방 가고,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술자리에서 놀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누나, 따로 보자’ ‘언니, 만나자’ 하는 거예요.”  
▼ 경계심은.
“애들마다 달라요. 저희도 녀석들을 파악해야 하거든요. 보위부 첩자일 수도 있으니까요. 어떤 얘기를 할 때 덥석 무는 친구는 일단 의심했습니다. 남자아이들이 여자보다 경계심이 강해요. 특히 한국 남자에 대해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국 여자에 대한 경계심은 크지 않아요. 따로 만난 아이들에게는 생활총화 가서 나 만난 얘기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생활총화 소조라는 게 있어요. 예컨대 특정 소조에서 3명이 저와 함께 ‘지하학습’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도 나와 책을 읽는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만약에 일이 잘못됐을 때도 1명만 문제가 돼야 하거든요.”
은서는 20대 때 북한에서 혁명을 일으키겠다면서 중국으로 갔다. 북한에서 온 대학생과 나이차가 많지 않았다.


 

‘네이버’에 익숙한 北 유학생들

“지도 간부가 저한테 한 얘기인데, 여자이고 나이차가 적다보니 아이들에게 접근하기가 쉬웠던 것 같아요. 북한 친구들과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지하학습 함께 할 아이들을 선정하는 게 어려웠죠. 북한 유학생들은 상위층에 속하는 가정의 아이들이었거든요. 녀석들이 한국 물건을 저보다 더 많이 썼습니다.
저는 활동비가 부족해 중국 조미료(MSG)를 구입해 썼는데, 북한 아이들 집에서는 한국산 ‘다시다’로 요리했어요. 걔들 어머니들이 한국 가전제품, 화장품을 엄청나게 사서 평양에 자주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저는 비싸서 못 쓰는 한국산 고급 화장품을 집에 쟁여놓고 살아요. 학생들과 노래방에 가면 한국 최신 가요를 저보다 더 잘 알더군요. 얘들이 집에  모여서 ‘뮤직뱅크’ 같은 한국 가요 프로그램 DVD를 함께 봐요. 중국산 맥주가 3위안, 5위안 하는데, 한국 소주는 30위안이거든요. 비싼 술이죠. 그런데도 많이 마셔요.
부모가 여행 갔을 때 북한 학생 집에서 놀고 함께 자기도 했어요.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적발될 위험이 있거든요. 몇몇 아이 집을 다녔는데,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아래에서 한국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 한국 소주 마시면서 한국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당황했습니다. 한국 여자, 한국 남자를 사귀는 겁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남자친구가 한국으로 가 입대했는데, ‘싸이월드’로 소재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한 친구도 기억납니다. 20대 초반은 여자든, 남자든 이성을 만날 때 겁이 없을 나이잖아요.”
▼ 은서 씨는 남자친구고 뭐고 다 팽개치고….
“중국 가기 직전에는 남자친구 없었고요. 중국에서도 없었어요. 결혼은 아직 안 했고, 지금은 남자친구 있습니다.”
노는 것을 좋아하던 현서는 은서를 만난 후 바뀌었다.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읽은 후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부패했는지 몰랐다”며 분개했다. 은서는 북한 학생들에게  DVD도 건네줬다. 정의감을 북돋우고 북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알게 하는 영화들이다.  
▼ 6·25전쟁의 원인이라든지 북핵 문제, 독재정권 얘기를 해주면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아이마다 달라요. 술자리에선 버럭 화를 냈다가도 다음에 만났을 때 ‘그게 정말이야?’라고 다시 묻는 친구도 있었고요. 암기식 교육을 받은 터라 차근차근 이해를 시켜주는 식으로 가르치면 아이들이 변하더라고요. 말은 안 해도 표정이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거든요. 듣기 싫으면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할 텐데 오히려 계속 물어봅니다. PC방 가서 검색해보라고 하면 ‘네이버’에 접속해 직접 알아봅니다. 궁금한 게 생기면 한국 포털을 통해 찾아요. 중국에서 가명을 썼는데, 아이들이 제 가명을 네이버에서 검색해봤더라고요.”



“개인숭배가 뭐야?”

▼ 은서 씨가 정보기관 요원이라고 의심한 학생은 없었나요.
“남자아이 몇몇이 의심했죠. ‘누나, 안기부 아니냐?’고. 북한에서는 국정원을 아직도 안기부라고 부릅니다. ‘만약 누나가 안기부면 정보를 빼줄 테니 돈을 달라’는 녀석도 있었어요. 남자아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돈벌이거든요.”
▼ 학생들에게 건네준 DVD가 효과가 있었나요.
“북한 아이들이 영화를 많이 좋아했어요. 한국 드라마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현서 아버지는 한국 드라마를 매일 봤다고 합니다. 한국 일일드라마가 방영 이틀 후 중국에 유통되거든요. 현서가 날마다 빌려 아버지에게 갖다드렸어요. 보위부 첩자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평양에서도 USB에 담긴 한국 책을 봤다고 하더군요. 걔는 말투도 한국 사람과 비슷했어요. 현서 같은 아이들도 ‘완전대박’ 같은 한국 유행어를 썼어요. TV에서 익힌 거죠. 한국의 또래 학생들처럼 ‘나는 이준기가 좋다’ ‘아니다, 김수현이 최고다’ 하면서 장난치기도 하고.”
▼ 말씀을 듣다보니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변할 것 같습니다. 미국 유학 다녀온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주류가 됐듯 중국 유학한 친구들이 나중에 북한에서 주류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변할 것 같기는 해요. 중국에서 북한 상류층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북한 사람에게 가졌던 선입관 같은 게 무너졌습니다. 자기들도 자본주의에 물들어 놀고 있다는 것을 알거든요. 젊은 시절 유학 가 외국에서 방탕하게 살다 한국에서 반듯하게 사는 한국 사람들과 비교해도 좋을 것 같아요. 중국에서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자유주의에 물들어 생활하다 평양에 돌아가면 힘드니까 각 잡고 살겠다는 거죠.”
버드나무 잎이 짙푸르던 늦여름 어느 날 현서가 은서에게 물었다. “언니가 만약 조선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 것 같아?” 은서는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현서는 궁금한 게 더 많아졌다. “계몽주의가 뭐야?” “마오쩌둥은 왜 비판받아?” “개인숭배가 뭐야?” 현서는 선생님이 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은서에게 말했다. 현서는 다이허우잉(戴厚英)이 문화대혁명 시기 지식인이 겪은 비극을 주제로 쓴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고는 “중국의 당시 상황이 북한과 비슷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나 이 책 중국어로 된 원서 구해줘. 진정한 사회주의 세상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게 됐거든. 한국에서 나온 책은 가져갈 수 없으니 중국어로 된 책을 조국에 갖고 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잠 푹 잔 적 없다”

▼ 북한 학생들과 ‘학습’하면서 윤리적 갈등은 없었어요?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세뇌교육’이기도 한데요.
“제가 관리한 학생 중 70%는 술 마시고 한국 얘기하고 연예인 얘기하고 그런 게 다예요. 혹시라도 제가 노출돼 그 아이들이 다치면 어떻게 하나, 이 걱정이 가장 컸어요. 다른 동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학생이나 조선족 협조자, 탈북자, 중국 국적의 북한 거주 화교 등을 교육한 후 임무를 줘 북한에 들여보내는 게 목적인데, 고민이 없을 수가 없죠. 북한에 USB를 유포한다든지, 정보를 획득한다든지, 반체제 활동을 한다든지 하는 것인데, 위험한 일이죠. 제가 관리한 학생들은 의기투합했더라도 임무를 주기는 애매했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일을 맡기기도 했거든요. 중국에서 활동한 모든 동지가 그랬겠지만 잠을 푹 잔 적이 없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고….”
▼ 성과보다는 한계가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다른 동지들의 성과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저 같은 경우 의기투합한 북한 학생 숫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쉬움이 많죠. 2012년 조직이 드러나면서 동지들 모두가 한국으로 철수했습니다. 북한으로 되돌아간 친구들과 뭔가를 좀 해보려고 할 때 철수한 거죠.”
현서는 은서와 함께 다종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이 됐다. “조국이 바뀌려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도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현서는 은서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현서는 김정은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다 대한민국에서 온 은서에게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우리 집 벽에 붙어 있는’ 사람이 빨리 죗값을 치르고 죽었으면 좋겠어. 요즘엔 집에서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빨리 죽어달라고 기도를 한다니까.”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기 전의 일이다. 해외에 나가 살더라도 북한 주민 집에는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현서 가족은 아버지의 인사이동으로 20△△년 평양으로 돌아갔다. 은서와 현서는 1박2일로 이별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들른 절에서 현서가 기도했다. 은서가 뭘 바랐느냐고 묻자 현서는 “빨리 조선이 바뀌어 모두가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고 했다. 은서가 말했다.
“조선에 돌아가면 너의 생각을 완전히 숨기고 고위급 가정의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 그게 조국을 바꾸는 너의 역할이다.”
어느 여름날 평양의 현서가 중국의 은서에게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다. “언니가 알려준 사실을 기억하며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현서는 적었다.



운명(命)을 바꾸는(革) 일

은서는 ‘강철서신’ 저자로 1980년대 대학가를 붉게 물들인 김영환 씨가 1999년 꾸린 북한 민주화운동 조직에서 활동했다. 이 조직은 지금껏 북한 각지에 혁명의 씨앗을 뿌려놓았다. ‘횃불’이라는 이름으로 조직한 북한 내 반체제 인사들이 그들이다. 은서의 동지들은 탈북자, 엘리트, 화교 등을 대상으로 은서보다 더 격한 일을 했다. 이 조직 활동가가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2년 김영환 씨가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로 구금돼 114일 만에 풀려나면서 조직이 드러나 활동가들도 철수했다. 성과보다는 한계가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체제 전환 때 이들이 뿌려놓은 씨앗이 나비효과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은서는 통일을 이뤄내 현서를 보게 될 날을 기다린다. 목이 빠진다. 조바심이 난다. 혁명은 사람의 운명(命)을 바꾸는(革)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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