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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th story

김정일 초상화 아래서 ‘뮤직뱅크’ 보며 ‘참이슬’ 마신다

북한 혁명단체 여성 조직원의 北 청년 지하학습記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김정일 초상화 아래서 ‘뮤직뱅크’ 보며 ‘참이슬’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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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익숙한 北 유학생들

“지도 간부가 저한테 한 얘기인데, 여자이고 나이차가 적다보니 아이들에게 접근하기가 쉬웠던 것 같아요. 북한 친구들과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지하학습 함께 할 아이들을 선정하는 게 어려웠죠. 북한 유학생들은 상위층에 속하는 가정의 아이들이었거든요. 녀석들이 한국 물건을 저보다 더 많이 썼습니다.
저는 활동비가 부족해 중국 조미료(MSG)를 구입해 썼는데, 북한 아이들 집에서는 한국산 ‘다시다’로 요리했어요. 걔들 어머니들이 한국 가전제품, 화장품을 엄청나게 사서 평양에 자주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저는 비싸서 못 쓰는 한국산 고급 화장품을 집에 쟁여놓고 살아요. 학생들과 노래방에 가면 한국 최신 가요를 저보다 더 잘 알더군요. 얘들이 집에  모여서 ‘뮤직뱅크’ 같은 한국 가요 프로그램 DVD를 함께 봐요. 중국산 맥주가 3위안, 5위안 하는데, 한국 소주는 30위안이거든요. 비싼 술이죠. 그런데도 많이 마셔요.
부모가 여행 갔을 때 북한 학생 집에서 놀고 함께 자기도 했어요.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적발될 위험이 있거든요. 몇몇 아이 집을 다녔는데,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아래에서 한국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 한국 소주 마시면서 한국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당황했습니다. 한국 여자, 한국 남자를 사귀는 겁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남자친구가 한국으로 가 입대했는데, ‘싸이월드’로 소재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한 친구도 기억납니다. 20대 초반은 여자든, 남자든 이성을 만날 때 겁이 없을 나이잖아요.”
▼ 은서 씨는 남자친구고 뭐고 다 팽개치고….
“중국 가기 직전에는 남자친구 없었고요. 중국에서도 없었어요. 결혼은 아직 안 했고, 지금은 남자친구 있습니다.”
노는 것을 좋아하던 현서는 은서를 만난 후 바뀌었다. ‘김정일 로열패밀리’를 읽은 후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부패했는지 몰랐다”며 분개했다. 은서는 북한 학생들에게  DVD도 건네줬다. 정의감을 북돋우고 북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알게 하는 영화들이다.  
▼ 6·25전쟁의 원인이라든지 북핵 문제, 독재정권 얘기를 해주면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아이마다 달라요. 술자리에선 버럭 화를 냈다가도 다음에 만났을 때 ‘그게 정말이야?’라고 다시 묻는 친구도 있었고요. 암기식 교육을 받은 터라 차근차근 이해를 시켜주는 식으로 가르치면 아이들이 변하더라고요. 말은 안 해도 표정이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거든요. 듣기 싫으면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할 텐데 오히려 계속 물어봅니다. PC방 가서 검색해보라고 하면 ‘네이버’에 접속해 직접 알아봅니다. 궁금한 게 생기면 한국 포털을 통해 찾아요. 중국에서 가명을 썼는데, 아이들이 제 가명을 네이버에서 검색해봤더라고요.”



“개인숭배가 뭐야?”

▼ 은서 씨가 정보기관 요원이라고 의심한 학생은 없었나요.
“남자아이 몇몇이 의심했죠. ‘누나, 안기부 아니냐?’고. 북한에서는 국정원을 아직도 안기부라고 부릅니다. ‘만약 누나가 안기부면 정보를 빼줄 테니 돈을 달라’는 녀석도 있었어요. 남자아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돈벌이거든요.”
▼ 학생들에게 건네준 DVD가 효과가 있었나요.
“북한 아이들이 영화를 많이 좋아했어요. 한국 드라마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현서 아버지는 한국 드라마를 매일 봤다고 합니다. 한국 일일드라마가 방영 이틀 후 중국에 유통되거든요. 현서가 날마다 빌려 아버지에게 갖다드렸어요. 보위부 첩자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평양에서도 USB에 담긴 한국 책을 봤다고 하더군요. 걔는 말투도 한국 사람과 비슷했어요. 현서 같은 아이들도 ‘완전대박’ 같은 한국 유행어를 썼어요. TV에서 익힌 거죠. 한국의 또래 학생들처럼 ‘나는 이준기가 좋다’ ‘아니다, 김수현이 최고다’ 하면서 장난치기도 하고.”
▼ 말씀을 듣다보니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변할 것 같습니다. 미국 유학 다녀온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주류가 됐듯 중국 유학한 친구들이 나중에 북한에서 주류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변할 것 같기는 해요. 중국에서 북한 상류층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북한 사람에게 가졌던 선입관 같은 게 무너졌습니다. 자기들도 자본주의에 물들어 놀고 있다는 것을 알거든요. 젊은 시절 유학 가 외국에서 방탕하게 살다 한국에서 반듯하게 사는 한국 사람들과 비교해도 좋을 것 같아요. 중국에서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자유주의에 물들어 생활하다 평양에 돌아가면 힘드니까 각 잡고 살겠다는 거죠.”
버드나무 잎이 짙푸르던 늦여름 어느 날 현서가 은서에게 물었다. “언니가 만약 조선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 것 같아?” 은서는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현서는 궁금한 게 더 많아졌다. “계몽주의가 뭐야?” “마오쩌둥은 왜 비판받아?” “개인숭배가 뭐야?” 현서는 선생님이 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은서에게 말했다. 현서는 다이허우잉(戴厚英)이 문화대혁명 시기 지식인이 겪은 비극을 주제로 쓴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고는 “중국의 당시 상황이 북한과 비슷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나 이 책 중국어로 된 원서 구해줘. 진정한 사회주의 세상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게 됐거든. 한국에서 나온 책은 가져갈 수 없으니 중국어로 된 책을 조국에 갖고 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잠 푹 잔 적 없다”

▼ 북한 학생들과 ‘학습’하면서 윤리적 갈등은 없었어요?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세뇌교육’이기도 한데요.
“제가 관리한 학생 중 70%는 술 마시고 한국 얘기하고 연예인 얘기하고 그런 게 다예요. 혹시라도 제가 노출돼 그 아이들이 다치면 어떻게 하나, 이 걱정이 가장 컸어요. 다른 동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학생이나 조선족 협조자, 탈북자, 중국 국적의 북한 거주 화교 등을 교육한 후 임무를 줘 북한에 들여보내는 게 목적인데, 고민이 없을 수가 없죠. 북한에 USB를 유포한다든지, 정보를 획득한다든지, 반체제 활동을 한다든지 하는 것인데, 위험한 일이죠. 제가 관리한 학생들은 의기투합했더라도 임무를 주기는 애매했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일을 맡기기도 했거든요. 중국에서 활동한 모든 동지가 그랬겠지만 잠을 푹 잔 적이 없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고….”
▼ 성과보다는 한계가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다른 동지들의 성과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저 같은 경우 의기투합한 북한 학생 숫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쉬움이 많죠. 2012년 조직이 드러나면서 동지들 모두가 한국으로 철수했습니다. 북한으로 되돌아간 친구들과 뭔가를 좀 해보려고 할 때 철수한 거죠.”
현서는 은서와 함께 다종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이 됐다. “조국이 바뀌려면 아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도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현서는 은서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현서는 김정은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다 대한민국에서 온 은서에게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우리 집 벽에 붙어 있는’ 사람이 빨리 죗값을 치르고 죽었으면 좋겠어. 요즘엔 집에서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빨리 죽어달라고 기도를 한다니까.”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기 전의 일이다. 해외에 나가 살더라도 북한 주민 집에는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현서 가족은 아버지의 인사이동으로 20△△년 평양으로 돌아갔다. 은서와 현서는 1박2일로 이별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들른 절에서 현서가 기도했다. 은서가 뭘 바랐느냐고 묻자 현서는 “빨리 조선이 바뀌어 모두가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고 했다. 은서가 말했다.
“조선에 돌아가면 너의 생각을 완전히 숨기고 고위급 가정의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 그게 조국을 바꾸는 너의 역할이다.”
어느 여름날 평양의 현서가 중국의 은서에게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다. “언니가 알려준 사실을 기억하며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현서는 적었다.



운명(命)을 바꾸는(革) 일

은서는 ‘강철서신’ 저자로 1980년대 대학가를 붉게 물들인 김영환 씨가 1999년 꾸린 북한 민주화운동 조직에서 활동했다. 이 조직은 지금껏 북한 각지에 혁명의 씨앗을 뿌려놓았다. ‘횃불’이라는 이름으로 조직한 북한 내 반체제 인사들이 그들이다. 은서의 동지들은 탈북자, 엘리트, 화교 등을 대상으로 은서보다 더 격한 일을 했다. 이 조직 활동가가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2년 김영환 씨가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로 구금돼 114일 만에 풀려나면서 조직이 드러나 활동가들도 철수했다. 성과보다는 한계가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체제 전환 때 이들이 뿌려놓은 씨앗이 나비효과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은서는 통일을 이뤄내 현서를 보게 될 날을 기다린다. 목이 빠진다. 조바심이 난다. 혁명은 사람의 운명(命)을 바꾸는(革) 일이다.




신동아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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