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이영미의 스포츠 ZOOM 人

“훈련량 자랑 말고 ‘야구 자체’ 가르쳐라”

‘국민감독’ 김인식, 한국 야구를 論하다

  • 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입력2016-03-25 11: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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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가방 들고 등교해 수업부터 듣게 해야
    • 가슴 따뜻해야 좋은 지도자
    • 야구 본질 모르는 선수 많다
    • 비난 감수하는 게 승부 세계
    국민감독 김인식(69).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 중 ‘국민감독’ 만큼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 지난해 11월 세계 12강이 겨룬 프리미어12 대회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이 정상에 우뚝 섰다. 대표팀이 구성되기까지 갖가지 난제로 운영 자체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와 그의 팀은 일본, 미국을 격파하고 값진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 감독으로 시작한 감독 인생은 어느새 26년을 맞았다. 김 감독은 우승 반지 셋을 갖고 있다. 둘은 OB(1995년)와 두산(2001년) 시절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받은 것. 다른 하나가 프리미어12 챔피언 반지다.



    ‘건강한 팀’의 조건

    ▼  프리미어12 반지는 어땠습니까.

    “좋더라고. 베어스 시절 받은 것보다 더 좋았어. 폼 나더군. 집 진열장에 잘 보관해뒀지.”

    ▼  어떤 반지에 눈이 더 가나요.

    “한국시리즈와 국제대회 우승 반지는 의미가 다르지. 경중을 따질 순 없어도 의미에 차이는 있어. 고생 많이 해 우승을 차지한 반지에 눈이 더 갈 수밖에 없는데, 딱히 한 가지를 꼽을 수가 없네(웃음).”

    ▼  프리미어12는 준비부터 대회까지 숱한 에피소드가 있었죠. 특히 힘든 부분은 뭐였나요.

    “선수들 모으는 과정이었지. 선발 과정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고, 부상 선수들이 나오면서 대체 선수를 뽑게 되고…. 딱 거기까지 힘들었어. 선수들을 다 모은 뒤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어. 물론 이후에도 자잘한 문제는 있었지만 결과가 좋았으니까.”

    ▼  프리미어12는 시작 전부터 말이 많았어요.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처럼 큰 동기가 부여되는 것도 아니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의 출전 금지를 발표하면서 대회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대표팀이잖아. 대회 수준이 어떻든 우린 태극 마크를 달고 뛰는 거라고. 어떻게 소홀히 하겠어. 소집 첫 날, 선수들 모아놓고 이런 얘기를 했어. ‘어깨에 태극기를 달았으니 본인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명예도 중요하다’고. 대표팀에선 기술을 끌어올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어려워. 그 나름 최고의 선수들을 모은 건데 기술적으로 뭘 가르치겠어. 대회 직전까지 선수들 컨디션 잘 올려서 경기 때 100% 넘는 실력을 발휘하도록 코칭스태프와 함께 노력했지. 대표팀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  ….

    “팀워크야. 피를 나눈 형제도 싸우고 다투는 마당에 성격이 다른 선수들이 모이면 크고 작은 충돌이 있을 수 있거든. 사전에 그런 일을 막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지. 서로 돕고 양보하자고 강조했는데, 그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

    ▼  여러 선수가 생각날 텐데요, 고마운 선수를 꼽는다면.

    “정근우랑 이대호지. 대표팀 고참인데 그 둘이 정말 최선을 다해 후배들을 이끌었어. 근우는 주장답게, 대호는 선배로서 후배들을 끌고 나갔지. 두 선수 노력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팀이 굉장히 단단해졌어. 대표팀뿐 아니라 어느 팀이건 제대로 굴러가려면 선수층이 다양해야 해. 신인만 많아도 안 되고, 고참만 수두룩해도 발전 가능성이 없지. 고참, 중견, 신인이 적절한 숫자로 구성원을 이뤄야 건강한 팀이 된다고.”



    “국가 있고 야구 있다”

    ▼  대표팀 구성 전까지만 해도 동기 부여가 적은 프리미어12는 신인 위주로 치르는 게 맞지 않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 질문 정말 많이 받았어. 병역 혜택도 없고, 메이저리거도 안 나오는 대회인데 굳이 베테랑 선수들을 뽑을 필요가 있느냐고. 오히려 올림픽이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를 염두에 두고 프리미어12는 연습용으로 치러야 하지 않겠냐고. 말은 좋지만, 국민 전체가 그런 상황을 이해하는 건 아니잖아. 야구 팬이 아닌 국민으로서 그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겠어. 결과가 좋지 않으면 누가 책임지나. 대표팀 경기를 연습용으로 치른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각 팀 주전급 선수를 대거 뽑은 거야.”

    ▼  대회를 앞두고 어느 정도 기대했나요. 여론은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나도 기대 안했어. 국제대회를 WBC 통해 경험했잖아. 1회 대회는 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치렀고, 2회 때는 경기하면서 자신감을 가진 편이지. WBC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출전하잖아. 그런 상황에서 우리 선수들이 어느 정도의 역량을 보여줄지 가늠이 안됐거든. 2회 대회부턴 경험이 있어선지 자신이 생기더라고. 부딪치면서 답을 찾자는 생각도 했고. 프리미어12도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임한 게 좋은 결과로 나타난 거야.”

    ▼  각 팀의 일부 주전은 대표팀에 뽑히는 걸 부담스러워합니다. 행여 부상이라도 당하면 개인과 소속팀이 피해를 보니까요.

    “2006년 1회 WBC에서 김동주의 악몽이 있었잖아. 그해 시즌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었을 김동주가 아시아 예선 1차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하다 어깨 부상을 당했어. 김동주는 그해 시즌 전반기를 통째로 날리고 2007년 시즌이 지나고 나서야 FA 자격을 취득했다고. 당시만 해도 대표팀에서 발생하는 불상사에 대한 특별한 장치가 없었어. 보험 처리와 관련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소속팀이 감당해야 할 몫이더라고. 그럼에도 태극 마크를 다는 선수들은 국가관이 정립돼 있어야 해.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는 거니까. 대표팀 맡을 때마다 내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야.”

    김동주는 2006년 시즌 후 일본 진출을 염두에 뒀다. 타격왕 1회, 골든 글러브 2회 수상에 국내 선수 중 유일무이한 잠실구장 장외 홈런 경력을 자랑하던 김동주는 대표팀 4번 타자로 입지를 구축하며 승승장구했지만 1회 WBC 예선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  좋은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라고 봅니까.

    “보는 눈이 있어야 해. 순간적 판단을 잘할 머리도 있어야 하고.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는 능력도 필요해. 마지막으로는 따뜻한 가슴. 프로팀엔 보통 25명가량의 코치가 있어. 숫자를 늘리는 것도 좋지만, 코치를 좀 줄이더라도 대우를 지금보다 더 잘해주면 좋겠어. 그래야 코치들이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지. 지도자는 야구만 가르치는 게 아니야. 선수의 마음을 살 줄 알아야 해. 가슴이 따뜻해야 한다고. 자신이 던진 얘기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확인해야 해. 무조건 던져놓는다고 선수들이 무는 게 아니니까.”

    ▼  김성근 한화 감독이 KBO에서 가장 연장자입니다. 한화 전임 감독이자, 김성근 감독과 친분을 가진 분으로서 지난 시즌 한화를 어떻게 봤나요.

    “그 나름 선전한 거 아닌가? 물론 팬들이 보기엔 결과에 아쉬움이 있겠지만. 어려운 점이 있었을 거라고. 우리는 모르고 감독만 아는 어려운 점 말이야. 시즌 내내 김성근 감독이 투수 혹사 논란에 시달렸지. 그런데 감독이 그 선수를 등판시키는 데는 감독만이 아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감독이기에 선택해서 밀고 가는 거야. 밖에서 보고 문제를 지적하는 건 쉽지만 감독은 매 순간 책임을 안는 거라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감독이니까.
    프리미어12 준결승전 때 4-3 역전을 하고 9회말 일본을 상대할 때 먼저 정대현을 마운드에 올렸고 마무리를 이현승에게 맡겼는데 주자 1루, 투아웃 상황에서 왼손투수 공을 잘 친다는 나카무라에게 왼손투수 이현승을 붙인 게 승부수였거든. 만약 그 카드가 들어맞지 않았다면 역적이 됐겠지. 나카무라가 좌투수 공을 잘 치지만 반대로 약점도 있는 터라 그걸 노렸는데 적중했어.

    김성근 감독도 마찬가지야. 권혁에 대한 혹사 논란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승부수를 던진 건데, 결과가 안 좋다보니 비난받는 거지. 승부의 세계는 어쩔 수 없어. 비난도 감수하는 거야. 감독이 비난을 두려워하면 안 돼. 참, 이 얘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김성근 감독이 맡고 나서 한화가 흥행에서는 가장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한화 관중이 엄청나게 늘어났잖아. 큰 역할을 한 거야.”

    ▼  올 시즌 한화가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궁금한데요.

    “난 잘될 거라고 봐요. 전력도 좋고 김성근 감독도 같은 실수는 안 할 거 아니야. 두산, NC, 한화, 이 세 팀이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일 것 같아. 객관적 전력만 놓고 봤을 땐 그 세 팀이 제일 나아 보여.”

    ▼  지난 시즌 일부 프로야구 선수들의 해외 원정 도박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불거졌습니다. 야구인으로서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것 같은데요.



    “인성교육 강화해야”

    “어려서부터 선수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 그래.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이런 얘길 해주고 싶어. 책가방 들고 학교 가서 수업부터 받으라고. 공부는 못해도 돼.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들어가서 앉아 있어야 해. 그래야 귀동냥이라도 할 수 있는 거야. 우리가 ‘상식’이란 말을 하는데, 배움이 없으면 상식이란 게 뭔지도 몰라.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 유명해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배움이 중요한 거지. 또 한 가지! 부모가 어떤 사고를 갖고 자식을 키웠는지, 선수의 배우자가 어떤 마인드를 가졌는지도 매우 중요해.
    프로팀 맡았을 때 시무식이 열리면 빠뜨리지 않은 잔소리가 ‘대리운전비 아끼려다 인생 망치는 수 있다’는 거였어. 선수들의 음주운전 사고가 해마다 일어나잖아. 어느 시상식 자리에서 ‘우리는 특별하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 평소엔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게 인식되다가도 사고가 일어나면 사생활이 이슈가 되기 때문이지. 선수 스스로 프로 의식을 갖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해. 구단과 KBO 모두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신인 교육 때 한두 번 얘기하는 걸로는 부족해. 분기별로 자꾸 상기시켜줘야 한다고.”

    ▼  다음 국제대회는 2017년 3월 WBC입니다. 2013년 이 대회에서 한국은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었는데요. 명예회복이 절실한 상황에서 전임감독제 얘기가 또 나옵니다. 일본은 프리미어12를 계기로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을 임명했습니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운영은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인 것 같거든요.

    “당연하지. 프리미어12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일본 야구를 앞질렀다고 할 수는 없어. 그동안 수차례 전임감독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어. WBC 1, 2회 때 내가 한화 감독이었잖아. 소속팀이 있는 상황에서 대표팀을 맡는 게 엄청난 부담이거든. 그때도 전임감독제에 대해 얘길 했다고. 그런데 지금까지도 주장만 있을 뿐이야. 오랫동안 논의된 일인데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는 게 참 안타까워요.”

     ▼  ‘국민감독’이란 수식어가 편안한가요

    “아니야. 여전히 부담스러워. 그 타이틀을 유지하려면 성적을 내야 하니까. 프리미어12 대표팀 맡으면서 고민이 많았어. 현장을 떠난 시간이 좀 있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유니폼을 입으니 크게 어색하지 않더라고. 건강 상태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져 자신감도 있었고. 몸이 불편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신경이 쓰이거든.”



     “할 줄 아는 게 야구밖에…”

    ▼  12년 전 뇌경색을 앓고 난 후 술, 담배를 모두 끊었다고요.

    “다 끊었지. 꾸준히 운동하면서 건강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어.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 그렇게 무서운 병인 줄 몰랐던 거야. 오랜 시간을 들여 치료를 받아왔는데 완쾌는 안 되더라고. 그래도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야구를 가르칠 정도면 훌륭하게 재활한 거지. 이 병은 자기와의 싸움이야. 스스로 ‘나을 수 있다. 재활에 성공할 수 있다’ 생각했고, 그렇게 된 거야. 건강은 한번 잃으면 회복하기 어려워. 나이 먹은 사람은 특히. 있을 때 잘 하라는 말 있잖아. 건강할 때 잘 지키는 게 필요해.”

    ▼  애제자 류현진은 올 시즌 이전 모습으로 돌아올까요.

    “현진이가 미국 돌아가기 전에 찾아와서 식사를 함께 했어. 현진이 말로는 어깨가 많이 좋아졌다더라고. 지금이 중요한 게 아니지. 포수 앉혀놓고 라이브 피칭하고 하루 이틀 지나고 나서도 어깨에 이상이 없으면 정말 회복된 거야. 수술 후 하루빨리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고 싶은 게 투수들의 공통된 심리야. 그걸 자제해야 해. 되도록 천천히,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  김 감독께 야구란 무엇입니까.

    “인생의 축소판. 잘나갈 때는 굉장히 쉬워 보이지만, 일이 꼬이면 매듭 풀기가 어려운 법! 그래서 흥미로운 거야. 야구란 종목이. 그러고 보니 내가 할 줄 아는 게 야구밖에 없네, 하하.”



    김인식 감독은?△ 생년월일 : 1947년 5월 1일
    △ 출신교 : 돈암초-배문중-배문고
    △ 선수 경력 : 크라운맥주, 한일은행
    △ 지도자 경력 : 배문고·상문고·동국대 감독, 해태 수석코치, 쌍방울·두산·한화 감독
    △ 기타 경력 : 한화 고문, 일구회 부회장, 現 KBO 규칙위원장 및 기술위원장
    △ KBO 통산 성적 : 2057경기 980승 45무 1032패(승률 0.487)
    △ KBO 우승 경력 : 한국시리즈 2회(1995·2001년)
    △ 국제대회 경력 : 2000년 시드니올림픽 코치(동메달),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감독(금메달),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4강), 2009년 제2회 WBC 감독(준우승), 2015년 제1회 WBSC 프리미어12 감독(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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