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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東亞-미래硏 공동기획 | 미래한국 청년열전

“배경 숨기지 않고 자랑스레 경쟁케 하자”

국회의원 이자스민, ‘이주 청년’을 말하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백정우 | 미래전략연구원 연구원

“배경 숨기지 않고 자랑스레 경쟁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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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19대 국회의원이자 39세 대한민국 청년이 있다. “이자스민이 못하면 누가 하겠어?” 힘들 때면 남편이 해준 말을 떠올린다. 씩씩하고 또박또박한 청년 정치인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
“한국에 어떻게 왔어요?” “왜 왔어요, 한국에?”

‘어떻게?’와 ‘왜?’의 물음은 다르다. “어떻게?”라는 물음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왜?”라는 질문에는 “뭘 얻어가려고 왔느냐”는 시선이 담겼다. 그는, 20년 전에는 이주민에게 “어떻게?”라고 물었는데 요즘은 “왜?”라고 묻는다 했다.



“왜 왔어요?”

여기, 19대 국회의원인 39세 대한민국 청년이 있다. 이자스민. 1995년 대학생일 때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이듬해 입국했다. 1998년 7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주여성 봉사단체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을 맡았고 서울시 외국인생활지원과에서 일했다. 2008년에는 ‘이주여성 지방의원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2010년 ‘의형제’에서 베트남 여성 뚜이안, 2011년 ‘완득이’에서 필리핀 출신 엄마를 연기했다.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15번으로 당선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초의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일했다.



3월 8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각에서 ‘이주 청년과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대화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또박또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하나 흐리터분한 데가 없다. 조리 있다. 또렷하다. 씩씩하다. 그를 다룬 기사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이방인 혐오 댓글이 달리기 일쑤인데도 괘념치 않았다.

▼ 광복 100년을 맞는 2045년 대한민국에서 이주민 2, 3세와 이주청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질문에 굳이 ‘광복 100년’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나요? 이주청년이 어떤 역할을 왜 해야 하죠?”

▼ ….

“똑같은 한국 사람이거든요.”

▼ 질문에 차별의 의미가 담겼다는….

“2045년 우리의 후세와 청년이 뭘 하고 있을까, 뭘 해야 할까라고 질문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다문화 사회가 익숙하지 않기에 어떤 게 편견인지, 차별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라보면 차별적 질문으로 볼 수밖에 없죠.”

▼ 그러네요. 

“제 아들이 올해 군에 입대합니다. 스물한 살이거든요. 30년 후에는 아들이 50대가 돼 있겠네요.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30년 후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거예요.”



누구를, 얼마나, 어떻게


▼ 정부가 2018년부터 해외 우수 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하나로요. 생산가능인구가 올해 3700만 명을 정점으로 줄어들어요. 이민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앞으로의 이민정책은 어떠해야 한다고 봅니까.

“한국에는 ‘이민’이라는 법률용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자, 유학생, 귀화 한국인만 있죠. 어떤 사람을 받을 건지, 받아준 사람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얼마나 받을 건지 하는 아주 기본적인 틀도 마련돼 있지 않아요. 다시 말해 한국에는 이민 정책이란 게 없습니다. 정책이 아예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죠.”

한국경제연구원은 생산가능인구를 유지하려면 2030년까지 920만 명의 이주민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질문 하나 해볼게요. 유엔에서는 외국에서 1년 넘게 머물면 이민자라고 봅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이민자인가요, 이민자가 아닌가요.”

▼ 이민자죠.

“맞아요.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를 이민자로 규정하지 않아요.”

▼ 용어 정리도 올바르게 안 된 상태에서 ‘이민자를 적극 받겠다’는 구상만 있는 상황이군요.

“이주민 문제를 다루는 컨트롤타워도 없습니다. 정부 각 부처가 자기네 관심사만 제가끔 주장하는 상황이에요. 너는 이것 하고, 나는 저것 하고…제각각입니다. 대통령 직속으로 이민 정책을 다루는 위원회를 꾸려야 해요. 그리고 그 위원회의 사무처가 이민 정책의 한국적 기준(Korean Standard)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누구를 얼마나 어떻게 받을 것인가’ 하는 틀부터 세워야겠죠. 대한민국은 현재 이민 정책이 없을뿐더러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민정책을 꾸려본 적이 없어요.”

그가 또박또박한 영어 발음으로 ‘지구적 연결(global connectivity)’이라는 용어를 쓰며 덧붙였다.

“컨설팅 회사 매킨지의 ‘글로벌 커넥티비티’ 연구에 따르면 세계와 연결된 정도에 따라 경제성장과 GDP(국내총생산)도 영향을 받습니다. 금융, 무역, 사람, 데이터가 전 지구적으로 이동하잖아요. 연결이 가장 잘된 나라 1위가 싱가포르예요. 한국은 14위, 일본은 24위입니다.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낮은 순위죠. 인터넷 속도만 빠르다고 글로벌화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과 데이터가 외부와 연결돼야죠. 정부 부처 홈페이지를 보세요. 한국어를 못하면 데이터 하나 찾기도 쉽지 않아요.

한국과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에 직면했으면서도 닫혀 있어요. 이민을 사실상 안 받아들였죠. 국가의 밝은 미래와 관련해 제대로 된 이민정책을 세울 때가 됐습니다. 이주민이 지구적 연결의 가교 노릇을 할 수 있어요. 이민자의 수가 얼마나 많고 얼마나 다양한지에 따라 ‘글로벌 커넥티비티’의 정도가 달라지겠죠.”


‘굴러온 돌멩이’

그가 올해 초 ‘이민사회기본법’을 발의했다는 사실을 전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가관이다. ‘굴러온 돌멩이가 박힌 돌에게 명령하는군. 무례하다. 어깨에 완장을 채워주니 기고만장했구나’ ‘다문화할지 안 할지는 한국인이 정한다. 꺼져줄래?’ ‘한국도 이제 쓰레기 처리장으로 변하겠구나’…. 이 정도는 그나마 악의의 수위가 낮은 것들이다. 차마 옮기지 못할 막말이 가득하다. 이민법안 제1조는 ‘이 법은 (…)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이룩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차별·배제의 언사를 개똥 싸듯 배설하는 이들에게 출신지의 다양성은 존중해야 할 가치가 아닌 듯하다. 

“제가 외국 출신의 한국인인 터라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이민자를 무작정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에요.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앞서 말했듯 이민정책이 존재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어떤 사람을, 얼마만큼, 어떤 기준으로 받아야 할까요. 그것부터 정해야지요.

교육수준이 높은 외국인을 유치하겠다는데, 한번 생각해봅시다. 한국에서 공부한 외국인 유학생이 일자리가 부족해 한국에서 일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게 현실이에요. 한국의 교육열이 굉장히 높잖아요. 박사학위를 갖고도 일자리를 못 구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아요. 막연하게 ‘엘리트 외국인을 받아주겠다’? 계획도 없이 말을 내뱉는 거죠. 대한민국은 제조업이 강한 나라예요. 제조업을 떠받칠 이주민에 대한 계획? 없어요.

대통령 직속으로 이민정책을 꾸릴 힘 있는 기관이 필요한 것은 사정이 이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이민사회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고요. 경제·사회적 관점에서 이민정책을 잘 꾸리면 새로운 성장 지도를 그릴 수 있습니다.”

그는 2014년 12월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대표발의했을 때도 막말 폭탄을 맞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게시판에만 1만5000개 넘는 댓글이 달리는 기록을 세웠다. 대부분 악플이었다.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일으키며 문화를 더럽힌다는 것이었다. 그의 개인 블로그는 댓글 달기 기능을 차단해야 했다. 제노포비아(xenophobia, 이방인 혐오)가 그를 타깃으로 분출한 것이다.



“약자끼리 작은 파이 놓고 다퉈”

▼ 인종주의 발언은 인류가 쌓아온 보편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동입니다. 당연히 금기(禁忌)에 해당하고요. 제노포비아가 확대되는 듯합니다. 한국 사회가 앓는 병의 징후로도 느껴집니다만.  

“서럽죠. 그런 애가 어떻게 국회의원이냐, 급이 되냐, 한국 역사를 알겠냐… 같은 식으로 말하죠. 경제 상황과 관련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잘 안 풀리면 누군가를 타깃으로 삼는 거죠.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하기 전에 경제학자 한 분이 저한테 ‘갈수록 경제가 안 좋아지는데, 이주노동자와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때 당신이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셨어요.

다문화가정, 특히 동남아 출신은 ‘도와줘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복지 대상자, 도움을 줘야 할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 있는 겁니다. 국제결혼에 실패한 남성들이 모인 단체가 있어요. 그분들도 저와 관련한 기사가 나오면 비판하곤 했죠. 과거에 방송을 할 때는 사람들이 대부분 저를 좋아했거든요.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이주민에 대한 그런 게 더 강하게 나올 것 같아요.”   

▼ 사회학자들은 살기가 힘들다고 느낄수록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대상은 여성이나 이주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고요. 가부장적 문화와 혈연 중심적 의식구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약자들이 연대해 강자와 다퉈야 하는데 약자들끼리 싸우는 것이죠. 약자들이 작은 파이를 두고 다투는 양상이에요.”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불법체류자 부모 등에게서 태어나 출생기록이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도 18세가 될 때까지 교육, 의료 등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내용이다. 혜택을 준다기보다는 의무를 이행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한국은 1991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습니다. 국회가 이 협약에 비준했는데도 시행령 하나가 없는 상황이에요. 18대 국회 때도 발의된 적이 있습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부모의 법적 지위나 출신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교육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듬해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에 “난민, 인도적 지위 체류자, 난민 신청자, 미등록 이주민 자녀의 출생을 적절히 등록한 제도와 절차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지난해 4월 29일 국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면서 인권국가입니다. 이제는 위상에 걸맞게 이주아동들까지 보듬어 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주아동들의 인권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정되고 발전한 한국의 미래와도 직결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에서 교육받고 보호받으며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그림자 아이’ 2만 명

19대 국회 임기(올해 5월 29일까지) 중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학교에 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소원인 아이들이 이웃에 존재하는 나라의 국격(國格)은 어떤 것일까.

▼ 미등록 이주아동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2만 명이라고 추정할 뿐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몰라요. ‘그림자 아이’ 2만 명이 우리와 함께 사는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라는데도 정부가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아요. ‘있는 데, 없는 아이들’인 겁니다.”  

▼ 2만 명이나 됩니까.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해외에서 들어와 나가지 않은 아이가 5000명이 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를 포함하면 2만 명쯤으로 추정되는데, 출생한 사실조차 기록되지 않은 ‘있지만 없는 아이’가 2만 명인지, 3만 명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 학교에 다니는 경우도 있던데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의 문제예요. 교육부 지침으로 학교에 다닐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의무가 아니라 재량이에요. 교육장이나 교장이 못 받겠다고 하면 안 받아도 됩니다.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인 지 20년이 넘었어요. 불법체류자가 낳은 아이들이 지금 몇 살쯤 됐을까요. 우리와 함께 살아가지만 법적으로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범죄 조직이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문이 등록돼 있지 않으니 핏자국을 남겨도 누군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돌봐주지 않으면 나쁜 쪽으로 빠질 수 있어요. 미등록 아동을 질병이나 범죄가 우려되는 상황에 방치하면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집니다.”

일각에선 이주민이 ‘한국 사회의 화약고’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제정해야겠네요. 

“국회가 하루빨리 법을 통과시켜야 해요. 저출산, 고령화 탓에 외국에서 사람을 들여오려는 나라가 이미 있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건 앞뒤가 안 맞죠.”

▼ 이주 청년의 군 의무복무 문제는 어떻게 돼 있나요

“2010년부터, 1993년 이후 태어난 한국 국적 다문화가정 청년은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합니다.”

그는 “한국은 희한하게도 체류 비자 받는 게 국적 취득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이자스민 의원이 뭐라 할라…’ 

“외국인 어머니가 입양 시설에 아이를 보내면 입양원에서 등록을 해 한국 국적을 갖게 됩니다. 황당하죠? 부모를 잃으면 한국인이 되는 거예요. 슬픈 일입니다. 한국 국적을 가져야 입양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국적을 얻으려면 가족이랑 찢어져야 하는 구조인 겁니다. 우리나라가 정서적으로 입양을 선호하지 않다 보니 입양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열여섯 살 정도 되면 입양원을 나가야 합니다. 이 아이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도 한국인으로 사는 거죠.”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주민’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86만 명에 달한다. 100명 중 4명 가까이가 외국인 주민인 것이다. 외국인 주민은 외국인으로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 국내 거주 기간이 90일 넘는 국적 미취득자, 결혼이민자, 국적 취득자의 미성년 자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대전광역시(153만 명), 광주광역시(148만 명) 인구보다 외국인 주민 수가 더 많은 것이다. 외국인 주민이 창출하는 GDP는 60조 원에 달한다(2015년 한국의 GDP 규모는 1600조 원).

▼ 이주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성과라면….

“국회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민 및 다문화정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게 성과라면 성과입니다. 30여 명의 국회의원과 다문화정책을 연구하는 ‘다정다감 포럼’을 꾸렸습니다. 연구단체예요. 제가 대표발의한 법안 대부분은 여야 의원이 골고루 섞여 공동으로 발의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주민 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국회의원이 거의 없다 보니 각 부처에서 다문화정책에 신경을 덜 썼죠. 현재는 어떤 식으로든 머리를 짜내 사업을 하려고 해요.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굉장한 차이라고 생각해요. ‘업무보고 하는데, 다문화가정과 관련한 내용이 없으면 이자스민 의원이 뭐라 하겠다’고 생각해서 뭐라도 하나 만들려고 노력은 합니다.”

▼ 한계는?    

“다들 룰루랄라 잘살면 이주민에게도 관대할 텐데 상황이 그렇질 않잖아요. 안타깝습니다. 앞서 걸어간 이가 있으면 따라 걸을 수 있을 텐데, 물어볼 곳도 없어요, 저는. 정서상 똑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여기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이민자이므로 국회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라는 식의 선입관도 머리에 딱 잡혀 있더군요.” 

▼ 가녀린 손으로 돌 벽 치는 느낌?

“맨땅에 헤딩하기의 연속이라고 하겠습니다. 다행인 것은,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점이에요. 이주아동권리보장 기본법 발의도 23개 NGO(비정부기구)와 함께 한 거예요.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힘들 때 그는 사별한 남편이 해준 말을 떠올린다. “이자스민이 못하면 누가 하겠어?”



‘이태원 박씨’ ‘구로 김씨’

▼ ‘다문화’라는 낱말이 차별의 수사(修辭)가 돼버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문화’는 굉장히 좋은 단어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를 뜻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문화 가족’ ‘다문화 1세’ ‘다문화 2세’처럼 보통의 한국인 가정과 구별되는 특정한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국회 들어오기 전에는 다문화라는 말이 없어져야 한다고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살펴보니 ‘다문화’라는 단어를 안 쓰면 그나마도 적은 지원이 더 줄어들겠더라고요.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고 봅니다.”

▼ 일각에서는,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이더라도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샐러드 볼(salad bowl)보다는 이민자가 한국 방식에 녹아드는 멜팅 폿(Melting Pot) 같은 사회를 원하는 듯합니다. 이민자가 한국의 전통대로 살기를 원하는 건데요. 한국 문화에 동화되기를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도 있고요.

“저는 한양 이씨예요. 이태원 박씨, 구로 김씨도 있어요. 저만 해도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다’는 말을 무척 자주 들어요. 한순간에 모든 것을 떨쳐낼 순 없지만, 한국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살면 내가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민자들은 다 압니다.

그런데 노력해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그렇지 못한 게 있어요. 우리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외국으로 이주해도 김치를 담그는 등 한국식을 고집하는 부분이 있죠.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 출신들에게 ‘모든 점에서 한국 사람이 돼라’고 할 수는 없죠.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동화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화는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요소를 가졌어요. 저만 해도 외국에 체류하면 김치 냄새가 그립습니다. 국제결혼 1세대는 한국 정부가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를 밀어붙여서 그 수가 많아진 겁니다. ‘동남아 여성들이 아이를 많이 낳더라’ 하는 기대도 있었죠. 하지만 사람 다 똑같아요. 옆집, 앞집, 뒷집 다 아이가 하나씩인데 이주 여성이 다섯을 낳겠습니까. 따라주기를 기대할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 거예요.”

▼ ‘한국 청년이면서 이주청년’에게만 따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배경이 제약이 아니라 장점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숨기려는 경향도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자랑스럽게 똑같이 경쟁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편견, 선입관에 대해선 강하게 마음먹어야겠죠. 아이들은 엄마 혹은 아버지가 외국인이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해요. ‘너는 외국인이다’ ‘다문화다’라는 식의 표현이 상처가 될 수 있지만 숨기지 않고 배경을 말할 그런 날이 온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요즘에는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도 많아졌거든요. 부모님들도 힘을 더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탈북민과 이주민

▼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중도 입국 청소년들도 한국에서 교육을 잘 받으면 경쟁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실리콘밸리의 혁신도 이민자 주축으로 이뤄지잖아요. 김연아, 박태환 같은 사람이 이민자 가정에서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금메달을 따고 태극기 흔드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 북한이탈주민도 이주민 못지않은 소수자입니다. 19대 국회 상반기에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일했는데요.
“외통위에서 탈북자 정책을 들여다봤더니 다문화 지원 정책과 흡사하더군요. 탈북자는 헌법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성장한 환경이 다르다 보니 한국에 와서 겪는 어려움이 상당해요. 그래서 다문화가정의 범위를 탈북자와 난민까지 확장하자고 건의한 적이 있는데, 탈북한 분들 일부가 이주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더군요. 통일 시기에 북한에서 온 분들과 한국에 정착한 이주민이 갈등을 겪지 않고 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길 소망합니까.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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