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호

국제 이슈

정치혁명 아이콘? 정치적 이단?

이탈리아 ‘오성(五星)운동’의 역설

  • 김종법 | 대전대 글로벌융합창의학부 교수 utikim@daum.net

    입력2016-07-20 14: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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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치러진 이탈리아 지방선거 결과는 세상을 두 번 놀라게 했다. 첫째는 30대 기혼여성 비르지니아 라지(37)와 키아라 아펜디노(31)가 집권당의 쟁쟁한 현역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각기 수도 로마와 최대 산업도시 토리노의 시장에 당선됐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두 당선자의 소속 정당이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 5개의 별 운동)이라는 ‘정당 형태의 시민결사체’라는 점이다.

    정당 형태의 시민결사체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한국 언론매체 대부분이 ‘오성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으로 지칭하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오성운동 공식 홈페이지는 베페 그릴로라는 코미디언 출신 창립자의 블로그(www.movimento5stelle.it)이며, 거기엔 오성운동이 시민결사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블로그에서 규정한 오성운동의 정의는 이러하다.

    “오성운동은 시민들의 자유결사체이며, 정당이 아닐뿐더러 미래에 정당으로 만들려는 의도도 없다. 또한 좌파 혹은 우파라는 이데올로기를 지향하지 않지만 우리의 이상은 있다. 우리는 소수에게 집중된 정치권력과 정부의 역할을 시민 모두에게 돌려줘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의 직접적인 통치권력과 민주주의 정신의 회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정당 형태의 시민결사체’

    이러한 설명이 특정 정당이라는 현실적 형태나 정당 설립 목적을 부정한다고 할 순 없다. 특히 2012년 총선 때 정당으로 등록해 참여하고도 성격 규정을 바꾸지 않은 것은 기성 정치 및 정당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성운동의 역사가 공식적으로는 7년도 되지 않는다는 점, 이들이 지향하는 정치적 운동의 목적과 목표가 기존 정당과는 다르다는 점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더욱 놀랍다.



    과연 오성운동은 이탈리아 정치·정당의 오랜 구조와 기반을 뒤흔들면서 기존 정치체제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것인가. 오성운동의 발전과 진화는 진정한 정치혁명인가, 기존 정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단순한 이단 현상에 불과한 것일까.

    오성운동은 2009년 10월 4일 밀라노에서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베페 그릴로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창립자는 2명으로, 인터넷 사업가 기안로베르토 카살레지오도 오성운동의 한 축이다. 두 사람은 기성 정당과 전혀 다른 방식의 화학적 결합을 이뤄냈다. 그릴로는 ‘라이(Rai)’라는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 만평 프로그램 사회자이자 만평가로 유명했다. 재벌 출신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등장하자 그릴로는 그를 시사 개그 프로그램의 주요 단골 소재로 활용했고, 이를 못 마땅히 여긴 베를루스코니는 집권하자마자 그릴로를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고 방송국에서 퇴출시켰다.

    이후 그릴로는 특이한 방식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전국 각지를 순회하면서 베를루스코니뿐 아니라 기성 정치계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정치 개그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선보였다. 이런 시도는 선풍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그릴로에 대한 국민적 사랑을 확인시켰으며, 그를 전국적 관심을 받는 정치가로 각인시켰다.

    그릴로는 새로운 정치와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정치가와 유권자의 직접적 만남을 통해 이슈와 정책을 만들어내는 모델로, 미국 민주당 하워드 딘 의원이 2003년 민주당 대선후보 프라이머리 선거 기간에 사용한 ‘미트업(Meetup)’을 차용했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베페 그릴로의 친구들(Amici di Beppe Grillo)’이라는 40개의 미트업을 만들었다.



    직접민주주의 열망

    이때부터 이슈와 주제별로 유권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포럼과 위원회가 활성화했고, 인터넷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사업가 카살레지오가 동참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유권자의 직접민주주의 열망과 조직이 전국적 양상으로 발전했다. 오성운동에 참여한 많은 유권자는 그릴로의 현실정치 참여를 원했고, 실제로 그를 좌파 정당 후보자로 추천하기도 했다.

    2006년 11월엔 280개의 미트업이 결성됐고, 유권자의 직접민주의의를 통해 이탈리아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시민운동을 정치적 조직으로 발전시켰다. 이에 따라 2007년 제노바에서 전국적 조직을 갖춘 조직으로 탄생했으며, 그해 지방선거에서 오성운동 조직원과 주요 지도자들이 시민 추천 후보자로 확정돼 전국적인 선거에 참여했다.

    이렇게 그 목적과 취지에 공감하는 많은 정치가가 동참하면서 오성운동은 기성 정치인·정당의 부패와 특권에 반대하는 ‘V-Day(Vaffanculo Day, 한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이탈리아 욕. 오성운동은 그만큼 기성 정치를 혐오한다는 상징성을 갖는다)를 제안해 유권자들이 직접 제안하는 새로운 정치혁명을 시도했다.

    2008년 지방선거에 본격 참여해 23명의 지방의회 의원을 탄생시킨 오성운동은 전국 정당으로 발전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단순히 시민 추천 후보로 선거에 참여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확대하기 위해 2009년 10월 밀라노에서 창립 행사를 열었다. 오성운동이 전면에 내건 정치 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기성 정치의 부패 구조 단절, 유권자에 의한 직접민주주의 실현이었다. 그릴로의 이러한 목표에 공감해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2009년 7월 그를 민주당 사무총장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성 정치 조직의 한계를 절감한 그릴로는 독자 세력화를 결심했고, 그해 10월 이를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응답하라, 유권자!

    오성운동이 정치적 목표로 내세운 5개의 별은 물, 환경, 운송, 에너지, 발전을 의미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추구권을 지키고 정치 참여의 영역을 설정하려 한 것이다. 오성운동은 2010년 5개 주와 10개 코무네(Comune, 한국의 2~3개 군(郡)을 합쳐놓은 수준의 지방자치 조직)의 선거에 후보자를 내고 전국적 선거에 참여했다. 후보자 득표율은 5~7%, 정당 득표율은 2~5%에 그쳤지만 전국 정당화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확인한 선거였다. 이러한 출발은 이어지는 총선과 유럽의회 선거 등에서 오성운동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하면서 이탈리아 국민과 유럽인에게 집권 정당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성운동이 표방하는 정치혁명의  내용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기성 정당정치에 반대하는 반(反)정당주의, 그리고 디지털 민주주의를 통한 유권자의 직접 참여다. 이러한 기치를 내건 것은 기존 이탈리아 정치의 부패 구조, 정치 관료주의 및 후견인주의라는 오랜 정치·사회적 특징에 기인한다. 정치적 후견인을 중심으로 중앙 정치와 지방 정치조직이 연결되고, 마피아와 같은 범죄조직이 정치와 연결되며, 권위적 관료주의와 특권적 기성 정당들이 정치권력의 기본 질서를 구성하는 구조는 국민의 정치 개혁과 부패 청산 열망을 외면해왔다.

    이 때문에 인터넷과 정보기술(IT)이 발달한 정치 환경 변화를 제대로 파악한 그릴로의 새로운 정치 방식은 유권자로부터 커다란 공감을 이끌어냈고, 이를 바탕으로 오성운동은 새로운 정치적 혁명과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오성운동이 추구하는 두 가지 전략과 다양한 영역의 세부 전략이 기성 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제안한 것과 확연히 다른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실천하는 지도자와 운동 방식이 충분한 소통을 통해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냈기에 유권자들이 응답한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그릴로는 한국의 교육 방식, 그리고 초등학생까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보고 이를 2013년 이탈리아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을 만큼 다소 황당하고 즉흥적인 성격이기도 하다. 반(反)유럽통합 정책, 이탈리아를 유럽연합(EU)에서 탈퇴시켜야 한다는 정책 방향 등으로 인해 오성운동이 이탈리아 내부에서 집권정당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번 지방선거에선 말 그대로 정치혁명적인 결과를 보여줬다.

    이탈리아 4대 도시 중 가장 큰 상징성을 지닌 로마와 토리노 시장선거에서 오성운동의 30대 여성 후보들이 당선된 것은 이탈리아 국민이 바라는 정치 개혁 열망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보여준 일대 사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기적 사건이 이탈리아 국민이 원하는 정치 개혁, 나아가 기존의 부패한 정치 질서와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정치혁명으로까지 이어질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오성운동이 궁극적으로 정치혁명에 준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기존 사회질서와 정치·경제적 구조까지 바꿔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로마와 토리노에서의 승리가 갖는 상징성이 크긴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오성운동의 선거구별 득표수나 득표율은 2013년 총선과 큰 차이가 없거나 되레 감소한 곳도 있다. 보다 정교하고 세부적인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기존 정당체계 및 구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점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장 큰 문제는 오성운동 부대표가 그릴로의 조카 엔리코 그릴로라는 사실이다. 친인척이 정당 설립이나 조직에 관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치가 오랫동안 그러한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성 정치와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을 살 만하다.

    주요 정책 기조가 현재 이탈리아가 추구하는 방향과 사뭇 다르다는 점도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이탈리아 정치가 불신받는 것이 정책 기조나 방향 때문이라기보다 무능한 운영 주체들과 부패한 정치·사회 구조에 기인하는 점을 고려하면, 오성운동이 표방하는 포퓰리즘이나 유럽통합 회의주의가 이탈리아 정치 개혁과 구조 변화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지 비관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더욱이 토리노에서 아펜디노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극우정당인 북부동맹(NL)이라는 점은 오성운동의 정체성을 의심케 할 수 있다. 아펜디노는 1차 투표에선 외무장관 출신의 피에로 파시노(민주당)에게 크게 뒤졌지만, 결선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북부동맹의 지지세를 끌어들여 승리했다. 기성 정당의 도움, 그것도 신(新)나치즘적 요소를 지닌 극우정당의 도움으로 당선됐다는 사실이 기존 질서와 정당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오성운동의 목적에 부합하는지에 관해 근본적 회의를 낳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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