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판 헬조선’이 가져온 브렉시트
- 英 경제 위축 불가피할 듯
- EU의 대책 없는 규제들 개선해야
- 저성장 → 갈등 → GDP 감소 → 저성장, 한국도 예외 아니다
브렉시트를 대외환경 요인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실수’를 야기한 일자리 부족과 소득 격차, 기존 정당 및 사회지도층에 대한 대중의 불신 등 영국 사회의 ‘내부적’ 요인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똑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이러한 내부적 요인에 기반을 둔 ‘분노’가 이번 국민투표에서 EU와 이민자라는 엉뚱한 과녁을 겨냥해 표출됐다. 3D 업종에 종사하는 젊고 일 잘하는 폴란드 출신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실업과 저소득의 원인인 양 적대감을 표출했다. 심화한 갈등이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불러왔고, 그로 인해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의 국민투표는 당사자 영국과 EU뿐 아니라 한국 등 세계 각국 경제에 강한 충격을 줬다. 무엇보다 브렉시트는 취약한 세계경제 성장세를 더욱 고착시키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게리 라이스 국제통화기금(IMF) 대변인은 6월 30일 “지금 우리는 아마도 세계경제에 가장 큰 위험 요인일 수 있는 불확실성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브렉시트가 영국의 경제성장을 단기적으로 저해할 수 있고 유럽과 세계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엉뚱한 과녁
브렉시트 결정이 지닌 의외성 때문에 시장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한국의 코스피도 6월 24일 한때 7%가량 빠졌고, 유럽 일부 국가의 주식시장은 10%까지 폭락했다. ‘블랙 스완(Black Swan, 상식과 반대되는 현상)이 출현한 것이다.브렉시트 결과가 나온 직후 G7 재무장관들은 화상회의로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주말에는 국제결제은행(BIS)이 있는 스위스 바젤에서 60개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모였다. 거의 모든 각국 중앙은행이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증시는 단기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한국도 일주일 만에 이전 주가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EU 내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의 ‘약한 고리’인 남부 유럽의 경우 은행주를 중심으로 폭락한 주가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주식시장은 브렉시트의 영향권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글로벌화한 세계경제는 금융과 교역(수출입), 그리고 투자로 상호 연결돼 있다. 금융 부문 중 일부인 주식시장에서 진정세가 나타난 것에 불과하고, 여타 부문의 위험은 이제 겨우 시작되는 추세다.
금융 중에서도 외환시장을 보자. 영국 파운드화는 10% 급락한 상태에서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상태다. 금융산업 중심지 런던의 위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일까.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런던이 유럽의 금융 수도 기능을 유지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100년간 런던이 발전시켜 온 금융 인프라를 다른 곳이 대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EU 국가 간 금융과 무역결제가 EU 바깥(런던)에서 이뤄지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현재 런던의 기능을 프랑스 파리나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대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 이외의 교역과 투자 전망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 간 관계 설정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영국은 현재와 같이 EU 시장에 대한 ‘완전한’ 접근 권한을 갖되, 이민과 규제에 관해서는 자국의 주권을 강화하기를 원한다. 영국은 EU 가입국이면서도 단일 통화인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다(EU 가입 28개국 중 19개국이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국가이고, 영국을 포함한 9개국은 자국 통화주권을 유지한다).
노르웨이·스위스·캐나다 모델
또한 영국은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조약(Shengen Agreement)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이 조약의 골자는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해 국가 간 통행에 제한이 없게 하는 것. EU 28개국 중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26개국이 가입했다. 단일 통화와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통합까지 지향하는 EU의 발전 요소인 동시에 이에 따른 문제들 탓에 EU의 통합을 해치는 요인으로 지적돼왔다.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 관계의 가능한 대안으로 노르웨이, 스위스, 캐나다 모델이 거론된다. 노르웨이는 스위스·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 등 비(非)EU 4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회원국이다. EFTA가 EU와 유럽경제지역(EEA)을 형성함으로써 노르웨이는 EU 단일 시장에 대한 비교적 완전한 접근 권한을 갖는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이 아니기에 양 지역 간 상품 거래 시 관세 혜택을 받으려면 원산지를 입증해야 하고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일부 비관세 장벽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또한 노르웨이는 분담금을 내는 것은 물론 솅겐 조약에 가입해 EU 회원국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과 이민을 보장한다. 이런 점에서 노르웨이 모델은 영국이 희망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스위스는 EEA에 가입하지 않고 대신 EU와의 양자협정을 통해 EU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받는다. 액수가 작긴 해도 노르웨이와 마찬가지로 분담금을 내고 솅겐 조약에도 가입했다. 800만 스위스 인구 중 130만 명이 EU나 EFTA 회원국 이민자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영국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 캐나다 모델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캐나다는 캐나다-EU 무역협정(CETA)을 맺어 유럽 시장에 대한 일정한 접근권을 갖되, 이민에 관한 한 전적으로 주권을 유지한다. 하지만 캐나다와 EU의 통합 수준은 EU 내 통합은 물론이고 EU-노르웨이, EU-스위스 간 경제통합보다 제한적이다. 또한 캐나다-EU 무역협정(CETA)은 2007년에 논의가 시작돼 2014년에 타결됐고 아직도 발효되지 않았다. EU 회원국 각각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견해와 EU 차원에서 비준하면 된다는 견해가 맞서 언제 발효될지 요원하다. 따라서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 간 관계가 설정되더라도 그것이 비준·발효되기까지 10년 이상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투표 결과 뭉갠다?
결국 영국이 선호하는 EU와의 관계는 노르웨이나 스위스, 그리고 캐나다 모델 중 어느 것으로도 구현되기 어렵다. 영국이 불만을 가진 현재의 EU 내 지위를 유지하기조차 어렵다. 지난 3월 영국 보수당 내 잔류 진영의 필립스 해먼드 외무장관은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연설에서 브렉시트 진영이 EU 탈퇴 후 영-EU 무역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일부러 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영국이 가진 것과 근접한 믿을 만한 선택이 없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래서인지 국민투표 직후부터 영국이 브렉시트를 번복할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 번복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첫째, 국민투표 결과를 무시한다. 대의정치하에서 국민투표는 참고 사항일 뿐이다. 오직 의회만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다.
둘째, 국민투표를 다시 한다. 이미 재투표 청원자 수가 늘고 있다. 향후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면 여론은 더욱 들끓을 것이다. 이때 재투표를 통해 결정을 번복한다는 시나리오다. 덴마크와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를 통해 자국의 EU 가입을 거부했다가 이후 협상을 통해 유리한 조건을 확보한 후 재투표 거쳐 EU에 가입한 전례가 있다.
셋째, 현 정부가 시간을 끌면서 이민에 관한 EU 개혁을 기다린다. 영국과 EU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영국에서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 새롭게 선출된 정부는 이전 보수당 정부에서 행해진 국민투표를 ‘실수’라고 선언하고 영국의 EU 멤버십을 유지한다고 발표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현 단계에서는 이런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영국이 리스본 조약 50조에 의해 EU와 탈퇴 협상을 개시한다고 EU에 통보해야 브렉시트 절차가 정식으로 개시된다. 그 후 2년이 지나면 EU와 적절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과 관계없이 탈퇴가 완료된다. EU 회원국 전부의 동의를 얻으면 2년의 협상 기한은 연장할 수 있다. 아무튼 영국이 지금의 EU와의 관계에서 멀어지면 영국과 세계의 교역, 그리고 영국으로 유입되는 해외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는 크게 감소할 것이다.
‘Take Back Control’
영국으로 유입되는 FDI는 대개 EU 시장을 겨냥한다. 최근 국제무역과 해외직접투자의 정점에는 다국적 기업이 있다. 이들은 생산과 부품 조달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추구하는데, 가령 애플은 아이폰의 핵심 부품을 한국, 일본, 대만으로부터 조달해 중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최종 제품을 조립한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다국적 기업은 부품 조달과 생산, 그리고 최종재 완성 과정에서 EU와 관세·비관세 장벽이 쳐질 영국과의 교역이나 영국에서의 생산을 최소화할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에 대한 신규 FDI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투자 또한 상당 부분 회수될 것이다.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결정 이후 현재 20%인 법인세율을 15%로 인하하겠다는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금융과 교역, 그리고 해외직접투자 축소에 따라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EU의 불안정성은 EU와의 교역 규모가 큰 중국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중국 경제를 포함한 세계경제 성장의 둔화 요인이 될 것이다. 라가르드 IMF 총재는 7월 4일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2019년까지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1.5〜4.5%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렉시트는 EU 개혁 논의에도 불을 지폈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분출된 영국민의 관심 사항을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다. 영국 독립당이 주도한 ‘통제권을 돌려달라(Take Back Control)’는 캠페인에 따라 민족주의나 인종주의, 혹은 대영제국에 대한 향수가 브렉시트 찬성투표로 이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지지자 상당수는 영국독립당의 선동과 관계없이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복지국가의 재정을 궁핍하게 하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킨 데 항의해 투표했다. EU 집행부가 각 주권국가의 선호도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획일적인 규제를 하고 있다는 비판,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EU 관료들이 국민이 선출한 각국 정부를 옥죄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EU 집행부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정서가 EU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포퓰리스트 정당의 부상(浮上),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 기존 정부에 반발해 빈번한 정권 교체를 야기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로존의 위기와 난민 문제는 테러리즘 확산과 관련이 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EU에 대한 영국민의 불신이 이번 투표에서 표출된 것이다.
남의 나라 얘기 아니다
미국 보스턴대 비비언 슈미트 교수는 EU가 시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정책의 결정권을 “각국 정부와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 EU는 EU 공통의 문제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난민 문제는 EU 내부의 협력이 부족한 데서 초래됐다. 반면 유로존 위기는 EU 차원의 과도한 개입이 낳은 결과다. EU는 각국의 재정적자 한도를 너무 엄격하게 정하고(3%) 각국 은행에 대한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을 막았다. 이에 따라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 단일 통화 체제하에서 경쟁력이 취약한 유럽 내 주변 국가들은 확장적 재정정책 및 은행 부실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능력을 잃었다.이탈리아 은행들도 유로존 위기로 야기된 자산 부실화로 자본 확충이 필요한 형편이다. 그러나 EU는 이탈리아 정부의 지원을 금한다.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은 경쟁력이 강한 독일의 수출 제조업은 이익을 보지만 경쟁력이 취약한 남유럽 주변국의 수출은 둔화하고 수입이 증가하는 구조다. 이로 인해 남유럽 재정위기와 은행위기가 빈발한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EU 차원의 해결 메커니즘이 요구된다.
EU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은 지금보다 EU 내 협력이 더 많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노동의 이동은 상품이나 자본의 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노동의 이동은 각국 노동시장과 복지국가 재정을 직접적으로 압박한다.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완전한 통합’을 위해 밟아야 할 돌이킬 수 없는 정책이라면, 이에 따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EU 차원의 장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EU 이동성 조정기금’을 통해 이민으로 야기되는 복지비용 등 사회 서비스 추가 부담, 그리고 이민자를 노동시장에 편입시키는 데 필요한 재교육 비용을 EU 차원에서 분담할 수 있어야 한다. EU 실업기금이나 EU 난민기금을 마련해 이민자 대처에 활용해야 한다.
슈미트 교수는 그 재원은 단일 시장이나 단일 통화 도입을 통해 얻게 되는 수익에서 조달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자본 이동에 대한 세금을 부과해 재원을 조성하는 게 수익자 부담 원칙에도 부합한다. 이렇듯 난민 문제와 유로존 위기에 대한 근본적 문제점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남은 27개 EU 회원국 중 일부의 추가적인 이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통합이냐, 분열이냐
분열된 사회는 안정적 성장을 저해한다. 2010년 한 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필자 주도로 이뤄진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진로’ 연구에 따르면 분열된 사회는 성장하지 못한다. 갈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1인당 GDP가 감소하고 GDP의 변동성(불안정성)은 증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을 대상으로 한 패널 분석 결과 소득불균형(지니계수)이 1% 증가할 때 1인당 GDP는 0.79% 감소하고, GDP 변동성(불안정성)은 0.69% 증가했다. 변동성의 증가는 가계소비와 기업투자를 위축시켜 저성장이라는 악순환을 형성한다.역사적으로 보더라도 1970년대 초 오일쇼크 이후 저조한 성장률을 경험한 국가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분열된 나라들이었다. 스페인은 바스크 민족주의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지속적인 테러 사태를 경험한 반면, 네덜란드는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사회적 타협, 덴마크는 사회안전망과 적극적 노동시장의 결합을 통해 통합과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1998년 스웨덴의 연금 개혁은 높은 수준의 사회통합 덕분에 정치적 반대가 적어 성공할 수 있었다.
양극화가 심하고 갈등관리 능력이 부족한 사회는 구조개혁에 대한 합의도 어렵다. 브렉시트가 한국 사회에 주는 진정한 경고는 이것이 아닐까.
김 용 기
● 1960년 강원 거진 출생
● 영국 런던정경대(LSE) 석사(경제학),
동 대학원 박사(국제정치경제학·금융)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 現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 저서 :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금융위기 이후를 논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