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호

日 법적 책임 제대로 물을까

베일 속 ‘위안부 백서’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입력2016-07-20 14: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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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집필자, 목차 밝힐 수 없다”
    • 집필자 중 위안부 ‘전문’ 전공자 없어
    • 백서 검수위원, “日 법적 책임 최소화 가능성 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2013년부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정부보고서 제작을 준비했다. 이듬해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1993년 8월 4일 고노 관방장관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것) 검증보고서’를 발표하자 정부보고서 대신 ‘백서’를 2015년 말발간하기로 방향을 바꾼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틀 뒤 백서 집필진은 백서 최종안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백서는 아직 발간되지 않았다. 세부적인 진행 과정은 이렇다.



    “2015년 말 발간 예정”

    ① 2013년 6월 : 여가부는 위안부 피해자 진상 규명을 위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진상규명 및 기념사업 추진 민·관 TF’를 발족했다. TF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 방안으로 ‘정부보고서 발간’을 제시했다. 연구자들은 “위안부 관련한 정부보고서가 노태우 정권 때 나온 것밖에 없다”며 “정부에 관련 팀을 꾸려 연구의 무게감을 높이고, 학자를 계약직으로 채용해 정부 내부의 문서를 보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② 2014년 2월 28일 :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의 ‘고노 담화 검증 시도’를 이렇게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의 작성 경위를 검증한다는 목적으로 정부 내에 ‘검토팀을 구성’하겠다고 관방장관이 밝혔다.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의 작성 경위를 다시 검증하겠다고 하면 국제사회의 누구도 일본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③ 2014년 6월 20일 :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 검증보고서 명목으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한 간의 협의 경위-고노 담화 작성으로부터 아시아여성기금까지’를 펴냈다. 일본 학자들은 이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보고서에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 현대사학가 등을 비상근공무원으로 뒀다’고 적시돼 있다.



    ④ 2014년 6월 23일 : 우리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입증하는 사실을 집대성한 백서를 발간하기로 한다. 일본의 고노 담화 훼손 시도에 대한 대응이었다. 외교부 조태용 1차관은 벳쇼 고로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유감을 표명했다.   

    ⑤ 2015년 8월 4일 : 여가부는 고노 담화 21주년을 맞아 “백서는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2015년 말 발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백서를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해 국제사회에 보급할 계획”이라면서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책임연구원 이원덕 국제학부 교수) 및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책임연구원 이신철 연구교수)가 공동으로 백서 집필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연구 운영 방식은 일본 정부와 달리 외부기관에 ‘용역’을 주는 형태였다.

    ⑥ 2016년 1월 4일 : 김희정 여가부 장관은 2015년 한일 12·28 합의 이후 신년사에서 “전 인류가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위안부 관련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겠다”며 발간 의지를 다졌다.



    ‘일본의 법적 책임’ 축소?

    백서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베일에 가려진 백서의 출간을 무작정 기다려야만 할까. 위안부 관련 정보는 정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받기도 어렵다. ‘신동아’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의 ‘백서 목차, 집필진 공개 요구’에 대해 여가부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신동아는 2014년 말 여가부가 만든 ‘일본군 위안부 백서 진행상황 보고’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엔 집필진, 내용 명단과 목차가 수록돼 있다. 그간 백서의 대표 연구자만 알려졌을 뿐 연구진 전체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백서 집필자는 이원덕, 정진성, 한혜인, 박정애, 이신철, 이지영, 박배근, 추규호, 남상구, 최희식이다(최종적으로 추규호는 조양현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이들 중 박사학위의 직접적인 논문 주제가 ‘위안부’인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안부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일제의 공창제 시행과 사창 관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정애 박사가 눈에 띌 뿐이다. 백서 감수위원 A씨는 “집필진에 위안부 ‘전문’ 연구자가 드물다”고 지적했다.

    백서의 내용은 크게 1)위안부 관련 역사 2)일본의 법적 책임 3)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의 활동으로 나뉜다. 목차는 Ⅰ머리말, Ⅱ일본군위안소 설치와 관리, Ⅲ한국인 피해 실태, Ⅳ한국인 피해자의 삶과 운동, Ⅴ피해자·시민단체 활동, Ⅵ일본의 법적 책임, Ⅶ한국 정부의 위안부 정책, Ⅷ 일본 정부의 대응, Ⅸ국제사회의 동향, Ⅹ맺음말로 돼 있다.

    쟁점은 ‘Ⅵ일본의 법적 책임’이다. 12·28합의 이전까지 우리 정부가 일본에 강조해온 대목이기 때문이다. Ⅵ 파트는 1.법적 책임의 의의 2.국내법상의 책임 1)개인의 형사책임 2)개인의 민사책임 3)일본의 민사책임 3.국제법상의 책임 1)개인의 형사책임 2)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 3)일본의 국가책임(국가책임의 의의, 국가책임 성립 요건, 행위의 귀속, 일본이 위반한 국제법,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한 책임 추궁 포기)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 부문에 대한 연구 실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백서 감수위원으로 정부와 집필진의 논의 과정을 지켜본 B씨는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백서가 발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백서 준비 초기단계부터 책임 집필진을 중심으로 ‘한일 관계를 고려해 일본의 법적 책임을 강조하지 말자’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12·28합의가 이뤄졌고, 연구책임자는 외부 강연 등을 통해 12·28합의를 옹호하는데 뭘 기대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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