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호

탄핵·대선·절윤 모두 오락가락…국힘 절망의 정치

[Special Report | 이대론 ‘16대 0’…선거는 끝났다] 비상계엄 그 후, 보수정당 실기(失期)의 역사

  • 이종훈 정치평론가

    입력2026-03-25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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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습 대신 오판의 연속, 불신 키웠다

    • 시작은 좋았으나…어정쩡한 한동훈

    • 장동혁 ‘월담’ 이끈 한동훈의 ‘독단’

    • 金→韓→金 교체 소동으로 대선 종지부

    • 친한계 OUT, 윤어게인 IN…민심 역행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025년 9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현안 및 장외투쟁 관련 입장을 밝히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025년 9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현안 및 장외투쟁 관련 입장을 밝히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를 요구하는 일체의 주장에 명확히 반대한다.”

    국민의힘이 3월 9일 3시간여에 걸친 긴급 의원총회 끝에 내놓은 결의문에 담긴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메시지다. 그러나 여전히 모호하다. 윤어게인 세력과 선을 긋겠다는 뜻은 읽히지만, 국민의힘에 스며든 그들을 정리하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윤어게인 세력의 목소리에 호응했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태도는 더 모호하다. 그는 의원총회 내내 별다른 발언 없이 불편한 표정으로 듣기만 했다. 결의문 낭독을 요청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 의원총회가 끝난 뒤에도 “잘 들었다”고 짧게 말했을 뿐이다.

    지금으로서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내심 윤어게인을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따라붙는 이유다. 6·3지방선거 완패를 피하기 위한 일시적 후퇴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비판이 이어지자 장 대표는 결의문 발표 이틀 뒤 “결의문을 국민께 말씀드리는 자리에 저도 함께 있었다”며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그날 의총에서 밝힌 우리의 입장이 마지막 입장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수습 대신 오판의 연속, 불신 키웠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상황을 두고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였던 ‘같기도’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나온다. 해당 코너의 유행어는 “이것은 A를 한 것도 아니고, B를 한 것도 아니여”다. 지금 국민의힘의 모습이 꼭 이와 닮았다는 것이다. 절윤을 말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다. 말은 A인데 태도는 B에 가까운, 그저 애매함만이 가득하다. 

    절윤 선언을 진심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긴급’이라는 수식이 붙은 의원총회가 열렸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모두 기립한 채 결의문이 낭독됐지만 그 장면을 그대로 믿는 시선은 드물다. ‘남양주 8인 소주 회동’ 역시 불신을 키웠다. 결의문 발표 사흘 전 장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핵심 당직자들이 모여 지방선거 대책 등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의원총회에서 보여준 모습이 ‘약속대련’이었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국민의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12·3비상계엄 이후 1년 4개월 동안 국민의힘은 ‘절망의 정치’를 보여줬다. 수습 대신 오판의 연속이었다. 대표적 실기의 순간들을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2024년 12월 8일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동아DB

    2024년 12월 8일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동아DB

     #1  시작은 좋았으나…어정쩡한 한동훈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반드시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을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친한동훈(친한)계 의원들과 함께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했고, 비상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함께했다. 다음 날 비상 의원총회를 열었고, 총리공관에서 당정청이 후속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까지 전달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야권이 탄핵소추안을 추진하자 한 전 대표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탄핵보다 직무 정지가 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을 만나 조기 하야를 요구했지만 상황은 꼬여갔다. 윤 전 대통령이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함께 “국정을 공동으로 운영하겠다”는 취지의 담화를 발표했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이후 8일이 지나서야 탄핵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지만, 이번에는 친윤석열(친윤)계 설득에 실패했다. 그 결과 한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 쫓기듯 물러나야 했다. 처음부터 탄핵 찬성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친윤계를 더 강하게 설득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보다 수월하게 ‘탄핵의 강’을 건넜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당시 한 전 대표의 어정쩡한 행보야말로 전형적인 ‘같기도’였다. 그리고 이는 이후 이어질 ‘국민의힘 같기도 정치’의 서막이 됐다.

     #2  장동혁 ‘월담’ 이끈 한동훈의 ‘독단’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월담’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장 대표는 본래 ‘1호 친한계’였다. 그는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권에 데뷔하면서 사무총장으로 발탁한 인물이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둘의 선택은 갈렸다. 장 대표는 탄핵 반대 입장에 섰다. 탄핵이 현실화하면 보수진영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던 중 한 전 대표가 충분한 상의도 없이 탄핵 찬성 입장을 발표했고, 장 대표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먼저 사퇴하며 한동훈 체제 붕괴의 신호탄을 쐈다.

    지금 와서 “한동훈이 잘못했느냐, 장동혁이 더 잘못했느냐”를 따지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그때 한 전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 만큼의 절박함으로 장 대표를 설득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하는 점이다. 잘난 인물이 대체로 그러하듯, 한 전 대표 역시 독단적 측면이 없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무튼 장 대표는 방향을 틀었고, 윤어게인 세력과 보조를 맞추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윤·한 갈등 국면에서 가장 극적인 변신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3  金→ 韓→ 金 교체 소동으로 대선 종지부

    지난해 21대 대선 당시 국민의힘이 강성보수 성향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최종 후보로 선택한 것 역시 보수 재건의 기회를 날린 순간이었다. 김 전 장관은 이른바 윤석열 정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야인으로 지내던 그를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잇달아 발탁한 인물이 윤 전 대통령이었고, 김 전 장관이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계기 역시 윤 전 대통령과 관계있다. 민주당 의원들의 계엄 사태에 대한 사과 요구를 거부하면서 잠재적 대선주자로 분류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 전 장관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친윤계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후보 교체를 시도했다. 왜 그랬을까. 탄핵 이후의 정치적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을 포기하기 싫었기 때문이란 해석이 많다. 당시 당내에서는 한 전 총리로 단일화하지 않으면 큰 죄라도 짓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다. 김 전 장관을 후보로 내세운 것도, 다시 한 전 총리로 교체하려 한 것도 사실상 윤어게인 행보였다. 결과적으로 후보 교체 소동은 국민의힘의 대선 승리 가능성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다.

    대선 국면에서도 절윤의 필요성은 분명히 제기됐다. 김 전 장관이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된 것은 2025년 5월 3일이었다. 줄곧 탄핵에 반대해 온 그는 열흘 뒤인 5월 13일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했지만, 윤 전 대통령의 탈당 문제에 대해서는 “하느냐 마느냐는 본인의 뜻”이라고 말하며 선을 그었다. 이는 야권 단일화에 장애로 작용했다. 국민의힘이 이탈한 보수 지지층과 중도층을 다시 흡수하려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연대가 필수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 후보가 단일화의 최소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이었다. 김 전 장관과 친윤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4  친한계 OUT, 윤어게인 IN…민심 역행

    2025년 8월 전당대회에서 장동혁 대표가 선출된 일 역시 실기의 한 장면이다. 장 대표는 경선 내내 윤어게인 세력과 보조를 맞췄다. 전당대회를 한 달가량 앞둔 2025년 7월 31일 전한길 등 보수성향 유튜버들이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참석했을 때는 “당대표가 되면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실제로 장 대표는 두 달 뒤 윤 전 대통령을 직접 찾아갔다. 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서정욱 변호사는 “10분 남짓한 면회 동안 두 사람이 거의 내내 울기만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랬던 장 대표는 1월 7일 비상계엄에 대해 처음 사과했다.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었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한 것이다. 변하나 했지만 2월 19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 이후 상황은 다시 암울해졌다. 다음 날 장 대표가 “국민의힘은 줄곧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는 “윤 전 대통령과 절연을 앞세워 당을 갈라치기하는 세력, 단호하게 절연해야 하는 대상은 오히려 이들”이라고까지 말했다.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이 아닌, 절윤을 요구하던 친한계와 갈라서겠다고 밝힌 순간이다.

    이후 관련 조치는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한 전 대표 제명(1월 29일) 이후 친한계 인사에 대한 징계가 잇따랐다. 2월 9일 최고위원회에서는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종혁 전 최고위원의 제명 결정을 추인했다. 나흘 후 당 윤리위원회는 친한계 인사인 배현진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내렸다. 다만 이는 가처분신청이 법원으로부터 인용된 상황이다.

    유튜버 전한길(왼쪽·본명 전유관) 씨가 2025년 8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찾아 특검의 국민의힘 압수수색 저지 농성 중인 김문수 당대표 후보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유튜버 전한길(왼쪽·본명 전유관) 씨가 2025년 8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찾아 특검의 국민의힘 압수수색 저지 농성 중인 김문수 당대표 후보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비슷한 시기 당 안에서는 또 다른 흐름도 나타났다. 유튜버 고성국이 1월 7일 국민의힘에 합류한 것이다. 앞서 유튜버 전한길(본명 전유관) 역시 2025년 6월 국민의힘에 입당한 바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를 주장해 온 인물들이다. 절윤을 외치던 한 전 대표와 친한계가 당 밖으로 밀려나고, 윤어게인 세력이 당 안으로 유입된 모습이 나타난 셈이다. 장동혁 체제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국민의힘이 보수 재건을 주도하려면 모든 일을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동안 벌어진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적당히 소속 의원들의 총의 뒤에 숨는 방식이 아니라 당대표가 전면에 나서 절윤을 선언해야 한다. 또한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작은 한동훈 전 대표와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한 제명 결정을 취소하는 일일 것이다.

    당대표가 당이 사실상 궤멸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에 대해 사과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일도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책임은 대표직 사퇴까지 열려있다. 그만큼 당 지지율 하락의 책임이 장 대표에게도 크게 있다는 뜻이다. 장 대표는 그동안 정치적 책임을 비교적 가볍게 여겨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태도가 당의 위기를 키웠다는 점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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