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한 장면. 쇼박스 홈페이지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궁금해졌을 것이다. “노산군(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라는 조정의 명을 거역하고 깊은 밤 홀로 장례를 치른 엄흥도가 무사할 수 있었을까. 영월 땅에서는 살지 못했을 그와 자식들은 어디로 떠났을까.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 경북 문경에 자리한 영월 엄씨 집성촌이 뉴스에 소개됐는데, 그들이 엄흥도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며 화제가 됐다. 당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엄흥도의 장자는 문경으로, 차자는 엄흥도와 함께 군위로, 삼자는 함경도 안변 또는 울산(울주)으로 피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날로부터 569년이 흐른 뒤, 한 편의 영화로 다시 소환된 조상의 정의로운 선택 앞에서 그 후손들 또한 남다른 울림을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건대 엄흥도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새삼 되새겼을 듯하다.
단 한 명으로도 이어지는 혈맥의 가치
이처럼 우리 역사 속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이의 혈맥이 이어져 세대를 건너 마침내 자손이 번성한 사례가 적지 않다. 사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박팽년은 세조의 친국으로 본인은 물론 아버지와 동생, 아들까지 사형을 당했지만, 당시 만삭이던 둘째 며느리가 낳은 아기를 여종의 도움으로 숨기는 기지를 발휘해 단 한 명의 손자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멸문의 위기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한 생명이 그 집안의 맥을 붙든 셈이다. 오늘날 경북 칠곡군에 형성된 순천 박씨 집성촌이 바로 박팽년의 후손으로 전해진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웅담이 아니다. 단지 목숨을 부지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식을 낳고 또 낳아 끝내 세대를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후손이 있기에 선조의 용맹은 다시 되새겨질 수 있고, 과거의 결기와 선택 또한 현재에 비로소 또렷한 의미를 얻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내가 과연 누구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라며 고개를 갸웃할지 모른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한민족의 경우 일정 범위에서 선조와 후손의 계통을 추적할 수 있는 토대가 비교적 탄탄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부계 혈통을 중심으로 세대를 정리해 온 족보 기록 덕분이다.
서양의 성씨는 직업, 거주 지역, 부친의 이름, 외형적 특징, 별명 등 다양한 요소에서 파생됐기 때문에 한 나라 안에서도 수십만 개의 성이 존재할 수 있다. 같은 성을 쓴다고 해서 곧바로 동일한 혈통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한민족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계보를 비교적 촘촘히 기록해 왔다는 점에서 서양과 차이가 있다. 성씨와 더불어 본관과 족보 체계가 함께 작동해 왔기에 특정 인물의 후손을 추적하는 일도 상대적으로 비교적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필자 역시 남아선호사상을 지양하며, 생명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우열의 대상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과학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 형성된 부계 중심의 가계 기록 방식만큼은 단순한 관습을 넘어 가계의 계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하나의 기록 체계로 보게 된다.
실제로 Y염색체라는 생물학적 표지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만 전달되는 유일한 염색체다. 부계를 따라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어지며 세대를 관통하는 생물학적 흔적을 남긴다. 물론 미세한 돌연변이는 축적되지만, 그 변화조차 계통을 추적하는 단서가 된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대를 이어가는 부계 혈통 기록 방식과 유전 경로가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인간은 유전의 원리를 몰랐어도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무엇’을 직감적으로 인식하고 기록해 온 셈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걸음걸이만 봐도 어느 집 자식인지 안다”라고 했고, 얼굴 생김새나 말버릇, 괜한 고집까지도 “피는 못 속인다”라는 말로 정리하곤 했다. 이는 단순한 관용구라기보다 세대를 건너 반복돼 나타나는 유전적·기질적 특징을 경험적으로 포착한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과학이라는 언어는 없었지만, 삶의 관찰을 통해 축적된 감각이 그렇게 말로 남았고, 그 감각이 족보와 가계 기록이라는 형식 속에 스며들어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미래에 대한’ 신뢰 주는 정부 지원 절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예전에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닮음’의 고리가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족보의 마지막 칸이 비어 있는 집이 늘어나고, 기록은 더 이어지지 않은 채 멈추기도 한다. 물론 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렇지만 저출산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아이 한 명이 태어나는 일은 단지 집안의 경사가 아니다. 과거에서 건너온 기질, 이야기를 미래로 넘겨주는 작은 릴레이기도 하다.작금의 시대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의 시대다. 이러한 가운데 난임병원 문을 두드리는 부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러 차례 실패를 견디고 또 시도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얼마나 장한 이들인가. 주변 집안에 그러한 며느리나 딸이 있다면, 고마워해야 한다. 아기를 한 명만 낳아준다고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말이다. 역사 속 단 한 명의 후손이 자자손손, 자손만대를 이루었듯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난임 치료 시술비를 지원하고 약값을 낮추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아이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일이다. 여성에게 출산은 본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 비로소 선택된다. 자신조차 불확실한 미래에 자식의 명운까지 더 얹는 일은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다. 출산에 대한 결정은 본능과 가치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낳고 싶어도 경제적 토대와 자산 구조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포기할 수 있다.
핵심은 집이다. 30~40년 전에는 단칸방에서도 ‘언젠가는 내 집’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열심히 모아도 집값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체념이 앞선다. 따라서 정부가 부동산정책을 설계할 때 임신을 준비하거나 출산한 부부의 보금자리 마련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주거는 단순한 삶의 공간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안정성의 지표이자, 사실상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증명해 왔듯 단 한 명의 생존자가 자자손손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를 품어준 공동체와 삶의 터전이 있었다. 혈맥은 생물학이지만, 번성은 사회적 구조에 달려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씨앗은 개인이 심는다 해도, 잘 자라게 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기 때문이다.

● 1966년 울산 출생
● 1990년 고려대 의대 졸업
● 1994~1998년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전공의
● 1999~2000년 제일병원 복강경수술 전문 펠로(fellow)
● 2000~2003년 미즈메디병원 난임 전문의
● 2003년~ 마마파파&베이비산부인과의원 대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