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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그림을 귀로 보지 말라”

미술품 감정·복원 전문가 최명윤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그림을 귀로 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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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최명윤(69)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명지대 객원교수)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PC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지방의 어느 미술관이 유명 근대화가의 전시를 개최한다는 인터넷 기사인데, 전시 주최 측에서 대표작으로 내세운 그림이 위작(僞作)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가짜로 보는 몇 가지 근거를 들며 “나중에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라면서 혀를 찼다.

최 소장은 굵직굵직한 위작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중심에 있어온, 자타 공인 국내 최고의 미술품 감정 및 복원 전문가다. 2005년 이중섭 위작 사건, 2007년 박수근 ‘빨래터’ 사건 등에서 그는 문제가 된 작품들이 왜 가짜인지 과학 감정 결과를 공개했다가 논란을 촉발하고 민·형사상 고발을 당기도 했다. 최근 이우환 위작 사건에서도 경찰은 먼저 그를 찾아와 압수한 그림들의 진위 감정을 부탁했다. 그가 “모두 가짜”라고 발표하고 이우환 화백이 “모두 진짜”라고 주장하자 요즘 미술계 일각에선 “다들 최명윤에게 휘둘린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의 자택 겸 연구소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다. 예술가와 화상(畵商), 컬렉터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얼마 전 심산한 마음을 달랠 겸 동네 목욕탕에 갔더니 사람들이 두 패로 갈려 경찰 압수 그림을 놓고 “진짜다” “가짜다” 하며 갑론을박하더란다. 그는 “뜨거운 물에 푹 담그러 간 것인데 얼른 세수만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평창동 싸움닭

▼ 또 논란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싸움닭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죠. 하지만 일일이 상대하자면 내 말이 거칠어지고, 그러면 내가 옳아도 져요. 그러니 못 들은 척해야죠.”

이우환 위작 사건에 이어 천경자 ‘미인도’ 진위 논란까지 일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위작 근절 대책을 추진하는 등 ‘이 참에 위작 문제를 뿌리뽑자’는 여론이 형성됐다. 최근 문체부 주최 토론회에서는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감정을 의뢰받은 작품 중 30%가량이 위작이라는 사실도 거론됐다.

▼ 국내 미술시장에 위작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요.

“위작 비율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화가를 대표하는 화집에 실린 작품 중에 위작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국내 미술품 도록은 대부분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화상들이 그림을 팔기 위해 만든 고급 양장본 형태예요. 거기에 의심쩍은 그림들이 섞여 들어가 있고요. 그래서 문체부의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 작가의 중요 작품을 집대성한 전작도록) 사업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문체부는 빈번하게 불거지는 위작 시비 등으로 미술품 감정 기초자료 마련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전작도록 발간을 추진 중이다. 1차 대상 작가로 박수근과 이중섭이 지정됐고, 사업 시행 기관도 선정됐다. 최 교수는 “박수근, 이중섭에 대한 선행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작도록을 만드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오히려 시장에서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지금 할 일이 아니다?

“천천히 제대로 가자는 게 제 주장입니다. 먼저 학술 연구를 해서 걸러낼 것은 걸러내자는 거지요. 지금 상황에선 유명 화집에 실리고 전시 경력이 화려한 그림들이 단순 취합될 수밖에 없어요. 또한 이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 중에 과거 위작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도 있습니다. 문체부는 전작도록에 실을 작품을 추려 인터넷에 공개하고, 이의 있는 사람은 그때 의견을 제시하라는데, 이런 발상이 도대체 이해가 안 돼요. 근현대 미술사 학자가 없다고만 하지 말고, 학술연구 공모를 했으면 합니다. 여기에 응할 젊은 학자는 많아요.”


“전문가는 알아채는군”

최 소장은 그간 보고 겪은 가장 황당한 위작 사건으로 이중섭 사례를 들었다. 2005년 그는 대형 전시회를 앞둔 이중섭의 그림들을 가짜라고 감정했다가 그림 소장자 김용수 씨와 이중섭 화백의 둘째아들 이태성 씨로부터 민·형사상 고발을 당했다(무고로 끝났다). 그리고 이후 오히려 김씨가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검찰은 이씨를 공범으로 보고 지명수배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서울 중구) 황학동에 가면 10만 원에 서너 점 살 수 있는 조잡한 그림들이었다”고 했다.

“조잡한 그림을 진짜라고 우기는 사람들, 가짜라는데도 굳이 경매에 올려 그림을 판 대형 화랑도 황당했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김씨와 이씨가 각자 따로 저를 고발하면서 둘 다 제 이름을 ‘최명원’이라고 적어냈더군요.”

최 소장에 따르면 국내 미술계에서 위작의 역사는 깊다. 1990년대 최 소장은 절친한 친구의 부탁으로 재벌 회장의 자택에 소장품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스무 점을 본 뒤 그는 “그만 보고 싶다”고 했단다. 단 한 점도 진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장이란 양반이 내 말을 듣고 씩 웃으며 그러더군요. ‘전문가는 가짜인 걸 알아채는군.’ 진위 감정을 하려고 저를 부른 게 아니었던 거죠. 그 다음 말이 더 기가 막혔습니다. ‘(가짜라는 걸) 당신은  알아봤지만 한 세대만 지나면 아무도 못 알아볼 것’이라고. 위작이 판을 치는 것은 이런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과연 문화민족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집을 나오면서 회장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가짜란 말을 못하지만, 앞으로 시간이 흘러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세상에 나오면 가짜임을 증명할 수 있을 거다. 지금은 과학 감정을 하려면 엄청나게 큰 기계가 필요하지만 30년 후엔 만년필만 해질 것이다’라고.”

최 소장은 “아직 만년필은 아니지만 들고 다닐 정도로 장비 크기는 작아졌다”고 덧붙였다.

▼ 진심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까.

“딱 한 분. 1970년대에 조흥은행에 근무하던 분이에요. 점심시간마다 빵으로 끼니 때우고 그림 보러 다니셨죠. 보너스를 탄 날엔 그림 한 점 사서 표구하러 우리 화방에 왔어요. 완성한 액자를 받으면 한숨 푹 쉬면서 ‘아이고, 오늘 마누라한테 죽었네’ 하셨어요. 그림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분들이죠.”



그림이 하는 말

최 소장은 화방집 아들이다. 1950년대 국내 최초로 미술 재료를 취급한 명미당과 서울화방을 운영한 최영소 선생이 부친이다. 박서보 등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회고록에는 최영소 선생과 그의 화방이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최 소장은 소년 시절부터 가게로 불려나가 캔버스 만드는 법, 안료 구별법 등을 체득했다. 웬만한 화가들의 캔버스는 직접 만들고 배달까지 했다. 화방을 물려받으려면 미대에 가는 게 좋겠다는 부친의 뜻에 ‘등 떠밀려’ 홍익대 응용미술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망가진 그림을 복원하는 일도 도맡아 했다.

“저녁 6시가 되면 우리 화방이 화가들 모임 장소가 되곤 했어요. 그때부터 한밤까지 술 취한 선생들을 댁으로 모셔다 드리곤 했지요. 1970년대에 ‘민족기록화’라고 해서 정부에서 화가들에게 미술 재료를 지급했어요. 근데 작가마다 즐겨 쓰는 색상이 다릅니다. 파란색을 많이 쓰는 선생이 ‘명윤아 파란 물감 좀 구해와라’ 하면 ‘○○○ 선생은 흰색을 많이 쓰니까, 흰색을 가져가서 파란색으로 바꿔오겠습니다’ 했지요. 선생들 비리도 많이 알아요.”

▼ 비리?

“사모님 몰래 예쁜 아가씨한테 그림 그려주는 거요(웃음).”

▼ 당시 이우환 화백도 만나봤습니까.

“1970년대에 박서보 선생이 이 화백을 모시고 우리 화방에 왔어요. 캔버스 등을 주문받은 기억이 납니다.”

미대에 진학한 그는 쟁쟁한 동기생들 사이에서 자신에겐 예술적 재능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보존미술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 시절, 동기들 캔버스 만들어주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를 받은 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랄페르 기술연구소에서 복원 기술을, 고등장식미술학교 아르데코에서 벽화 기술을 배웠다.

▼ 학교보다 화방에서 미술품 복원 지식과 경험을 더 쌓았다고요.

“화방에 앉아 있으면 별의별 그림이 다 찾아옵니다. 부부 싸움으로 찢어진 그림,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캔버스와 겹쳐 놔 상한 그림…. 명색이 미대생이니까 저보고 고치라고들 했지요. 그러면서 차츰 그림들이 하는 말이 들리게 됐습니다.”

▼ 그림이 말을 한다?

“그림을 가만 보면 ‘나는 거꾸로 놓여 있었어요’ ‘벽장 속에 있었어요’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났어요’ 같은 말이 들려요. 선친이 캔버스 나무틀을 대패질시킨 게 생각나요.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화방들이 사용하는 톱날이 한 종류였습니다. 그 톱날은 나무를 매끈하게 자르지 않고 꺼풀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대패질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것은 화가가 알 수 없는 일이죠. 감정 전문가는 이런 것들까지 공부해 진위의 키포인트를 잡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미술, 과학, 법

이우환 위작 수사팀은 최 교수의 이러한 감정 노하우에서 많은 도움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가짜 그림을 걷어내는 것은 미술시장과 작가를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 협조 요청에 응한 것”이라고 했다.

▼ 수사팀은 어떻던가요.

“제가 ‘결혼들은 했냐’고 물었을 정도입니다. 도대체 집에는 언제 가는지, 밤낮없이 뛰어다니니까요. 지방으로 기준작 조사를 하러 갈 때는 새벽에 움직이곤 했습니다. 밤새 운전하고 조사하는 내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게 안쓰러워 밥 한 끼 사주려고 하면 사양하더군요. 열심히 수사하고 계좌 추적 등으로 특정인을 주목해가고…. 참 잘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미술 쪽에서는 전문성이 없으니까 진위 수사와 관련해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등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문체부에서 추진하는 특별사법경찰제도가 도입되면 이런 게 해소될 수 있을 거예요.”

문체부는 위작 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전작도록 사업 이외에도 국가미술품감정연구원(가칭) 설립, 특별사법경찰제도(이하 특사경)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특사경은 식품·의약품을 단속하는 식약처 공무원처럼 전문지식을 갖춘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것. 최 교수는 “이미 문화재 분야에서는 특사경이 활동하고 있다”며 “오늘은 현대미술이지만 내일은 문화재라는 점에서 근현대미술 분야에서도 특사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법미술학’을 강조하셨는데요.

“과학 감정만으로는 설득에 한계가 있습니다. 법과 미술을 결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진위를 입증해야 만연한 위작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어요. 미술사, 물리학, 화학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면 점점 더 실력이 쌓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구나 과학감정에 필요한 장비가 매우 고가입니다. 이런 이유에서도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해요.”

▼ 위작인 줄 모르고 팔면 죄가 안 되는 현행 법체계에서 특사경이 도입된다 해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화상들은 늘 그래왔습니다. 위작 판매 사실이 적발되면 ‘진짜인 줄 알았다’며 다들 고장 난 라디오처럼 똑같이 말합니다. 그림 판매는 일반적인 상행위와 다릅니다. 문화를 다루는 것인데, 최소한의 공부를 하고 책임감도 있어야 해요. 우선 특사경을 도입하고, 맹점을 차근차근 개선해갔으면 해요.”

▼ 특사경에 참여합니까.

“어떤 역할을 맡는 것은 아니고 재능 기부 차원에서 돕고 싶은 바람은 있습니다.”



박수근 위작에 큰 관심

그는 이중섭 사건 때 사비를 털어 안료 성분을 분석하는 형광분석기(XRF)를 6000만 원을 주고 샀다. 그 돈을 갚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의 연구실엔 복원을 기다리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 놓여 있곤 한다.

▼ 미술품 복원이 돈이 되진 않나요.

“저희 연구소에 복원을 맡기려면 선행 조건이 있습니다. 의뢰자가 해당 작품이 진품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해요. 가짜를 고쳐줄 순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화랑 의뢰는 없고 화백들이 회고전을 준비하며 옛 작품의 복원을 부탁합니다. 돈이 되질 않죠. 명지대 정년퇴직 후 객원교수로 계속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제 월급을 연구소 운영에 갖다 쓰지요.”

어느 컬렉터로부터 최 소장에 대해 들은 얘기다. 모처에서 위작을 접한 최 소장은 늦은 밤 제자들에게 전화해 장비를 들고 오도록 했다. 달려온 제자들에게 그는 “봐라, 이런 그림을 진짜라고 하면 평생 책임져야 한다”고 산 교육을 했다.

▼ 감정을 가르치면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되도록 진위에 대해 입을 열지 말라고 합니다. 함부로 위작이라고 하면 안 되지만, 또한 함부로 진작(眞作)이라 해서도 안 됩니다. 위작이라고 의견을 밝힐 경우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유를 3가지 이상 댈 수 있어야 해요. 또한 판단이 틀렸을 경우 일절 변명하지 말라고 합니다.”

▼ 어느 작가의 위작 문제에 가장 관심이 많습니까.

“박수근이지요.”

▼ 어떤 점에서?

“흔히 마티에르라고 하는 도돌 질감의 박수근 유화는 1953년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 출품작부터 나타납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인정되는 도돌질감 유화가 600여 점이에요. 모두 진품이라면 1년에 60점씩 그렸다는 얘긴데(박수근은 1965년 작고했다), 화가는 1957년 국전에서 낙선하자 붓을 놓고 방황했고, 1963년에는 눈 수술로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또 1940년대 작품에서도 도돌 질감 유화가 나와요. 문헌 연구 등 준비 자료는 다 갖춰놨습니다. 그림만 확보하면 한 달 안에 진위를 가려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수근, 이중섭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 화가다. 특히 올해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으로 그에 관한 전시가 자주 열린다.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물고기를 그린 그림, ‘아빠가 돈 많이 벌어 선물 사 갈게요’라는 화가의 편지 앞에서 많은 이가 눈물을 훔친다. 화가의 삶이, 그가 남긴 예술이 대중에게 큰 위안이 된다면 그것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위작이 일부 섞여 있는 것은 눈감아줄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의 가치’ 지키려면

▼ 위작에 대해 꼭 그렇게 집요해야 합니까.

“대중은 그림이 아니라 스토리에 감동하는 겁니다. 제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 점이에요.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그림 공부를 귀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귀로 들은 것에 얽매이면 못난 그림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는 거죠.

예전에 어느 국회의원으로부터 ‘그림을 감성으로 봐야지, 꼬치꼬치 따지면 그림이 보이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따져서 그림을 골라내고 대중이 그것을 감성으로 보는 거지, 이거저거 다 놓고 감동한다면 그거야말로 비극 아니겠느냐고 했어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림을 귀로 봐왔기에 작금의 문제들이 생긴 것이기도 합니다.”

평생을 미술에 둘러싸여 지내고도 그림을 ‘예술’로 보지 못하는 그에게 “좋아하는 화가가 있냐”고 물었다. 그는 화방을 물려받지 않고 복원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친과 했다는 두 가지 약속을 그 대답으로 대신 내놨다. 첫째, 그림을 사고팔지 않는다. 둘째, 그림을 소장하지 않는다. 그림에서 이득을 보는 순간 학자로서 객관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는 “손상된 그림 하나 싸게 사서 몰래 복원해 되팔면 연구소 운영비 몇 년치를 한번에 벌 수 있다”며 웃었다.

▼ 이우환 위작 사건이 누군가의 정교한 거짓말에 모두가 속아 넘어간 것일 가능성도….

“위조범들은 경찰이 압수한 그림을 보기 전에 캔버스를 매는 방법, 안료를 만든 방법 등을 진술했고, 그 내용이 압수된 그림과 일치했습니다. 그들 작업실에서 나온 안료도 위조 그림에 쓰인 것과 동일했고요. 만약 그들이 위작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것 외에도 여러 근거가 있지만…앞으로 차차 밝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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