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호

특집 | ‘김해新공항’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

후폭풍, 순풍, 역풍 바람 타는 민심

밀양·가덕도·김해공항 현지 르포

  • 김준용 | 부산일보 사회부 기자 jundragon@busan.com

    입력2016-08-02 10: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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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부동산 거래 ‘올스톱’
    • 가덕도 땅 투자자는 손절매
    • 김해공항 주변, “뜻밖의 선물꾸러미”
    10여 년간 동남권(부산지역 언론은 ‘영남권’ 대신 ‘동남권’으로 표기한다)에 불던 ‘신공항 바람’의 방향은 부산 가덕도도 경남 밀양도 아니었다. 정부가 내놓은 답은 ‘김해공항 확장’(부산지역 언론은 ‘김해 신공항’ 대신 ‘김해공항 확장’으로 표기한다)이었다.

    정부가 동남권에 던진 다소 의외의 답은 가덕도와 밀양을 함께 혼란에 빠뜨렸다. 가덕도나 밀양 땅에 투자하면서 ‘신공항 부동산 바람’을 기대한 투자자들은 거센 후폭풍에 시달린다. 뜻밖의 확장안을 받아 든 김해공항 일대 주민들은 공항에서 불어오는 ‘순풍’에 들썩인다. 토지 보상, 소음 피해 대책 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순풍은 역풍으로 돌변할 수 있다.



    밀양·가덕도, 후폭풍 속으로

    “그놈의 신공항 때문에 마을이 십 수 년 동안 쑥대밭이 됐는데, 이제 속이 다 시원하다카이.”

    6월 21일 김해공항 확장안이 발표된 직후 경남 밀양시 하남읍 주민 김근우(61) 씨의 반응이다. 김씨의 말대로 2004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불어닥친 ‘신공항 바람’은 마을을 분열시켰다. 외지인들이 마을 땅을 야금야금 사들였다. 2011년 이명박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마을은 2012년 대선 공약으로 신공항이 재론되면서 다시 들썩였다. 2016년 땅을 가진 주민들은 ‘밀양 신공항’을 외쳤고, 지주의 땅에서 농사짓던 소작농들은 묵묵히 ‘신공항 반대’를 외쳤다.



    하남읍 주민 김준호(63) 씨는 “젊은 세대들은 여기서 농사지어 자식들 학교도 보내고 시집, 장가도 보내야 하는데, 땅 가진 윗세대들은 공항으로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있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여기다 공단을 지으려다 땅이 비옥해 포기한 일화도 있는데, 땅 사놓은 외지 투기꾼들만 불쌍한 꼴이 됐다”고 했다.

    김해공항 확장안 발표 이후 하남읍의 부동산 거래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신공항 발표가 임박한 지난 5월만 해도 하남읍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들엔 하루에도 수십 통의 매수 문의가 빗발쳤다. 2009년 3.3㎡(1평)당 평균 20만7500원 선이던 토지 가격은 신공항 후보지 발표 이듬해인 2010년 29만 원대로 50% 가까이 껑충 뛰었다. 그러더니 신공항 유치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해엔 38만6610원을 돌파했다. 2배 상승한 셈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평당 평균가는 신공항 예정지 발표 직전까지 38만 원대를 유지했다.

    밀양시 삼문동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대구와 부산, 창원, 울산 등지에 사는 분들이 이곳 땅을 사놓은 경우가 있다”며 “당장은 땅값이 모두 내림세라 매물로 내놓진 않지만, 사놓은 땅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루에 몇 통씩 전화가 온다. 우리라고 답이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밀양시 초동면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성철(55) 씨는 “신공항 예정지 발표 전엔 초동면 농지도 평당 20만 원 선을 웃돌았는데 지금은 찾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계약 후 잔금을 치르기로 해놓고 계약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아 부동산 시장은 현재 공황상태”라고 말했다.

    “무작정 털고 나가기엔…”

    오를 때까지 오른 땅값은 향후 지역경제에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 박일호 밀양시장은 6월 21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10년 동안 신공항 부지 선정 문제로 밀양시민들은 지치고 땅값만 올라 밀양의 개발 가능성을 소멸시켰다”고 정부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시한 바 있다.

    가덕도 주변 부동산 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부산지역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부산은 물론 김해, 진해 등지에서 온 투자자들이 신공항 후보지로 거론되던 대항동과 배후지역인 천성동, 성북동의 부동산에 신공항 발표 직전까지 큰 관심을 보였다. 2013년 가덕도의 부동산 거래 건수는 243건, 2014년엔 381건, 2015년엔 363건으로 거래가 꾸준히 이어졌다. 올 상반기에도 4월 말까지 129건이나 거래됐다. 외지인들이 토지 매입에 나서면서 10년 전 평당 70만 원 안팎이던 땅값이 신공항 발표 직전에는 5배나 오른 350만 원선에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공항 건설이 무산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가덕도 땅을 사들인 외지인들이 부동산 가격 하락을 우려해 손해를 감수하고 손절매에 나서고 있다. 이를 두고 가덕도 주민들은 지난 10년 동안 신공항 선정 문제로 땅값만 올려놓고, 정부와 부산시 모두 가덕도의 개발 가능성을 소멸시켰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주민자치위원장 김모(59) 씨는 “정부는 10년 동안 신공항 바람만 잔뜩 불어넣었다”며 “가덕도는 지형 특성상 체류형 종합 관광휴양지로 발전할 수도 있었는데, 신공항에 매달리느라 어떠한 개발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가덕도 일대 부동산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김해공항 확장안 발표 이후 드문드문 땅 판매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매수 문의가 빗발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가덕도에서 13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하재민(55) 씨는 “신공항 유치 실패로 당분간 땅값 하락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부산시가 갖고 있던 가덕도 종합개발계획이나 일대 관광지화 사업 등이 남아 있어 무작정 손을 털고 나가는 건 재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확장 김해공항’의 순풍

    “누가 신공항 보고 선물 보따리라 카든데, 진짜 우리가 뜻밖의 선물꾸러미를 받았다.”

    부산 강서구 대저2동에서 15년째 철물점을 운영하는 주민 최모(56) 씨의 말이다. 대저2동엔 김해공항 확장안 발표 이후 ‘김해공항 확장안 대환영’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주민들 사이엔 신공항 발표에 따라 없어질 수도 있었던 김해공항이 복덩이가 돼 돌아왔다는 말이 나온다.

    김해공항 일대 부동산 시장은 신공항 발표 직후 일시적으로 과열 조짐을 보였다. 6월 22일 만난 대저1동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공항 인근 상권의 임대료 시세가 많게는 20%까지 오르지 않겠느냐”며 “다만 제주 제2 공항처럼 신속히 이 일대를 모두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고 부동산 대책을 내놔야 나중에 보상 문제 등으로 정부가 골머리를 앓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규 동의대 재무부동산학과 교수도 “단기적으로 김해공항 인접지는 땅값이 오를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사상구와 사하구 등 서부산권 주택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지역 주민들은 김해공항 확장안에 따른 상권 활성화를 기대한다. 대저2동에서 11년째 식당을 하는 손진수(55) 씨는 “김해공항 입구에 있지만 사실 여행객들이 쉬어가거나 돈을 쓸 만한 상권이 형성돼 있진 않았다”며 “얼마 전 개발제한구역이 일부 풀렸는데 이번 확장안을 계기로 남은 개발제한구역까지 싹 풀리면 지역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김해공항 확장안을 반겼다.

    주민 박영희(48·여) 씨는 “현재는 식당, 주점 등이 허름해 군부대 사람들마저 인근 김해나 부산 시내로 나가는데 공항이 확장되면 여행객들이 공항 주변을 이용하지 않겠느냐”며 “밀양이나 가덕도로 가면 김해공항은 아무래도 죽는 게 아닌가 했는데, 진짜 뜻밖의 호재”라고 말했다.

    ‘배후지’에 관심
    김해공항 확장안 발표 후 3주 남짓 지난 현재 부동산 시장은 안정세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김해공항 인근이 항공 클러스터, 연구개발특구 등의 영향으로 내년 5월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시장 요동 폭이 크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확장안 발표 직후 공항 인근 부동산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많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일관된 이야기다.

    일단 땅값이 너무 올랐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거래허가구역이 아닌 곳은 가격대가 이미 높게 형성돼 있었는데, 김해공항 확장안이 가격 상승을 다시 한 번 이끈 것이다. 또한 공항 확장 구체안이 아직 나오지 않은 만큼 매물을 급히 내놓는 사람이 없는 것도 현실적인 이유다.

    대저2동 J부동산 관계자는 “대저역세권 개발, 항공 클러스터, 연구개발특구 등 공항 인근은 워낙 ‘정책 바람’을 맞아서 부지 가격이 오를 대로 올랐다”며 “그냥 무작정 공항 인근이라고 온 사람들은 비싼 가격에 혀를 내두르고 갔다”고 전했다.

    대저 1·2동과 강동동의 공인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 도로와 가까이 붙은 농지는 평당 80만~90만 원, 공항 인근 마을의 주택이나 상가 등의 토지는 평당 400만~800만 원대가 시장가격이다. 2011년에 ㎡당 공시지가가 18만3000원이던 대저1동의 한 토지는 올해 초 30만5900원으로 5년 새 무려 67% 급등했다. 김해공항 확장이 예상되는 부지는 이미 오를 대로 올랐다는 것이다.

    강동동의 J부동산 관계자는 “김해공항 확장 예정지는 어차피 수용될 토지이고, 막상 투자자들도 비싼 땅값에 섣불리 못 움직이는 형국”이라며 “오히려 부산 북구, 사상구 일대의 접근성 높은 배후지 부동산이 투자자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소음과 보상 ‘역풍’

    7월 1일 오후 3시 부산 강서구 봉림동 농업인복지회관. 주민 수십 명과 몰려든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회관에 등장하자 고성이 터져 나왔다. “서병수 사퇴하라”, “소음 피해는 누가 책임질 거냐”는 등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한 불만이었다.

    봉림동 일대는 김해공항 확장으로 700여 가구가 새로 소음피해 지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서 시장은 주민들에게 “소음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향을 찾으려고 노력하겠다”며 “이곳을 먼저 찾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거센 항의는 향후 김해공항을 확장하기까지 적지 않은 난제가 쌓여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음 피해 권역 설정, 피해 보상 문제 등에서 집단 반발마저 예상되는 부분이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연구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추가 활주로 건설로 발생하는 소음 피해 가구를 1000가구 미만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김해공항 인근 주민들은 소음 피해가 현재보다 최소 2배, 최대 10배가량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해공항소음대책위원회 측은 공항 확장으로 2000가구 정도가 추가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해지역에선 20만~30만 명의 시민이 지금도 직·간접적으로 항공기 소음에 노출돼 있다며 피해 확산을 우려하는 마당이다. 현재 김해공항 인근엔 25개 마을 702가구가 소음 피해 권역에 있다. 지난해 이들 가구에 지원된 금액은 56억 원에 달한다.한 항공전문가는 “새 활주로가 생기면서 비행기가 김해 시내를 관통하고 시간까지 연장되면 소음 피해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해시는 김해공항 확장에 대비한 신공항 전담팀 신설과 함께 자체적인 소음 연구용역을 준비 중이다.

    “예산 최대한 끌어내야”

    부산시는 ADPi 측의 연구용역 자료를 아직 받지 못해 추가 소음 피해와 이에 따른 보상액 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을 지지해온 부산지역 시민단체는 “소음 피해 가구 규모에 따라 보상금을 비롯한 김해공항 확장 예산이 달라지는 만큼 부산시가 이를 제대로 파악해 정부로부터 최대한의 예산 지원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음 권역 확대, 토지 보상 문제 등으로 인한 주민 반발은 김해공항 확장의 마지막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해공항 확장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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