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호

“창조자, 수도자의 삶… 또 한번의 승리 기원”

이광형의 ‘정문술論’

  • 이광형 |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khlee@kaist.ac.kr

    입력2016-08-02 10: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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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술 미래산업 창업자를 만날 때마다 세상을 떠난 법정 스님을 만나는 느낌이 든다. 필자는 스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분의 글을 읽으면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며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번민하는 수도자의 광경이 그려진다. 스님이 말하는 무소유는 어느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 스스로 다짐한 것일 뿐이다. TV로 중계된 스님의 다비장(茶毘葬) 광경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제자들의 손에 들려 들어가는 다비장 불 속은 모든 것을 이룬 후에 찾아가는 열반의 세계였다.  

    정문술 창업자의 후반기 삶은 생물학적인 본능에 맞서는 ‘수도자’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오직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온 것이다. 2001년 초 회사에서 은퇴를 선언하다가 “자식들도 동의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울음을 보였다. 2001년 봄 기부를 약속한 후 KAIST가 행정 절차로 시간을 끌자 “내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니 어서 돈을 가져가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마침내 2014년에는 마지막 돈을 기부하면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노라”며 소리쳤다.



    표범의 눈 같은 통찰력

    정문술 창업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학자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만들어가는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1983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이루어낸 것이 첫 번째 사례다. 두 번째는 2001년 2월 BT(생명공학기술)와 IT(정보기술) 융합이 국가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KAIST에 바이오 및뇌공학과 설립을 요청했다. 그해 6월 9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BT와 IT 융합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떠오른다.  

    정문술 창업자는 표범의 눈과 같은 통찰력을 가졌다. 일부에서는 타고난 통찰력이라 하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꾸준한 노력의 산물이다. 늘 많은 책과 신문을 읽으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에 맞게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결단들은 결국 그에게 영광을 안겨주었다.



    창업한 회사에서 스스로 물러난 결단, KAIST에 300억 원을 기부한 결단, 국민은행 이사장을 사퇴한 결단, KAIST 이사장을 사퇴한 결단, 또다시 215억 원을 KAIST에 기부한 결단… 이러한 결단은 30년 후에는 모든 것이 종료돼 있을 것이라는 ‘수도자’의 통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제 세상을 떠나기 위해 작은 가방 하나만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문술 창업자. 부디 그가 염원하듯이 노욕에 흔들리지 않는 또 한번의 승리를 이뤄내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미래’ ‘창조’ ‘기부’라는 단어와 함께 기억되는 영원한 ‘어른’으로 남아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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